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말한 대구 여대생 의문사 전말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4.01.14 10:34:47
  • 댓글 0개

경찰이 놓친 DNA는 범인을 기억했다

[일요시사=사회팀] 박근혜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민과의 소통을 강조하며 15년 전 대구 여대생 의문사 사건인 ‘정은희 사건’을 언급했다. 이번 기자회견으로 인해 의문사로 오랫동안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던 이 사건이 뒤늦게 주목을 받고 있다. 박 대통령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민원을 보낸 유족의 한을 풀어줬다고 강조했다. 15년 동안 풀지 못했던 이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오전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 중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을 언급해 세간에 화제가 됐다. 박 대통령은 “전국 각지에서 청와대에 민원이 많이 오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그중 기억나는 얘기를 하나 해 드리면 15년 전 사망한 여대생의 아버지가 죽은 딸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됐는데 억울함을 호소했고, 이를 해결한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역대 정권 때마다 이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그냥 형식적인 답변만 오고 해결이 되지 않았다”면서 “아버지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겠나. 다시 조사를 했더니 15년 만에 범인이 잡혀서 유가족이 한을 풀었다”고 말했다.

대통령 지시로
재수사한 사건

청와대에 답지하는 민원 해결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언급한 박 대통령. 15년 전 대구 여대생 의문사 사건은 단순 교통사고로 묻힐 뻔했다. 하지만 최근에 성폭행범이 붙잡히면서 15년 동안 마음 고생한 유족의 한이 풀렸다.

박 대통령은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을 국민과의 소통 사례로 언급하면서 이 사건을 재부각시켰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민원을 통해 국민의 고충이 해결된 사건을 ‘소통의 사례’로 꼽으면서 15년 전 발생했던 대구 여대생 사망 사건을 언급했다.


이 사건은 1990년대의 대표적 의문사 중 하나로 오랫동안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1998년 10월16일 대학교 축제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나서 충격으로 구마고속도로를 헤매던 도중 23톤 덤프트럭에 치여 숨진 정은희(당시 18세)양의 이야기다.

당시 사건을 담당한 대구 달서경찰서는 이 사건을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다. 현장 인근에서 발견된 정양의 속옷에서 남성의 정액이 검출됐음에도 성범죄 가능성을 조사하지 않은 것이다.

신년 기자회견서 정은희 사망사건 언급
15년 전 경·검 단순 교통사고로 마무리

미심쩍은 마음에 정양의 아버지 정현조(68)씨는 생계 수단이던 채소 장사를 접고 딸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지난해까지 무려 15년 동안 수차례 수사 경찰관을 고소하거나 재수사를 요구하는 민원을 냈다. 정씨는 사고 현장에서 30m 떨어진 풀숲에서 딸의 속옷을 찾아 증거자료로 제출했지만, 경찰은 “지나가던 아줌마들이 벗은 것을 가져다 자기 딸 것처럼 주장한다”고 말하며 증거물을 인정하지 않았다. 분하고 답답한 마음에 정씨는 지난해 4, 5월 청와대에 세 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또한 정씨는 죽은 딸을 위해 법학을 독학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와대는 정씨의 민원 내용을 대구지검에 내려보냈고 대구지검 형사1부(부장 이형택)가 재수사를 벌였다. 검찰은 3개월여간 수사 끝에 정양의 속옷에서 발견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관돼 있던 정액 DNA와 2011년 다른 성범죄에 연루돼 채취한 스리랑카 국적의 산업연수생 K(47)씨의 DNA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K씨를 체포했다.

대구 여대생 사건
진실 알고 보니…

성폭행(특수강도강간) 혐의로 구속 기소된 스리랑카인 K씨는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피고인은 DNA 재감정까지 요구하고 나선 것. 지난 10월11일 대구지법 제12형사부(최월영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이날 첫 공판에서 피고인 K씨는 “15년 전 피해자 정양을 만난 적도 없고 당연히 성폭행을 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K씨는 “구미고속도로 근처 성폭행 현장에 가지도 않았으며 검찰이 공범으로 지목한 다른 스리랑카인 2명이 실제 그런 일을 벌였는지도 나로서는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K씨는 또 서울대 법의학 교실을 비롯한 복수의 전문기관을 통해 유전자 재감정을 실시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은 “STR 기법으로 유전자 일치 여부를 검사하려면 최소 16∼17개의 시료가 필요한데 검찰이 과연 이런 요건을 충족시켰는지 의문스럽다”며 “무엇보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 유전자 검사를 했는지 검찰이 관련 자료를 전혀 제출하지 않고 있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수사 결과 산업연수생이던 K씨는 사건 당일 같은 국적의 공범 2명과 정양을 구마고속도로 아래 굴다리 근처로 끌고 간 뒤 차례로 성폭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부친 날마다 재수사 민원
얼렁뚱땅 묻힐 뻔한 참사
범인 붙잡히면서 한 풀어

당시 유족들은 청와대와 법무부, 인권위 등 무려 60여차례에 걸쳐 탄원서와 진정서를 냈지만 경찰의 재수사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유족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유족들이 인터넷에 정양의 추모홈페이지를 개설해 이 사건이 주목받았고 지난해 5월 대구지검이 수사에 나서 성폭행범을 검거했다.

정씨는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청와대가 (민원을) 받아줘서 사건이 해결된 건 맞다”면서도 “경찰이 성폭행 증거에도 불구하고 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피해자 가족의 알 권리를 위한 법이 제정돼 억울한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의 대표적인
민원 해결 사례

결과적으로 범인은 잡았지만, 경찰은 사건 당시 성폭행 정황을 확인했으면서도 수사를 덮어버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박 대통령 기자회견 직후 이성한 경찰청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언급할 정도로 억울한 일이 다시는 발생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라며 “경찰이 더욱 철저하게 수사에 임해 잘못된 부분을 밝혀내도록 마음가짐을 다져야겠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언급한 대구 여대생 사건으로 대구 검·경찰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민원에 따른 수사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진행할 증거가 부족해 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구지검 관계자는 “2010년 7월 말부터 흉악범에 대해 DNA를 채취하는 법안이 시행됐고 스리랑카인 K씨의 DNA는 2011년 11월에 K씨가 미성년자를 성매매 하려다 검찰에 적발돼 채취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법 시행 직후에는 사실 검찰과 경찰의 DNA 정보 공유가 거의 되지 않았고, 추후에 이 부분이 지적됨에 따라 2012년쯤부터 정보 공유가 활발히 진행되면서 당시 여대생의 속옷에 묻어 있던 정액 DNA가 K씨의 것과 일치한다는 사실이 나왔다”며 “지난해 5월쯤 여대생의 아버지가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청와대에도 청원을 했고 대검을 거쳐 다시 지법으로 해당 사항이 내려와 재수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사를 진행할 여건이 마련돼 시작한 것이었지 민원을 무시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대학축제 마치고 귀가 중 트럭에 치여
외국노동자 집단 성폭행이 부른 사고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은 지난 10월28일 열린 대구지방경찰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도 질타를 받았다.


대구지방경찰청 대강당에서 열린 국감에서 국회 안정행정위원회 소속 민주당 박남춘(인천 남동갑) 의원은 “15년 전 경찰이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던 여대생 정양의 의문사 사건이 검찰의 재수사로 외국인 집단 성폭행이 가져온 참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며 경찰의 수사를 지적했다.

박 의원은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은 유족이 현장 주변에서 발견한 속옷 등 증거를 토대로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지만 오히려 핀잔을 주며 묵살했다”며 “국가기관으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질타했다.

경찰 수사 태도
도마에 올라…

민주당 유대운(서울 강북을) 의원은 “지난 5월 대구에서 발생한 여대생 살인 사건 당시 경찰의 초동수사가 미흡했다”며 “15년 전 정양 사건과 유사한 점이 많다”고 꼬집었다.

유 의원은 “당시 경찰이 숨진 여대생의 친구들에게 술집에서 접근한 남성이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했음에도 수사에 전혀 참고하지 않았다”며 “피해자의 휴대폰이 범인의 주거지 인근에서 마지막으로 꺼졌고 범인이 성범죄자로 등록이 돼 있었음에도 용의선상에 전혀 올려놓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이재오(서울 은평을) 의원은 “지난해 경찰 조직문화수준 진단조사 결과 대구 경찰이 10개 분야에서 모두 꼴찌였다”며 “대구 경찰의 비창의적이고 경직된 조직문화가 조직발전에 큰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13년판 대구 여대생 살인사건

택시기사 잡고 보니…부킹남 공익요원이 범인

지난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있다. 지난 5월25일 오전 5시10분께 대구시 북구 산격동에서 여대생에게 성폭행을 시도한 뒤 마구 폭행해 살해하고 이튿날인 16일 오전 2시30분께 경주시 건천읍 화천리의 한 저수기에 시신을 유기해버린 사건이 발생했다.

여대생이 귀가하기 위해 택시를 타자, 다른 택시를 잡아 뒤따라간 범인은 신호 대기 중이던 택시를 발견하고 자신이 남자친구라며 합승한 뒤 산격동으로 방향을 돌려 자신의 원룸으로 끌고 가 끔찍한 범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으로 100여명의 형사가 밤잠을 설쳐가며 일주일 동안 수사한 끝에 범인을 검거했지만 초동수사에 미진한 부분이 있어 많은 질타를 받았다. 

이 사건을 일으킨 조모(27)씨는 성범죄 전과(2011년)자로 성범죄자 알림e사이트에 신상이 공개됐던 인물이었다. 조씨는 대구 지하철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중이었으며 거주하던 대학가 원룸 근처의 술집에서 종업원으로 근무했다. 범인은 지난 5월25일 피해자와 대구 중구 소재의 한 클럽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이?날 새벽 4시께 피해자는 범인과 헤어져 대구 중부소방서 앞에서 택시를 잡았고 이때 외국인 한 명이 택시비 2만원을 내줬다는 진술이 있었다. 만취 상태였던 피해자를 태운 택시가 신호 대기 상태일 때, 범인은 자신을 피해자의 남자친구라고 둘러대며 택시에 합승해 목적지를 북구로 변경했다.

범인은 클럽에서부터 피해자를 계속 뒤쫓아가며 기회를 노린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다. 범인은 정신을 잃은 피해자를 데리고 모텔로 향했으나 빈 방이 없어 결국 자신의 원룸으로 이동해 성폭행 후 살해했다. 그리고 시신을 경북 경주의 한 저수지에 유기했다.

피해자의 가족은 사건 당일 오후 5시께 딸이 ‘아는 언니와 술을 마시고 들어가겠다’는 문자를 끝으로 돌아오지 않았다며 실종신고를 했다. 다음 날, 경주의 저수지에서 여성의 변사체를 발견했다는 낚시꾼의 신고로 살인 사건으로 전환됐다.

하지만 사건을 접수 받은 경찰은 당일 피해자를 태웠던 택시기사를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고 택시기사 A씨를 긴급체포했다. 택시기사 A씨는 혐의를 부인했고, 이후 A씨가 범인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택시에 동승했던 조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 체포했다. 경찰은 피의자를 살인 및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했다. 

그리고 지난 10월25일 대구지검 형사3부는 조씨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했다. 실제로 피의자 조씨는 범행 직후 자신의 여자친구와 장난스러운 메시지를 주고받는가 하면 피해자와 처음으로 만났던 클럽에도 태연하게 드나들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광>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