피죤 ‘황태자의 난’ 전말

돌아온 장남, 그의 반란이 시작됐다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피죤 황태자’가 돌아왔다. 스스로 경영에서 물러난 줄만 알았던 이윤재 회장의 외아들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독기를 품은 모양새. 타깃은 지휘봉을 쥐고 있는 누나다. 양측간 팽팽한 긴장감이 피죤을 휘감고 있다.
 
피죤 경영권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윤재 회장의 외아들 정준씨가 누나 이주연 대표를 상대로 소송을 걸면서 갖가지 추측이 나오는 상황. 남매간 이상기류가 드디어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회사 입장에선 ‘황태자의 난’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바람 잘 날 없다
 
이 회장은 부인 안금산씨와 사이에 1남1녀(정준-주연)를 뒀다. 법원에 따르면 정준씨는 최근 이 대표를 상대로 “회사가 입은 손해를 물어내라”며 억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정준씨는 “이 회장이 구속된 기간 회사가 입은 손해에 대한 책임을 실질적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이 대표가 져야 한다”며 “이 회장과 이 대표는 횡령·배임의 책임을 서로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2011년 청부폭행 혐의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복역한데 이어 2013년 횡령·배임 혐의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최근 이 회장은 횡령·배임 소송 과정에서 변제한 113억원 중 96억원을 되돌려달라는 소송을 냈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취하했다. 이 회장이 법원에 묶여 있는 동안 회사는 이 대표가 맡았다. 이 대표는 2011년 10월부터 단독으로 대표이사직을 수행해 왔다.
 
이 대표는 정준씨의 ‘위치’를 문제 삼고 있다. 회사에 대해 왈가왈부할 권한이 없다는 것. 이 대표 측은 “이씨는 명의상 주주에 불과하다. 회사의 실제 주주가 아니기 때문에 소송을 제기할 권리가 없다”며 맞서고 있다.
 
 

남매는 소송 연장선상에서 주주명부를 두고도 붙은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정준씨는 지분 32.1%를 소유한 피죤 최대주주. 정준씨는 1978년 피죤이 설립될 때부터 주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11세에 불과했다. 이 회장과 이 대표는 각각 22.3%, 15.3%를 보유하고 있다. 피죤 감사보고서엔 ‘주요주주는 이주연 외 특수관계인으로서 지분율은 100%’라고만 기재돼 있다.
 
이 대표 측은 “이씨의 주식은 모두 이 회장이 명의신탁한 것”이라며 이씨가 삭제된 주주명부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정준씨는 앞서 지난 6월 법원에 주주명부 열람·복사 가처분 신청을 냈고, 재판부는 이를 일부 받아들였다. 이 대표는 법원 결정에 불복해 다시 불가 가처분을 낸 상태다.
 
사실 부자간, 남매간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지된 것은 꽤 오래전이다. 배당금 소송이 발단이 됐다. 정준씨는 2011년 피죤과 이 회장 등을 상대로 배당금 지급명령 신청을 법원에 냈다. 피죤은 2010년 배당금으로 주주들에게 38억6600만원을 지급했다. 그전에도 2005년 20억원, 2006년 31억5600만원, 2007년 36억8200만원, 2008년 15억7800만원, 2009년 47억3400만원 등의 배당을 실시했다.
 
정준씨는 “배당금을 한푼도 받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 회장과 피죤은 즉각 이의를 제기해 소송으로 이어졌다. 당시에도 명의신탁 논쟁이 벌어졌다. 아들과 법정 다툼을 벌인 이 회장은 “아들 주식은 내가 명의신탁한 것이기 때문에 배당금을 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의 주장과 달리 법원은 정준씨의 손을 들어줬다. 이 회장은 오히려 명의신탁을 빌미로 탈세와 횡령 등의 의혹을 받았다.
 
누나 상대로 “회사 손해 물어내” 소송
주식 신탁도 도마…결과 따라 후계 요동
 
이번 소송이 세간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베일에 싸인 정준씨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준씨는 이력은 물론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언론이나 사내외 행사 등 일체 외부에 노출된 적이 없다. 인터넷에서 기본 정보조차 찾기 힘들다. 피죤 직원들 사이에선 “회장님 아드님이 누군지 며느리도 모른다”는 농담이 오갈 정도. 공식적으로도 정확한 신원을 모른다고 했다. 
 
 

워낙 드러난 게 없다 보니 그를 둘러싼 설왕설래도 끊이지 않았다. 다만 현재 미국 거주 사실만 확인된다. 올해 48세인 정준씨는 연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메릴랜드주립대 타우슨대학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대학에서 종신재직권을 얻었다는 후문이다.
 
당초 회사 경영에 뜻이 없어 일절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소송을 계기로 베일을 벗지 않겠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현 지분이라면 언제라도 경영에 뛰어들 수 있다는 것. 이 회장은 2011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론이 탄탄한 아들이 피죤 경영에 합류해 큰 힘이 되길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래도 현재로선 기존의 오너구도를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은 아직까지 구체적인 후계자 지명을 하지 않았지만 이미 2세 경영을 구축한 상태다. 주인공이 바로 이 대표다. 올해 51세인 이 대표는 이 회장의 딸이자 ‘경영 파트너’다. 재계에선 드물게 ‘부녀 승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유력 후계자인 이 대표는 서강대 영문학과와 메릴랜드 미술대, 뉴욕 퀸스대 대학원 회화과를 나왔다. 10년 가까이 미술 공부를 하다 1996년 디자인 팀장으로 피죤에 입사해 마케팅 실장과 재무·인사·총무를 총괄하는 관리부문장, 부사장 등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앉았다.
 
재계 관계자는 “자녀가 둘인 이 회장으로선 선택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둘 중 한명으로 후계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며 “올해 81세로 은퇴할 나이가 지난 이 회장이 누구를 선택할 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진짜 노림수는?
 
정준씨가 이 대표를 상대로 한 소송은 9월17일 선고를 앞두고 있다. 주주명부 사건 역시 조만간 최종결론이 난다. 지금까지 신경전을 벌였던 피죤 남매. 두 결과에 따라 진짜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라진 ‘피죤 사위’ 왜?
 
이주연 피죤 대표의 남편 하정훈씨의 거취가 묘연해 궁금증을 낳고 있다. 현재 어디서 뭘 하는지 근황이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는 것.
 
모친이 경북여고 동창이란 인연으로 만난 두 사람은 1987년 결혼했다. 서울대 경제학과와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하씨는 대우경제연구소, 대우증권에서 경력을 쌓은 후 2003년 피죤에 합류했다.
 
이후 피죤 영업총괄 부사장, 피죤모터스 사장 등을 맡았다. 이 대표와 함께 찰떡궁합을 과시하며 대표적인 ‘부부경영’케이스로 자주 소개됐다. 일각에선 이윤재 회장이 경영에서 물러나면 하씨가 전면에 나서지 않겠냐는 조심스런 관측도 제기됐었다.
 

이도 잠시. 하씨의 이름은 언론에서 사라진지 오래다. 그의 마지막 소식이 전해진 것은 2007년. 이후 기사 한줄 나오지 않고 있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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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