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저축은행 사태 이후…'뒤죽박죽' 현주소

호랑이 없으니 여우끼리 ‘이전투구’

[일요시사 경제2팀] 박효선 기자 =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사실상 종료됐다. 그동안 살아남은 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쳤다. 이후 저축은행 판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 금융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은 현실이 됐다. 대부업체들이 저축은행을 인수해 ‘은행’ 간판을 달게 된 것이다. 최근에는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이 찢어져 있던 계열사를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에 나섰다. 저축은행들은 효율성을 위해서라고 했지만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2011 사태가 대형 저축은행의 고위험 영업에 집중했던 데서 생겨난 만큼 소비자의 신뢰부터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저축은행들이 줄지어 덩치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SBI, OK, 웰컴, HK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끝냈다. 계열 저축은행 합병을 통해 경영자원 효율화와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저축은행 대형화 바람은 2011년 사태를 재현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몸집 불리다
영업정지 사태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으로 역사를 시작한 지 40년이 지났다. 눈부신 성장을 이뤘던 때도 있었지만 그 성장만 믿고 많은 저축은행이 돈을 써댔다. 결국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았다. 저축은행은 도미노처럼 줄줄이 무너졌다.

저축은행의 역사는 1972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정부는 자금난을 겪던 기업들이 사채에 의존하다 줄줄이 파산하자 지금 저축은행의 전신인 상호신용금고 제도를 도입했다. 총 대출금의 50% 이상을 해당 영업구역내의 개인과 중소기업에 대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는 것도 지역과 서민금융의 원칙에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저축은행의 자산규모는 급격히 증가했다. 1980년 8800억원대의 수신(예적금)과 여신(대출) 규모는 2010년 142조원까지 치솟았다.

가파른 성장세를 타고 저축은행은 IMF 외환위기 이후에도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었다. 특히 저축은행 대주주들은 고객의 돈을 ‘쌈짓돈’처럼 써대기 시작했다. 서민 금융회사로 설립된 저축은행이 대주주의 사금고로 전락했던 것이다.


결국 저축은행은 2011년 영업정지 사태를 맞이했다. 2011년 이후 1년 동안 대형 저축은행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업계 1위를 차지했던 솔로몬 저축은행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아 문을 닫았다. 솔로몬 저축은행을 비롯해 자산순위 탑5 안에 들었던 토마토, 제일, 부산, 부산2저축은행도 모두 문을 닫았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예금자 보호 5000만원을 돌려주기 위해 예금보험공사에서 마련한 15조원은 저축은행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닥이 났다. 2011년 잇따른 구조조정으로 저축은행 20여 곳은 문을 닫았다. 한때 200곳이 넘었던 저축은행 수는 현재 70여개로 줄어들었다.

상상할 수 없던 일이…업계 판 요동
대부업체 줄줄이 ‘은행’ 간판 영업

이후 저축은행의 판도는 크게 바뀌었다. SBI저축은행(옛 현대스위스저축은행)과 HK저축은행이 업계 1, 2위로 우뚝 올라섰다. 그러나 상황은 악화됐다. 살아남은 저축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다.

과거 경쟁상대로 보지도 않았던 대부업체는 거꾸로 국내 저축은행을 인수했다. 대부업체 러시앤캐시와 웰컴론은 가교저축은행인 예나래ㆍ예주저축은행과 예신저축은행을 인수해 저축은행으로 거듭났다. 특히 러시앤캐시가 운영하는 OK저축은행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저축은행 시장 에서 SBI저축은행을 위협할 정도로 바짝 다가가고 있다.

저축은행들은 자산 매각이나 증자 등을 통한 자금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신규 수익원이 마땅치 않은 데다 부실사태가 지속됐다. 소비자 신뢰도는 회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최근에는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저축은행 부실이 늘어나면서 자산 건전성이 악화됐다. 이에 따라 서민들의 목돈 마련 수단으로 각광받던 저축은행 예금도 바닥을 기고 있다.

이처럼 계속되는 불황에 저축은행들은 합병 카드를 꺼내들었다. 최근 저축은행업계에서는 대형화 바람이 불었다. 합병 뿐 아니라 신규 점포 개설 등을 통해 몸집을 키우고 있다.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종료가 선언된 가운데 솔로몬, 토마토저축은행 이후 사라졌던 초대형 저축은행들이 재등장할 조짐이다.


지난달부터 이달 초까지 SBI, OK, 웰컴, HK저축은행 등 저축은행이 잇따라 합병작업을 완료했다. 우선 SBI저축은행은 4개로 나눠진 계열사(SBI, SBI2, SBI3, SBI4)를 전부 합병했다. 통합 SBI저축은행으로 공식 출범했다. 지난1일 SBI저축은행은 법인 통합을 기념하고 새 출발의 각오를 다지기 위한 통합 선포식을 개최했다. 이번 통합으로 SBI저축은행은 업계 자산 1위 저축은행으로 올라섰다. 이달 중 개점 예정인 인천, 광주 지점을 포함하면 전국 20개 영업점을 보유하면서 업계 1위의 우량 저축은행이 된다.
 

자산 규모는 지난 9월말 기준 자산 규모 3조8443억원, BIS비율 11.44%을 기록했다. 2019년 6월말 까지 국제결제은행자기자본비율(BIS) 14.61%, 당기순이익 2328억원을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은행은 전망하고 있다. 40~50명 규모의 대졸신입공채와 신입텔러공채’를 통해 핵심인력까지 추가적으로 확보할 계획이다.

같은 날 OK저축은행도 OK2저축은행을 흡수 합병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지난 6월 기준 자산 규모 4862억원, BIS비율 33.67%에 18개 영업점을 보유한 저축은행으로 새로 탄생했다. OK저축은행은 이번 합병으로 자산이 연내 1조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목표를 달성한다면 러시앤캐시는 저축은행 진출 반년 만에 총 자산이 두 배로 뛰는 셈이다. 최근까지 OK저축은행은 월 평균 800억∼1000억원의 대출을 취급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라면 ‘1조 클럽’에 드는 것도 시간문제다.

다시 몸집 키우기
2011 사태 재현?

웰컴저축은행은 지난달 29일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아 서일저축은행의 합병을 마무리했다. ‘웰컴저축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해 영업을 시작했다. 이번 합병으로 웰컴저축은행은 서울과 경기, 부산, 경남 지역의 기존 영업구역과 대전(둔산지점), 충청(서산지점) 지역 영업 구역을 추가해 총 14개의 영업점을 운영하고 있다.

HK저축은행도 지난달 자회사인 부산HK저축은행과의 합병을 마무리하고 통합HK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앞서 한국투자저축은행은 지난9월 예성저축은행과 합병했다. 이후 경기·인천·호남·제주지역 등 기존 영업망에 서울지점을 추가로 확보해 총 12개의 점포를 보유하고 있다.

이처럼 저축은행들이 적극적으로 합병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당국이 규제를 풀어주었기 때문이다. 당국은 2011년 이후 본격 추진했던 부실저축은행의 구조조정을 완료했다. 허가가 아닌 신고만으로 지점설치가 가능하도록 했다. 영업구역 외에도 저축은행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규제를 완화했다. 저축은행 점포 신설이 한결 자유로워진 셈이다.

그동안 부실화를 막기 위해 지점이나 출장소, 여신전문출장소 등을 설치할 때 일정액을 증자해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지점 설치 시에도 증자의무를 배제하고 저축은행중앙회 승인으로 점포를 설치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된다. 국내 저축은행들이 지역 밀착형 서민금융기관으로서 도약할 수 있도록 만들겠다는 취지에서다. 지난해 사업연도가 마무리되면서 금융당국이 저축은행 부실사태는 끝났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당국이 너무 쉽게 저축은행 합병 허가를 내준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저축은행 대형화로 제2의 저축은행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저축은행에 감독과 지도를 더욱 엄격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의 금리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취지는 무색해진 모습이다. 저축은행들이 이렇다 할 구체적 계획 보다는 몸집을 키우기 위해 통합부터 강행했다는 시각이다.
 

특히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들은 서민금융을 취급하는 ‘은행’이름만 달았지 대출금리는 여전히 살인적이다. 대부업과 별반 다를 바 없는 고리대금업자라는 비판여론이 거세다.

금융감독원이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대출의 90% 정도가 연 25%가 넘는 고금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9월 말 기준 OK, OK2, 웰컴, 웰컴서일, 친애 등 대부업 계열 저축은행 5곳의 전체 대출 2만7424건 중 89%(2만4460건)가 연 25∼35%의 고금리 대출인 것으로 집계됐다. 연 10∼15%대 대출은 전체의 7%(1882건)였고 10% 미만 저금리 대출은 3%(769건)에 불과했다.

계열사 끌어 모아 몸집 불리기
이러다 또 큰일?…위기 가능성↑


저축은행별로는 국내 대부업계 1위 ‘러시앤캐시’ 계열의 OK저축은행이 전체 대출의 91%(1만2114건)를 연리 25∼30%에 빌려줬다. 웰컴크레디라인이 인수한 웰컴저축은행은 96%(8612건)가 연 25∼30%대 대출이었다. 일본계 금융그룹 J트러스트 계열의 친애저축은행은 연 30% 이상 대출이 620건이나 됐다. 대부업체가 저축은행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연 10∼20%대의 중금리 신용대출 상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거의 지켜지지 않은 셈이다.

5개 저축은행의 수신 규모는 대부업체 인수 이전 2조4763억 원에서 9월 현재 2조723억 원으로 약 16% 감소했다. 전체 대출 규모도 같은 기간 1조9536억 원에서 1조4657억 원으로 약 25% 감소했다. 이 중 기업대출이 1조5829억 원에서 4689억 원으로 70% 급감한 반면 개인 신용대출은 2655억 원에서 8482억 원으로 219%나 급증했다.

김 의원은 “대부업계 저축은행이 수신과 여신은 줄이면서 고금리 신용대출을 늘리고 있다”며 “대부업체에 저축은행 인수를 허용해 서민대출 금융회사로 키우겠다고 한 금융당국의 취지가 무색하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에금보험공사의 저축은행 자금지원은 27조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강기정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예금보험공사가 저축은행에 총 29조2000억원을 지원하고 이 중 3조7000억원만 회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은 20개나 됐다. 예금보험공사의 단독조사 횟수만 30회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강 의원은 “부실우려인정기준에 해당하는 3년 연속 당기순손실을 본 저축은행이 20곳”이라며 “예보의 단독조사가 30회에 달해 저축은행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 것이라는 금융당국의 발표는 낙관하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은행업계 및 전문가들도 대책 없이 합병을 통해 매출을 늘리려는 목표는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전직 한국은행 고위 관계자는 “해마다 저축은행에서 온갖 유형의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며 “내부통제는 엉망인데 소비자의 신뢰부터 쌓아야 할 저축은행들이 구체적인 계획조차 없이 덩치만 키우려는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저축은행들은 1조 클럽을 운운하기 보다는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마치 2011년 사태가 터지기 직전의 상황을 보는 것 같다”고 경고했다.

저축은행 탈 쓰고
살인적인 고금리


저축은행들은 몸집 불리기가 아닌 효율성을 위한 합병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축은행 한 관계자는 “계열사별로 사외이사, 준법감시인 등을 둬야하고 전산시스템 관리 등에 대한 중복비용이 들기 때문에 통합한 것”이라며 “합병은 경영효율성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2011년은 저축은행 사태로 큰 홍역을 치렀다. 당시 저축은행이 줄줄이 무너진 것은 대규모 자산을 운용할 만한 인적 자원이나 위험을 관리할 만한 조직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금융사는 신뢰산업이다. 소비자의 신뢰조차 얻지 못한 채 ‘1조 클럽’에 들기 위해 몸집 불리기에만 급급하다면 2011년 저축은행 사태는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dklo216@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금융권에 일본자본 얼마나?

일본자금이 국내 서민금융시장을 급속도로 장악해가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는 대부업체와 저축은행에 이어 이번엔 캐피털사까지 손에 쥐게 됐다.

J트러스트가 국내 캐피탈업계 2위사인 아주캐피탈의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J트러스트는 일본에서 대부업으로 성장한 금융그룹이다. J트러스트는 2011년부터 지난 3월까지 네오라인크레디트, KJI대부, 하이캐피탈대부 등 국내 대부업체 3곳을 사들였다. 2012년에는 친애저축은행(옛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본격적으로 저축은행 시장에도 진출했다. 지난 6월에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의 지분 100%를 인수키로 했다. 현재 금융당국의 최종 승인을 기다리고 있다.

일본계 금융사 J트러스트는 아주캐피탈이 지분 100%를 보유한 아주저축은행에 대해서도 인수 의향을 밝혔다. 서민금융시장의 상당부분이 일본계의 손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다.

지난해 말 기준 일본계 대부업체 대부액은 4조9700억원(56.2%)가량으로 내국계 3조5600억원(40.2%)을 넘어섰다. 특히 대부업계 1, 2위는 모두 일본계로 압도적인 규모를 갖추고 있다. 1위인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쉬)는 대부액이 2조1700억원으로 3위인 내국 대부업체인 웰컴크레디라인대부(5000억원)의 4배가 넘는 수치다. 2위 산와대부도 일본계로 대부액은 1조2700억원 규모다.

지난해 기준 일본계 저축은행은 6개사로 늘어났다. 시장점유율은 14.5% 수준이다. 특히 가계신용대출은 25.9%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1위 저축은행인 SBI저축은행(자산 3조8443억원)도 일본계다.

대부업 시장의 절반 이상을 잠식한 일본계 자본이 저축은행, 캐피탈업 등으로 세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에 따라 시장 잠식과 국부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일본계 자본을 통제하지 못하게 된다면 서민대출 금리상승이나 국부 유출 등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며 “자칫 국내 서민금융이 일본자본에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금융당국 역시 근본 대책 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축은행을 적극 인수할 주체가 국내에서 나타나지 않아 일본계에 대한 차별적 규제가 어렵기 때문이다. <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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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br>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단독] ‘아나운서 강제 마약’
적색수배 피의자 실체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필리핀에서 프리랜서 아나운서 김나정에게 강제로 마약을 투약한 한국인 사업가 권모씨에게 인터폴 적색수배가 내려졌다. 권씨는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일대에 서버를 두고 투자 사기, 마약 유통 등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6년간 수사망을 피하며 도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24일 경기북부경찰청 마약수사계는 아나운서 김나정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증거를 경찰에 제출했지만, 경찰은 해당 증거로는 강제성을 증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해외 도주 대담한 행적 김씨는 지난해 11월12일 마닐라에서 자신의 SNS에 “제가 필리핀에서 마약 투약한 것을 자수한다”며 “죽어서 갈 것 같아서 비행기를 못 타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후 그는 마닐라에서 여객기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귀국해 인천국제공항경찰대의 조사를 받았다. 사건은 주소지 등을 고려해 경기북부경찰청으로 넘어왔다. 이후 김씨 측은 필리핀 현지에서 강제로 마약 흡입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던 법무법인 충정은 “김나정은 뷰티 제품 홍보 및 속옷 브랜드 출시를 위해 필리핀을 찾았다가 젊은 사업가 A씨(권씨)를 소개받았다. 젊은 사업가가 김나정의 사업을 적극 도와주겠다고 해 시간을 할애해 방문했을 뿐이다. 항간에 도는 소위 ‘스폰’의 존재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취재를 종합하면, 김씨가 필리핀에서 만난 1995년 8월5일생의 사업가 권씨는 SNS에 ‘투자 리딩방’을 개설해 범죄수익을 벌어들인 범죄자다. 업계에서 일명 ‘재림’으로 불리는 그가 리딩방 총책으로 활동하며 발생시킨 투자 사기 피해액만 약 300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2019년 8월4일 필리핀으로 간 권씨는 이후 국내로 입국한 적이 없다. 유튜버 크라임넷 등 제보에 따르면 권씨는 드라마 의 주인공 차무식의 실존 인물인 이상태씨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보호받아왔다고 한다. 검찰은 21년간 필리핀에서 도주 행각을 이어가던 이씨를 현지 교민 정보망을 활용해 검거했다. 법원에서 실형이 선고됐으나, 광주지검 목포지청(곽영환 지청장)은 해외 도주를 이어가던 이씨를 필리핀 현지에서 검거했다고 지난해 8월23일 밝혔다. 사업가로 변신, 김나정 앞에 나타난 권씨 취재 결과 70억대 사기단 우두머리로 확인 이씨는 2014년 공범과 함께 필리핀에서 불법 도박 사무실을 운영하겠다며 투자금 1억1000여만원을 받아 가로챈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돼 2020년 2월 징역 2년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구속 기소된 공범은 실형을 살았지만, 해외에 있던 이씨는 공소시효 임박에 따라 궐석재판으로 징역형이 확정돼 ‘자유형 미집행자’ 신분이 됐다. 자유형 미집행자는 징역·금고 등의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잠적하거나 도주한 사람을 뜻한다. 이씨는 2003년 필리핀으로 출국한 뒤 세부섬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하며 21년간 귀국하지 않고, 현지에서 공갈·사기 범행을 11건(피해액 약 8000만원) 저질러 지명수배·지명 통보 조치가 내려진 인물이다. 목포지청은 검거팀을 꾸려 이씨 검거에 나섰는데, 필리핀 현지 교민 사이트에서 이씨 거주지를 특정하는 단서를 확보해 검거에 성공했다. 현지 주민들이 이용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이씨에 대한 제보를 받아 검거에 필요한 핵심 정보를 획득했다. 결국 법무부, 필리핀 파견 검찰 수사관, 필리핀 이민청 수배자 검거팀과 국제공조로 클락시에서 이씨를 검거했다. 검찰은 “7000여개 섬으로 이뤄진 필리핀의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고 본섬인 루손섬이 아닌 곳에서 범인을 검거한 첫 사례”라고 밝혔다. 현실판 차무식의 비호를 받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온 범죄자가 바로 권씨인 것이다. 권씨의 이름은 다른 사건에서도 언급된다. 2022년 SNS에 ‘투자 리딩방’을 만든 뒤 대체 코인 거래 사이트로 이용자 130명을 유인해 70억원대 투자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경찰에 붙잡힌 일당도 권씨가 총책이라고 진술했다. 그해 6월30일 부산경찰청 사이버수사과는 전기통신금융사기 등 혐의로 투자 사기 일당 16명을 검거해 총판 관리팀장 20대 A씨 등 8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8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한 조직 총책인 권씨 등 핵심 간부 5명에 대해서는 인터폴 적색수배 조치하고, 국내에 체류 중인 나머지 조직원 1명은 지명수배해 뒤를 쫓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2021년 6월부터 올해 2월까지 SNS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서 전문 투자 상담사를 사칭해 투자자 130명을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게 한 뒤 투자금 약 70억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강제 투약 진실은? 총책인 권씨는 필리핀에 본사를 두고, 본사 운영팀과 총판 관리팀, 회원 모집책 등 역할을 나눠 치밀하게 조직을 운영했다. 우선, 인터넷에서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활용해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무작위로 문자메시지를 전송한 뒤 SNS에 개설한 오픈 채팅방인 투자 리딩방에 초대했다. 이들 일당은 “대체 코인 투자로 300~400%의 고수익을 보장하겠다”라거나 “VIP에게만 제공하는 투자 리딩이 진행된다”며 피해자들을 유인했다. 회원 모집책 20대 C씨 등 13명은 투자 리딩방에서 대체 코인에 투자해 큰 수익을 낸 전문가인 것처럼 1인 다역 행세를 했고, 이에 속은 투자자들이 허위 가상 자산 사이트에 가입하기에 이르렀다. 특히 C씨 등은 가짜 투자 전문가 자격증과 사업자 등록증을 소셜미디어 프로필에 게시하거나 피해자에게 보여주며 안심시켰다. 이들의 속임수에 넘어간 가입자 중에는 노후 자금 1억5000만원을 날린 60대 남성과 최대 2억5000만원의 투자금을 날린 50대 남성도 있었다. 또 가상 자산인 코인 시장에 처음 들어가 재테크를 해보려고 나선 대학생과 주부 피해자들도 포함됐다. 피해자는 모두 130명에 달한다. 1인당 피해 금액은 1000만원에서부터 2억5000만원에 이른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처음 한두 차례는 소액으로 투자한 수익금을 그대로 돌려줘 신뢰를 쌓은 뒤, 큰 투자금을 받는 수법으로 범행을 이어간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들 일당이 범행에 사용한 계좌 28개를 지급 정지하고, 1억2000만원 상당의 범죄 수익에 대해 법원 결정을 받아 추징·보전 조치한 상태다. 인터폴 적색수배를 받는 권씨는 필리핀에서 가장 부유하고 발전된 보니파시오 지역 등 부동산을 사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제보자에 따르면, “필리핀, 태국 등지에 권씨의 차명 부동산이 여럿 있고, 일부 한국 영사들이 지내는 집도 사실상 권씨의 소유”라고 한다. 현실판 차무식 돈이 곧 권력이자, 신분인 동남아에서 권씨가 경찰을 매수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권씨는 수사망을 피해 사업가로 위장했고 다수의 여성과 향락을 즐겼다. 김씨도 부유한 사업가로 위장한 권씨를 의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충정 측은 “김나정은 술자리를 가져 다소 취했던 상황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손이 묶이고 안대가 씌워졌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김나정이 연기를 흡입하게 했다. 김나정이 이를 피하는 모습을 보이자 급기야 어떤 관 같은 것을 이용해 김나정이 강제로 연기를 흡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다”며 “김나정의 핸드폰에 손이 묶이고 안대를 가리고 있는 영상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 “김나정에게 문제가 된 마약을 강제 흡입시키기 전, 총을 보여주고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증명할 자료는 따로 없으나 경찰 조사 과정에서 권씨는 다수의 범죄를 범해 수배 중인 자로 밝혀졌다. 이 때문에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자”라면서, “김나정은 권씨의 정체를 알게 됐고 후술하는 권씨의 협박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에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나정이 귀국 전 소셜미디어에 올린 마약 자수 관련 게시물은 ‘긴급 구조 요청’을 위한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투약은 이번 단 한 번만 있었던 것이고 앞서 설명드린 바와 같이 강제로 행해진 것”이라며 “김나정이 경찰과 본인의 신변보호를 요청하는 영상통화를 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의 관계자로 보이는 자가 권씨와 통화하며 김나정을 추적하는 영상을 녹화했다. 즉 김나정은 긴급히 구조 요청을 하기 위해 마약 투약 사실을 자수한 것이지, 자의로 마약을 투약했음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후 자료를 제출받은 경찰은 약 3개월 동안 분석 작업을 했다. 또 경기북부경찰청은 김씨 측이 강제성을 주장하며 언급한 권씨에 대해 경찰청 본청 국제 관련 사건 담당 부서에 수사를 요청했다. 대검찰청은 2016년 필리핀 국가수사청과 초국가적 범죄 대응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2022년부터 검찰수사관 2명을 현지에 파견해 국제공조·도피 사범 검거 업무 등을 수행하고 있다. 필리핀 본사···치밀한 조직 운영 추정 범죄 수익만 3000억원 이상 다만, 지난해 경기북부경찰청은 권씨에 대해 “수배 중인 자라 한국에 귀국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씨가 인천국제공항 경찰단에서 2회 정도 조사를 받았고, (사건은) 주거지 관할인 경기북부경찰청으로 인계됐다”며 “사전 조사 후 1~2회 정도 소환조사를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국내법에서 마약을 다른 사람에게 강제로 투약하는 행위에 대해서 가중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마약 강제 투약도 일반적인 마약 관련 행위와 마찬가지로 마약 관리법 위반으로만 처벌된다. 지난 2019년 국회에서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임시 마약류를 다른 사람 의사에 반해 투약하거나 흡연 또는 섭취하게 한 경우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마약류관리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졌지만 모두 폐기됐다. 법무부가 ‘신중 검토’ 의견을 제시한 이후 20대 국회 임기가 만료되면서다. 한편, 동남아에서 활동하는 투자 리딩방 범죄조직들은 대부분 마약 유통에도 가담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례로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에서 탈옥한 조직원들도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이른바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들은 보이스피싱, 대포폰 판매, 마약 유통 사업으로 수감 생활을 이어갔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등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숨겨 텔레그램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이들은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만명의 회원들을 마약방으로 초대해 새로운 수입원을 창출했다. 이들은 수억원의 범죄수익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지 제보자는 “리딩방, 보이스피싱 조직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권씨도 똑같은 수법으로 마약 유통에 가담하고 있다”며 “그렇기에 김나정에게 마약을 쉽게 투약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활동명 ‘재림’ 그러면서 “지난해 탈옥한 송씨도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에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로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로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