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뒤죽박죽' 현주소

호랑이 없으니 여우끼리 ‘이전투구’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사실상 종료됐다. 그동안 살아남은 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이후 저축은행 판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 금융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은 현실이 됐다. 대부업체들이 저축은행을 인수해 ‘은행’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이 찢어져 있던 계열사를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저축은행들은 효율성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11 사태가 대형 저축은행의 고위험 영업에 집중했던 데서 생겨난 만큼 소비자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줄지어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SBI, OK, 웰컴, HK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끝냈다. 계열 저축은행 합병을 통해 경영자원 효율화와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저축은행 대형화 바람은 2011년 사태를 재현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몸집 불리다
영업정지 사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으로 역사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다. 눈부신 성장을 이뤘던 때도 있었지만 그 성장만 믿고 많은 저축은행이 돈을 써댔다. 결국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았다. 저축은행은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졌다.

저축은행의 역사는 1972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정부는 자금난을 겪던 기업들이 사채에 의존하다 줄줄이 파산하자 지금 저축은행의 전신인 상호신용금고 제도를 도입했다. 총 대출금의 50% 이상을 해당 영업구역내의 개인과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것도 지역과 서민금융의 원칙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저축은행의 자산규모는 급격히 증가했다. 1980년 8800억원대의 수신(예적금)과 여신(대출) 규모는 2010년 142조원까지 치솟았다.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저축은행은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고객의 돈을 ‘쌈짓돈’처럼 써대기 시작했다. 서민 금융회사로 설립된 저축은행이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했던 것이다.


결국 저축은행은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이했다. 2011년 이후 1년 동안 대형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업계 1위를 차지했던 솔로몬 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문을 닫았다. 솔로몬 저축은행을 비롯해 자산순위 탑5 안에 들었던 토마토, 제일, 부산, 부산2저축은행도 모두 문을 닫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예금자 보호 5000만원을 돌려주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에서 마련한 15조원은 저축은행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닥이 났다. 2011년 잇따른 구조조정으로 저축은행 20여 곳은 문을 닫았다. 한때 200곳이 넘었던 저축은행 수는 현재 70여개로 줄어들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업계 판 요동
대부업체 줄줄이 ‘은행’ 간판 영업

이후 저축은행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다. SBI저축은행(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이 업계 1, 2위로 우뚝 올라섰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됐다. 살아남은 저축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과거 경쟁상대로 보지도 않았던 대부업체는 거꾸로 국내 저축은행을 인수했다. 대부업체 러시앤캐시와 웰컴론은 가교저축은행인 예나래ㆍ예주저축은행과 예신저축은행을 인수해 저축은행으로 거듭났다. 특히 러시앤캐시가 운영하는 OK저축은행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저축은행 시장 에서 SBI저축은행을 위협할 정도로 바짝 다가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자산 매각이나 증자 등을 통한 자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신규 수익원이 마땅치 않은 데다 부실사태가 지속됐다. 소비자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저축은행 부실이 늘어나면서 자산 건전성이 악화됐다. 이에 따라 서민들의 목돈 마련 수단으로 각광받던 저축은행 예금도 바닥을 기고 있다.

이처럼 계속되는 불황에 저축은행들은 합병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저축은행업계에서는 대형화 바람이 불었다. 합병 뿐 아니라 신규 점포 개설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종료가 선언된 가운데 솔로몬, 토마토저축은행 이후 사라졌던 초대형 저축은행들이 재등장할 조짐이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완료했다. 우선 SBI저축은행은 4개로 나눠진 계열사(SBI, SBI2, SBI3, SBI4)를 전부 합병했다. 통합 SBI저축은행으로 공식 출범했다. 지난1일 SBI저축은행은 법인 통합을 기념하고 새 출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통합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번 통합으로 SBI저축은행은 업계 자산 1위 저축은행으로 올라섰다. 이달 중 개점 예정인 인천, 광주 지점을 포함하면 전국 20개 영업점을 보유하면서 업계 1위의 우량 저축은행이 된다.
 

자산 규모는 지난 9월말 기준 자산 규모 3조8443억원, BIS비율 11.44%을 기록했다. 2019년 6월말 까지 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BIS) 14.61%, 당기순이익 2328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40~50명 규모의 대졸신입공채와 신입텔러공채’를 통해 핵심인력까지 추가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같은 날 OK저축은행도 OK2저축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지난 6월 기준 자산 규모 4862억원, BIS비율 33.67%에 18개 영업점을 보유한 저축은행으로 새로 탄생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자산이 연내 1조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표를 달성한다면 러시앤캐시는 저축은행 진출 반년 만에 총 자산이 두 배로 뛰는 셈이다. 최근까지 OK저축은행은 월 평균 800억∼1000억원의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1조 클럽’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다.

다시 몸집 키우기
2011 사태 재현?

웰컴저축은행은 지난달 29일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서일저축은행의 합병을 마무리했다. ‘웰컴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해 영업을 시작했다. 이번 합병으로 웰컴저축은행은 서울과 경기, 부산, 경남 지역의 기존 영업구역과 대전(둔산지점), 충청(서산지점) 지역 영업 구역을 추가해 총 14개의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HK저축은행도 지난달 자회사인 부산HK저축은행과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통합HK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앞서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지난9월 예성저축은행과 합병했다. 이후 경기·인천·호남·제주지역 등 기존 영업망에 서울지점을 추가로 확보해 총 12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저축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합병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이 규제를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2011년 이후 본격 추진했던 부실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지점설치가 가능하도록 했다. 영업구역 외에도 저축은행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저축은행 점포 신설이 한결 자유로워진 셈이다.

그동안 부실화를 막기 위해 지점이나 출장소, 여신전문출장소 등을 설치할 때 일정액을 증자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점 설치 시에도 증자의무를 배제하고 저축은행중앙회 승인으로 점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 국내 저축은행들이 지역 밀착형 서민금융기관으로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사업연도가 마무리되면서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당국이 너무 쉽게 저축은행 합병 허가를 내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저축은행 대형화로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저축은행에 감독과 지도를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의 금리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취지는 무색해진 모습이다. 저축은행들이 이렇다 할 구체적 계획 보다는 몸집을 키우기 위해 통합부터 강행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들은 서민금융을 취급하는 ‘은행’이름만 달았지 대출금리는 여전히 살인적이다. 대부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리대금업자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금융감독원이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대출의 90% 정도가 연 25%가 넘는 고금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9월 말 기준 OK, OK2, 웰컴, 웰컴서일, 친애 등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5곳의 전체 대출 2만7424건 중 89%(2만4460건)가 연 25∼35%의 고금리 대출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 10∼15%대 대출은 전체의 7%(1882건)였고 10% 미만 저금리 대출은 3%(769건)에 불과했다.

계열사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
이러다 또 큰일?…위기 가능성↑


저축은행별로는 국내 대부업계 1위 ‘러시앤캐시’ 계열의 OK저축은행이 전체 대출의 91%(1만2114건)를 연리 25∼30%에 빌려줬다. 웰컴크레디라인이 인수한 웰컴저축은행은 96%(8612건)가 연 25∼30%대 대출이었다. 일본계 금융그룹 J트러스트 계열의 친애저축은행은 연 30% 이상 대출이 620건이나 됐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연 10∼20%대의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5개 저축은행의 수신 규모는 대부업체 인수 이전 2조4763억 원에서 9월 현재 2조723억 원으로 약 16% 감소했다. 전체 대출 규모도 같은 기간 1조9536억 원에서 1조4657억 원으로 약 25% 감소했다. 이 중 기업대출이 1조5829억 원에서 4689억 원으로 70% 급감한 반면 개인 신용대출은 2655억 원에서 8482억 원으로 219%나 급증했다.

김 의원은 “대부업계 저축은행이 수신과 여신은 줄이면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대부업체에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해 서민대출 금융회사로 키우겠다고 한 금융당국의 취지가 무색하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에금보험공사의 저축은행 자금지원은 27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예금보험공사가 저축은행에 총 29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이 중 3조7000억원만 회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은 20개나 됐다. 예금보험공사의 단독조사 횟수만 30회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은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이 20곳”이라며 “예보의 단독조사가 30회에 달해 저축은행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발표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은행업계 및 전문가들도 대책 없이 합병을 통해 매출을 늘리려는 목표는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전직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해마다 저축은행에서 온갖 유형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며 “내부통제는 엉망인데 소비자의 신뢰부터 쌓아야 할 저축은행들이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이 덩치만 키우려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축은행들은 1조 클럽을 운운하기 보다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마치 2011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의 상황을 보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

저축은행 탈 쓰고
살인적인 고금리


저축은행들은 몸집 불리기가 아닌 효율성을 위한 합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사외이사, 준법감시인 등을 둬야하고 전산시스템 관리 등에 대한 중복비용이 들기 때문에 통합한 것”이라며 “합병은 경영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은 저축은행 사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당시 저축은행이 줄줄이 무너진 것은 대규모 자산을 운용할 만한 인적 자원이나 위험을 관리할 만한 조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신뢰산업이다. 소비자의 신뢰조차 얻지 못한 채 ‘1조 클럽’에 들기 위해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면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융권에 일본자본 얼마나?

일본자금이 국내 서민금융시장을 급속도로 장악해가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는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에 이어 이번엔 캐피털사까지 손에 쥐게 됐다.

J트러스트가 국내 캐피탈업계 2위사인 아주캐피탈의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J트러스트는 일본에서 대부업으로 성장한 금융그룹이다. J트러스트는 2011년부터 지난 3월까지 네오라인크레디트, KJI대부, 하이캐피탈대부 등 국내 대부업체 3곳을 사들였다. 2012년에는 친애저축은행(옛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저축은행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6월에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의 지분 100%를 인수키로 했다. 현재 금융당국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 J트러스트는 아주캐피탈이 지분 100%를 보유한 아주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인수 의향을 밝혔다. 서민금융시장의 상당부분이 일본계의 손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계 대부업체 대부액은 4조9700억원(56.2%)가량으로 내국계 3조5600억원(40.2%)을 넘어섰다. 특히 대부업계 1, 2위는 모두 일본계로 압도적인 규모를 갖추고 있다. 1위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쉬)는 대부액이 2조1700억원으로 3위인 내국 대부업체인 웰컴크레디라인대부(5000억원)의 4배가 넘는 수치다. 2위 산와대부도 일본계로 대부액은 1조2700억원 규모다.

지난해 기준 일본계 저축은행은 6개사로 늘어났다. 시장점유율은 14.5% 수준이다. 특히 가계신용대출은 25.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위 저축은행인 SBI저축은행(자산 3조8443억원)도 일본계다.

대부업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 일본계 자본이 저축은행, 캐피탈업 등으로 세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따라 시장 잠식과 국부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본계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면 서민대출 금리상승이나 국부 유출 등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며 “자칫 국내 서민금융이 일본자본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 역시 근본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축은행을 적극 인수할 주체가 국내에서 나타나지 않아 일본계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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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닻 올린 ‘2차 계엄’ 수사 큰 그림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내란 특검팀이 2차 계엄 의혹에 대한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다. 비상계엄 선포 다음 날인 지난해 12월4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가 핵심이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 간 교감과 이날, 군 수뇌부의 움직임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당시 상황을 재구성 중인 특검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을 재소환할 방침이다. 내란 특검팀(특별검사 조은석)은 비상계엄 선포 이후의 상황을 재구성해 왔다. 법무부와 민정수석실의 역할은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고 있다. 특히 2차 계엄 논의 여부는 여전히 의혹에 그치고 있다.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과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무엇을 위한 법률을 검토했는지가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안가 회동 정조준 특검팀은 지금까지 12·3 내란이 어떻게 준비됐는지에 대해 수사력을 집중했다. 북풍 공작과 평양 무인기 침투 작전, 국군정보·방첩사령부의 움직임 등이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내란 이후의 상황을 수사하기 시작한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오전 10시 박 전 장관을 소환 조사했다.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받는 박 전 장관은 13시간가량 조사를 받고 귀가했다. 박 전 장관은 내란 당일 대통령 집무실에서 계엄 선포 계획을 가장 먼저 들은 국무위원 중 한 명이다. 이후 법무부로 돌아와 실·국장 회의를 열고 검찰국에 ‘합동수사본부 검사 파견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계엄 당일 법무부 출입국본부에 출국금지팀을 대기시키라고 지시한 혐의도 적용됐다. 계엄 이후에는 정치인 등 수용을 위해 교정본부에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를 지시한 혐의도 있다. 특검팀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근거로 그가 지난해 12월3일 오후 11시쯤 대통령실에서 정부과천청사로 이동하면서 통화한 내역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이 통화한 인물은 임세진 전 검찰과장, 배상업 전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신용해 전 교정본부장, 심우정 전 검찰총장 등이다. 임 전 과장은 박 전 장관과의 통화를 마치고 검사·수사관 인사를 담당하는 실무진 2명에게 전화를 걸었고, 배 전 본부장은 출국금지·출입국 관련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신 전 본부장은 김문태 전 서울구치소장과 연락을 취했다. 박 전 장관은 이후 간부 회의를 열어 관련 논의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다음 날 한상대 전 검찰총장과 연락하기도 했다. 한 전 총장은 퇴직 검사 모임인 검찰동우회 회장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탄핵 당시 가장 많이 연락한 인물이다. 국회 계엄 해제 요구안 의결 이후에는 김 전 수석과 비화폰으로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은 두 사람이 2차 계엄 등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고 보고 있다. 박 전 장관 측은 김 전 수석에게 포고령에 문제가 있으며 국회가 의결했으니 국무회의를 신속히 소집해 계엄을 해제해야 한다고 전했다는 입장이다. 박성재·김주현 곧바로 2차 계엄 법률 검토? 용산 CCTV 속 최측근들 메모 후 문건 만지작 특검팀은 박 전 장관이 ▲계엄사령부 산하 합동수사본부 검사를 파견하라고 검찰국에 지시 ▲출입국본부 ‘출국금지팀’ 대기 지시 ▲교정본부 수용 여력 점검 및 공간 확보 지시 등을 추진했다고 판단한다. 조사를 마친 박 전 장관은 “제가 한 일에 대해 소상하게 다 말씀드렸다”며 “통상적인 업무 수행에 대한 다른 평가를 하는 것에 대해 제가 알고 있는 모든 내용을 상세하게 말씀드렸다”고 했다. 이어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지속적으로 특검법의 위헌성에 대해 지적을 했었는데, 이 부분이 현재 특검법에도 시정되지 않은 채 시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점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어떤 내용을 (특검에) 말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의문이 제기되는 모든 점에 대해 상세히 말씀드렸다”고 답했다.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지’ 묻자 “나는 항상 업무를 했을 뿐”이라고 했다. ‘5급 이상 간부들에게 비상대기를 지시했다’는 주장에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했다. ‘구치소장 연락 지시’ 관련 질문에는 “질문이 어디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수용 지시가 계엄과 관련됐느냐’는 질문에는 “누구에게도 체포·구금하라는 지시를 한 사실이 없다”고 답변했다. 특검팀은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직전 국무회의를 열기 위해 일부 국무위원을 용산 대통령실로 소집했을 때의 CCTV 영상도 확보했다. 박 전 장관은 대통령실 대접견실에서 A4 용지에 직접 내용을 메모하고 특정 문건을 들여다봤다고 한다. 특검팀은 그가 윤 전 대통령 등으로부터 문건 형태로 계엄 이후 법무부가 해야 할 조치 등을 지시받고 현장에서 이를 직접 정리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앞서 계엄 선포 당일 대통령실에 모인 일부 국무위원 등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계엄 이후 조치 사항이 담긴 문건을 직접 전달받았다. 최상목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계엄 이후 가동할 비상입법기구 예산 편성 등을 지시받았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경향신문> 등 언론사에 단전·단수 조치하라는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시를 한 사실 없다” 조태열 전 외교부 장관은 ‘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키라’는 지시를 받았다. 박 전 장관 측은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개별 지시 문건을 받지 않았고 통상적인 절차에 따라 법무부에 지시를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지난달 24일 특검 조사에서도 A4 용지에 메모했는지 등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 전 장관 측은 이날 “해당 CCTV 장면을 보여달라”는 취지의 의견서를 특검에 제출했다. 특검팀이 김 전 수석을 소환한 건 지난 7월 초다. 그는 지난해 12월4일 서울 삼청동에 위치한 대통령 안전가옥(안가)에서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박 전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등과 계엄 관련 법률 검토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모두 윤 전 대통령과는 고교·대학 및 검찰 동기나 선·후배로 윤석열정부 최고위직 법률가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정치권에서 “비상계엄 수사 등 법률적 대응 방안 또는 제2의 내란 모의 가능성을 논의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이들은 국회와 경찰 조사에서 “연말에 얼굴 보자는 취지였다”(박성재 전 장관), “신세 한탄이나 하자는 자리였고, 법률을 검토할 겨를도 없었다”(이상민 전 장관)며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이 자리에 한정화 전 법률비서관이 동석한 사실을 확인했다. 주변 CCTV 등 안가 회동 참석자들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한 전 비서관의 존재를 인지하고 소환 조사까지 진행했다. 특검팀은 삼청동 안가 모임 성격을 ▲비상계엄 선포 절차 사후 보완 ▲대통령 탄핵 대비 법적 대응 논리 개발 자리 등으로 보고 있다. 특히 내란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나온 관련자 진술의 위법성을 면밀히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 이 전 처장 등은 안가 회동 이후 휴대전화를 바꿨다. 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윤 전 대통령 최측근으로 꼽히는 김주현 전 민정수석,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등 밑에서 일하던 검찰 고위 관계자들은 대통령을 ‘운명 공동체’로 생각한다”며 “박 전 장관이나 김 전 수석에 대해서는 검찰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지 않았다. 이들에 대해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수사 결론이 나오지 않으면 국민이 받아들이겠나. 모든 의혹이 해소될 때까지 그 사람들에 대한 수사는 계속돼야 한다. 이들은 죽을 때까지 수사선상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증거 이미 폐기했다? 특검팀은 과거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작성했던 수사보고서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보고서의 제목은 ‘2차 비상계엄 가능성에 대한 의혹 등 정리 보고’다. 수사보고서에는 “12·4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통과되고 난 직후,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부 상황실로 찾아가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게 ‘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 ‘내가 다시 계엄을 할 테니 그때는 철저히 준비해서 국회부터 장악하라’라고 지시한 정황”이 있다고 적혔다. 해당 의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서 처음 제기했다. 민주당은 지난해 12월6일 비상 의원총회에서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2차 발령을 준비했다는 정황을 공개했다. 검찰이 이 같은 민주당의 의혹 제기와 관련해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계엄사령관인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윤 대통령, 김용현 장관과 함께 합참 지휘통제실 내 별도의 방에 들어갔다고 국방위 현안 질의에서 답한 바 있으나 대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발언했으나 박 총장이 답변한 날인 12월5일은 윤 대통령의 위와 같은 발언이 공개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박 전 총장에 대해 조사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검찰은 수사보고서에서 시민단체와 언론사 보도 등 2차 계엄 의혹과 관련한 의혹 확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육군 복수 부대에 지휘관 휴가 통제 지침이 내려졌고 비상계엄 선포 이후 경계 태세가 유지되고 있다는 의혹과 계엄 둘째 날 지방 공수여단의 서울 진입 계획이 있었다는 육군특수전사령부 간부의 언론사 인터뷰 등이 그 근거다. 검찰은 윤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에게 ‘국회 문을 열고 들어가 의사당 내 의원들을 밖으로 이탈시킬 것’이라고 동일한 명령을 내렸지만, 지시가 이행되지 않아 2차 계엄이 준비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12월4일 새벽 중요…검도 “수사 필요” 인정 자료 이미 사라졌나…용산 PC 전부 포맷 확인 검찰은 수사보고서에 “윤 대통령의 ‘국회의원 이탈 명령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자 김 장관에게 위와 같은 발언(왜 국회의원들을 잡지 않았느냐)을 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어 보이고, 이와 더불어 ‘추가 계엄 선포’와 관련된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있어 보이므로 관련 내용 수사 필요성 있음”이라고 적었다. 특검팀은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이 조직적으로 2차 계엄 관련 자료를 폐기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18일 정진석 전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한 특검팀은 정 전 실장에게 계엄 이후의 상황을 따져 물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 전 실장은 불법 계엄 전후 윤석열 전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다. 그는 계엄 선포 직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있었다. 국무위원은 아니지만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에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과 함께 참석했다. 이튿날 새벽에 계엄 해제 국무회의가 열리기 전, 윤 전 대통령이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 머물 때 찾아가 만나기도 했다. 정 전 실장은 지난해 12월4일 국회가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이후 윤 전 대통령, 박 전 총장, 김 전 장관 등과 함께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 내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는 국회에서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의결된 후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와도 통화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앞서 “지난해 12월4일 오전 2시58분쯤 정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국회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이 정부에 도착했음을 확인하고 정부의 신속한 계엄 해제 조치를 촉구했다”고 밝혔다. 정 전 실장은 대통령실 윗선이 계엄 증거를 조직적으로 은폐했다는 의혹에도 연루돼있다. 특검은 지난 4월 대통령실 컴퓨터(PC) 전체 초기화 계획이 정 전 실장의 지시로 실행됐을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 특검팀은 앞서 별도 전담팀을 꾸려 정 전 실장 관련 의혹을 수사해 왔다. 특검팀은 이날 정 전 실장을 상대로 계엄 당시 국무회의와 대통령실 상황, 추 전 원내대표와의 통화 경위 등을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이 부족하다 특검팀은 박 전 총장도 참고인 신분으로 재조사했다. 앞서 박 전 총장은 계엄 당시 계엄사령관으로서 불법 포고령을 발령한 혐의(내란중요임무종사) 등으로 구속 기소됐다. 박 전 총장도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의결한 뒤 윤 전 대통령, 김 전 장관 등과 합참 결심지원실에 함께 있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