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점검> ‘대형병원 슈퍼갑질’ 약값 후려치기 실태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4.02.18 11:2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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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압약이 단돈 1원…환자는 100원에 산다

[일요시사=경제1팀] 제약업계가 ‘1원 낙찰’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우려했던 시장형 실거래가제가 개선 없이 재시행된 것이다. 대형병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너도나도 터무니없는 약가를 요구하고 나섰다. 부당거래를 막기 위한 제도가 사실상 ‘갑’의 횡포를 부추기고 있지만, 정부는 여전히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 대형병원들의 약가 후려치기 실태를 점검했다.




‘약 한 알 1원 낙찰’ 병원이 제약사로부터 수백원 또는 수천원짜리 의약품을 1원에 구매하는 것을 말한다. 병원에 약을 납품하기 위한 제약사들간의 과열경쟁에서부터 비롯돼 각종 부작용을 낳고 있다. 여기에 2월부터는 약을 보험 약가보다 싸게 사는 병원에 정부가 예산으로 차액의 70%를 보전해주는 이른바 ‘시장형 실거래가제도’가 재시행 됐다. 당사자인 제약업계는 합법적인 인센티브 제도까지 더해지자 패닉에 빠졌다. ‘슈퍼갑’이 된 대형병원들의 약가 인하 요구가 도를 넘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병원 갑질에
제약사 울상


제약 등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대병원, 경희대병원, 원광대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 순천향대병원, 건국대병원, 성가를로병원 등이 기존의 낙찰가 대비 낮은 가격의 입찰을 제약회사나 도매업체에 주문하고 나섰다.

특허가 만료된 의약품이든 아니든 외자사에게는 15∼20%의 약가 인하, 국내사에게는 30% 수준의 약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병원에서는 2원, 5원 입찰을 요구해 과거 ‘1원 낙찰’ 논란을 교묘히 피하려는 꼼수를 쓰고 있다. 지방의 한 병원의 경우 그동안 592원에 공급받던 고혈압 질환 30여개 품목의 약가를 5원에 공급해 줄 것을 제약회사에 요구했다. 여기에 18개 신규품목을 재등록하자고 일방적으로 통보, 약가를 새로 조정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도 마찬가지. 이 대학병원은 얼마 전 ‘시장형실거래가 관련 약품목록 변경안내’ 공문을 A제약사에 보냈다. 공문에는 이달 1일부로 당뇨병과 고지혈증 등 20여 의약품을 목록에서 삭제하고, 신규품목으로 재등록하자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A제약사는 해당 병원과 오는 9월까지 의약품 공급 계약을 맺고 있지만,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시장형 실거래가제 개선없이 재시행
계약파기·가격인하 요구 횡포 기승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일부 병원은 전년대비 최대 95%까지 약가 인하를 요구해오기도 했다”며 “계약기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종료한 뒤 인센티브를 받기 위해 2월부터 재계약을 하자고 요구하는 곳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자신들의 요구에 따르지 않을 경우 거래를 거절하겠다고 위협하는 사례가 부지기수”라며 “대형병원에 절대적 을인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의약품 처방목록에 들어가느냐 못들어가느냐에 사활이 걸렸기 때문에 바짝 엎드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누구 위한
제도인가


재시행된 ‘시장형 실거래제’가 대형 병원들의 ‘갑질’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저가구매 인센티브 제도’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당초 병원이 약을 싸게 사도록 유도해 건강보험 재정에서 보전해 줘야 하는 약값을 아끼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다. 실거래 가격을 파악하고 제약업체가 병원에 주던 ‘음성적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겠다는 의도도 깔려 있다.

2010년 10월 도입돼 2012년 2월까지 시행됐다가 갖가지 문제가 불거져 2년간 유예됐다. 병원 입장에선 조제약을 싸게 구입하면 정부 인센티브까지 받을 수 있으니 이득이다. 조제약 공개 경쟁 입찰에 참여한 제약사 중 가장 낮은 약가를 써낸 제약사의 의약품을 공급받으면 된다.





반대로 제약사는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입찰에 참여해야 대형병원에 약을 납품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2011년 서울대병원을 비롯한 충남대 병원, 산재의료원, 부산대병원, 서울시 보라매병원 등의 의약품 입찰에서 상당수 품목이 1원에 거래됐다.

2012년에는 5개 병원을 거느린 보훈복지공단 의약품 입찰에서, 35개 도매상들이 84개 의약품을 한 알 당 1원에 낙찰 받기도 했다. 실제 제도 시행 16개월 동안 1원 낙찰 품목은 무려 10000여개에 달했다. 병원이 인센티브를 타내기 위해 의약품을 싸게 구매하려는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펼쳐진 현상이다. 제약업계는 당시 약값 인하로 매출이 2조5000억원 이상 줄었다며 제도 재시행에 강력 반발해왔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12월 제도 재시행을 공언하면서 약값 인하 효과를 봤다는 입장이지만, 제약업계뿐 아니라 일부 소비자단체와 시민단체 등은 이 제도의 문제점이 많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합법적인 편법 리베이트를 가능하게 해 대형병원 배만 불려준 결과가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 2012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고서에 따르면, 이 제도로 인한 약값인하는 최소 399억원, 최대 2146억원 이지만 건보 재정에서 병원에 인센티브는 1966억원에 달했다. 이 중 91.7%는 대학병원·종합병원 등 대형병원에 돌아갔다. 서울아산병원 122억7000만원, 서울대병원 122억6000만원, 삼성서울병원 78억7000만원 등 대형병원 쏠림현상도 심각했다. 나머지는 중소병원과 약국이 받았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아낀 돈보다 인센티브가 더 많은 셈으로 건보 재정에 오히려 손해를 끼쳤다고 보인다”며 “리베이트를 잡기 위해 제값을 받고 팔 수 없게 만드는 불공정시장을 정부가 나서서 만드는 꼴”이라고 비난했다.


부당거래 양산?
“모두 피해자”


문제는 제약사뿐 아니라 병원에도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가 떠안을 수 있다. 수지를 못 맞추는 제약사들이 아예 입찰을 포기하면, 의사는 원하는 약을 환자에게 처방할 수 없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효능이 떨어지는 저질 약품 위주의 조제약 공급시장이 형성되는 우려를 낳는다. 또 약국 등 원외처방으로 의약품을 구매하는 대다수 환자가 병원 입원환자가 소비하는 약제비 대부분을 부담하는 역차별을 받을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는 제도를 두고 보건당국은 여전히 ‘시장형’ 정책이라고 치켜세우고만 있다. 환자에게도 득이 되지 않는 정책을 정부가 왜 고수하려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정부가 쌍벌제로 리베이트 길이 막힌 대형병원과 의료계에 시장형실거래제라는 합법적 대안을 찾아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대형병원 측은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대형병원 한 관계자는 “이 제도가 꼭 제약업계에 손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라며 “약물 사용량의 20%를 차지하는 입원환자에게만 저가로 판매하고, 약국을 통한 외래환자에게 처방되는 제품을 비싼 가격에 공급하면 결과적으로 손해가 아닐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인지도가 높은 병원에서 처방된다는 광고 효과도 있지 않겠냐”며 “합법적 정책의 틀 안에서 이뤄지는 제도인 만큼 문제될 게 없다”고 덧붙였다.


1원 안되면 2원에 납품
제약사-병원 갈등 증폭



정부의 입장도 비슷하다. 문제가 있다면 시행 후 나타나는 문제점에 대해 추후 보완하겠다며 뒷짐만 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국제약협회, 다국적의약산업협회, 한국의약품도매협회 등 3개 단체는 지난12일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등 모든 관계기관에 시장형실거래 제도 폐지촉구 진정서를 제출했다.

3개 단체는 진정서에서 “대부분의 국공립 병원을 비롯한 다수의 병원에서 불공정행위를 하고 있다”며 “의약품의 건전한 유통질서가 붕괴되고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 기반이 저해돼 우리나라 제약산업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약협회 관계자는 “거래상 우월한 지위를 남용하는 불공정 행위를 근절시켜 올바른 의약품 공급질서가 구현될 수 있도록 조치하기 위해 진정서를 제출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취지 반하는
꼼수가 문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성주 의원은 이들의 의견에 무게를 실었다. 김 의원은 “병원은 초저가 의약품 공급을 요구하고 제약회사·도매업체는 이를 거절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병원은 거래상 우월한 위치에 있어 약값 후려치기와 같은 비정상적 거래행태는 공정거래법 위반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고 “1원 낙찰과 같은 초저가 요구를 통해 제약회사의 가격결정 권한을 제약하는 병원의 행태는 경쟁을 통한 약가인하라는 시장형 실거래가 제도의 취지에도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현재 보건복지부, 병원-제약-도매업계가 협의체를 만들어 시장형실거래가제도 개선방안을 논의하고 있으나 이미 시장에서는 가격 후려치기 등 반시장적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만큼 복지부가 조속히 합리적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 또 지속가능하고, 경제 주체들이 수용가능한 약가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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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