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프로골퍼 박인비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1.25 13:5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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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리 신화 깬 ‘메이저 퀸’

[일요시사=사회팀] 미국 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선수상’을 받아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겁다. 박인비는 올 시즌 메이저 챔피언십 3회 연속 우승을 포함해 6번 우승을 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그녀가 있기에 한국 골프의 날씨는 맑다.




한국 선수 최초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박인비(25·KB 금융그룹).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한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들이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올해의 선수는 아무도 없었기에 더둑 관심을 끌고 있다. 한때 슬럼프에 빠진 적도 있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기록을 갈아 치우고 결국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선수가 됐다.

세계가 인정하는
‘올해의 선수상’

‘침묵의 암살자’란 별명을 갖고 있는 박인비는 지난 18일 멕시코 과달라하라 골프장에서 끝난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합계 11언더파 277타로 4위에 오르며 공동 5위에 자리한 경쟁자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의 추격을 제치고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CME그룹 타이틀홀더스 결과를 떠나 올해의 선수상을 거머쥐었다.
“한국에서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내가 이룬 게 영광이다. 정말 좋다. 사실 올해 목표가 올해의 선수상이었다. 그랜드슬램보다 더 하고 싶었던 타이틀이었기 때문에 더 많이 애정이 간다.”

LPGA투어 사무국이 해마다 주는 5개 상 중에서 가장 가치가 큰 ‘올해의 선수상’. 그리고 시즌 평균 최저타수를 달성한 선수에게 주는 ‘베어트로피’, 최고 신인에게 돌아가는 루이스 서그스 롤렉스 ‘올해의 신인’, 일종의 모범상 성격의 ‘헤서 파’ ‘윌리엄 앤드 뮤지 파월 상’, LPGA 발전을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은 기업에 주는 ‘커미셔너상’ 등 5개 분야에 걸친 시상을 하고 있다. 그중 ‘올해의 선수’는 그해 선수들의 투어 대회 성적에 포인트를 줘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선수에게 주는 상으로 일종의 시즌 최우수선수(MVP)에 해당된다. 

수상자를 정하는 방식을 보면 각종 대회 1위부터 10위 선수에게 점수를 차등 배점한다. 투어 챔피언은 30점, 준우승한 선수는 12점을 얻는다. 3위는 9점, 4위는 7점을 받는 식으로 순위가 낮을수록 배점도 낮아져 10위는 1점을 챙긴다. 단, 5대 메이저대회 순위별 배점은 일반 투어 대회의 두 배다. 박인비는 올 시즌 메이저대회에서 3승(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 US여자오픈)을 거둬 180점을 획득한 데 이어 투어 대회 3승(혼다 타일랜드 대회, 노스텍사스 슛아웃,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대회)으로 90점을 보탰다.


여기에 ‘톱10’ 입상 포인트 27점을 추가하고 총 297점을 쌓았다. 1966년에 제정된 이 상의 역대 최다 수상자는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다. 소렌스탐은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이 상을 5년 연속 수상하는 등 총 8차례나 수상했다. 그 다음으로는 케이티 휘트워스(미국·7회), 낸시 로페즈(미국), 로레나 오초아(멕시코·이상 4회) 순이다. 박인비의 수상으로 아시아 출신은 2010∼2011년 청야니(대만), 1987년 오카모토 아야코(일본)에 이어 네 번째다.

‘한국 군단’은 박세리(36·KDB산은금융그룹)를 시작으로, 박지은(34), 신지애(25·미래에셋), 최나연(26·SK텔레콤) 등이 상금왕, 신인왕, 평균최저타수상(베어트로피) 등을 수차례 수상한 바 있지만 한 시즌 동안 최고의 활약을 펼친 최고의 선수에게 수여하는 올해의 선수상을 받은 것은 박인비가 처음이다. 특별하고 의미 있는 위업이다.

한국인 최초 LPGA 올해 선수로 선정
올 시즌 메이저 챔피언십 6번 우승

한국여자골프는 1998년 박세리를 시작으로 15년 넘게 LPGA투어에서 세계무대를 제패했지만 결정적인 한방이 부족했다. 당대 최고의 골프스타에게만 주어져 ‘상 중의 상’이라 불리는 ‘올해의 선수상’에서는 항상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불가침의 영역’처럼 여겨졌던 올해의 선수상. 지난 18일 박인비는 한국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올해의 선수’를 확정했다. 시즌 최종전을 앞두고 멕시코 과달라하라에서 열린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에서 4위를 차지해, 공동 5위로 대회를 마감한 경쟁자 수잔 페테르센(노르웨이)를 눌렀다.

박세리 뛰어 넘은
한국 골프의 자랑

LPGA투어 25승을 달성해 명예의 전당에 오른 박세리도 이루지 못한 한국골프의 큰 쾌거다.


그녀의 피나는 노력이 보상해준 결과지만 그 이면에는 남다른 가족사랑이 있었다. 올해 2월 태국에서 열린 혼다 LPGA 타일랜드 대회에서 시즌 첫 우승을 신고한 박인비는 “할아버지 앞에서 우승해 매우 쁘다”는 말로 운을 뗐다.

할아버지 박경준(81는 박인비에게 골프를 처음 권했고 여전히 최고의 후원자다. 노령의 할아버지에게 다시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를 기회에서 박인비는 우승을 일궈냈고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드렸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지난 4월 열린 시즌 첫 메이저대회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생애 두 번째 메이저대회 정상에 오른 순간에는 부모님을 떠올렸다. 박인비는 2007년 LPGA 무대에 뛰어든 후 이듬해인 2008년에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기록을 썼다.

하지만 이후에 찾아온 시련은 매서웠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50개가 넘는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결국 심리적 압박에 시달렸고 골프가 두려워지기까지 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느낌이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 중압감을 누르고 얻어낸 메이저 2승의 순간, 박인비는 부모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꼭 우승하고 싶은 대회였다. 오늘이 부모님 결혼 25주년 되는 날이라 더욱 기쁘다.”

중요한 사람이 더 있다. 2011년 8월 약혼식을 올린 프로골퍼 출신 남기협 씨. 박인비는 자신을 ‘짐꾼’이라 표현하지만 막강한 지원군이라며 “약혼자는 긴 슬럼프에서 탈출하게 한 일등공신이다. 내 편이 있다는 게 든든했고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했다. 둘은 내년 10∼11월 사이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그녀는 “골프장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과 같은 특별한 웨딩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2011년 프로골퍼 남기협 씨와 약혼했다. 둘은 투어 생활을 함께 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4월 박인비가 크래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했을 때는 함께 연못에 빠지는 세리머니를 펼치기도 했다. 남씨와 약혼 이후로는 스윙 자세도 약혼자와 함께 상의하며 만들어 가고 있다. 약혼자 역시 프로골퍼 출신으로 박인비와 잘 맞는다고 전해진다. 특히 골프에 대해 즐겁게 대화하고 풀어갈 수 있다는 건 선수에게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인 선수
최초 타이틀

박인비의 스윙은 독특하다. 정통, 교과서적인 스윙과는 거리가 멀다. 천천히 클럽을 들어올렸다가 짧게 내리치는 스윙을 한다. 스윙이 예쁘거나 좋지 않지만 박인비에게는 딱 맞는 스윙이다.

그녀의 스승인 백종석(52) 코치는 박인비의 스윙을 한 마디로 ‘프리 암’(Free Arm)’ 스윙이라고 정의했다. 백 코치는 “박인비의 스윙은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는 스윙이다. 일반적으로는 몸을 위주로 하는 바디 턴 또는 팔을 위주로 하는 암 스윙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박인비는 두 가지 장점을 하나로 섞은 스윙이다”라고 말했다. 팔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다는 건 향성을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팔을 잘 던진다. 특히 어프로치 할 때 더 효과가 좋다. 팔의 감각을 이용해 공을 자유롭게 보내다 보니 훨씬 더 정교하다. 테크니션보다 감각을 앞세운 ‘필’(feel) 스윙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 비결은 ‘숙성된 스윙’이다.“박인비의 스윙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진 게 아니다. 미국에 와서 데이비드 레드베터, 부치 하먼 등 많은 스윙코치를 만나면서 조금씩 변화를 줬다. 또 나와 함께 한 5년 동안도 그 과정 중 하나였다. 그런 과정 속에 자기 나름의 노하우, 그리고 투어의 경험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스윙이 완성됐다. 음식처럼 지금 박인비의 스윙은 완성을 넘어 숙성의 단계에 이르렀다. 가장 맛있는 단계다.”

2년 연속 상금왕까지 도전
내년도 눈부신 활약 기대

박인비는 초등학교 시절 수의사가 꿈이었다. 동물을 워낙 좋아했다. 그러던 그녀가 골프와 인연을 맺은 것은 박세리 덕분이었다. 1998년 박세리가 한국 선수 최초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장면을 본 후 골프에 빠져들었다.골프광이었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올해 81세인 할아버지 박경준 씨는 3대가 함께 골프하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박인비 아버지 박건규(51)씨도 스무 살 때부터 골프를 쳤다.


‘3대 골프’를 원하던 박씨는 박세리의 US오픈 우승 직후 딸 손을 잡고 골프연습장으로 향했다. 다행히 박인비는 어릴 적부터 재능을 보였다. 남들보다 늦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채를 잡았지만 2년 만에 국가대표 주니어 상비군에 뽑혔다. 박건규 씨는 “한국 부모들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골프를 시키고 싶지 않았다”며 2001년 죽전중 1학년 때 딸을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보냈다. 데이비드 레드베터에게 레슨을 받았지만 잘 맞지 않는 느낌이 들자 박인비는 중학교 졸업 후에 라스베이거스로 옮겨 부치 하먼으로 코치를 바꾸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골프에 재능을 보인 박인비는 14세인 2002년 US여자주니어 골프선수권 우승을 비롯해 미국 아마추어 대회에서 9차례나 우승하는 등 아마추어 무대에서 적수가 없었다. 세계 골프계는 “골프 천재가 탄생했다”며 박인비를 주시했다. 박인비는 2007년 LPGA투어 생활을 시작해 투어 2년차인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최연소 우승 기록을 쓰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순탄할 것 같았던 프로 생활은 곧 기나긴 슬럼프로 이어졌다. 

‘세리 키즈’ 선봉에 설 듯했던 박인비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총 57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은 한 차례도 없었다. 박인비로선 끝도 없는 터널을 지나는 느낌이었다. 필드의 초록색만 봐도 겁에 질렸다. 당시 대회에 나가는 것이 꼭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한다. 급기야 2009년 겨울 박인비는 아버지에게 골프를 그만두겠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돌파구는 일본에서 찾았다. 일본 진출 첫 해인 2010년 우승 두 번, 준우승 여섯 번을 했다. 2011년에도 2승을 거뒀다. ‘일본만 가면 잘되고 미국만 오면 왜 안 되냐’는 생각을 할 때인 2012년 7월, 박인비는 마침내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시련의 터널을 지난 박인비는 강해져 있었고 옆에는 가장 강력한 ‘비밀 병기’가 함께 있었다. 바로 ‘약혼자’다. 박인비는 2011년 8월 KPGA투어 프로 출신인 남기협 씨와 약혼하며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인비는 “오빠가 골프선수 출신이라 내가 언제 기분이 안 좋고 좋은지 다 안다. 무엇보다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 늘 즐겁다”고 설명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 그녀의 부활을 만든 독특한 템포의 스윙도 남씨와 함께 완성한 것이다. “지금까지 유명하다는 코치한테 다 레슨을 받아봤다. 그런데 공감이 잘 안 되더라”고 말한 박인비는 “그런데 오빠하고는 잘 맞았다. 올해는 바뀐 스윙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설명했다. 박인비는 지난해 2승에 상금왕과 최저타수상을 수상하며 부활을 알렸고, 2013년 메이저 3연속 우승과 함께 시즌 6승을 기록하며 새로운 골프 여제 탄생을 알렸다. ‘올해의 선수’. 명실상부한 ‘세계최강의 자리’는 한국 골프 팬들과 관계자들의 오랜 바람이었다.

박인비 역시 “한국 선수 중에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점은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세계 최강’, 한국 여자 골프 선수들 가운데 ‘올해의 선수’가 없다는 것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때문에 박인비는 이 상을 수상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한국의 자존심을 더욱 드높이기 위해 구슬땀을 흘렸다. 이제는 누구나 인정하는 골프계의 슈퍼스타다.
“슈퍼스타의 인생을 살기에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사실 골프만 열심히 치다 보니 이런 자리에 온 것이지 않나. 내가 잘 하는 거라곤 골프 치는 것밖에 없고, 다른 분야에 대해선 아직도 배울 게 많다. 이런 상황에서 골프도 계속 잘 쳐야 한다는 것이 어려운 부분이다. 내년에는 조금 더 성숙해져서 더 좋은 모습 보여주겠다.”

2016년 올림픽
출전을 목표로…


‘2013 올해의 선수상’ 확정 후 “한국인 가운데 ‘처음’이였기에 이 상에 대한 욕심이 컸다”고 말한 그녀는 “한국 골프사에 의미있는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많은 걸 느꼈고 많은 걸 배웠다. 이제 나의 새 목표는 커리어 그랜드슬램(한 시즌 메이저 대회에서 4승을 거두는 것) 달성”이라고 덧붙였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과제는 그랜드슬램 달성과 올림픽 출전이라는 새로운 목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박인비 선수는?]

▲2002년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우승
▲2006년 프로 전향
▲2008년 LPGA투어 US여자오픈골프대회 우승(메이저)
▲2012년 LPGA투어 사임다비 말레이시아 우승,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
<2013년>
▲LPGA투어 혼다 타일랜드 우승
▲LPGA투어 나비스코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노스텍사스 슛아웃 우승
▲LPGA투어 웨그먼스 LPGA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월마트 NW 아칸소 챔피언십 우승
▲LPGA투어 US 여자오픈 우승
-메이저 3연승
(통산 LPGA투어 9승, 메이저 4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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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