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뒤죽박죽' 현주소

호랑이 없으니 여우끼리 ‘이전투구’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사실상 종료됐다. 그동안 살아남은 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이후 저축은행 판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 금융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은 현실이 됐다. 대부업체들이 저축은행을 인수해 ‘은행’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이 찢어져 있던 계열사를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저축은행들은 효율성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11 사태가 대형 저축은행의 고위험 영업에 집중했던 데서 생겨난 만큼 소비자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줄지어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SBI, OK, 웰컴, HK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끝냈다. 계열 저축은행 합병을 통해 경영자원 효율화와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저축은행 대형화 바람은 2011년 사태를 재현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몸집 불리다
영업정지 사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으로 역사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다. 눈부신 성장을 이뤘던 때도 있었지만 그 성장만 믿고 많은 저축은행이 돈을 써댔다. 결국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았다. 저축은행은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졌다.

저축은행의 역사는 1972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정부는 자금난을 겪던 기업들이 사채에 의존하다 줄줄이 파산하자 지금 저축은행의 전신인 상호신용금고 제도를 도입했다. 총 대출금의 50% 이상을 해당 영업구역내의 개인과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것도 지역과 서민금융의 원칙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저축은행의 자산규모는 급격히 증가했다. 1980년 8800억원대의 수신(예적금)과 여신(대출) 규모는 2010년 142조원까지 치솟았다.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저축은행은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고객의 돈을 ‘쌈짓돈’처럼 써대기 시작했다. 서민 금융회사로 설립된 저축은행이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했던 것이다.


결국 저축은행은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이했다. 2011년 이후 1년 동안 대형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업계 1위를 차지했던 솔로몬 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문을 닫았다. 솔로몬 저축은행을 비롯해 자산순위 탑5 안에 들었던 토마토, 제일, 부산, 부산2저축은행도 모두 문을 닫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예금자 보호 5000만원을 돌려주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에서 마련한 15조원은 저축은행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닥이 났다. 2011년 잇따른 구조조정으로 저축은행 20여 곳은 문을 닫았다. 한때 200곳이 넘었던 저축은행 수는 현재 70여개로 줄어들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업계 판 요동
대부업체 줄줄이 ‘은행’ 간판 영업

이후 저축은행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다. SBI저축은행(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이 업계 1, 2위로 우뚝 올라섰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됐다. 살아남은 저축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과거 경쟁상대로 보지도 않았던 대부업체는 거꾸로 국내 저축은행을 인수했다. 대부업체 러시앤캐시와 웰컴론은 가교저축은행인 예나래ㆍ예주저축은행과 예신저축은행을 인수해 저축은행으로 거듭났다. 특히 러시앤캐시가 운영하는 OK저축은행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저축은행 시장 에서 SBI저축은행을 위협할 정도로 바짝 다가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자산 매각이나 증자 등을 통한 자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신규 수익원이 마땅치 않은 데다 부실사태가 지속됐다. 소비자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저축은행 부실이 늘어나면서 자산 건전성이 악화됐다. 이에 따라 서민들의 목돈 마련 수단으로 각광받던 저축은행 예금도 바닥을 기고 있다.

이처럼 계속되는 불황에 저축은행들은 합병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저축은행업계에서는 대형화 바람이 불었다. 합병 뿐 아니라 신규 점포 개설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종료가 선언된 가운데 솔로몬, 토마토저축은행 이후 사라졌던 초대형 저축은행들이 재등장할 조짐이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완료했다. 우선 SBI저축은행은 4개로 나눠진 계열사(SBI, SBI2, SBI3, SBI4)를 전부 합병했다. 통합 SBI저축은행으로 공식 출범했다. 지난1일 SBI저축은행은 법인 통합을 기념하고 새 출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통합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번 통합으로 SBI저축은행은 업계 자산 1위 저축은행으로 올라섰다. 이달 중 개점 예정인 인천, 광주 지점을 포함하면 전국 20개 영업점을 보유하면서 업계 1위의 우량 저축은행이 된다.
 

자산 규모는 지난 9월말 기준 자산 규모 3조8443억원, BIS비율 11.44%을 기록했다. 2019년 6월말 까지 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BIS) 14.61%, 당기순이익 2328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40~50명 규모의 대졸신입공채와 신입텔러공채’를 통해 핵심인력까지 추가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같은 날 OK저축은행도 OK2저축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지난 6월 기준 자산 규모 4862억원, BIS비율 33.67%에 18개 영업점을 보유한 저축은행으로 새로 탄생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자산이 연내 1조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표를 달성한다면 러시앤캐시는 저축은행 진출 반년 만에 총 자산이 두 배로 뛰는 셈이다. 최근까지 OK저축은행은 월 평균 800억∼1000억원의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1조 클럽’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다.

다시 몸집 키우기
2011 사태 재현?

웰컴저축은행은 지난달 29일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서일저축은행의 합병을 마무리했다. ‘웰컴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해 영업을 시작했다. 이번 합병으로 웰컴저축은행은 서울과 경기, 부산, 경남 지역의 기존 영업구역과 대전(둔산지점), 충청(서산지점) 지역 영업 구역을 추가해 총 14개의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HK저축은행도 지난달 자회사인 부산HK저축은행과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통합HK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앞서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지난9월 예성저축은행과 합병했다. 이후 경기·인천·호남·제주지역 등 기존 영업망에 서울지점을 추가로 확보해 총 12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저축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합병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이 규제를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2011년 이후 본격 추진했던 부실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지점설치가 가능하도록 했다. 영업구역 외에도 저축은행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저축은행 점포 신설이 한결 자유로워진 셈이다.

그동안 부실화를 막기 위해 지점이나 출장소, 여신전문출장소 등을 설치할 때 일정액을 증자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점 설치 시에도 증자의무를 배제하고 저축은행중앙회 승인으로 점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 국내 저축은행들이 지역 밀착형 서민금융기관으로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사업연도가 마무리되면서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당국이 너무 쉽게 저축은행 합병 허가를 내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저축은행 대형화로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저축은행에 감독과 지도를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의 금리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취지는 무색해진 모습이다. 저축은행들이 이렇다 할 구체적 계획 보다는 몸집을 키우기 위해 통합부터 강행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들은 서민금융을 취급하는 ‘은행’이름만 달았지 대출금리는 여전히 살인적이다. 대부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리대금업자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금융감독원이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대출의 90% 정도가 연 25%가 넘는 고금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9월 말 기준 OK, OK2, 웰컴, 웰컴서일, 친애 등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5곳의 전체 대출 2만7424건 중 89%(2만4460건)가 연 25∼35%의 고금리 대출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 10∼15%대 대출은 전체의 7%(1882건)였고 10% 미만 저금리 대출은 3%(769건)에 불과했다.

계열사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
이러다 또 큰일?…위기 가능성↑


저축은행별로는 국내 대부업계 1위 ‘러시앤캐시’ 계열의 OK저축은행이 전체 대출의 91%(1만2114건)를 연리 25∼30%에 빌려줬다. 웰컴크레디라인이 인수한 웰컴저축은행은 96%(8612건)가 연 25∼30%대 대출이었다. 일본계 금융그룹 J트러스트 계열의 친애저축은행은 연 30% 이상 대출이 620건이나 됐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연 10∼20%대의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5개 저축은행의 수신 규모는 대부업체 인수 이전 2조4763억 원에서 9월 현재 2조723억 원으로 약 16% 감소했다. 전체 대출 규모도 같은 기간 1조9536억 원에서 1조4657억 원으로 약 25% 감소했다. 이 중 기업대출이 1조5829억 원에서 4689억 원으로 70% 급감한 반면 개인 신용대출은 2655억 원에서 8482억 원으로 219%나 급증했다.

김 의원은 “대부업계 저축은행이 수신과 여신은 줄이면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대부업체에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해 서민대출 금융회사로 키우겠다고 한 금융당국의 취지가 무색하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에금보험공사의 저축은행 자금지원은 27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예금보험공사가 저축은행에 총 29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이 중 3조7000억원만 회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은 20개나 됐다. 예금보험공사의 단독조사 횟수만 30회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은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이 20곳”이라며 “예보의 단독조사가 30회에 달해 저축은행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발표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은행업계 및 전문가들도 대책 없이 합병을 통해 매출을 늘리려는 목표는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전직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해마다 저축은행에서 온갖 유형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며 “내부통제는 엉망인데 소비자의 신뢰부터 쌓아야 할 저축은행들이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이 덩치만 키우려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축은행들은 1조 클럽을 운운하기 보다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마치 2011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의 상황을 보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

저축은행 탈 쓰고
살인적인 고금리


저축은행들은 몸집 불리기가 아닌 효율성을 위한 합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사외이사, 준법감시인 등을 둬야하고 전산시스템 관리 등에 대한 중복비용이 들기 때문에 통합한 것”이라며 “합병은 경영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은 저축은행 사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당시 저축은행이 줄줄이 무너진 것은 대규모 자산을 운용할 만한 인적 자원이나 위험을 관리할 만한 조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신뢰산업이다. 소비자의 신뢰조차 얻지 못한 채 ‘1조 클럽’에 들기 위해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면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융권에 일본자본 얼마나?

일본자금이 국내 서민금융시장을 급속도로 장악해가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는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에 이어 이번엔 캐피털사까지 손에 쥐게 됐다.

J트러스트가 국내 캐피탈업계 2위사인 아주캐피탈의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J트러스트는 일본에서 대부업으로 성장한 금융그룹이다. J트러스트는 2011년부터 지난 3월까지 네오라인크레디트, KJI대부, 하이캐피탈대부 등 국내 대부업체 3곳을 사들였다. 2012년에는 친애저축은행(옛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저축은행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6월에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의 지분 100%를 인수키로 했다. 현재 금융당국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 J트러스트는 아주캐피탈이 지분 100%를 보유한 아주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인수 의향을 밝혔다. 서민금융시장의 상당부분이 일본계의 손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계 대부업체 대부액은 4조9700억원(56.2%)가량으로 내국계 3조5600억원(40.2%)을 넘어섰다. 특히 대부업계 1, 2위는 모두 일본계로 압도적인 규모를 갖추고 있다. 1위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쉬)는 대부액이 2조1700억원으로 3위인 내국 대부업체인 웰컴크레디라인대부(5000억원)의 4배가 넘는 수치다. 2위 산와대부도 일본계로 대부액은 1조2700억원 규모다.

지난해 기준 일본계 저축은행은 6개사로 늘어났다. 시장점유율은 14.5% 수준이다. 특히 가계신용대출은 25.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위 저축은행인 SBI저축은행(자산 3조8443억원)도 일본계다.

대부업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 일본계 자본이 저축은행, 캐피탈업 등으로 세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따라 시장 잠식과 국부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본계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면 서민대출 금리상승이나 국부 유출 등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며 “자칫 국내 서민금융이 일본자본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 역시 근본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축은행을 적극 인수할 주체가 국내에서 나타나지 않아 일본계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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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