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영부인이 피격 당했다.” 한반도를 발칵 뒤집는 소식에 국민들은 혼란스러웠다. 특히 피격 당한 사람이 대중적 사랑을 받던 대통령부인 육영수 여사였다. 슬픔과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41년이 지난 지금도 일각에서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 있다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있다.
1974년 8월15일. 대한민국의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재일교포 문세광이 쏜 총탄에 쓰러진 날이다. 사건은 벌써 41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다. 어느덧 당시 대통령의 딸이 성장해 대한민국의 18대 대통령이 됐을 정도다.
그러나 아직 ‘육영수 피격사건’은 한반도 최고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온갖 의문점들과 확인되지 않은 사실들이 난무한다. 역사를 바꿀 만한 일이었음에도 조작·은폐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어 국민들의 궁금증은 더해간다.
그 중 <스러진 달>이라는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여러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소설가 황천우는 그동안 자신이 확인한 것들을 통해 이 사건이 조작됐음을 주장하고 있어 <일요시사>가 만나봤다.
다음은 황천우 작가와의 일문일답.
-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게 됐다. 동기는?
▲진실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순간만 넘기자는 자세 때문에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야말로 현대사 최고의 미스터리이지 않는가.
- 왜 은폐됐다고 보는가?
▲ 김기춘(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당시 용의자 문세광을 심문했다. 그러자 묵비권을 행사하던 문세광이 입을 열었다. 이것만 봐도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중앙정보부가 개입됐다는 것과 사건을 축약했다는 것. 그때 김기춘은 중앙정보부 법률보좌관이었다.
- 중앙정보부가 개입한 이유는 무엇이라 보는가?
▲이전에 김대중 납치사건이 일어나 한일관계가 엉망이 됐던 게 가장 큰 이유라고 본다. 박정희 대통령 입장에서는 경제를 살려야 되는데 김대중 납치사건 때문에 일본과의 관계도 나빠지고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남북적십자회담을 김일성이 안 하겠다고 말하면서 꼬여가던 시기다. 그런데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고 나서 두 얘기가 쏙 들어갔다. 중간에 김기춘이 등장하면서 김일성이 배후로 지목된다. 사건 간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 사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당시 문세광은 23살의 철부지였다. 총도 한 번 안 쏴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김일성이 미쳤다고 대한민국 대통령 저격수로 보냈겠나. 여기서 나는 시종일관 철저한 시나리오가 있었다고 본다. 소설은 그것을 풀어나간 것이다.
“23살 철부지 문세광이 박정희 저격수?”
“김대중 납치, 육영수 피살로 이어진 비극”
- 조작됐다고 생각하는 확실한 근거가 있나?
▲가장 중요한 힌트는 당시 <동아일보> 기사다. 8월15일 10시20분에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동아일보>는 석간신문이었다. 마감시간은 11시다. <동아일보>에서 사건이 일어나고 기사를 송고했는데 박정희 대통령 저격으로 보냈다. 육영수 여사로 써야함에도 박정희 대통령 저격으로 보낸 것이다. 또한 기사에는 문세광이라고 용의자 이름이 나온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단 얘기다. 당시 문세광이 누군지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누가 알겠나. 문세광은 자기 이름의 여권으로 한국에 들어온 것도 아닌데. <동아일보> 기사 중에는 주일 한국대사관에서 조사하고 있다고 나온다. 종합해 보면 그 기사는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이 일어나는 걸 전제하고 미리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지금처럼 인터넷이 되고 휴대폰이 있던 시기가 아니지 않는가.
- 문세광에 대한 의문점은 없는가?
▲문세광이 어떤가 하면 일본에서 김대중 구출위원회 청년회원을 했던 애다. 22살에 마누라 놔두고 다른 계집애랑 신혼여행 빙자해서 홍콩 갔다 오고 국내 들어와서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엽색 행각을 했던 사람이다. 대통령 저격하러 온 사람의 모습이라 생각되지 않는다. 문세광은 자기가 죽는 줄도 모르고 죽었다.
재판 도중에도 “무슨 소리냐. 난 육영수 여사 쏜 적이 없는데”라고 말했다. 치밀하지도 못했다. 38구경 권총을 아는가. 10미터 내에서도 정조준이 안 되는 총이다. 새총만도 못하다. 그런 걸 또 일본경찰에게서 훔쳤다고 진술했다. 말이 안 된다.
- 당시 경호상의 문제도 제기됐다.
▲박종규 당시 경호실장이란 분이 어떤 사람인가. 박정희 대통령 옆에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 못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3·1절 행사 때는 주한외교사절 부인들 핸드백까지 압수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사건 당일인 8월15일에는 그러지 않았다.
- 원론적인 질문인데, 왜 육영수 여사가 죽게 됐다고 보는가?
▲그때 상황 보면 어린애들 권총장난과 진배없었다. 첫 발이 연설대에 맞고 박정희 대통령은 숨고 문세광이 숨은 박 대통령을 쏘려고 가는데 박종규가 튀어나오고, 그래서 박종규한테 당긴 것이다. 공교롭게 박종규 옆에 육영수 여사가 있었고 일이 터졌다.
차라리 육영수 여사를 겨냥했으면 맞지 않았을 것이라 본다. 조준도 떨어지고 사격실력도 없으니까. 저주가 발생한 것이다. 어느 저격수도 영부인을 겨냥하지 않는다. 문세광이 마지막까지 “난 육영수 여사 저격하지 않았다”고 얘기했잖은가.
- 사건이 준 의미가 무엇이라 보는가?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비극이지 않나. 전 국민이 좋아하는 영부인, 소록도에 문둥병이 심할 때 직접 가서 손 만지고 했던 사람이다. 결국 박정희 체제가 무너지는 단초가 됐다 본다. 그전까지 경제개발 이미지가 독재 이미지로 바뀌게 된 기점이다.
정리하면 그 사건 이후 일본이 와서 무릎 꿇고 남한에선 김일성 때려잡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정권차원에서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셈이다. 단 우린 육영수 여사를 잃은 것이고.
<chm@ilyosisa.co.kr>
[황천우는 누구?]
▲1959년 서울 노원 출생
▲대광고등학교 졸업
▲서울시립대 영문학과 졸업
▲정당사무처 공채 (13년 근무)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과 입학 및 중퇴
[주요작품은?]
▲단편소설 : <해빙> <파괴의 역설>
▲장편소설 : <삼국비사(상)(중)(하)> <여제 정희왕후> <수락잔조> <허균, 서른셋의 반란> 등 다수
▲희 곡 : <정희왕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