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고등학교의 소문과 진실

치마만 두르면 다…늑대교사 ‘우글’

[일요시사 사회2팀] 유시혁 기자 = 서울 소재의 G고등학교가 연쇄 성추행 및 성희롱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가운데 사건 가해자 명단에 학교장이 포함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더했다. 남자교사 5인은 동료 여교사와 여고생들에게 상습적인 성추행과 성희롱을 일삼아 왔으며, 학교장마저 여교사의 허벅지를 만지고 “애인 있느냐?” “C컵이냐?” 등의 성희롱 발언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학교장은 관련 사실을 교육당국에 보고하지 않는 등 의도적으로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G고등학교의 연쇄 성추행 및 성희롱을 둘러싼 소문과 진실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달 14일, G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 여고생이 50대 A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학교와 경찰에 신고해 서울시교육청이 감사에 나섰다. 감사 결과, B교사의 상습적인 성희롱 발언에 대한 사실도 확보했으며 서울시교육청은 두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20일부터 23일까지 여교사 및 여고생들을 상대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 4명의 추가 성추행 및 성희롱 가해 남교사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한 학교에서 6명의 남교사가 연쇄 성추행 및 성희롱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이에 각종 언론사는 관련 사실을 보도하고 나섰지만 가해자 및 처벌에 대한 왜곡된 소문만 무성하다는 지적이다. <일요시사>에서는 가해 교사별 사건 내막에 대한 진실을 알아봤다.

[성고충 담당의 희롱]

 A교사의 성추행에 대한 피해 여고생의 진술에 따르면, A교사가 특별활동시간에 미술실에서 피해 여고생의 허벅지와 팔, 가슴을 노골적으로 만진 것으로 나타났다. A교사는 서울시교육청의 감사에서 “평소 친분이 있던 학생과 대화를 하다가 일부 신체 접촉이 있었을 뿐 성추행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긴급 설문조사에서 A교사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또 다른 여고생의 진실이 확보됐다. 특히 미술 특별활동반 여고생들을 상대로 지난해 초부터 반복적인 성추행이 이어져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시교육청은 A교사에 대한 혐의를 인정해 지난달 16일 형사고발하고 22일 직위해제를 통보했다. 뒤늦게 A교사가 해당 학교의 성고충상담실 책임자를 맡고 있었던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더했다.


[여학생·여교사 피해]

B교사는 여고생들에게 ‘황진이’ ‘춘향이’ 등의 조선 중후기 명기들의 별명을 붙여주는 등 성희롱 발언을 일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업시간에 연예인과 자신의 상상 성관계 장면을 묘사하기도 했으며, 여고생들에게 “원조교제하자”고 제안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지난 학기 수업 시간에는 “공부 못하는 남자는 군대 가고, 여자는 미아리 간다”고 말한 사실도 밝혀졌다.

B교사는 ‘미아리’가 ‘미아리점집’을 의미한다고 주장했으나, 감사에 나선 교육청 관계자는 서울시 성북구 길음동 일대의 집장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동료 여교사 6명을 교무실과 복도에서 상습적으로 성추행한 전적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한 여교사를 “처녀”로 불렀으며 평소 커터칼을 소지하고 다니며 교무실 문을 거칠게 닫는 등 위협적인 행동도 수시로 보여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성교육을 담당한 B교사에 대해 서울시교육청은 A교사와 마찬가지로 형사고발하고 직위해제했다.

[공포의 입시상담]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진학설명회 대표 강사이기도 한 C교사는 대학 입시라는 빌미로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별도로 관리하는 ‘특별반’을 구성해 여고생 6명을 상습 성추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학부모는 지난 2월, C교사를 경찰에 고발하고, 교육청도 지난 4월 직위 해제를 통보했다. 하지만 학교장은 경찰 조사 과정에서 C교사에게 3학년 담당 및 학년 부장직을 맡겼던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C교사는 3개월 직위해제 기간에도 동호회 활동을 근거로 학교에 수시로 드나들었으며 운동장에서 열린 뷔페 행사에도 참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년간 130여명 여교사·여고생 당해 
은폐한 학교장도 여교사 허벅지에 손

[노래방 강제추행]

지난해 2월24일, 2014학년도 1학기 준비를 위해 떠난 교사연수(1박2일) 과정 중 뒷풀이 노래방에서 D교사가 30대 여교사에게 블루스를 함께 추자며 강제로 성추행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불쾌감을 느낀 여교사가 정강이를 걷어차고 마이크로 머리를 치는 등 강하게 저항했으나 세 차례에 걸쳐 몸을 부비고 상의를 찢기도 했다.

동석한 학교장은 성추행한 D교사를 만류하지 않고 여교사를 말렸으며 성추행과 관련한 어떠한 징계 처분도 내리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여교사는 D교사에게 휴직 및 전출하지 않으면 형사고발하겠다고 협박, 병가·연가·휴가로 50여일간 휴직한 후 올 3월1일부로 전출 간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장이 D교사의 전출을 위해 인사고과에서 최고 평점을 줬다는 증언도 나왔다.

[학교장도 동참]

서울시교육청은 성추행 및 성희롱 사실을 보고 받았음에도 관련 사실을 축소 및 은폐했다는 의혹을 받은 학교장도 지난해 초 20대 초임 여교사들과 함께 한 회식자리에서 2명의 여교사를 성추행했다는 관련자의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학교장은 여교사의 허벅지를 만지고 “애인 있느냐?” “C컵이냐?” 등의 성희롱 발언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시교육청은 여교사의 성추행과 지난 2년간 성추행 및 성희롱 가해 교사에 대한 사실을 은폐한 혐의로 학교장을 경찰에 고발했다.

교장은 지난 5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입맛에 안 맞는 교장을 내쫓으려는 교사들이 있다”며 “학생들의 입장과 학교 명예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입술 찍어봐!”]

2014년 9월, E교사가 여고생의 입술이 빨갛다는 이유로 립스틱 단속 검사를 빌미로 손등에 입술도장을 찍게 하는 성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해교사
실명공개?

 
지난 6일, 서울시교육청은 ‘학교 성범죄 척결 및 학교문화 개선대책’을 발표하면서 G고등학교에 대해 “소통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능력있는 학교장으로 교체하겠다”며 “전현직 교감에 대해서도 철저히 조사해 필요할 경우 인사조치하며 피해 학생 보호와 회복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특히 2016학년도 대입 수시전형을 앞두고 혼란을 겪게 된 해당 학교의 재학생들을 돕기 위해 특별진학상담과 진학설명회를 개최할 계획도 밝혔다.

여교사 8명과 여학생 120여명이 피해를 봤을 것으로 추산되는 가운데 피해자에 대한 국민들의 염려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해 교사의 실명과 사진을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마저 형성되고 있다. 교육청은 지난 6일, 성 범죄 교원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인터넷커뮤니티사이트와 블로그를 통해 가해 교사에 대한 추측성 실명 및 담당 교과목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가해 교사에 대한 교직 파면을 제기하고 있으며 처벌에 대한 경중에 귀추를 기울이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교육공무원 징계 양정 등에 관한 규칙’ 개정안 시행에 따라 성범죄 교원에 대한 징계가 기존 견책·감봉·강등·해임·파면 등의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지 않을 것으로 추측이지만 추측성 가해 교사 및 처벌 강도에 따른 왜곡된 소문으로 피해 규모를 키울 지도 모른다는 지적이다.

 

<evernur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