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금기어로 본 재벌가 비사 -귀뚜라미 ‘2인자 트라우마’

회장 vs 전 사장 ‘밥그릇 싸움’

[일요시사=경제1팀] 김성수 기자 = 재벌가 혼맥, 대박 브랜드 비밀,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기업 내부거래 등을 시사지 최초로 연속 기획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일요시사>가 새 연재를 이어가고 있다. 직원들이 입 밖에 내면 안 되는 '금기어'를 통해 기업 성장의 이면에 숨겨진 '비사'를 파헤쳐 보기로 했다. 일반인은 잘 모르는, 기업으로선 숨기고픈 비밀, 이번엔 귀뚜라미의 '2인자 트라우마'편이다.


보일러로 유명한 귀뚜라미 사내는 요즘 한 소송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직원들 입길에 오르내리는 소송은 중소기업과의 기술유출 공방. 이 소송이 화제인 이유는 오너와 전 사장 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져서다.

사사건건 딴죽

'골리앗' 귀뚜라미와 한판 붙은 '다윗'은 규원테크다. 그 악연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규원 규원테크 사장은 귀뚜라미 출신이다. 1989년 로켓트보일러(현 귀뚜라미보일러) 기술연구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품질관리팀장과 공장장 등을 거쳐 2003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2007년엔 그룹총괄사장으로 선임돼 귀뚜라미보일러 난방사업, 귀뚜라미홈시스 유통·인테리어사업, 귀뚜라미범양냉방 냉방사업을 총괄했다.

당시 김 사장은 강력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귀뚜라미그룹 제2의 창업을 이끌어갈 최고경영자로 평가받았다. 그만큼 최진민 명예회장의 신임도 두터웠다.


문제는 김 사장이 돌연 회사를 그만둔 2010년 이후다. 이때부터 김 사장과 귀뚜라미는 사사건건 부딪히면서 원수지간이 됐다.

먼저 퇴사를 두고 맞섰다. 김 사장은 "퇴직금도 지급되지 않은 일방적인 부당해고"라고 주장했다. 반면 회사 측은 "충분히 그럴 만했다"고 일축했다. "중국 법인에서 분식회계와 공금횡령 사건이 터졌는데, 여기에 김 사장이 연루돼 사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최 명예회장은 김 사장에게 회사를 맡기고 경영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가 이 사건 직전 복귀했다.

재기에 나선 김 사장은 그해 7월 자신의 이름을 딴 규원테크를 설립했다. 신재생보일러 전문회사인 규원테크는 가스보일러를 비롯해 펠릿보일러, 화목보일러, 하이브리드보일러 등을 제조·판매하고 있다. 특히 고효율의 펠릿보일러가 잘 팔렸다.

산림청 보급사업 등록업체 중 최고효율 인증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성능을 갖췄다는 평가다. 규원테크는 이 제품을 내세워 창업 2년도 안돼 매출 20억원을 올리는 등 자리를 잡았다. 김 사장은 "22년간 보일러업계에 몸담았던 노하우를 집약해 만들어냈다"고 자신했다.

잘나가는 김 사장을 보고 배가 아팠을까. 귀뚜라미는 이해할 수 없는 행보를 보였다.

2010년 7월 중국법인 천진귀뚜라미보일러유한공사를 통해 김 사장을 상대로 분식회계와 공금횡령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그러나 곧바로 소를 취하하고 김 사장과 손을 잡았다. 귀뚜라미는 계열사 편입 등 내용의 업무협약을 체결한 규원테크에 투자하기로 했지만 말뿐이었다.

중소기업과 기술유출 공방 "뒷말 무성"
이상한 트집잡기 지적…잇단 패소 망신


급기야 김 사장에게 경영을 맡긴 귀뚜라미그린에너지가 삐걱거리자 사단이 났다. 귀뚜라미는 2010년 10월 자본금 3억5000만원을 들여 귀뚜라미그린에너지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자리에 김 사장을 앉혔다.

이도 잠시. 5개월 뒤인 2011년 3월 귀뚜라미 이사회는 "부채가 늘어 더 이상 운영이 어렵다"며 법인 해산을 의결했다. 이어 김 사장이 경업금지·비밀유지 의무를 어기는 등 대표이사 업무에 소홀해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또 다시 김 사장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김 사장을 향한 귀뚜라미의 공격(?)은 더욱 거세졌다. 규원테크에 따르면 귀뚜라미는 전국 산하 대리점에 '규원테크 제품 판매 금지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판매할 경우 대리점 계약을 파기하겠다는 지침을 전달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규원테크와 거래하던 업체들에 관계 청산을 요구하는 시그널도 보냈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규원테크가 승승장구하자 귀뚜라미는 칼을 뽑아들었다. 2012년 3월 "영업비밀과 기술유출이 의심된다"며 김 사장을 경찰에 고소한 것. 규원테크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선 경찰은 김 사장을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고, 김 사장은 구속적부심사를 통해 가까스로 철창행을 면했다.

김 사장은 풀려났지만 기술유출을 둘러싼 공방은 계속됐다. 양측이 치열한 설전을 주고받는 사이 소송은 어느새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결과는 김 사장 쪽으로 기운 모양새다.

고등법원은 최근 손해배상과 위약금 청구소송에서 김 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대구고등법원 제1민사부는 "귀뚜라미그린에너지가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게 된 것은 귀뚜라미가 약정 의무를 먼저 위반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와 별도로 진행된 귀뚜라미그린에너지가 제기한 손배 사건도 마찬가지다. 대구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원고 측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귀뚜라미가 먼저 약속을 어겼다"고 판결했다. 귀뚜라미는 상고했지만,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귀뚜라미는 하이브리드보일러 등 규원테크의 기술 6건에 대해 특허 침해 명목으로 특허심판원에 제소하기도 했다. 이 결과 역시 다르지 않았다. 특허심판원은 지난달 "귀뚜라미가 특허라고 주장하는 내용은 현실성이 없다. 하이브리드 타입 보일러는 특허발명의 권리범위에 속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가신의 배신?

귀뚜라미와 규원테크 간 소송은 단순히 밥그릇 싸움이 아닐 것이란 시각에 무게가 실린다. 최 명예회장과 김 사장의 갈등이 질긴 악연의 씨앗이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다시 보일러 신화에 도전한 김 사장. 이를 막으려는 최 명예회장.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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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