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시한폭탄 S게이트 막전막후

‘잔인한 10월’ 숨만 크게 쉬어도 터진다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폭풍전야다. 정재계에 전보다 심상찮은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묘한 기류가 감지되는 쪽은 한 중견 건설회사. 검풍이 이 회사를 덮쳤는데, 그 방향이 대기업과 정치권으로 틀어지면서 대형사건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검찰 안팎에선 ‘S 게이트’라 불린다. 곧 정국을 뒤집을 만한 ‘큰 건’이 터질 조짐이다.


 
박근혜정부 들어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등 대기업 총수들을 차례로 손본 검찰은 이후 한동안 ‘관피아(관료+마피아)’에 올인했다. 검찰 중심인 서울중앙지검, 그중에서도 핵심 조직인 특수부는 ‘철피아(철도+마피아)’ ‘교피아(교육+마피아)’ ‘통피아(통신+마피아)’등에 매달렸다.

폭풍전야 예고
정국 뇌관 부상?
 
결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사실상 일단락된 관피아 수사는 정치권을 겨냥했지만 반타작도 하지 못했다. 비리 의혹이 있는 현역의원 가운데 절반가량만 구속, ‘반쪽짜리’수사에 그쳤다는 평가가 쏟아졌다.
 
자존심이 상한 특수부는 지난 추석 전후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예리하게 갈린 칼날을 빼들었다. 그 첫 타깃이 바로 S건설이다. 처음 검찰 안팎에선 다소 의아한 시선이 적지 않았지만, 수사 가닥이 잡히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로 전환됐다. 검찰은 S건설을 먼저 들여다보고, 여기서 몸통을 추려내는 역추적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S건설의 비자금 조성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자금 흐름을 추적 중이다. 비자금 규모는 수백억원대로 의심하고 있다. 수사 대상엔 S건설 오너와 임원진이 올라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등에 따르면 S건설은 실체가 모호한 회사를 내세워 부동산개발 사업 명목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이 포착됐다. S건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심한 자금난에 시달렸다. 부도 위기까지 몰렸던 S건설은 결국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받기로 했다. 자사가 보유한 경기도 부지의 개발 명목으로 금융권에서 3000억원을 차입했다. 검찰은 이 과정을 모두 사기로 보고 있다.
 
S건설은 아파트 신축 사업을 내밀었는데, PF 대출을 받기 위해선 시행사가 필요했다. S건설은 자본금 5000만원을 들여 페이퍼컴퍼니, 즉 유령회사인 A사를 급조해 부지를 1500억원에 거래한 계약서를 만들었다. S건설은 A사로부터 PF 대출금 일부를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비자금을 만든 혐의를 받고 있다.
 
검 S건설 수백억 비자금 추적
정치권 수사 확대…로비 수사
 
2008년 6월 설립된 A사는 이듬해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지금은 실체가 없어졌다. 매년 매출액이 ‘0원’이었다. 검찰이 A사를 S건설이 PF 대출과 비자금 조성을 위해 만든 유령회사로 판단하는 이유다. A사가 시행사 역할을 맡아 S건설로부터 부지를 매입한 것처럼 위장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A사는 저축은행 등에서 PF 대출을 받아 계약금으로 150억원을 S건설에 지급했다. 이 돈은 손실로 처리돼 행방이 묘연하다. 당시 A사는 어음으로 발급했는데, S건설 오너가 사채업자에 넘겨 140억원을 현금화했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문제는 검찰 수사가 S건설의 대출 사기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검찰은 타깃을 정재계 쪽으로 틀어 사건을 키울 복안이다. 그 대상엔 대기업 총수와 거물급 정치권 인사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그래서 법조계에선 ‘게이트’사건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조심스런 전망이 나온다.
 
S건설이 A사를 내세워 금융권에서 PF 대출을 받을 때 모 그룹의 핵심 계열사가 신용 보증을 섰다. 대기업만 믿고 돈을 내줬다는 게 금융사들의 이구동성. 검찰은 두 기업 간 모종의 거래를 의심하고 있다. A사가 대출 자격이 없는 유령회사인 것을 모를 리 없어서다.

유령회사 내세워
대출 사기 혐의
 
보증서에 ‘도장’을 찍어준 배경에 양사의 오너 간 친분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S건설 회장과 대기업 회장은 동향 출신으로 평소 호형호제하는 사이로 알려졌다. 검찰은 S건설 회장이 대기업 회장을 끌어들여 사기 공모 후 수수료 조로 비자금 일부를 떼어준 것으로 보고 있다. 대기업은 신용 보증도 모자라 200억원대 자금까지 빌려줬다.
 
검찰 관계자는 “S건설과 A사가 맺은 토지매매 계약 자체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며 “여기에 대기업이 낀 이유가 수사 핵심이 될 수 있다. 현재 양측의 사기 공모 여부를 캐고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의 S건설 수사는 정치권으로도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검찰은 S건설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치권에 뿌렸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PF 대출을 받기 위한 로비용으로다. 사라진 140억원이 로비 자금으로 사용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 안팎에선 벌써부터 굵직한 인사들의 이름이 ‘살생부’에 오르내리고 있다. P씨, S씨, K씨 등 여야 거물급 의원들과 고위 관료들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특히 S건설의 주 활동무대인 경기 지역 정관계는 혹시나 불똥이 튈까 바짝 긴장하는 눈치다.
 
사라진 140억원 어디로?
여야 거물급 의원 거론
 
업계 한 인사는 “S건설은 정관계 인사, 법조인 등을 상대로 정기적으로 골프접대, 술접대 등을 제공한 것으로 안다”며 “사업 추진 차원의 전방위 로비에도 적잖은 자금이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엔 S건설이 검찰 내사를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역시 비자금 의혹이었다. 오너가 친인척을 자금 라인에 앉히고, 아파트 분양대금을 수령하면서 일부를 장부상 미수금 처리하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미수금 규모는 매년 100억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 의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고, 이번 특수부 수사와 맞물려 다시 회자되고 있다. 두 사건의 연관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사실 S건설은 과거에도 로비 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처음 검찰과 악연을 맺은 것은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대선자금 수사 때다.
 
S건설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잘나갔던 거물 정치인 J씨와 K씨 등에게 수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건넨 혐의로 수사를 받았다. S건설 회장은 이 돈이 공사대금으로 지출된 것처럼 회사 회계 서류를 작성할 것을 지시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4년 뒤인 2007년에도 검풍이 들이닥쳤다. 수원지검 특수부는 S건설의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을 수사했다. 골프장 건설 인허가 추진 과정에서 편의를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정관계 인사들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S건설 대표가 구속됐다. 대표는 법인자금 수십억원을 횡령한 사실도 드러났다. S건설은 협력사들을 동원해 유력 정치인 K씨에게 수천만원의 후원금을 냈다가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전에도 검은돈
오너는 감옥행
 

S건설 측은 비자금 수사에 대해 일체 함구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그는 “검찰 수사 내용을 전혀 알지 못한다”며 “법무팀에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임원 소환이나 압수수색 등이 없었기 때문에 뭐라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정확한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반론 등을 듣기 위해 S건설 법무팀에 공식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 
 
 
<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역대 ‘게이트’ 사건
 
권력형 비리를 일컫는 ‘게이트’사건엔 항상 문제 인물의 이름이 달렸다. DJ 정권 내내 나라를 뒤흔들었던 ‘정현준 게이트(2000년)’ ‘진승현 게이트(2000년)’ ‘이용호 게이트(2001년)’ ‘윤태식 게이트(2001년)’ ‘최규선 게이트(2002년)’ 등 이른바 5대 게이트가 대표적이다. 이들 사건엔 청와대와 정치권은 물론 국정원, 검찰 등이 실타래처럼 얽히고설켜 정권의 몰락을 재촉했다.
 
2005년 ‘김재록 게이트’가 터졌다. 금융계 마당발로 통한 김씨가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로부터 로비를 받아 정치권에 영향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같은해 ‘윤상림 게이트’가 터지기도 했다. 고졸 출신의 브로커인 윤씨가 검찰과 군은 물론 정치권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사기, 공갈, 알선수재 등의 범죄를 저지른 사건이었다.
 
2007년엔 ‘정윤재·김흥주 게이트’가 열렸다. ‘정윤재 게이트’는 전 청와대 비서관인 정씨가 국세청, 건설업자 등과 얽혀 벌인 세무비리 무마 사건. ‘김흥주 게이트’는 전 그레이스백화점 회장이던 김씨가 정치권 등 각계에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건이다. 2009년의 경우 ‘박연차 게이트’로 떠들썩했다. 박씨가 참여정부 시절 수많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수십억 원의 금품을 건네고 수백억원의 세금을 탈루한 사건이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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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