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가족 가슴에 못질한 사람들 ③진도발 살생부 리스트

총리가 총대? "됐고! 대통령이 책임져야지"

[일요시사=사회팀] 강현석 기자 = 세월호 참사로 온 국민이 비통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신 여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박근혜정부가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것에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지방선거를 앞둔 여권에서는 "어느 정도 사태가 수습되면 내각이 총사퇴할 것"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올 초부터 무성했던 개각설이 구체화된 모습이다. 그러나 "책임질 사람은 따로 있다"는 반론도 팽팽히 맞서고 있어 박근혜 대통령의 선택에 관심이 쏠린다. 그야말로 죽느냐 사느냐다.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다." 경기 안산에 살고 있는 한 공무원은 지난 24일 새벽 개인 신분으로 합동분향소에 조의를 표한 후 착잡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와 함께 조문에 나선 다른 공무원들도 100여개의 영정사진을 멍한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몇몇은 눈시울을 붉히다 끝내 터진 울음을 참지 못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우리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공직사회 곳곳
정부 불신팽배

7급 이하 하위직 공무원들은 서울 곳곳에서 안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들은 '윗분'들에 대한 성토를 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실로 일관한 재난구조시스템, 눈치 보기 급급한 중앙 정부부처 책임자들, 대안 없이 아랫사람에게 호통만 치는 청와대. 그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고 의견을 모았다.

스스로 보수성향이라고 밝힌 한 공무원은 "그래도 지난 정권 당시 발생한 광우병 사태 때는 정부가 한 일에 비해 욕을 과하게 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부가 잘한 게 하나도 없다"면서 "아무리 욕을 해도 응어리진 마음은 풀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무에 속박된 공무원들은 각자의 가슴에 침통함을 안고 이날 자리를 해산했다. 그 어느 때보다 마지막 인사가 무거웠다. 그들은 "우리(공무원)가 욕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도 "퇴근하면 우리 역시 한 시민일 뿐인데 왜 할 말이 없겠냐. 그러니까 (우리가 못하니까) 너네(기자)들이 더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안타까워했다. 무능한 정부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깊어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사정기관 관계자도 애써 슬픔을 감췄다. 그는 "사실 다수 언론의 보도 행태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 말만은 꼭 해야겠다"면서 "(우리가) 부정부패를 잡으면 뭐하나. 죽은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닌데. 유가족들이 이걸 원할까. 아니잖아. 그게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할 거면 누님(박근혜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서 책임을 지든 옷을 벗든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전체가 죄의식을 갖고 있는 상황에 '모두가 죄인이다'는 식의 접근은 곤란하다"며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누가 책임을 져야한다는 말일까.

실패한 내각
총사퇴 모락

박근혜정부 1기는 사실상 실패한 내각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그간 윤창중 성추문 사태, 채동욱 찍어내기 의혹 등 공직자들의 윤리·준법문제가 끊이지 않았던 이번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가위기대응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내며 무능력한 정부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스펙을 위주로 한 박사·고시 출신들이 장악한 관료집단의 한계가 이번 사고를 통해 명확해졌다"며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흔히 '해피아'라고 하는 집단도 따지고 보면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들이 서로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성장한 것"이라며 "조직 내외적으로 봤을 때 대대적인 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여권 관계자도 비슷한 의견이었다. 그는 "내각을 구성하고 있는 장관급 모두가 BH(청와대)에 사표를 던지고, 그중 일부를 수리하는 형태가 돼야 한다"면서 "사고 수습이 먼저냐 책임이 먼저냐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중이지만 아무래도 지방선거 전에 개각이 이뤄져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이고 있다"고 전했다.


국회에 출입하고 있는 한 정치부 기자 역시 당직자들의 말을 인용해 "이대로 가면 지방선거에서 필패할 거라는 위기감이 당 내에서 커지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그는 "사건이 어느 정도 커졌을 때 미리 선을 긋는 것이 여권에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여기서 복수 관계자가 공통으로 동의한 마지노선은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퇴였다.

정홍원 총리 이하 장관급 줄사퇴 예고
총체적 부실 "물러날 사람 따로 있다"

실제 정 총리는 지난 27일 오전 10시께 서울 세종로정부중앙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예방에서부터 사고 이후의 초동대응과 수습 과정에서 많은 문제들을 제 때 처리하지 못한 점에 대해 정부를 대표해 국민여러분께 사과드린다"며 사퇴의 뜻을 밝혔다. 그는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비통함에 몸부림치는 유가족들의 아픔과 국민여러분의 슬픔과 분노를 보며 국무총리로서 응당 모든 책임을 지기로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총리는 그간 박근혜정부의 공식 2인자로 자리했다. 그러나 그가 이번 정부의 실질적 2인자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국무총리라는 막중한 지위에도 정 총리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청와대 지근에서는 "VIP(박근혜 대통령)가 워낙 권력을 틀어쥐고 흔드는 스타일이다 보니 정 총리 개인의 판단으로 행정 처리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변명도 들린다.

다시 말하면 결재는 뒤에서 박 대통령이 하고 욕은 앞에서 정 총리가 먹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박 대통령의 독단을 제어하거나 국정운영을 조정해야 할 위치에 있는 정 총리가 제구실을 했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사고 수습과정에서 정 총리는 범정부사고대책본부(이하 범대본)를 꾸려 지난 18일부터 현장을 지휘했지만 사망자와 실종자 집계에서 착오를 하는 등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정 총리는 해양수산부와 해양경찰청 등 유관기관을 총괄 지휘하는데 미숙함을 드러냈으며, 부처 간 협조를 이끌어내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정 총리는 범대본 본부장이 됐다가 며칠 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본부장 자리를 내주는 등 혼란을 자초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지난 24일 실종자 가족들은 진도군청에 임시 마련된 범대본 상황실을 방문해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고 수습을 총괄하라"며 항의하는 등 격양된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가족들은 이 장관을 만나 "정 총리에게 얘기해도 되는 게 없다”며 “총리가 시켰는데도 (현장 공무원들이) 안 하더라"고 화를 냈다. 또 가족들은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죽었는데 무슨 해양수산부 장관이 구조작업을 지휘하고 있냐"며 불신을 드러냈다. 박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기 전까지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숨은 박근혜
뒤에선 살생부

누구보다 여론의 동향에 민감한 청와대는 이 같은 분위기를 파악했다고 전해진다. 때문에 개각은 기정사실이며 그 수준과 방법, 시기를 놓고 청와대를 비롯한 여권 수뇌부가 고심했던 것으로 관계자들은 입을 모았다.

김한길‧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는 정 총리의 사의 표명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청와대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섰다. 그들은 "가뜩이나 총체적인 난맥상에서 총리가 바뀌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겠냐"며 "지금 이 시점에서 지극히 무책임한 자세이며 비겁한 회피"라고 비난했다. 또 "이것이 국민에 대한 책임인가"라며 "총리 이하 내각은 우선 상황 수습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앞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정 총리 개인의 사퇴가 아닌 내각 총사퇴 카드로 여권을 압박했다. 최근 있었던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은 "모든 국무위원이 함께 물러남으로써 상황을 수습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한다"고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말했다. 발언 전 설 의원은 "지금은 사고 수습 중이라 이런 말씀을 드리기 어렵지만"이라고 단서를 달았지만 파장은 컸다. 


그러나 현 부총리는 "지금은 실종자 수색과 구조가 최우선인 만큼 여기에 최대한 노력하겠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인들은 총리 사퇴 얘기를 할 수 있어도 아직 행정부에서는 그런 말이 나오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지금은 사고 수습이 우선이고 사퇴 얘기가 나오더라도 사고 수습 이후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정 총리가 사퇴하자 관가는 술렁이고 있다.

정 총리와 나란히 경질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 장관이나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임명된 지 몇 달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 청와대가 앞장서 옷을 벗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즉 이들 스스로가 책임을 지고 물러나지 않는 한 내각 총사퇴는 공염불에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강 장관과 관련한 첩보를 모으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찍어내기'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피고 있다.

서남수 교육부장관도 여당발 살생부에 이름을 올릴 것으로 관측되고 있지만 정권의 신임이 비교적 두터운 상황이라 경질될지는 미지수다. 다른 장관급 인사와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하는 까닭이다.

박근혜정부 최대 위기…MB 광우병 때 흡사
정치권 지방선거 앞두고 내각 총사퇴 요구

물론 상식적으로 봤을 때 경질의 빌미는 충분하다. 서 장관은 실종자 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는 진도체육관에서 의전용 의자에 앉아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포착돼 공분을 샀다. 그러나 청와대는 "라면에 계란을 넣어 먹은 것도 아니고 쭈그려 앉아 먹은 것"이라며 서 장관을 두둔했다고 한다. 여러 정황상 청와대는 서 장관의 해명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역시 "재난 컨트롤타워는 청와대가 아니다"라는 식의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정부 매뉴얼상 국가적인 사고나 무력에 의한 테러가 발생하면 국가안보실이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돼 있다. 하지만 김 실장은 이번 세월호 참사가 '재난' 상황이므로 청와대의 책임이 없다는 취지의 해명을 했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는 해양수산부의 해양사고 매뉴얼을 공개하며 김 실장의 발언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꾸려지는 중앙사고본부를 비롯해 수색구조본부, 국방부, 환경부 등 유관기관보다 상위 보고체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관계기관으로부터 모든 정보를 보고 받고, 다시 지시를 내리는 '컨트롤타워'인 것이다. 김 실장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책임회피 급급
윤리의식 마비

그렇지만 이번 개각 리스트에 김 실장이 포함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 실장을 징계하는 건 청와대의 사고 책임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는 까닭이다. 구조 과정에서 미흡함을 보인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역시 같은 이유로 살생부에서 배제될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청와대발 살생부는 각 부처 장관들은 있지만 청와대 핵심참모는 없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를 두고 청와대 지근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란 비난 여론이 만만치 않다. 한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청와대 내 정보 보고체계가 매끄럽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이번 사태 전개를 보니 그런 의심이 더 든다"며 "사고가 터진 직후 청와대가 잘못된 보고를 받고 낙관론을 펼친 것도 그렇고, 대통령의 상황 파악이 현장 상황과 시간차를 보였던 것도 그렇고, 어쩌면 '그분'을 너무 의식해서 중간 전달이 왜곡된 건 아닌지 잘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즉 잘못된 상황 판단으로 초기 대응이 늦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번 참사를 계기로 청와대 내 보고체계를 뒤틀고 있는 '제3의 인물'이 드러날지 관심이 모아진다.

 

<angeli@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청와대 이상기류 '박지만 라인' 몰락?

조응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 최근 사표를 제출해 수리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지난 22일 청와대가 밝혔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청와대 춘추관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조 비서관은 본인 인생의 다른 길을 걷기 원해 사표를 제출했다"며 이같이 알렸다. 조 비서관은 사표를 제출하기 1주일 전부터 출근하지 않고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조 비서관은 박근혜정부 출범 당시 민정수석실 소속 공직기강비서관에 임명됐으며, 지난 1년여간 고위공직자 인사검증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그러나 조 비서관이 급작스러운 사의를 표명한 것과 관련해 사임 배경으로 정권과 관련한 정보를 외부로 표출시킨 것에 대한 문책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되고 있다.

또 그는 최근 비위사실이 있는 청와대 행정관들의 원대복귀 논란과 관련해 감찰 내용을 외부로 유출했다는 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아울러 조 비서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조 비서관의 사임을 청와대 내 '박지만 라인'의 몰락으로 연결시켜 보는 시각도 있다.

한편 국군사이버사령부 정치 관련 댓글 관여 의혹을 받아온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연제욱 국방비서관은 지난 21일 군 장성 정기인사에서 교육사령부 부사령관으로 보직 변경됐다. 그는 청와대 파견 전인 지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국군사이버사령관으로 근무했으며, 군 사이버사 정치 댓글 사건의 몸통으로 의심돼왔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본인의 요청에 따라 인사를 한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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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