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아트인> 조각가 이병구

손이 아닌 눈으로 나무에 숨을 불어 넣다

[일요시사=사회팀] "어릴 때부터 훌륭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 조각가 이병구 작가는 "말은 평론가의 영역이지 내 영역은 아니다"라며 머뭇거렸다. 대신 그는 미사여구보다 묵묵히 땀으로 자신의 재능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겠냐"고 말하는 그는 오늘도 나무에 '숨'을 불어넣으며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예술은 우리 삶의 한 단면을 각각의 특정한 방식으로 점유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시간적인 경험이면서 또는 공간적인 경험이다. 특히 미술은 하나의 작품이 한 공간을 점유하면서 생기는 감성을 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상상 속의 조형을 그려서 보여주는 행위는 물론이고, 조형을 손으로 만들어서 보여주는 행위도 미술이라 부른다.

땀 흘리는 예술

남들처럼 그림을 그려 미대에 입학한 이병구 작가는 자신의 선배들로부터 "손재주 좀 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일찍이 '땀 흘리며 만드는 일'에 매료된 그는 평면의 회화 작업이 주류인 미대에서 흔치 않게 조각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순백의 캔버스 대신 두꺼운 철판과 마주한 이 작가는 30년 가까이 조각가로 살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대학을 다닐 때도 조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어요. 미대 교육은 회화 위주죠. 그런데 전 평면보다 입체가 더 좋았어요. 무거운 재료를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하면서 먼지도 마시고 땀도 내고…. 이런 과정을 거쳐 제가 처음에 구상한 조형이 그대로 나왔을 때 기분이 정말 좋더라고요.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모형을 입체로 옮기면 느낌이 달랐고, 공구를 잘못 쓰면 중간에 만들던 걸 버려야 했죠. 그래도 그때는 혼자 쇳덩이를 끙끙거리며 들고 다니면 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이 고생한다면서 밥도 더 주시고 그랬어요."

이 작가는 "단순한 손재주로 형태를 만드는 건 기능공의 할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나도 목수로 10여년을 살았다"고 회고했다.


"저는 지금도 전업 작가가 꿈인데 이건 모든 미술인의 희망사항일 거예요.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이 안 되니까 전공자 열에 아홉은 다른 일을 합니다. 보험을 팔기도 하고. 장사를 하기도 하고. 저는 목수를 했습니다. 그래도 어찌 보면 전공을 살린 거죠. 낮에는 인테리어 회사에서 목수를 하고, 밤에는 틈틈이 작업을 했습니다. 오히려 목수를 했던 게 작업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현장에서 많은 일을 하다보니까 재료를 다루는 데 자신감이 붙고요. 그런데요. 조각은 손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눈으로 만드는 겁니다. 작가가 가진 예술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형태를 다듬어가는 일이죠."

"나는 목수다" 자연미 극대화 수제가구 선보여
합판 겹겹이 붙이는 방식 고수…세밀하고 우직

지난해 이 작가는 대학로 갤러리192에서 가구를 소재로 전시를 열며 이목을 끌었다. 전시주제는 나무의 숨, 이 작가는 고가의 원목 대신 인테리어 공사에서 흔히 사용하는 미송, 자작, 낙엽송, 코어 등 일반합판을 한 장 한 장 붙이는 방식으로 만든 수십여점의 수제가구를 선보였다.




일반합판을 일일이 바이스로 고정하고, 건조시키는 지난한 작업 과정에서 이 작가의 세밀함과 우직함이 엿보인다. 그의 작품을 본 미술평론가 변종필은 "여러 장의 합판이 만들어낸 스트라이프 무늬와 동심원은 생동감을 일으키며 나무에서 맛볼 수 있는 자연미가 극대화됐다"고 평가했다. 

"당시 '가구 70 예술 30'으로 비율을 맞춰 전시를 했는데요. 운 좋게 가구도 나가고 해서 기분이 묘했습니다. 자식 같기도 하고. '기왕 가져갔으니까 튼튼하게 오래 썼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도 하고요. 제가 원래는 주로 철을 이용해서 작업을 했어요. 별짓 다했죠. 두드리고, 쪼개고, 열로 쬐고, 그러다 문득 '나무로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원목이 아닌 우리가 평소 볼 수 있는 합판으로 말이죠. 아직까지 합판으로 작업하시는 분은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제가 자부할 수 있는 건 금속이든 나무든 돌이든 재료의 특성에 대한 고민을 누구보다 많이 했고, 이제는 표현력에 자신이 있다는 겁니다. 한 선배는 아직까지 몸으로 고생하냐고 하던데 전 이게 좋아요."

합판으로 작업

최근 조각은 구상과 제작을 분리하는 경향이 있다. 조각가가 아이디어만 내고 작품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일은 이제 그리 놀라운 풍경이 아니다. 이들은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한다. 어쩌면 이 작가는 구상과 제작을 동시에 하는 마지막 세대가 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작가는 덤덤히 현실을 인정했다.


"머리로 하는 예술이 유행이라는데요. 무조건 나쁘게 볼 수는 없어요. 유행은 돌고 돌잖아요. 그러나 조각은 흉내만 내면 안 돼요. 대상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해요. 인체를 그리려면 해부학을 먼저 배우는 것처럼요. 가구는 직접 만들면서 느끼는 보람이 있어요. 제가 가구를 만들면서 느끼는 행복을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이병구 작가는?

▲경희대 미술교육학과 조소전공
▲경희대 일반대학원 미술학과 조소전공
▲1997년 제1회 개인전(서울 인사갤러리) 등 개인전 2회
▲2000년 제20회 이후전(예술의전당 미술관) 등 단체전 다수
▲동아미술대전(입선, 1992) 인천미술대전(우수, 2000)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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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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