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허주렬 기자 = 호남을 대표하는 여야 정치인 간에 파워게임이 벌어질 조짐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의원(전남 목포)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전남 순천·곡성)이 지역구 내 ‘의과대학 유치’를 놓고 벌이는 한판승부가 그것이다. 박 의원이 목포대 의대 신설을 위해 오랫동안 공을 들이고 있던 차에 7·30재보선에서 당선된 이 의원이 순천대 의대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의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호남 서부권의 맹주 박 의원이 오랫동안 들인 공과 동부권의 맹주로 급부상한 정권실세 이 의원의 파워 중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할지 주목된다.
전라남도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가운데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지역이다. 때문에 전남도 내 의대 유치는 도민들의 오래된 숙원 사업 중 첫손에 꼽힌다. 그러나 1997년 이후 17년간 의대 신설의 문은 굳게 닫혀 있다. 야당 중진의원인 새정치연합 박지원 의원이 목포대에 의대를 유치하기 위해 오랫동안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지만 아직까지 결실을 맺지 못했다. 여기에 정권실세인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가세하며 전남도 의대 유치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의대 유치 새 국면
목포대는 1990년 3월 정부에 의대설립 건의를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24년간 의대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2008년에는 도내에 목포의대추진위원회를 구성했으며, 지난해 1월에는 추진위 서울사무소까지 두고 정부 등 각계를 대상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남도도 목포의대 추진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도는 목포 옥암지구에 의대 부지 4만여평을 마련했고, 2012년에는 100만명 서명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목포를 지역구로 둔 박지원 의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목포의대 유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7·30재보선에서 보수정당 후보로는 소선거구제 도입 이후 26년 만에 처음으로 호남에서 당선된 이정현 의원이 ‘순천대 의대 유치’를 전면에 내세우고 당선돼 전남도 의대 유치 경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이 의원은 유세 기간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당장 추진하고 싶은 것으로 순천대에 의대를 추진하고 싶다”며 “당선되면 순천시민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순천대 의대 유치라는 것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리고 구체적으로 물 밑으로 다른 지역에서 눈치를 못 채게 적극적으로 실천해 옮기겠다”고 강조했다.
순천대는 2012년 12월 의대설립추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목포대에 비해 뒤늦게 경쟁에 뛰어들어 뒤처진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복심’이라 불리는 정권실세 이 의원의 가세로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당장 새누리당은 이 의원의 공약 이행에 전폭적인 지원을 예고하고 있다. 이 의원을 예산을 주무르는 국회 예결위로 배치한 데 이어, 최고위원에 지명한 것은 의대 유치 등 공약 이행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이 의원도 지난 7일 당 지도부에 합류한 이후 첫 일성으로 “제가 했던 약속을 온몸을 던져 지켜내겠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 의원은 이날 최고위원회의 참석 이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순천의대가 유치됐을 경우 의료서비스를 받을 주민이 이쪽은 3개 시·군, 남해·하동까지 하면 4~5개 시·군이 되고 산업시설들이 박지원 의원 지역과 비교가 되지 않게 많다”며 “광주와의 거리도 이쪽이 (목포보다) 멀다. 이런 논리로 하는 것이지 선수(당선횟수)와 힘으로 (의대 유치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여야 호남대표 정치인, 지역의대 유치 놓고 대격돌
박지원 ‘목포 유치’ vs 이정현 ‘순천 유치’ 승자는?
박 의원도 반격에 나섰다. 그는 지난 9~10일 이틀간 최일 목포대총장, 윤진보 목포부시장, 목포출신 도의원과 시의원들과 가진 조찬간담회에서 “최근 목포시민의 염려를 잘 알고 있다. 목포의대 유치 문제를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전남의대 부속병원이 전남 화순으로 갔다”며 “순천은 화순과 육로로 가까워, 유치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목포의대 유치는 이미 상당히 진척됐다”고도 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처럼 의대 유치가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현재의 41개 의대체제는 김영삼정부 시절 만들어진 이후 지금까지 17년간 유지되고 있다. 1980년대 31개이던 의대가 김영삼정부에서 10개나 무더기로 신설되며 준비 부족에 따른 부실교육과 부속병원 미비 등의 부작용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례로 서남의대는 부속병원인 남광병원 부실로 수련병원 자격을 박탈당했고, 의대를 폐지하려는 교육부와 소송전까지 벌였다. 지난 6월 서남학원이 재판에서 일부 승소하면서 폐지 가능성은 낮아졌지만, 교육부 측은 서남의대 폐지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서남의대를 폐지한 후 여야의 두 거물급 정치인이 추진 중인 목포대나 순천대에 의대를 새롭게 설치하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전국 의대 실태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많다.
대한의사협회는 더 이상의 의대 신설은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이미 부실의대가 난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적인 이유로 의대를 추가로 신설하는 것은 또 다른 부실 의대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현재 전국 41개 의대에서 해마다 3800명가량의 졸업생이 배출되고 있고, 이 중 3500명 안팎이 의사면허를 취득한다”며 “이미 한 달에 100여곳 이상의 동네 의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고 있는 현실에서 추가 의대 신설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밀리면 치명상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의뢰한 ‘의료 필요인력 현황’ 조사가 이번 달 중으로 나올 예정이다. 증원으로 결정이 날지는 미지수지만, 만약 증원 결정이 내려진다면 박 의원과 이 의원의 의대 유치를 위한 불꽃 튀는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어느 한쪽으로 의대 유치 결정이 내려진다면 다른 쪽은 정치생명에도 치명상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박힌 돌’ 박지원 의원과 ‘굴러온 돌’ 이정현 의원의 전남도 의대 유치 시도는 과연 실현될 수 있을까? 만약 된다면 목포와 순천 중 어디가 될까? ‘박지원 대 이정현’의 의대 유치 경쟁에 세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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