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염수정 추기경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20 13:5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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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어른…“내가 모범 보여야죠”

[일요시사=사회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71·세례명 안드레아) 대주교가 새 추기경이 됐다. 염 추기경은 고 김수환 추기경, 정진석 추기경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추기경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차지했다. 그는 ‘가난한 이와 함께하는 교회’를 강조하며 “아시아 및 북한 복음화에 사명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천주교계는 들썩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를 새로운 한국 추기경으로 임명한 것이다. 이로써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서임된 염 추기경은 정진석 추기경과 함께 복수 추기경 시대를 열게 됐다. 새 추기경들의 서임식은 다음 달 22일 로마 바티칸에서 열린다.

“흩어진 양들
하나로 모으겠다

파격적인 행보로 늘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2일 한국교회에 깜짝 소식을 전했다.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으로 염수정을 지목한 것. 다음 날인 13일, 염 추기경은 급작스러운 임명 발표에 적지 않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모두 웃고 있지만 나만 웃을 수가 없다”고 털어놔 추기경으로서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음을 밝혔다. 또 주변 신부들에게 “부족한 사람이니 많이 기도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염 추기경은 서울 명동 서울대교구청 주교관에서 열린 추기경 임명 발표식에서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며 “이 시대의 징표가 무엇이고, 어떻게 복음의 빛으로 밝혀야 할지를 끊임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주님께 지혜와 용기를 청한다”고 말했다. ‘시대의 징표’, 즉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찾는 게 화두인 셈이다.

염 추기경은 “주님께서는 저를 착한 목자로 세우면서 양들을 사랑하도록 명하셨다”며 “착한 목자가 해야 할 첫 직무는 뿔뿔이 흩어져 있는 양들을 모두 하나로 모으는 것”이라고 했다.

쪼개지고 충돌하며 갈등하는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향한 일침이기도 했다. 염 추기경은 우리 사회의 화두는 뭔가라는 물음에 “각자의 바벨탑을 쌓고 있다는 점이다. 그걸 통해선 하나가 될 수 없다. 하느님께선 그런 바벨탑을 부수고 흩어놓으셨다. 그렇게 무너지고 흩어지고 난 뒤에 인류는 하나가 됐다. 거기에 하느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길이 있다. 그걸 깊이 들여야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염 추기경은 새 추기경으로서의 품위와 겸손을 보이기도 했다. 그는 축하식에 앞서 도착한 전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에게 상석을 양보했다. 이들은 서로 상석을 양보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자리’라며 상석을 비워두는 미덕을 발휘해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정진석 추기경은 “한국교회의 괄목할 만한 발전에 대한 보편교회의 관심과 국제적 위상 향상을 세 번째 추기경 서임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교회와 국민 전체가 기대가 커 어깨는 무겁겠지만 하느님께서 선택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뒤를 밀어주실 것”이라고 축하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했다.

종교계도 염 추기경 탄생을 축하했다. 원불교 남궁성 교정원장은 축전문을 통해 “염수정 대주교께서 추기경에 임명되심을 원불교의 전교도와 더불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라고 밝혔다. 추기경 임명은 한국종교계의 경사라는 것.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유경석 한국회장은 “한국에서 세 번째 추기경이 탄생하신 것은 가톨릭을 넘어 우리 한국사회는 물론 아시아의 경사입니다”라고 축하했다.

대한불교조계종 자승 총무원장은 “염수정 서울대교구 대주교님이 한국인으로서 세 번째 추기경 자리에 오르시는 것을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한국 불자들과 함께 축하드립니다”라고 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염 추기경에게 축하전화를 했다. 박 대통령은 염 추기경과의 통화에서 “진심으로 축하를 드리고, 가톨릭 교회뿐만 아니라 국민들의 바람이 이뤄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고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전했다.

여야 정치권도 염 추기경 서임 소식에 축하의 뜻을 전했다. 새누리당 유일호 대변인은 이날 서면브리핑을 통해 “우리나라는 5년 만에 다시 2인 추기경 시대를 열게 됐다”며 “한국의 세 번째 추기경 탄생을 국민과 함께 진심으로 축복한다”고 밝혔다. 민주당 배재정 대변인도 서면브리핑을 통해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의 추기경 서임을 국민들과 함께 축하드린다”며 “염 추기경의 서임은 한국 교회의 기쁨일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큰 기쁨이고 축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축하행렬이 이어졌다.

김수환·정진석 이어 한국 세 번째 추기경
교리 ‘엄격’정치 ‘신중’중도 보수 성향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즉위 이후 처음으로 추기경을 서임하는 것으로 바티칸 교황청이 서임한 19명의 새 추기경은 한국, 필리핀,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영국, 니카라과, 캐나다, 코트디부아르,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아이티, 부르키나파소, 세인트루시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선출했다.

이번에 새로 선출된 19명의 추기경 가운데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16명은 80세 미만으로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 참석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스페인, 이탈리아, 세인트루시아 출신 추기경 3명은 80세 이상이므로 이 선거권을 가지지 못한다. 이번 새 추기경 서임으로 콘클라베에 참석해 교황 선거권을 가진 80세 미만 추기경은 염수정 추기경을 포함해 123명으로 알려진다.

교황 보좌하는
최고의 성직자

염 추기경의 첫 공식 대외 일정은 프란치스코 교황을 배출한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 수장 아돌포 니콜라스 총장을 면담하는 것이었다. 염 추기경과 니콜라스 총장은 서울대교구와 한국 가톨릭교회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날 만남에서는 교황 방한과 남북 화해에 대한 기대가 화제가 됐다.

니콜라스 신부는 “만약 교황께서 한국을 방문하면 한국 교회뿐 아니라 아시아 전체를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방한이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교회 신자들, 사제들과 함께 간절히 교황님 방한을 바라고 있다”며 “총장님께서 많이 기도해 달라”고 전했다.

그간 염 추기경은 보수 성향으로 원칙주의자라 불렸다. 염 추기경은 지난해 11월 명동 대성당 미사에서 정의 구현전국사제단 사제들의 시국 발언과 관련해 “사제들이 정치·사회적으로 직접 개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고 밝혀 진보성향 사제단의 정치 참여를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또 최근 염 추기경은 <가톨릭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모든 사람들이 화해하고 일치하고 공존하는 사회가 되도록, 서로 사랑하며 살도록 미력이나마 도움이 되겠다”고 밝혀 그간 보수 성향으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은 염 추기경이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지켜봐야 할 일이다.

염 추기경은 경기도 안성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아버지 염한진(갈리스도)과 어머니 백금월(수산나)의 5남1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고조부 염석태(베드로)는 우리나라에 천주교회가 창립될 무렵인 1850년 순교했다. 특히 조부모의 신앙심이 두터워 백금월 여사가 시집을 오자 염 추기경의 할머니는 “지금까지 우리 집 안에 성직자가 없었지만 너희 대에서 성직자가 나와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시어머니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둔 염 추기경의 어머니는 셋째를 뱃속에 가졌을 때부터 “이 아이는 성모님께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염 주교가 태어난 뒤에도 스스로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녀를 봉헌하겠다는 약속을 매일 기도로 바쳤다.

동성중학교에 다니던 염 추기경은 고등학교 시험을 준비하다가 우연히 경향잡지를 보고 소신학교 입학 안내문을 보고 신학교에 갈 뜻을 넌지시 비치자 온 가족이 반겼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는 이때를 회상하며 “아들 앞에서는 한 번도 내색하지 않았지만 성직자로 바치겠다는 기도에 응답을 받았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가톨릭대 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70년 사제품을 받고 서울 불광동성당과 당산동성당 보좌신부를 거쳐 73년부터 77년까지 성신고등학교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이후 이태원과 장위동, 영등포 본당 주임 신부 등을 거쳐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과 신학과 조교수를 맡아 가톨릭 교육에 힘을 쏟았다. 92년부터 98년까지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을 맡아 서울대교구의 운영에 큰 기여를 했으며, 서울대교구 제15지구장 겸 목동 성당 주임 신부를 거쳐 2001년 12월 서울대교구 보좌주교에 임명돼 2002년 1월 주교품을 받았다.


5년 만에 열린
복수 추기경 시대

또한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로 임명돼 교구장을 보필했으며, 교구 생명위원장과 매스컴위원장, 중서울지역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회의 상임위원,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감사 등을 맡기도 했다. 고 김수환 추기경의 유지를 잇는 옹기장학회와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 이사장도 맡았다.

2012년 5월에는 서울대교구장 계승이 결정돼 같은해 6월 착좌식을 가졌다. 이때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정진석 추기경의 서울대교구장 사임 요청을 수락하고 서울대교구 총대리로 당시 주교였던 염 대주교를 후임으로 임명했다.

염 추기경의 세례명은 ‘안드레아’로 두 동생인 염수완·염수의 신부도 현재 서울대교구 내 본당에서 주임사제로 사목하고 있다.

사제 정치참여 비판한 ‘원칙론자’
보수 성향 보여 “갈등 치유할 것”

‘추기경’이라는 용어는 그레고리오 대교황(590~604년) 때에 교회법 용어로 채택됐다. 추기경의 추기는 중추가 되는 기관을 뜻하며, 경은 높은 벼슬에 대한 경칭이다. 추기경의 어원은 라틴어의 ‘카르디날리스’다. 카르디날리스는 문에 다는 경첩·부채의 구심점이 되는 사북을 의미한다.


추기경은 서임되는 즉시 추기경단 특별법에 따라 교황 선거권을 포함한 모든 권리를 갖게 된다. 통상 교황이 성 베드로 광장에서 공개 추기경회의를 열어 서임장을 낭독해 새 추기경을 정식으로 서임하면 새 추기경은 신앙 고백과 교회에 대한 충성 서약 등을 하게 된다. 교황은 새 추기경에게 붉은 모자를 씌워 준다. 이것은 추기경의 고귀한 품위의 표상이다.

다음날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새 추기경과 함께 미사를 공동 집전하며 이때 추기경 반지를 수여한다. 복장은 모두 붉은색이다. 추기경은 합의체적으로 또는 개별적으로 교황을 보필할 의무를 갖는다. 추기경단의 모든 회합은 반드시 교황이 소집하고 주재한다.

추기경의 가장 큰 권한은 교황 선출이다. 교황의 선종이나 사임으로 사도좌 공석 상태가 되면 15∼20일 사이에 콘클리베를 개시한다. 교황 선거는 오전, 오후 두 번의 투표로 콘트라베는 3분의 2의 다수결이 나올 때까지 계속되는데 선거는 보통 비밀투표로 이뤄진다. 만 80세 미만의 추기경에게만 선출권이 부여된다. 이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일절 할 수 없게된다. 선거에 관련된 모든 기록은 교황청 고문서실에 보관된다.

일단 추기경으로 임명되면 추기경으로서 신분상의 지위는 종신직이다. 하지만 80세가 되면 법률상 자동적으로 교황 선거권을 비롯한 모든 직무가 끝난다.

추기경의 숫자는 13∼15세기에는 30명 이내로 일정하지 않았으나 16세기 들어 70명으로 늘어났다. 이후 교황 요한 23세가 1962년 추기경 수를 80명으로 늘렸다. 우리나라는 69년 당시 김수환 서울대교구장이 추기경에 서임되면서 처음으로 추기경을 배출했다. 이후 2006년 2월 정진석 당시 서울대주교가 두 번째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독실한 집안서
성직자 꿈 품어

염 추기경이 서임됨에 따라 상징표지인 ‘문장’도 새로 만들어졌다. 기본적으로 대주교 때 문장과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모자와 술의 색깔이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바뀌고 술의 단이 4단에서 5단으로 늘었다. 주교의 사도적 권위를 상징하는 모자 아래 5단의 술은 추기경을 상징하며, 십자가는 한국 순교자들의 십자가(칼과 차꼬)로 생명과 부활을 상징한다.

방패 왼쪽의 무지개는 하느님의 구원을 상징하며, 사랑(보라)과 희망(청색)과 믿음(녹색)을 의미한다.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새 생명의 전령사이자 주님의 성령을 상징한다.

가운데 큰 별은 성모 마리아와 예수님을 상징하고, 푸른 하늘빛 바탕 위에 두 개의 작은 별은 평화통일을 이뤄야 할 남한과 북한을 뜻한다. 방패의 붉은 바탕은 정의를, 노랑은 평화를, 청색은 희생과 나눔을 의미하고 가운데 손을 잡은 듯 이어가는 문양은 사랑의 연대를 의미한다.

구원과 미래 젊은이들의 꿈과 비전은 정의와 평화, 희생과 나눔의 깊은 연대 속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표상한다. 닻 십자가와 알파 오메가는 모든 희망과 염원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이뤄진다는 신앙고백을 아로새긴 것이다.

‘아멘. 오십시오. 주 예수님!’(Amen. veni. Domine Jusu!)이란 말은 묵시룩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으로 염 추기경의 사목표어다. 염 추기경은 사제서품 때부터 마라나타라는 이 기도문을 사제생활의 모토로 삼아왔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염수정 추기경은?]

▲경기도 안성 출생
▲사제수품 후 불광동·당산동본당 보좌
▲성신고등학교 교사, 부교장
▲이태원본당 주임
▲장위동·영등포동본당 주임
▲카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사무처장
▲서울대교구청 사무처장
▲사무처장 겸 청담동본당 주임
▲사무처장 겸 세종로본당 주임
▲제15지구장 겸 목동본당 주임
▲주교수품 후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서울가톨릭청소년회 이사장, 한마음운동본부 이사장,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이사장
▲평화방송·평화신문 이사장
▲서울대교구 보좌주교 겸 총대리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 위원장
▲중서울지역담당
▲서소문 역사문화공원·순교성지 조성위원회 위원장
▲서울대교구 교구장 임명
▲서울대교구 교구장 착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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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