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잘 나가는 수입차의 그늘

막가는 외제차 “브레이크가 없다”

[일요시사=경제1팀] 한종해 기자 = 현대·기아차의 상반기 내수 점유율이 70% 아래로 떨어졌다. 반대로 국내 등록된 수입차는 100만대를 넘어섰다. 7대 가운데 1대 꼴이다. 하지만 양적인 성장만큼 풀어야 할 과제도 많다. 고가 수리비와 보험료, 가격거품, AS 미흡, 할부금융 피해 등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급성장한 수입차 시장의 그늘을 짚어봤다.
 

현대·기아차의 상반기 내수 점유율이 각각 42.7%, 26.8%로 도합 69.5%에 그치면서 7년 만에 70% 아래로 떨어졌다. 기아차는 2010년부터 3년 연속 유지하던 30%대 점유율이 지난해 무너졌고 현대차도 40%대 초반에 머물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상반기 내수 점유율은 기아차가 2007년 20.8%에서 이듬해 23.8%, 2009년 29.5%로 꾸준히 상승하면서 2008년 71.7%로 올라선 뒤 2009년 78.0%로 최고점을 찍었다. 하지만 2010년 기아차가 31.0%로 오르며 30% 선을 돌파했지만 현대차가 41.0%로 주저앉는 바람에 두 회사 점유율은 72.0%로 추락했다. 2011년 73.8%, 2012년 75.0%로 상승세를 타던 점유율은 지난해 71.1%, 올해 70% 밑으로 떨어졌다.

국산차 3∼6배
수리비 잔혹사

현대·기아차의 점유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은 수입차 입지 확대다. 상반기 기준 2007년 4.5%던 수입차 점유율은 12.4%로 3배 가깝게 늘었다. 2008과 2009년 사이 금융위기 여파로 5.7%에서 5.1%로 한차례 하락한 수입차 점유율은 매년 상승세를 탔다.

현대·기아차를 제외한 국내 완성차 업체 점유율도 모두 수입차에 밀리고 있다. 2007년 상반기 GM대우는 11.1%, 르노삼성자동차 9.3%, 쌍용자동차 4.9%로 수입차 4.5%를 앞섰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수입차 12.4%, 한국GM 9.3%, 쌍용차 4.1%, 르노삼성 3.7%로 수입차가 모두를 제쳤다.


지난 7월23일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발표한 '6월 자동차등록통계월보'에 따르면 국내에 등록된 수입차는 승용차와 승합차, 화물차, 특수차 등을 모두 합쳐 100만4665대를 기록했다. 수입차 등록대수는 지난해 말 90만4314대에서 6개월 만에 10만351대가 늘었다. 특히 수입차 성장세를 등에 업고 승용차가 9만8394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차의 대중화로 업체들의 이익은 늘어가고 있지만 부실한 AS와 턱없이 비싼 부품값, 카푸어를 양산하는 수입차 유예할부 시스템, 국부유출, 비위·탈법 향위 등의 문제는 아직도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수입차 100만 시대를 맞아 <일요시사>가 수입차 급성장의 그늘을 집중 조명해 봤다.

소비자 피해 급증, 사후서비스 개선 시급
여전히 부품값 비공개…가격 인하 미지수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수입차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의 5.4배에 달한다. 부품 값은 6.3배, 공임비는 5.3배, 도장료는 3.4배 비싼 것으로 파악됐다. 수입차 수리비가 높은 가장 큰 이유는 비싼 부품 값에 있다. 외국에서 직접 들여오는 순정부품의 가격은 관세와 운송비용 등이 더해져 현지보다 2배가량 높아진다.

높은 수리비는 고스란히 손보사와 소비자들에게 전가된다. 수입차가 늘면서 수입차 사고율이 올라가고 이와 함께 손보사의 수리비 지급이 증가하면서 손보사의 손해율이 증가하는 것.

손보사 업계 1위인 삼성화재의 지난해 12월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95.1%에 달했다. 흥국화재는 104%, 메리츠화재 99.2%, 더케이손보 98.7%, 롯데손보 97.0%, LIG손보 96.3%, 현대해상 93.3%, 한화손보 92.6% 등 업계 상위권 업체들마저 적정 손해율 77%를 크게 웃돌고 있다. 자동차손해율은 자동차보험료 중에서 교통사고 등으로 지급한 보험금의 비율을 말하는데 업계에서는 77%를 적정 수준으로 보고 있으며 80%가 넘으면 이상 신호로 받아들인다.

수입차 보험료는 비슷한 가격대의 국산차에 비해 2배도 채 되지 않는다. A손보사가 제공한 최초 보험료(34세 1인 운전자, 대인 무제한, 대물 2억원, 2013년 3월11일 기준)를 분석한 결과 수입차 보험료는 국산차 대비 1.3∼1.7배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무조건 풀옵션
선택 여지 없다

먼저 6000만원대 모델을 살펴보면 신차 가격이 6880만원인 '에쿠스 VS380 럭셔리' 모델의 최초 보험료는 99만5190원인 반면 신차 가격이 6260만원인 'BMW 520d'의 보험료는 156만2086원으로 1.6배밖에 높지 않다. 가격이 6800만원인 '벤츠 E300 3.5 엘레강스'와 6610만원인 'BMW 528i'도 각각 1.5배와 1.6배 차이에 그쳤다.

4000만원대 국산차인 '제네시스 BH330 모던스페셜'의 최초 보험료와 '폭스바겐cc 2.0TDI' 'BMW 320d'를 비교해본 결과 각각 1.7배와 1.5배밖에 높지 않았으며 3000만원대에서는 1.3∼1.5배에 불과해 국산차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부르는 게 값이라는 수입차 수리비 부담은 단순히 수입차 고객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입차로 인해 발생하는 보험료 상승을 부담해야 하는 국산차 고객들에게 전가되고 있다"며 "수입차와 국산차 간 보험료 현실화를 통해 국산차 고객들의 불만을 해소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보다 못한 정부가 이달 초 자동차 업체들에게 개별 부품 값을 공개하도록 했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가격을 공개하고 환율 변동에 따라 분기마다 가격 정보를 갱신하라는 국토부의 지시에 따라 수입차 업체들이 부품 가격을 공개했지만 부품 명을 영문으로만 표시하고 제대로 된 검색기능을 갖추지 않는 등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요타와 렉서스, 볼보를 제외한 수입차 업체 16곳은 부품명을 대부분 영문으로 표시해 일반 소비자들이 알아보기 어렵게 했고 벤틀리와 롤스로이스 등은 이마저도 공개하지 않았다.

무리한 할부금융
쉽게 샀다간 큰일

부품 값 공개만으로는 수리비를 인하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부품 원가가 아니라 단순히 소비자 가격만 공개한 것이고 부품 값을 낮춘다고 해도 수입차 업체가 공임비를 늘리면 실질적인 가격 인하 효과는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입차가 비싼 이유를 '브랜드 가치 차이'와 '수입관세'로 드는 경우가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국산차인 현대차와 수입차의 브랜드 가치 차이는 좁다. 글로벌 브랜드컨설팅업체 인터브랜드가 해마다 발표하는 '글로벌 톱 100 브랜드'에 따르면 현대차는 세계 자동차 업체 중 7번째로 브랜드 가치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벤츠는 2위, BMW는 3위를 차지했다. 현대차의 브랜드 가치는 2000년대 초반 이후 꾸준히 상승해 왔다. 3위와 7위의 격차가 수천만원의 가격 차이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한 감이 있다.

관세로도 설명이 어렵다. 지난해 국내에서 6260만원에 판매된 BMW 520d를 살펴봤다. 수입차의 수입원가가 공개되지 않아 정확한 원가는 알 수 없지만 유추는 가능하다. 업계에서는 수입차 원가를 판매가의 60∼70%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계산을 해보면 약 4000만원이라는 금액이 나온다. 유럽차량의 수입관세가 4%인 점을 감안하면 BMW 520d의 관세는 160만원, 원가에 관세를 더해도 4160만원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많은 가격 거품은 어디서 온 걸까? 바로 옵션이다. 국내에서 팔리는 수입차는 모두 '풀옵션'이다. 소비자들은 가솔린·디젤, 2륜·4륜 중 하나를 고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미국 시장은 다르다. 소위 '깡통차'라고 불리는 옵션 없는 차량부터 세세한 옵션 가격을 모두 공개,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깡통차'부터 판매를 시작한다.

BMW 528i를 놓고 보면 한국에서는 6740만원, 미국에서는 4만9245달러(5365만원)부터 구매할 수 있다. 우드 소재 스티어링휠은 800달러, 파킹 어시스턴트 기능 500달러,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2400달러, 후방 카메라 400달러 등 옵션별 가격도 공개돼 있다. 모든 기능을 더한 풀옵션을 선택할 경우 차량 가격은 7만8320달러(8532만원)에 이른다. 한국에서 BMW 528i는 6740만원으로 정해져 있고 미국에서는 5365만~8532만원 사이에서 선택해 구매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수리비 대신 내는 손보사·소비자
유예할부로 샀다 카푸어 신세 전락

수입차 업체에서는 고객이 원할 경우 세부 옵션을 넣고 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 세세하게 옵션을 주문하던 고객들은 차를 받기까지 6개월 이상 걸린다는 업체의 말에 대부분 포기하게 된다.
 

자동차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현금(일시불)보다는 할부·대출 등 파이낸싱을 이용해 수입차를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BMW·벤츠·폭스바겐 등 주요 수입차 업체가 할부금융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경제력이 시원치 않은 사람들이 할부금융의 유혹에 넘어가 ‘카푸어’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무리하게 비싼 차를 구입해 신용에 문제가 생기는 사람을 뜻하는 카푸어가 증가할수록 할부금융사의 배는 불러간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할부기간 원금과 이자를 매월 상환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할부금융과 달리 수입차 할부금융사는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으로 큰 재미를 보고 있다. 원금유예할부 프로그램은 차량구입과 동시에 차값의 30%를 먼저 지불하고, 나머지 원금 중 10% 가량을 할부기간 이자와 함께 상환한 뒤 할부기간이 끝나면 60%에 이르는 원금을 한꺼번에 갚는 식이다. 원금유예할부는 차량을 구입하고 3년 후 차를 되팔아 또 다른 차량을 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에게 걸 맞는 프로그램이지 돈이 없는 사람이 고가의 차를 사기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얘기다.

완성차 업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유예할부로 덕을 보는 건 소비자가 아닌 수입차 업체다.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토요타 등 국내 5대 수입차 업체의 할부금융사 영업이익은 지난 2년간 34% 급증한 1조3000억원에 달한다.


'싫으면 말고' 식
비싸고 불편한 AS

수입차 할부금융사들은 만기 시 원금 상황이 어려울 경우 만기를 연장할 수 있어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입장이지만 만기 연장시 2%가량 증가한 이자를 내야해 빚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비싼 돈을 주고 차량을 구입했다면 그에 걸맞은 AS가 주어져야 맞지만 실상은 정반대다. 지난 7월28일 새정치연합 신학용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에서 입수한 2012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자동차 피해상담 건수를 분석한 결과, 수입차 10만 대당 소비자 피해 상담 건수는 476대로 국산차 145대의 3.3배에 달했다. 

불만은 대부분 차량품질과 AS에 집중됐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의 경우 소비자원이 실제로 접수한 73건 중 64건이 이와 관련돼 있었다. 국산차에 비해 수입차의 불만이 높은 것은 여전히 정비시설 등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수입차 업체는 국내 판매량 증가에 발맞춰 2010년 240여곳이던 전국 공식 서비스센터를 최근까지 100곳 가까이 늘리며 대응했지만 아직도 1곳당 책임져야 할 차량이 3000대에 달하는 등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다보니 수리 맡긴 차를 다시 받기까지는 한 달 이상 걸리는 게 다반사다. 그마저도 서비스센터가 수도권에 60%가 집중돼 소규모 도시 지역에도 수백개의 정비협력소를 구축해 정비서비스를 제공하는 국산차와 대비되고 있다.

차량 운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급히 찾게 되는 긴급출동서비스 차량을 1대도 보유하지 않은 수입 브랜드도 상당수다. 국내 판매 상위 5개 수입차 브랜드 중 BMW(35대), 벤츠(22대), 아우디(17대)만이 자체 긴급출동 차량을 보유했다. 폭스바겐과 토요타 등은 자체 차량이나 출동 요원 없이 제휴업체를 통한 견인 서비스만을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다.

AS 수리로 인해 다른 차를 제공받는 대차 서비스를 이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차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한 데다 장기간 빌려 타기도 어렵다. 설령 예약을 했다고 하더라도 연말이면 이전에 대차된 물량 때문에 빌리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국서 팔면 끝
사회적 책임 인색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해 업계 1위에 해당하는 2조1500억원대의 매출에 영업이익은 400억원을 넘겼지만 사회공헌 기부금은 2억1000만원에 불과하다. 매출액의 0.01%도 안되는 수준.

벤츠코리아는 매출액 1조3600억원에 영업이익 424억원을 올렸지만 기부금은 4억5000여만원에 그쳤다. 매출액의 0.03% 수준이다. 크라이슬러코리아와 한불모터스 등은 1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으나 기부금은 전혀 내지 않았다.

일자리 창출도 소극적이다. 지난해 445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린 르노삼성의 직원 수가 4400여명인 데 비해 영업이익 1090억원을 올린 BMW, 벤츠, 아우디 폭스바겐 4개 브랜드의 본사 직원은 도합 40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 업체가 한국지사에서 뽑는 한 해 신규 채용은 3~10여명 안팎에 그친다. 

 

<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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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