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⑦어른들은 모르는 놀이문화

애나 어른이나 "나쁜 건 더 빨리 배운다"

[일요시사 사회팀] 강현석 기자 = 2000년대 들어 청소년의 놀이와 문화는 눈에 띄게 변화했다. 가장 큰 특징은 개인화다. 컴퓨터에 이어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혼자 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청소년은 온라인 세대 특유의 감각적이고 즉흥적인 성향을 보인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또한 커지면서 표현의 방법이 세분화됐다. 기성세대의 모습을 흉내 내는 것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단 문화를 수용하는 면에서 조금 더 적극적이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빠르게 배우는 청소년이다.

어른의 시각에서 아이는 종종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다. 아이는 어른의 세계를 보고, 배우고, 체화하는 반면 어른은 아이의 생각과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독립된 주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아이의 일상을 볼 필요가 있다. 아이는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라 문화를 습득하고 향유하는 인간이다. 물론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의 세계 못지 않게 불완전하고 때론 위험하다.

<일요시사>는 '어른들은 모르는 아이들의 문화'를 주제로 다섯 가지 키워드를 뽑았다. 각 키워드별로 과거와 다른 요즘 아이들의 문화, 그리고 놀이를 정리했다. 결론부터 밝히면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다.

집단적 일탈
일진 혹은 빵셔틀

1993년 청소년 상담소를 찾은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대인관계였다. 2926명의 학생 가운데 482명(16.5%)은 상담사와 만나 '같은 학교 친구와 어떻게 잘 어울릴 것인지'를 의논했다. 그 다음의 고민은 취업 등 진로 문제(439명·15%)였다.

20년이 흐른 2013년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이하 개발원)은 흥미로운 데이터를 발견했다. 학생들의 상담 내용이 바뀐 것이다. 대인관계를 대신해 학교 안팎에서 받는 정신적 피로가 가장 큰 고민으로 꼽혔다. 상담을 받은 학생 3139명 가운데 713명(22.7%)은 '자신의 정신건강이 불안하다'고 호소했다.


그렇다면 대인관계와 관련한 상담은 줄어든 것일까. 비율은 반대로 오름세를 보였다. 706명(22.5%)의 학생은 자신이 맺고 있는 인간관계를 주제로 상담을 요청했다. 결론적으로 상담 학생의 절반 가까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통계상 잡히지 않는 스트레스의 원인은 억압, 그 중에서도 또래 집단의 괴롭힘과 엄격한 위계서열이 이유로 꼽혔다. 위계서열 맨 꼭대기에는 '일진'이 있다.

교육 현장에서 바라보는 일진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병폐임이 확실해도 한쪽에선 '선망의 대상'으로 여긴다. 20대 초반인 김성우(가명)군은 자신이 일진 출신임을 자랑스레 얘기했다. 김군은 "솔직히 다른 애들도 우리처럼 되고 싶은데 힘이 없거나 찌질('용기가 없음'을 뜻하는 말)해서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망의 대상 일진들 클럽서 음주
카톡으로 '썸' 10명중 7명 스킨십

일진은 학교에서 교사를 제외한 권력 맨 상층부에 있다. 때로는 교사들과 직접 충돌한다. 일진은 강력한 유대관계를 바탕으로 자신들보다 '계급'이 낮은 학생을 부하로 대한다. 부하 가운데 특별히 힘이 없거나 개성이 강한 학생은 표적이 되기 쉽다. 주로 '빵셔틀'로 불리는 이들은 먹이사슬 맨 아래에 있다.

다수의 평범한 학생은 일진의 행동이 잘못됐음에도 반항하지 못한다. 자신 역시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적이 될 경우 같은 반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도덕규범은 엄격한 계급사회에서 정당성을 잃는다. 생존을 위해선 가급적 일진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일진의 범주에 속하는 학생은 흡연과 음주를 이른 나이에 경험한다. 술과 담배를 제공하는 가게쯤은 어렵지 않게 알아낸다. 술을 마시는 장소는 노래방부터 지하 주점까지 천차만별이다. 요즘 대세는 클럽 또는 클럽형 주점이라고 한다. 입구에서 신분증 검사를 하지만 출입에는 지장이 없다.

학생 신분으로 경제적 자립도가 낮은 일진은 유흥을 위해 친구나 후배의 돈을 갈취한다. 유흥을 가까이하다보니 속된 말로 '잘 놀게' 된다. 잘 노는 학생은 상급학교나 다른 학교에서도 일진이 된다. 일진은 일진끼리 알아보고 대우한다. 싸움까지 잘하면 또래 사이에서 영웅시된다.


또래 아이 가운데 일진은 어른에 가깝다. 물론 어른 전부가 일진은 아니듯 '잘 노는' 아이들은 '철없는' 어른들을 닮는다. 연예인 오디션 프로그램에 일진 출신이 많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들은 잘 놀기 때문에 노는 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 그러면서도 연예계의 경쟁적인 이면은 보지 못한다. 일러주는 이도 없고, 누구 위에 군림하는 것이 일상이었던 까닭이다.

어른의 연애
썸타기와 성관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연애 잘하는 비결은 공통의 관심사다. 적어도 청소년이 인식하는 세상은 그렇다. 이성과 교제 직전의 단계인 '썸'이란 노래가 히트하는 시대다. 대중문화 콘텐츠의 절반 이상은 연애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인터넷에서 공감 받는 게시물의 상당수는 연애담을 풀어놓은 '썰'(이야기란 뜻의 신조어)이다. 학교 안팎에선 이성친구의 유무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세계 또한 다르지 않다.

휴대폰이 생기면서 남녀는 서로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아이들은 2000년대 중반까지 온라인 메신저로 대화했다. 스마트폰이 보급되자 썸을 타는 공간은 카카오톡이나 채팅 기능이 있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이동했다. 청소년끼리의 대화는 어른들이 연애 과정에서 나누는 대화와 다름없다. 데이트 장소와 일정을 잡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등의 과정이다.

달라진 게 있다면 성에 대한 인식이 크게 개방됐다는 사실이다. 개발원이 2013년 연구자료로 인용한 <현대 청소년의 이성교제 문화>(곽금주 저)를 살펴보면 한국의 청소년들은 초·중학교 때 처음 이성교제를 시작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대전시의 한 고등학교 학생 가운데 이성교제 경험이 있는 남녀 341명은 교제를 처음 시작한 시기에 대해 초등학교 39.5%, 중학교 46.9%로 응답했다. 또 광주시의 초·중·고등학생 47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커플 가운데 71%가 스킨십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평균 나이는 14세였다. 또 스킨십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18%는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개발원이 작성한 '이성교제 경험 청소년 개별면접 인터뷰'에서도 성관계의 중요성이 드러났다. 청소년이 이성교제 도중 상담을 요구하는 문제는 1위가 관계지속의 어려움(다툼, 감정조절), 2위가 성관계 전후 고민이었다. 더불어 사이버 상담 내용을 살피면 "저희는 사귄 지 얼마(00일)가 지났고요. 물론 당연히 성관계를 했고요"라는 내용이 있어 청소년의 개방적인 성인식을 반영했다.

같은 해 공개된 질병관리본부의 전국청소년건강행태 온라인조사 결과에 따르면 10대 남학생의 성관계 경험률은 7.2%로 나타났다. 여학생은 3.2%였다. 고등학생의 경우 전체의 8.1%가 성관계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세부적으로 남학생은 11.2%, 여학생은 4.6%였다.

그렇다면 남학생은 왜 여학생보다 높은 응답률을 보인 것일까. 관련 원인을 놓고 남학생은 또래집단에서 먼저 어른이 되고자하는 욕구 때문에 있는 사실을 과장하고, 여학생은 사회적 낙인 효과 때문에 자기 검열을 했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개발원은 인터뷰 분석에서 남학생은 여자친구를 사귀지 못할 때 '찌질한 아이' 또는 '모태솔로'라는 표현을 듣는다고 적었다. 여학생은 상담사와 충분한 정서적 교류가 없는 상태에서 사실을 얘기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고 했다.

어린 나이의 성관계는 민감한 문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은 억제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자녀에게 성관계를 권장할 순 없는 노릇이다. 성관계에는 반드시 책임이 따른다. 때문에 의료계는 피임이 이뤄지지 않는 현실부터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2013년 성관계 경험이 있는 서울 지역 중고생 가운데 여성 응답자의 42.1%만이 피임을 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아울러 피임 실천율이 낮은데 반해 가정과 학교에서의 성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2005년 이후 정확한 통계가 없어 추산은 어렵지만 전체 임신중절(낙태) 규모는 34만∼150만 건으로 이 가운데 5∼10%가량이 청소년 환자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절반이 넘는 청소년은 주로 동영상이나 또래집단에서 성관계와 관련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질의 권력
돈 없으면 따돌림

지난 2012년 이른바 '등골브레이커' 논란이 확대됐다. 등골브레이커 논란은 고가의 핸드백인 샤넬백과 루이비통백을 찾는 어른들의 행태와 닮아 있다.

수도권에서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고 있는 30대 주부 윤진서(가명)씨는 아들과의 대화 도중 충격을 받았다. 컴퓨터 게임을 같이 했던 친구 가운데 가난한 집의 아이가 왕따가 된 소식을 접한 것이다. 이유는 돈이었다. 게임 아이템을 사야하는데 돈이 없어서 못 샀고 놀림을 받다가 친구들과 다툰 끝에 '강퇴'가 됐다는 내용이다.

부촌과 빈촌이 함께 있는 학군의 학부모는 "가난한 아이와 어울리지 말라"라며 자녀를 통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윤씨는 "학원에 보낼 때도 부촌의 학부모는 통원버스가 빈촌을 지나가지 않도록 요구했다"라고 말했다. 또 "어느 날은 빈촌에서 학원버스를 기다리던 아이를 다른 부촌 아이들이 '엄마가 태우지 말랬어'라며 밀친 뒤 학원까지 걸어가도록 했다"라고 덧붙였다.


학원가의 통설 중에는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학력을 결정짓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제 부모의 소득은 자녀의 놀이수준을 결정짓고 있다. 상당수 남자 아이가 인기 온라인 게임인 '리그 오브 레전드'와 '피파 온라인'의 유저인 점은 같다. 그러나 계속 게임을 즐기다보면 돈을 써야할 때가 있는데 돈을 더 쓰는 쪽이 인기가 높다. 이른바 '현질'의 권력이다.

학년이 높아질수록 아이들은 외모와 옷으로 서로를 평가한다. 외모가 뛰어나지 않은 이상 옷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다. 노스페이스는 또래에게 인정받기 위한 일종의 마지노선이다. 노스페이스보다 저가의 점퍼를 입으면 '찌질하다'라고 놀림 받기 일쑤다.

일베·게임 비속어 무차별 사용
PC방·노래방·멀티방 전전긍긍

이런 노스페이스도 요즘은 인기가 시들해졌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유행이 생기면 아이들은 새로운 유행을 거스르기 어렵다. 유행하는 브랜드는 중산층 이상의 경제 수준에서 소비되는 것들이다. 그나마 나이키, 아디다스와 같은 스포츠 브랜드는 상대적으로 저가지만 유행에서 자유로운 편으로 전해진다.

중산층 이상이 타깃이었던 패밀리레스토랑도 이젠 일반적인 먹거리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요즘 중고생은 특별한 날을 정해 자신들끼리 패밀리레스토랑에 간다. 떡볶이도 좋아하지만 일부 아이들은 비싼 음식에 대한 갈망이 있다. 고가의 음식을 찍어 SNS에 공유하면 친구들의 태도가 달라짐을 느낀다.

신사동 가로수길이나 압구정 로데오거리와 같은 명소 탐방도 필수다. 좋은 곳을 다녀와야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좋은 곳에 들렀다가 구입한 옷은 덤이다. 방학 중 해외여행을 다녀왔다면 더 큰 관심을 끌 수 있다. 아이들의 관심은 누가 더 어른에 근접한 문화생활을 하는가에 쏠려있다.

진화한 신조어
인터넷·게임·TV 영향

신은미·황선씨의 토크 콘서트에 폭발물이 떨어졌다. 범인은 18살 오모군이었다. 오군은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극우 인터넷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에서 활동했다.

오군은 콘서트를 방해할 목적으로 행사가 열린 성당 한가운데 '로켓캔디'를 던졌다. 로켓캔디는 성당 집기를 파손함은 물론 시민 2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재판을 받게 된 오군은 "과격하게 행동해 주변의 관심을 얻고 싶었다"라며 "하지만 사람이 다칠 줄 몰랐다"라고 말했다.

일베는 어른이 만든 인터넷커뮤니티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욕구를 분출하지 못한 청소년이 일베에 몰려들었다. 학부모는 대부분 자신의 아이가 일베에 접속하거나 일베 용어를 사용하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중학교 3학년 김진현(가명)군은 "일베 고정 접속자가 생각만큼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해외 유학으로 또래보다 한 살이 더 많은 김군은 "일베 접속보다 심각한 문제는 그런 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하고, 재밌게 생각하는 데 있다"라고 지적했다.

김군에 따르면 학생 사회에는 일베에서 통용되는 언어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학생 대부분은 어원을 모르거나 어원을 알고 있더라도 그 표현의 문제를 알지 못한다. 널리 쓰이는 일베 용어로는 '김치녀' '보0' '노무노무' '운지' '응디' '슨상님' '홍어' '좌좀' '로린이' '씹선비' 등이 있다. 말끝을 '노'나 '이기야' '랑께'로 바꾸는 것도 '일베스러운' 표현이다. 일베 용어에는 특정 집단에 대한 조롱과 혐오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고 모든 인터넷 언어가 일베에서 유래된 것은 아니다. 출처를 구분하기 어려운 신조어도 있다. '노잼' '극혐' '정색빤다'처럼 의미를 눈치 챌 정도의 말을 포함해 '사스가' '관종' '피꺼솟'과 같이 얼핏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단어도 있다. 심지어 'ㅍㅌㅊ' 'ㅈㄱㄴ' 'ㅇㄱㄹㅇ' 등은 한글 자음으로만 구성돼있다. 인터넷 은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거부감이 들 수 있는 표현이다.

아이들은 비속어 사용을 일종의 언어유희로 생각한다. 특히 온라인 게임에 친숙한 남학생일수록 줄임말 사용이 잦은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 도중 채팅은 빠른 의사소통이 핵심이다. 자연스레 맞춤법을 포기하고 함축적인 의미 전달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또 '하드캐리' '트롤' 등 게임 용어는 실생활을 묘사하는 비유로 쓰이고 있다.

여학생은 비교적 검증된 언어를 구사한다. TV시청 시간이 많은 여자 아이는 게임보단 TV 속 언어의 영향을 받는다. '행쇼' '미존' '먹방' '심쿵' 등의 줄임말이 대표적이다. 또 여학생은 신조어 사용에서 일반적으로 신중한 경향을 보인다. 단 감정과 관련된 은어는 예외적인 것으로 보인다. 각종 인터넷 게시물에 등장하는 '암 걸릴 것 같다'라는 표현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방황하는 아이
진짜 놀이가 없다

여성가족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실시한 '2014 청소년 통계'에 따르면 청소년은 자신의 여가 활동(복수 응답가능)으로 TV·DVD 시청(57.7%)과 컴퓨터 게임(41.9%)을 꼽았다. 휴식(32.5%)과 문화예술관람(17.9%)은 뒤를 이었다.

TV와 게임은 청소년 놀이·문화를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일부 청소년은 오토바이를 타기도 하지만 오토바이를 여가활동으로 적는 청소년은 드물다. 마찬가지로 교제 중인 이성친구와 데이트를 한다고 해서 '데이트'를 기입하는 일은 없다.

청소년이 취미생활을 즐길 환경은 일부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곳곳에 생겼고, 게임의 종류는 많아졌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중간 유통자 없이 일본 만화를 볼 수 있게 됐다. 멀티방·룸까페와 같은 신종 업소가 출현했고, 프렌차이즈 커피숍이 전국으로 확대됐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아이들의 취미는 대체로 '소비'하는 일에 편중됐다. 응답자가 보수적인 것도 있지만  '밴드' '요리' '디자인'처럼 무엇인가 생산하는 통계가 잡히지 않는다. 일부 수도권을 제외하고 '연극'에 흥미가 있는 학생은 연극을 배우거나 관람할 기회가 적다. 프라모델을 제작하는 취미에는 돈이 들고, 축구가 취미인 학생은 공을 찰 팀원이 부족해 애를 먹는다.

인터넷 신조어인 '귀차니즘'은 공부에 지친 아이들을 아우르는 정서다. 신묘한 대안이 없는 한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아이들을 일으킬 방도는 없다. 한 가지 나은 점이라면 능동성을 꼽을 수 있다. 요즘 아이들은 외국 드라마 시청 같은 자신의 취향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주도적으로 취미에 필요한 정보를 습득한다.

여성가족부가 낸 2015년 통계 기준 청소년이 자주 찾는 오락업소는 노래방, PC방, 전자오릭실 순이었다. "노래방과 PC방 말고는 갈 곳이 없다"라는 의견도 있다. 오프라인의 억압은 온라인에서 분출된다. 전국 초·중·고교생 91.5%는 휴대전화를 보유했으며, 이 가운데 스마트폰 이용자는 81.5%로 조사됐다. 스마트폰은 채팅과 게임의 용도로 쓰인다. 전국 고등학생의 78.1%는 SNS를 이용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초등학생 장기자랑에서 동요를 부르면 인기가 없다. 스포트라이트는 걸그룹 안무를 따라하는 아이의 몫이다. 교내 축제를 포함한 청소년 행사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노래는 걸그룹 EXID의 '위아래'였다. '위아래'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와 섹시한 안무가 특징이다. 어려운 안무를 척척 따라 하는 아이들의 솜씨가 놀랍다. 보는 시각에 따라 청소년의 '섹시댄스'가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아이는 어른을 따라 하며 배운다는 점이다.

 

<angeli@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