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프로골퍼 박인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25 13: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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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신화 깬 ‘메이저 퀸’

[일요시사=사회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박인비는 올 시즌 메이저 챔피언십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6번 우승을 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녀가 있기에 한국 골프의 날씨는 맑다.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박인비(25·KB 금융그룹).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이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올해의 선수는 아무도 없었기에 더둑 관심을 끌고 있다. 한때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기록을 갈아 치우고 결국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가 됐다.

세계가 인정하는
‘올해의 선수상’

‘침묵의 암살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 박인비는 지난 18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골프장에서 끝난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4위에 오르며 공동 5위에 자리한 경쟁자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의 추격을 제치고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CME그룹 타이틀홀더스 결과를 떠나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한국에서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이룬 게 영광이다. 정말 좋다. 사실 올해 목표가 올해의 선수상이었다. 그랜드슬램보다 더 하고 싶었던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더 많이 애정이 간다.”

LPGA투어 사무국이 해마다 주는 5개 상 중에서 가장 가치가 큰 ‘올해의 선수상’. 그리고 시즌 평균 최저타수를 달성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 최고 신인에게 돌아가는 루이스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 일종의 모범상 성격의 ‘헤서 파’ ‘윌리엄 앤드 뮤지 파월 상’, LPGA 발전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은 기업에 주는 ‘커미셔너상’ 등 5개 분야에 걸친 시상을 하고 있다. 그중 ‘올해의 선수’는 그해 선수들의 투어 대회 성적에 포인트를 줘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일종의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해당된다. 

수상자를 정하는 방식을 보면 각종 대회 1위부터 10위 선수에게 점수를 차등 배점한다. 투어 챔피언은 30점, 준우승한 선수는 12점을 얻는다. 3위는 9점, 4위는 7점을 받는 식으로 순위가 낮을수록 배점도 낮아져 10위는 1점을 챙긴다. 단, 5대 메이저대회 순위별 배점은 일반 투어 대회의 두 배다. 박인비는 올 시즌 메이저대회에서 3승(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을 거둬 180점을 획득한 데 이어 투어 대회 3승(혼다 타일랜드 대회, 노스텍사스 슛아웃,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대회)으로 90점을 보탰다.

여기에 ‘톱10’ 입상 포인트 27점을 추가하고 총 297점을 쌓았다. 1966년에 제정된 이 상의 역대 최다 수상자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다. 소렌스탐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이 상을 5년 연속 수상하는 등 총 8차례나 수상했다. 그 다음으로는 케이티 휘트워스(미국·7회), 낸시 로페즈(미국),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이상 4회) 순이다. 박인비의 수상으로 아시아 출신은 2010∼2011년 청야니(대만), 1987년 오카모토 아야코(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한국 군단’은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를 시작으로, 박지은(34), 신지애(25·미래에셋), 최나연(26·SK텔레콤) 등이 상금왕, 신인왕, 평균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 등을 수차례 수상한 바 있지만 한 시즌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박인비가 처음이다. 특별하고 의미 있는 위업이다.

한국인 최초 LPGA 올해 선수로 선정
올 시즌 메이저 챔피언십 6번 우승

한국여자골프는 19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15년 넘게 LPGA투어에서 세계무대를 제패했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했다. 당대 최고의 골프스타에게만 주어져 ‘상 중의 상’이라 불리는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항상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졌던 올해의 선수상. 지난 18일 박인비는 한국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선수’를 확정했다.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4위를 차지해, 공동 5위로 대회를 마감한 경쟁자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를 눌렀다.

박세리 뛰어 넘은
한국 골프의 자랑

LPGA투어 25승을 달성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도 이루지 못한 한국골프의 큰 쾌거다.

그녀의 피나는 노력이 보상해준 결과지만 그 이면에는 남다른 가족사랑이 있었다. 올해 2월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시즌 첫 우승을 신고한 박인비는 “할아버지 앞에서 우승해 매우 쁘다”는 말로 운을 뗐다.

할아버지 박경준(81는 박인비에게 골프를 처음 권했고 여전히 최고의 후원자다. 노령의 할아버지에게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회에서 박인비는 우승을 일궈냈고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4월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른 순간에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박인비는 2007년 LPGA 무대에 뛰어든 후 이듬해인 2008년에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기록을 썼다.

하지만 이후에 찾아온 시련은 매서웠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0개가 넘는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골프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중압감을 누르고 얻어낸 메이저 2승의 순간, 박인비는 부모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였다. 오늘이 부모님 결혼 25주년 되는 날이라 더욱 기쁘다.”

중요한 사람이 더 있다. 2011년 8월 약혼식을 올린 프로골퍼 출신 남기협 씨. 박인비는 자신을 ‘짐꾼’이라 표현하지만 막강한 지원군이라며 “약혼자는 긴 슬럼프에서 탈출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내 편이 있다는 게 든든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둘은 내년 10∼11월 사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그녀는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같은 특별한 웨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2011년 프로골퍼 남기협 씨와 약혼했다. 둘은 투어 생활을 함께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박인비가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함께 연못에 빠지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남씨와 약혼 이후로는 스윙 자세도 약혼자와 함께 상의하며 만들어 가고 있다. 약혼자 역시 프로골퍼 출신으로 박인비와 잘 맞는다고 전해진다. 특히 골프에 대해 즐겁게 대화하고 풀어갈 수 있다는 건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인 선수
최초 타이틀

박인비의 스윙은 독특하다. 정통, 교과서적인 스윙과는 거리가 멀다. 천천히 클럽을 들어올렸다가 짧게 내리치는 스윙을 한다. 스윙이 예쁘거나 좋지 않지만 박인비에게는 딱 맞는 스윙이다.

그녀의 스승인 백종석(52) 코치는 박인비의 스윙을 한 마디로 ‘프리 암’(Free Arm)’ 스윙이라고 정의했다. 백 코치는 “박인비의 스윙은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윙이다. 일반적으로는 몸을 위주로 하는 바디 턴 또는 팔을 위주로 하는 암 스윙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박인비는 두 가지 장점을 하나로 섞은 스윙이다”라고 말했다. 팔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향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팔을 잘 던진다. 특히 어프로치 할 때 더 효과가 좋다. 팔의 감각을 이용해 공을 자유롭게 보내다 보니 훨씬 더 정교하다. 테크니션보다 감각을 앞세운 ‘필’(feel) 스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비결은 ‘숙성된 스윙’이다.“박인비의 스윙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미국에 와서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 등 많은 스윙코치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줬다. 또 나와 함께 한 5년 동안도 그 과정 중 하나였다. 그런 과정 속에 자기 나름의 노하우, 그리고 투어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스윙이 완성됐다. 음식처럼 지금 박인비의 스윙은 완성을 넘어 숙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가장 맛있는 단계다.”

2년 연속 상금왕까지 도전
내년도 눈부신 활약 기대

박인비는 초등학교 시절 수의사가 꿈이었다. 동물을 워낙 좋아했다. 그러던 그녀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박세리 덕분이었다. 1998년 박세리가 한국 선수 최초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장면을 본 후 골프에 빠져들었다.골프광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 81세인 할아버지 박경준 씨는 3대가 함께 골프하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박인비 아버지 박건규(51)씨도 스무 살 때부터 골프를 쳤다.

‘3대 골프’를 원하던 박씨는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직후 딸 손을 잡고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박인비는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였다. 남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채를 잡았지만 2년 만에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에 뽑혔다. 박건규 씨는 “한국 부모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골프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며 2001년 죽전중 1학년 때 딸을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보냈다. 데이비드 레드베터에게 레슨을 받았지만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자 박인비는 중학교 졸업 후에 라스베이거스로 옮겨 부치 하먼으로 코치를 바꾸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골프에 재능을 보인 박인비는 14세인 2002년 US여자주니어 골프선수권 우승을 비롯해 미국 아마추어 대회에서 9차례나 우승하는 등 아마추어 무대에서 적수가 없었다. 세계 골프계는 “골프 천재가 탄생했다”며 박인비를 주시했다. 박인비는 2007년 LPGA투어 생활을 시작해 투어 2년차인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쓰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순탄할 것 같았던 프로 생활은 곧 기나긴 슬럼프로 이어졌다. 

‘세리 키즈’ 선봉에 설 듯했던 박인비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총 57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은 한 차례도 없었다. 박인비로선 끝도 없는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필드의 초록색만 봐도 겁에 질렸다. 당시 대회에 나가는 것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급기야 2009년 겨울 박인비는 아버지에게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돌파구는 일본에서 찾았다. 일본 진출 첫 해인 2010년 우승 두 번, 준우승 여섯 번을 했다. 2011년에도 2승을 거뒀다. ‘일본만 가면 잘되고 미국만 오면 왜 안 되냐’는 생각을 할 때인 2012년 7월, 박인비는 마침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련의 터널을 지난 박인비는 강해져 있었고 옆에는 가장 강력한 ‘비밀 병기’가 함께 있었다. 바로 ‘약혼자’다. 박인비는 2011년 8월 KPGA투어 프로 출신인 남기협 씨와 약혼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인비는 “오빠가 골프선수 출신이라 내가 언제 기분이 안 좋고 좋은지 다 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늘 즐겁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녀의 부활을 만든 독특한 템포의 스윙도 남씨와 함께 완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명하다는 코치한테 다 레슨을 받아봤다. 그런데 공감이 잘 안 되더라”고 말한 박인비는 “그런데 오빠하고는 잘 맞았다. 올해는 바뀐 스윙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지난해 2승에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수상하며 부활을 알렸고, 2013년 메이저 3연속 우승과 함께 시즌 6승을 기록하며 새로운 골프 여제 탄생을 알렸다. ‘올해의 선수’.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의 자리’는 한국 골프 팬들과 관계자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박인비 역시 “한국 선수 중에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점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 가운데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때문에 박인비는 이 상을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한국의 자존심을 더욱 드높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골프계의 슈퍼스타다.
“슈퍼스타의 인생을 살기에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사실 골프만 열심히 치다 보니 이런 자리에 온 것이지 않나. 내가 잘 하는 거라곤 골프 치는 것밖에 없고, 다른 분야에 대해선 아직도 배울 게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골프도 계속 잘 쳐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내년에는 조금 더 성숙해져서 더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

2016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2013 올해의 선수상’ 확정 후 “한국인 가운데 ‘처음’이였기에 이 상에 대한 욕심이 컸다”고 말한 그녀는 “한국 골프사에 의미있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많은 걸 느꼈고 많은 걸 배웠다. 이제 나의 새 목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한 시즌 메이저 대회에서 4승을 거두는 것) 달성”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과제는 그랜드슬램 달성과 올림픽 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박인비 선수는?]

▲2002년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2006년 프로 전향
▲2008년 LPGA투어 US여자오픈골프대회 우승(메이저)
▲2012년 LPGA투어 사임다비 말레이시아 우승,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
<2013년>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 우승
▲LPGA투어 나비스코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노스텍사스 슛아웃 우승
▲LPGA투어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US 여자오픈 우승
-메이저 3연승
(통산 LPGA투어 9승, 메이저 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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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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