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확인> '꼬불친' 허재호 은닉재산 추적

내연녀 털면 100억 나온다

[일요시사=경제1팀] 요즘 한창 말 많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일요시사>는 이미 2007년 그의 두 얼굴을 도려낸 적이 있다. 당시 대주그룹의 기형적인 성장사와 족벌경영 폐해, 허 전 회장이 쥐락펴락한 법조계 인맥과 풀리지 않는 뉴질랜드 미스터리 등을 집중 취재해 연속 시리즈로 고발했다. 특히 압류 대비용 은닉 재산을 추적하는가 하면 여성편력 등 위험한 사생활도 과감히 파헤쳤다. 지금까지 어디에도 나오지 않은 '허재호 파일'을 공개한다.

온 나라가 허재호 얘기로 떠들썩하다. 하루 5억원의 '황제노역'주인공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국민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그를 감싸거나 방치한 검찰과 법원, 국세청 등도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성난 여론에 떠밀려 허 전 회장은 결국 심판대에 다시 오르게 됐다.

다시 심판대에…
이번에도 버티나

이제 초점은 돈에 맞춰진다. 몸으로 때우는 대신 추징이 가능한지에 시선이 쏠리고 있다. 허 전 회장이 5일 동안 탕감 받은 25억원을 제외하고 남은 벌금은 224억원. 여기에 국세 136억원, 지방세 24억원, 금융권 빚 233억원(신한은행 151억원·신용보증기금 82억원)을 내지 않은 상태다.

검찰과 국세청은 끝까지 추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사정당국이 파악한 허 전 회장의 재산은 동양저축은행 땅 128평, 오포 땅 2만평, 미술품과 도자기 141점 등 뿐이다. 물론 이를 다 팔아도 턱 없이 모자란다. 그나마도 채권자들과 밀린 지방세를 받으려는 시·군에서 근저당을 설정해놓은 상태다.

사정이 이렇자 사정당국은 국내 대신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바로 뉴질랜드다. 검찰과 국세청은 허 전 회장이 뉴질랜드에서 활동을 하면서 재산을 현지로 빼돌렸을 가능성에 대해 추적 중이다. 당연히 해외인 만큼 추징 과정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허 전 회장이 국내에 숨겨둔 재산은 없을까. 검찰은 허 전 회장의 재산이 차명 관리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그의 주변인들을 털면 어느 정도 실마리가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근 허 전 회장이 자신 소유인 동양상호저축은행 빌딩(3층부터 7층까지) 임대료를 매달 1000만원을 받기로 임차인과 계약을 해 놓고 수년째 차명계좌를 통해 임대료를 받아온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부회장 명함 들고
대내외 행사 참석

같은 맥락에서 눈여겨 볼 필요가 있는 한 여성이 있다. 대주그룹 부회장을 지낸 A씨다. <일요시사>가 2007년 검찰 수사 당시 허 전 회장의 은닉 재산을 취재하다 알게 된 A씨는 허 전 회장의 이른바 '세컨드'로, 대주 2인자로 군림했었다. 허 전 회장과 내연 관계인 A씨는 평범하게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수백억원의 엄청난 재력가로 부상했다. 물론 그의 뒤엔 허 전 회장이 있었다.
 

허 전 회장은 4세 연하인 부인 이모씨와 사이에 두 딸을 두고 있다. 30∼40대인 두 딸은 한때 대주그룹 관계사에서 근무한 것만 알려졌을 뿐 구체적인 인적 사항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이씨도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그는 지난해 12월 숨졌다.

검찰 숨겨둔 '검은돈' 끝까지 추징 의지
몰래 빼돌려 차명 관리 여부에 수사 초점

허 전 회장과 이씨는 법적으로 이혼을 하지 않은 상태. 이씨 자리는 A씨가 꿰찼다. 그룹 내에선 그를 부회장이라고 불렀다. <일요시사> 취재 당시 그룹 측도 A씨의 실체를 인정했다.

회사 관계자는 "대충 회사 돌아가는 사정을 아는 사람이면 A씨를 사모님이란 호칭 대신 부회장이라 부르면서 깍듯이 대한다"며 "회장은 본부인 이씨를 두고 항상 A씨와 함께했다.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지만 모두 모른 체했다"고 털어놨다.

대주그룹 전직 고위임원은 "과거 보험설계사, 외판원 등을 하던 A씨는 대주그룹 본사 주변의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다 허 전 회장을 만나고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고 귀띔했다.


A씨는 조용히 내조만 하다가 갑자기 사모님 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허 전 회장의 호적상 본처를 대신해 그룹 대내외 행사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다. 그룹 후원으로 열리는 자선바자회에도 자주 참석했다.

문제는 A씨가 하루아침에 갑부가 된 배경이다. A씨의 인생역전은 허 전 회장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허 전 회장과 은밀한 ‘밀월관계’를 유지하던 A씨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은 2003년. 대주그룹이 인수한 H사 등기이사에 취임하면서다.

본부인 있는데 사모님 행세
수수께끼 여인 의문의 재산

2005년엔 H사 회장직을 맡은 A씨는 이 회사의 지분 20%를 보유했다. H사는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 자리 잡은 대주그룹 본사 사옥을 관리하면서 사세를 키웠다. 골프장 등 그룹의 레저개발사업 부문도 담당했다.
 

A씨의 재산은 또 있다. 광주시 서구에 있는 D골프연습장이다. 2004년부터 이 골프연습장 대표이사를 맡은 A씨는 골프연습장 부지와 시설의 실제 소유주로 확인됐다. 2001년 개장한 D골프연습장은 총 6000여평 부지에 비거리 150미터, 60타석 규모의 광주·전남 지역에서 내로라하는 대형 골프연습장이다. 지하 1층 지상 3층, 연건평 500여평의 클럽하우스도 갖추고 있다.

A씨는 서울시 강남구 논현동에서 명품가구 전문점 M사도 운영하고 있다. 2005년 오픈한 이 가구점은 유럽에서 수입한 '초호화 럭셔리'가구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지하 2층 지상 5층의 M사 건물 소유주는 따로 있다. 공교롭게도 M사의 임대계약자는 A씨가 회장직을 맡고 있는 H사의 대표이사다. 이 대표이사는 A씨 언니의 남편, 즉 형부다. 이 건물 1∼3층을 임대한 M사의 보증금은 수억원. 매달 월세로 수천만원씩 내고 있다. M사 관계자는 "회장님은 주로 지방에서 활동하기 때문에 가구점에 어쩌다 한번 들른다"고 했다.

그룹 측은 "M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잘라 말했지만, 여러 가구점이 모여 있는 M사 주변엔 대주그룹이 가구사업을 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 가구점 직원은 "M사가 대주그룹 안주인이 운영하는 것 아니냐"며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그렇게 알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서울에서 지낼 경우 한남동 H빌라에서 머물렀다. H빌라는 강북의 대표적 고급 주거단지인 '유엔빌리지'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대한민국 1%'가 모여 사는 부촌 중 부촌으로 유명하다. 70여평에 달하는 이 빌라는 대주그룹의 계열사로 알려진 대한건설(옛 두림건설)이 시공했다. 허 전 회장도 서울에 머물 땐 H빌라에서 지낸 것으로 알려졌다. H빌라 시세는 수십억원에 달한다.

한푼 없던 그녀가 옛 대주 관계사·골프연습장·빌딩
고급빌라·명품가구점·호화주택·외제승용차 소유

A씨는 현재 광주 남구 월산동에 100여평의 호화 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평소 외제 승용차로 드나든다는 게 인근 주민의 전언이다. A씨는 그룹 본사가 있었던 광주에 빌딩도 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A씨의 한 측근은 "A씨는 안 그래도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싫어하는 데다, 요즘 말이 너무 많아 언론에 자신이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또 "A씨의 재산은 허 전 회장과 무관하다"고 일축하면서도 "A씨가 개인사업체를 차릴 때 허 전 회장이 개인적으로 도와줬을 수는 있다"고 말끝을 흐렸다.
 


허 전 회장은 이씨와 두 딸 외에 A씨와 사이에서 숨겨둔 아들 B군도 두고 있다. B군은 현재 뉴질랜드에서 지내고 있다. B군은 대주그룹의 뉴질랜드 대주하우징이 분양한 오클랜드 빅토피아 주상복합아파트에 거주했다. 이는 허 전 회장이 벌이고 있는 뉴질랜드 현지 사업과 무관치 않다.

대주그룹 전직 임원은 "B군은 뉴질랜드로 유학간 지 꽤 오래됐다"며 "현지에 가족이 없기 때문에 파견돼 있는 대주그룹 해외사업팀 직원들이 음으로 양으로 뒷바라지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대주그룹이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은 것은 2003년부터다. 뉴질랜드 주택시장에 진출한 것은 국내 건설사로는 최초였다. 허 전 회장이 직접 선봉에 섰다. 허 전 회장은 B군의 유학 문제로 먼저 뉴질랜드를 방문했고, 이후 대주그룹이 현지 투자를 시작했다.

늦둥이 외아들이라 B군을 남다른 애정으로 '금이야 옥이야' 키운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를 제집 드나들 듯 왔다 갔다 했다. 1년 중 3∼6개월가량을 뉴질랜드에서 보냈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 주택건설 사업에 뛰어든 이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에 걸쳐 현지에서 생활해왔다.

"허재호 비자금
열쇠 쥐고 있다"

현지에서 사업을 챙기는 틈틈이 골프를 치거나 바다낚시를 즐겼다. 허 전 회장은 골프광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필드에 나갔다.


허 전 회장은 뉴질랜드 내에선 이미 유명 인사다. 현지인들의 평가도 매년 '교민 10대 뉴스'에 뽑힐 정도로 호의적이었다. '뉴질랜드에선 삼성보다 대주를 더 알아준다'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대주그룹도 뉴질랜드 한인 사회에 많은 공을 들였다.

허 전 회장과 A씨의 친인척도 '검은돈' 키맨으로 의심할 만하다. 허 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한 동생과 사촌동생은 대주그룹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A씨의 동생과 언니, 형부 등도 대주그룹 임원 명함을 들고 다녔다.

검찰은 국민들의 눈치를 보면서 '전두환 털기' 때처럼 강력한 수사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A씨가 관리하고 있는 허 전 회장의 차명 재산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다만 A씨가 '허재호 비자금' 행방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건 분명하다.

 

김성수 기자 <kimss@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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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