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사회팀] 이창근 기자 = 세월호 사태에 투입됐던 민간 잠수사들이 단단히 화가 났다. 국가적 재난에 생업을 접고 사고수습과 시신수색에 뛰어든 잠수사에 대한 정부와 행정당국의 괄시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에서다. 세월호 사고 당시 개인 자격으로 참여한 김상우 씨는 “행정당국의 편의주의 때문에 세월호 수습에 참여한 민간 잠수사들의 고충이 가중되고 있다”면서 “이런 식이라면 어느 누구도 두 번 다시 국가적 재난에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도대체 무엇이 민간 잠수사들을 이토록 격앙케 만들었을까.
지난 4월 16일 이후 침몰한 세월호 수색현장을 찾은 민간 잠수사는 1000명 정도. 이들 가운데 30일 이상 투입된 민간 잠수 인력은 25명 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진도 현장에 도착하고도 사고해역의 거센 물살 앞에 잠수 한번 해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레져 스포츠로 잠수를 배운 역량으로는 수색작업에 뛰어들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잠수 역량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반나절 작업을 버티지 못했다.
목숨 걸고 했는데…
돌아갈 사람 돌아가고 남은 정예요원이 김상우씨(44세)를 비롯한 25명의 민간 잠수사다. 이들은 평소 해저케이블 매설 공사나 수중교각 건설현장 등에서 활동해 온 베테랑들. 93년 서해 패리호 사건을 비롯 94년 성수대교 붕괴사건, 96년 북한 잠수함 사건, 2010년 천안함 침몰 사건 등등 대형 해양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현장에 투입되었던 사람들이다.
이들 베테랑들의 능력은 이번 세월호 사건에서도 입증됐다. 해군 잠수인력이 수습한 희생자가 80여명 정도인 반면 민간 잠수사들이 수습한 희생자는 180여명에 이른다.
지난 11월, 유족들의 동의 아래 세월호 희생자에 대한 수색작업은 종료됐지만 민간 잠수사들은 아직 자신의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25명의 민간 잠수사 중 22명이 각종 잠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급물살 속에서 3시간 작업과 3시간 휴식을 반복해가며 하루 4회 작업했습니다. 그것도 수 십 일을요. 무리도 보통 무리가 아니죠. 해저케이블 공사도 그렇게는 안 해요. 실종자 가족들 심정을 아니까 군소리 없이 물속에 들어간 겁니다.”
무리한 작업을 수십 일씩 강행한 대가는 컸다. 김씨의 경우 수압에 맞서 억지로 선실 문을 열다 목 디스크가 파열됐다. 물속에서 힘을 너무 과도하게 주다보니 디스크가 버티지 못한 것이다. 긴급 후송 후 목에 고정 핀을 박는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향후 수중공사나 구조 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인 상태다.
김씨가 부상으로 현장을 벗어난 이후에도 수색작업을 지속했던 잠수사 중 7명은 뼈가 썩는 ‘골괴사’ 판정을 받고, 사실상 생업을 접은 상태다. 평상시처럼 수중공사나 하고 살았으면 한 달에 1000만원은 벌었을 사람들인데 무리한 작업으로 얻은 질환 때문에 생계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재명, 하규성, 이상진, 황병주, 김수열, 조준, 김순종 잠수사가 골괴사로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치료비도 자비로 부담하고 있고요. 이게 옳습니까? 국가적 위기상황에 앞뒤 안 가리고 달려 간 잠수사들은 도대체 누가 돌봐줘야 합니까.”
디스크·골괴사 후유증 심각…보상 지지부진
전남도청-법제처 ‘책임 밀기’에 폭발 직전
디스크 파열이나 골괴사와 같은 심한 육체적 부상을 입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나머지 사람들도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에 아직도 물속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기한도 없이 생업으로의 복귀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다. 다행히 해양경찰청이 민간 잠수사들의 노력과 고충을 알아봐 줬다.
김석균 청장이 “나라를 위해 봉사하다 생긴 부상이나 경제적 손해에 대해 산재에 준하는 보상을 하겠다. 수난구호법에 의거하고, 의사상자 기준에 맞춰 보상을 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연이어 해양경찰청에서 예산까지 마련해줬다.
문제는 이 보상에 대한 행정절차를 맡은 전라남도가 ‘법적근거 미비’라는 이유로 집행을 미루면서 발생했다. ‘사망자와 장애를 입은 자는 보상을 해주고 부상자는 치료를 해준다’는 수난구호법 29조 3항의 규정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부상을 입은 잠수사들은 치료만 받을 수 있을 뿐 일을 하지 못함으로써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상받을 수 없게 된다. 해양경찰청이 보상을 언급한 배경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다.
민간 잠수부들의 반발은 당연했다. 행정 편의주의 때문에 민간 잠수사들의 고충이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보상이 지연되면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는 것이 잠수사들이 언성을 높이는 이유다. 법조항을 따지기 앞서 잠수사들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를 한 뒤 행정절차를 보완하는 것이 해양경찰청의 취지에 맞지 않느냐는 입장이다.
당초 이 문제는 민간 잠수사들이 ‘언딘’이라는 회사에 고용되어 투입되었다면 불거지지 않았을 사안이다. 언딘에 고용된 형태라면 ‘산재’로 보상과 치료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그런데 이들은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해양경찰청이 수난구호법을 가져다 적용해서라도 보상을 하겠다고 언급한 것은 산재적용이 불가능한 상황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전남도청에서는 이러한 배경과는 상관없이 법적 근거가 없으면 보상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남도청 안전총괄과 담당자의 말이다.
“공무원은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다. 집행하려면 그에 따른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수난구호법에는 사망자나 장애를 입은 자가 아니면 보상해 줄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 비난의 여론이 일자 전남도청은 법제처의 판단을 구하는 절차를 밟았다. 보상금을 지급할지 말지 판단해 달라는 것이다. 졸지에 뜨거운 감자를 넘겨받은 법제처는 곤혹스러운 입장이다. 1월27일 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해놓고 2월5일까지도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연이은 회의에 담당 사무관과의 연결조차 쉽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다시 전남도청과 해양경찰청에 알아서 해결 하라고 할 것 같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법 해석을 둘러싼 행정당국의 ‘핑퐁 게임’에 잠수부들만 골탕을 먹고 있는 셈이다.
탁상행정에 뿔났다
사태가 이렇다보니 민간 잠수사들의 분노는 극에 달하고 있다. “앞으로는 결코 국가재난에 뛰어들지 않겠다”는 발언이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동료 잠수사를 달래는 김씨 입에서도 서운함이 잔뜩 묻어났다.
“사명감으로 참여했는데 행정당국으로부터 거지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서럽고, 억울합니다. 정말 보람이 반감됐습니다. 혹시라도 (국가적 재난이 생겨도) 다시는 안 하고 싶네요.”
한편, 여야가 합의한 세월호 보상관련 특별법에는 유족은 물론 진도 어민까지 보상 대상에 포함된 반면 구조현장에서 생업을 접고 활동한 민간 잠수부는 포함되지 않았다.
<manchoice@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