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9주년 기획특집> 대한민국 교육 현주소 “아이들이 위험하다” ①학교폭력에 멍든 아이들

갈수록 교묘…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

[일요시사 사회부] 박호민 기자 = 학교폭력이 멈추지 않고 있다. 자라나는 청소년이 학교폭력을 당하면 평생에 걸쳐 후유증이 나타나기 때문에 어른들의 관심이 더 절실하다. 그러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 아이들은 학교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최근에는 사이버 왕따의 등장으로 학교폭력 방법이 더 교묘해져 어른들의 관심이 더 필요하다.

 
중학교 2학년인 이다솜(가명) 양은 학교 가기가 싫다.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은따(은근히 따돌림)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친구들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것은 아니다. 학기 초 장난으로 한 말이 친구들 사이에서 ‘비호감’으로 찍히면서 이 양은 친구들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친구들이 이양 모르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서 이양을 욕설하는 메시지를 남긴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이양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진화하는 괴롭힘
지금은 사이버왕따
 
▲진화하는 학교폭력 = 학교폭력이 더욱 은밀해지고 있다. 과학기술의 힘을 빌어서 말이다. 과거에는 폭행·금품갈취 등의 물리적인 위압을 가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 들어 ‘사이버 왕따(사이버 불링)’와 같은 형태의 학교폭력으로 진화해 학생들을 괴롭히고 있다.
 
진화된 학교폭력 형태인 사이버 불링에 노출된 학생들은 상당히 많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지난해 5∼6월 전국의 중고생 4000명을 대상으로 ‘사이버 불링 실태조사’를 한 결과 중고생 27.7%가 “사이버 불링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응답학생 10명 가운데 3명꼴로 사이버 학교폭력을 당한 셈이다.
 

사이버 불링은 24시간 피해 학생을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때문에 물리적인 폭행 못지않게 피해가 크다. 사이버 볼링은 스마트폰 기술발전에 따라 더욱 교묘해지는 추세다. 통상 게임이나 스마트폰의 사용량이 많은 남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것이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등 SNS가 인기를 끌면서 여학생들 사이에서도 사이버 불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학교 가기 싫다…이유는 십중팔구 폭력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 무방비 노출
 
여기에 스마트폰의 보급이 사이버 불링의 형태를 다양하게 만들었다. 다른 학생의 데이터를 빼앗아 쓰는 ‘데이터셔틀’‘와이파이셔틀’ 등은 이미 스마트폰 보급 초기부터 계속되고 있고, 자신이 사고 싶은 음원을 피해 학생들에게 소액결제로 구매하도록 해 빼앗는 일도 다반사다.
 
카카오톡 등 스마트폰 메신저의 단체 대화방도 사이버 불링의 도구가 됐다. 단체 카톡방에 피해 학생을 초대해 욕설이나 비방을 하고 피해자가 괴로움에 방을 나가면 계속해서 초대해 괴롭히는 이른바 ‘카톡 감옥방’의 형식이다.
 
피해 학생 안티카페 개설 역시 사이버 불링의 한 형태다. SNS모임 기능을 통해 피해 학생에 대한 비방정보나 비난을 게재하는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피해 학생을 제외한 반 친구 등을 초대해 비방하는 방식이다.
사이버 불링이 늘어나면서 전체적인 학교폭력 발생 빈도도 3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정진후 정의당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학교폭력 통계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전국 초·중·고교, 특수·각종 학교의 학교폭력 심의건수는 모두 1만 662건으로 2013년 상반기 9713건보다 9.8%나 늘어났다. 학생수 감소를 반영하면 학생 1000명당 학교폭력 발생건수는 2013년 상반기 1.49건에서 지난해 같은 기간 1.69건으로 무려 13.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 없으면 저리가”
 카톡방 집단 왕따
 
▲학교폭력의 원인·분석 = 국민들의 절반 가까이는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가정교육의 부재’를 지목했다. 한국교육개발원은 지난해 11월 14∼24일 성인 20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1.4%인 827명이 가정교육 부재를 학교폭력의 가장 중요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31.3%가 가정교육 부재를 선택했다. 1년 만에 무려 10%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
 
이밖에 게임과 인터넷 등을 포함한 대중매체의 폭력성이 학교폭력의 원인이라고 보는 응답자가 466명(23.3%)으로 뒤를 이었다. 대중매체의 폭력성 항목은 지난해 조사에서는 32.1%로 가장 높았지만 올해 조사에서는 2위로 밀렸다.
 
 
학교의 폭력방지 노력 부족을 원인으로 답한 응답자는 357명(17.9%), 점수 위주의 입시 경쟁체제는 225명(11.3%), 학생 개인의 문제는 98명(4.9%) 등의 순이었다.
 
학교폭력에 대한 전문가의 생각은 어떨까? 대구광역시 교육청의 한 전문가는 학교 폭력의 원인으로 세 가지로 나눴다.
 
첫 번째 원인은 개인적인 성향 문제로 보는 시각이다. 청소년기에는 도덕적인 결함이나 공격적 성향, 또는 충동적인 성격 등과 같이 개인적인 요인이 학교폭력을 발생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이런 개인적 특성은 청소년기에 한번 형성이 되면 쉽게 바꿀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개인의 문제에는 심리적인 요인도 포함된다. 자기 비하가 심한 학생, 혹은 자존감이 약한 학생 같은 경우에는 타인을 괴롭히고 상대방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며 쾌감을 얻는 경우가 있는데 그 과정에서 학교 폭력 현상이 심화된다는 설명이다.
 
본인의 행동에 대한 자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삐뚤어진 방식으로 우월감을 표현하며 열등감의 탈출구로 삼게 될 확률이 높다. 그래서 교육관계자들이 학교폭력의 원인을 분석 할 시에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개인적 특성이나 성향에 대해 제대로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 원인은 앞서 국민들이 학교폭력의 원인으로 지목한 가정교육의 부재였다. 인격이 형성돼야 할 시기에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학생일수록 감정의 조절력과 표현방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해 학교폭력 가해자가 돼 학교폭력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가정적인 환경이 학교 폭력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자녀가 삐뚤어진 성향으로 자라날 확률이 높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가정교육의 중요성이 더욱더 대두되고 있다.
 
마지막 원인으로는 환경적인 요인의 상호작용이었다. 즉, 본인의 성격이 온순하고 내성적이라고 할지라도 함께 다니는 친구들이 폭력과 폭언을 일삼는다면 자신도 그렇게 변할 수가 있고, 또한 반대로 폭력적인 성향이 있는 청소년도 부모님과의 친밀도를 높여 가정에 애착을 갖게 한다면 문제행동 유발환경에 노출돼도 충동적 행동을 억제 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여기에 최근에는 집단적 동조에 의한 압력도 무시 할 수 없다. 자신은 타인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따돌리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데 다수의 친구들이 그런 행동을 일삼는다면 혼자 도태되지 않기 위해 학교폭력에 가담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래로부터 소외돼 본인이 그 피해자가 될 것이 두려운 심리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점점 피해 확산
예산 줄인 정부
 
▲쉽지 않은 해결책 = 학교폭력의 해결방안은 현재까지도 모색 중이지만 적절한 해결책이 나올 가능성은 요원하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할 교육당국부터 학교폭력에 대한 정확한 상황파악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2년전 학교폭력을 4대악 중 하나로 꼽고 척결 대상으로 삼으면서 감소 추세를 나타냈지만 3년차에 접어들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는 것이 교육계의 전반적인 평가다. 그런데 정부는 학교폭력 발생건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자체적으로 판단하고 학교폭력 예방 관련 예산을 큰 폭으로 삭감해 빈축을 샀다.
 
교육부의 ‘2015년 학교폭력 예방대책 시행계획’에 따르면 올해 교육부 등 15개 부처의 학교폭력 관련 예산은 모두 3082억 9900만원이었다. 지난해 3364억 500만원에서 281억 600만원이 축소된 것이다. 특히, 인성교육법 제정에도 ‘인성교육 중심 학교폭력 예방 강화’ 분야에서 298억원이 삭감되는 등 5대 분야 중 가장 많이 줄었다.
 

정부는 예산을 줄이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관심과 노력으로 학교폭력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교육부가 두 차례 실시하는 학교폭력 피해 응답률이 2012년 2차 8.5%에서 2013년 2차 1.9%, 지난해 2차 조사에서 1.2%까지 감소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러나 교육 현장의 시각은 크게 달랐다. 조사결과가 반공개 되는 교육부의 설문조사의 신뢰도가 크게 낮다면서 실질적으로 학교폭력 발생건수가 늘었다는 통계를 지속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송재혁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은 “학교폭력의 현실과 맞지 않는 교육부의 학교폭력설문조사를 폐지하고 실제적인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학생 10명 가운데 3명 피해
절반은 ‘가정의 부재’원인
 
정부의 학교폭력 관련 대책도 실효성 논란에 시달리고 있다. 우선 학교폭력 대책에 대한 신뢰도라고 할 수 있는 학교폭력 신고효과에 대한 만족도가 미미했다.
 
지난해 학교폭력 신고 학생 중 신고 효과를 봤다고 응답한 학생이 36%에 불과한 것. 또,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의 진행과정과 전문성, 공정성에 대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대두되고 있고, 피해학생과 가해학생의 재심기관이 달라 혼선을 초래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학교폭력의 대책으로 정부와 관련 당국, 그리고 부모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학교폭력의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 무관심 속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실제 부모의 관심을 받기 어려운 맞벌이 가정의 경우 일반 가정에 비해 학교폭력 가해학생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학교폭력 가해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가정적 요인 연구’ 논문을 쓴 강소영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원은 “학교폭력 60여건 정도에 대한 기록을 검토해 보니, 60% 정도는 부모가 모두 있는 양부모 가정이었는데, 이 가운데 75%는 맞벌이었다”라며 “부모가 신경을 잘 못 쓰는 경우에 아이들이 탈선한다는 게 현장의 이야기”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피해 학생의 대처법도 제시했다. 이들은 ‘학교폭력 대처법’에 대해 가만히 있거나 무조건 피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상대방이 괴롭히는 행동을 중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괴롭히는 강도가 세질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복합적인 원인
쉽지않은 해결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부드럽고 단호한 어조로 ‘싫다’, 나에게 그러한 행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만약 괴롭힘이 지속될 경우 주변사람에게 알리겠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럼에도 지속된다면 실제로 주변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알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donky@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탈북·다문화 청소년 왕따 실태
 
최근 탈북 청소년과 다문화가정 청소년들이 크게 늘면서 이들의 왕따(집단 따돌림) 문제도 서서히 부각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다문화 가정의 학생수는 2012년 4만6954명, 2013년 5만5780명, 2014년 6만7806명으로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탈북학생 수도 증가 추세다. 최근 3년간 전국의 탈북학생 수를 살펴보면, 2012년 1992명, 2013년 2022명, 2014년 2183명으로 탈북학생 수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언어나 교육환경 등이 다른 학생들과 달라 왕따 문제에 쉽게 노출된다. 왕따에 노출된 아이들은 학교를 떠나 각종 사회 범죄를 일으키기도 한다. 일례로 탈북자 관련 범죄는 2011년 51명, 2012년 68명, 2013년 86명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이에 따라 탈북학생과 다문화 가정 학생의 학교 적응을 돕는 프로그램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교육 현장을 중심으로 나온다.
 
그러나 교육 당국의 관심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탈북 청소년과 다문화 가정 청소년의 왕따 실태에 대한 통계조차 구하기 어려운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정부는 또, 다문화 가족 지원 올해 예산을 지난해보다 10.1% 줄어든 972억원으로 책정하면서 무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호>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