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꼭 봐야 할 동양에 밟힌 슬픈 사연들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1.18 14: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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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현 회장님 밥이 넘어 가십니까"

[일요시사=경제1팀] 피해자 5만명에 1조5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되는 피해금액. 동양사태의 결과물이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동양증권 여직원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당장 길바닥에 나앉게 생긴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도 보상 여부와 책임 소재는 불분명하기만 하다. 피해자들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고 있다.




지난 9월 말 동양그룹 계열사인 동양, 동양네트웍스, 동양레저, 동양시멘트, 동양인터내셔널 등 5개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와 함께 동양그룹 기업어음(CP)과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 규모도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동양그룹 계열사 CP와 회사채에 투자한 개인 자금 규모는 1조5500억원을 넘어서고 개인 투자자수는 5만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주로 동양증권의 전화 권유로 해당 상품에 투자했으며 가입 시 채권의 조기상환청구권·CP의 원리금 상환 가능 여부·채권이 예금자보호법의 보호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 등에 대해 동양증권 직원으로부터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부 피해자들은 집단 소송에 들어갔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줄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집단 소송
줄소송 준비 중

하지만 동양그룹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계열사들에 대한 대출과 회사채, CP 등 모든 채권채무가 동결되면서 당분간은 자금이 묶였고, CP나 회사채는 변제 순위가 낮은데다가 자본잠식 상태여서 보상 여부는 불문명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양사태로 피해를 입은 개인 투자자들의 사연이 주변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남편의 사망 보험금을 날리게 된 주부부터 10년간 결혼자금으로 모은 돈을 날리게 된 사람 등의 사연이 이어지고 있다.


[남편 사망보험금]
[묻은 세아이 엄마]

세 아이의 엄마인 양모씨(이하 가명)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중 남편으로부터 '마지막 선물'을 받았다. 사망보험금을 타 아이들을 키워달라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당장 세 아이의 생계를 책임지게 된 양씨는 남편의 사망보험금으로 동양 채권에 투자를 했고 빚까지 내 가게를 계약했다.

만기 날을 기다리던 양씨는 동양의 법정관리 신청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들려왔고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하루하루를 뜬눈으로 보내고 있다.

양씨는 인터넷 카페 '동양 채권 CP 피해자모임'에 글을 올리며 "남편을 하늘나라로 보낼 때보다 더 미칠 지경"이라고 썼다. 남편 목숨 값 하나 못 지키는 자신을 얼마나 원망할까 싶어서 라고 했다.

8살 난 아이를 키우는 주부 박모씨도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지난 2006년 아이 돌 지나고 한 달 뒤 남편이 암 투병을 하다가 하늘나라로 떠났다. 살길이 막막해진 박씨는 남편이 아이를 위해 남겨놓은 유일한 재산인 아파트를 판돈과, 남편의 암 진단금, 사망보험금 등 약 2억원을 들고 집 근처 동양증권 영업소를 찾아 CMS 통장을 만들었다.




박씨는 담당 직원에게 "평생 살아가야 할 돈이며 우리 아이 공부할 돈이니 위험한 건 절대 권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채권이 뭔지, CP가 뭔지 잘 몰랐던 박씨는 동양그룹 위기설에도 "걱정말라"고 큰소리치는 직원의 말만 믿었다.


하지만 박씨가 빈털터리가 된 건 순간이었다. 박씨의 돈은 법정관리를 신청한 동양그룹 계열사 5곳에 분산 투자가 되어 있었다. 직원은 "몰랐다"는 말뿐. 일평생 살 돈 2억은 휴지조각이 됐고 박씨는 아이와 앞으로 살아갈 일이 두렵고 무섭기만 하다.

[결혼 자금 맡겼다 ]
[돈 없어 파혼할 판]

동양증권 CMA 통장에 1억원 가까이 넣어놓은 지난 8월 박모씨는 동양증권으로부터 "좋은 상품이 있다. 자리 하나 남았다"는 직원의 전화를 받았다. 결혼 자금이라 걱정된다는 박씨를 직원은 "3개월짜리니까 괜찮다" "동양이 망하면 우리나라 망한다"고 설득, 박씨는 이자 6.3%에 5000만원을 넣었다.

고교 졸업 후 군대 다녀와서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시작, 퀵 서비스, 음식점 배달 등을 하며 모은 5000만원이었다. 이 돈은 모두 날릴 처지가 됐다. 내년 2월 결혼 예정인데 빚을 져야 하나 하는 걱정에 막막하기만 하다.

사태가 이런데도 상품 권유를 한 직원은 가타부타 말도 없다. 오히려 "저도 피해자"라는 말만 들었다. 아직 여자친구는 이 사실을 모른다.

피해자 5만명 피해금액 1조5000억원 추산
보상여부·책임소재 불분명…입증이 관건

고등학교 교사인 김모씨는 근무 8년차에 대학시절부터 차곡차곡 모아놓은 돈 6500만원을 그저 시중은행보다 금리가 조금 더 좋다는 이유로 동양증권 CMA 통장에 넣어두었다.

그러던 중 동양증권 모 지점 직원이 동양그룹 계열사에 신탁이라는 것으로 넣어 6개월 혹은 3개월간 1000만원 이상의 자금을 묶어서 보관하는 제도가 있으니 이를 이용할 것을 권유했다.

내년에 결혼 예정이라 위험성에 대해 설명해 달라는 김씨의 요구에 직원은 "동양그룹은 30여년간 이어온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계열이 튼튼해 결혼자금으로 쓰는 것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설득했다.

직원의 말을 믿은 김씨는 어머니 노후연금 8500만원까지 같은 방식으로 신탁을 맡겼다. 만에 하나 위험성이 있을 수도 있지 않느냐는 김씨의 말에 직원은 "망할 이유도 없지만 혹시라도 동양계열이 안 좋아지면 ㈜동양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으므로 서로 돕는 관계에 있으니 원금손실의 위험이 전혀 없다"고 설명했다.

동양사태 후 김씨는 채권자임을 증명하는 서류를 떼러 가서 "이래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직원의 조롱 섞인 소리를 들었다. 김씨는 요즘 일상생활도 불가능할 정도로 불안감을 느낀다. 계속 살아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된다고 한다.

[지금도 속고 있는]
[  시골 어른신들  ]


추석에 고향에 내려간 한모씨는 아버지로부터 평소에 거래하던 동양증권을 통해 채권을 사 놓았다는 말을 들었다. 동양그룹이 상태가 안 좋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한씨는 동양증권 울산 지점에 전화를 걸어 아버지가 ㈜동양의 회사채 5건, 동양증권 회사채 1건, 동양시멘트 1건을 보유 중인 것으로 확인했다. 게다가 올해 4월 동양증권에서 판매한 전자단기신탁에 8000만원이 추가로 투자된 사실까지 확인했다. 팔십평생 모은 아버지의 노후자금이 몽땅 동양 채권에 투자된 것.

한씨에 따르면 담당자는 "어르신, 채권이라는 것은 회사가 부도나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라는 두루뭉술한 설명으로 채권을 판매했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로 가면 투자된 것들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 간다고 누가 그러느냐"고 큰소리를 내며 따졌다.


하지만 결국 동양은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한씨와 그의 아버지는 하루하루 피가 마르고 있다.

강화도에 사는 김모 할머니는 동양증권 골드센터 목동점에서 "좋은 상품이 있다. 빨리 나오시라"는 전화를 받고 74세 고령의 나이에 목동까지 나가 3000만원짜리 CP에 가입했다.

CP가 뭔지, 회사채가 뭔지 잘 몰랐던 김씨는 단지 이자를 조금 더 주는 고금리 예금상품인 줄 알고 가입했다. 그러다가 TV 뉴스에서 동양그룹이 위험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본인이 가지고 있는 상품이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혼절, 뇌진탕 판정을 받고 앓아 누웠다.

김씨의 딸이 해당 지점에 2회 방문해 불완전판매에 대해 강력 항의 했지만 CP를 판매한 담당 직원은 "동양시멘트 주식을 담보로 잡고 있어 괜찮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며칠 뒤 동양시멘트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전국 방방곡곡서 ]
[자살소동 차라리…]

최모씨는 동양증권에 칼까지 들고 가서 자살 소동까지 벌였다. 최씨의 피해금액은 자그마치 2억원. 11월 만기인 전셋집에서 2억원을 올려 달라 해서 이사를 갈 요량으로 마련해 둔 돈이었다.

딸 또래 여성 직원이 집까지 찾아와 상품을 권유하니 거절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0월1일 그 '딸 같은' 직원에게 "소식 아시죠? 2억은 찾을 수 없는 거 아시죠?"라는 전화를 받았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이 직원에 "네가 책임지라"고 했더니 "책임 못진다"고 했다.

최씨는 지난 1일 오후 1시께 서울중구 을지로 2가 동양투자금융빌딩에서 투신자살 소동을 벌이다 119 구급대에 의해 구조됐다. 최씨는 남대문경찰서로 연행돼 자살 시도 동기 등에 대해 조사를 받고 풀려났다.

동양증권 제주지점 직원 고모씨는 "회장님 이러실 수는 없잖아요. 고객들이 피해를 입지 않았으면 한다"는 유서를 남긴 채 자살했다. 꼼꼼한 일처리로 동료와 고객들로부터 신뢰를 받아온 고씨는 지난 9월 말 동양그룹 계열사들이 줄줄이 법정관리를 신청한 후부터 큰 심적 고통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는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한 남편의 아내다.

피해자들 대부분 직원 권유로 상품 투자
평생 모은 재산 날리고 거리로 나앉을 판

고씨가 발견된 아반떼 차량 안에서는 냄비와 함께 번개탄 두 개가 발견됐다. 경찰 관계자는 고씨가 냄비 안에 번개탄을 피워 놓고 목숨을 끊었다고 말했다.

당시 제주지역 모 일간지에 의해 공개된 고씨의 유서 두 장에서는 고씨의 자살 원인을 추측해 볼 수 있는 구체적 정황이 담겨 있었다. 가족에게 남긴 유서에서 고씨는 "여보 정말 사랑하고 미안해. 애들 잘 부탁할게. 이런 선택을 하게 돼서 미안해. ○○(딸)야 ○○(아들)야 사랑한다. 엄마가 지켜줄게"라고 적었다.

나머지 하나의 유서는 현재현 회장에게 남겼다. 고씨는 유서를 통해 "동양회장님 이러실 수는 없는 거 아닌가요.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도 믿었습니다. 정말 고객님들께 조금이라도 이자 더 드리면서 관리하고 싶어서 그룹을 믿고 권유했습니다. 하루속히 개인고객님들 (피해가) 전부 해결됐으면 합니다"고 전했다.

고씨의 가족들은 출격에 쉽사리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동양사태가 직원들의 희망까지 앗아간 셈이다.

[ 장애인 딸 위해  ]
[17년 모은 돈 날려]

개인 투자자 중 가장 큰 규모의 손해를 본 이는 장애인 딸을 둔 캐나다 교포 이모씨다. 이씨는 중증 장애를 갖고 태어난 딸을 치료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다. 딸은 캐나다에서 17년 동안 뇌수술을 비롯해 7번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차도가 없었고 이씨는 자신이 사망한 뒤에도 딸이 혼자 생활할 수 있도록 목돈을 남겨놔야겠다고 생각하고 투자 상품을 찾던 중 동양증권 직원을 만났다.




이메일을 통해 상품 설명을 받던 이씨는 CP와 회사채에 투자하라는 직원의 말을 믿고 캐나다서 17년 동안 아끼고 아껴 모은 돈 29억원을 모두 투자했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직원은 투자설명서나 상품안내서조차 보여주지 않고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상품을 소개했다. 동양그룹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기 직전인 9월 중순에도 직원은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씨는 동양증권을 상대로 2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상태. 불완전판매 입증이 관건이다.

개별·공동소송전
금감원 조정 우선

동양사태 피해자들이 보상을 받을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동양사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법원의 채권회수율과 불완전판매율에 의해 결정된다. 동양그룹 법정관리 신청 계열사는 법원의 기업회생계획에 따라 채권회수율이 확정된다. 불완전판매율은 금감원이 인정한 불완전 판매건수가 많아질수록 높아진다.

불완전 판매를 통해 1000만원을 투자했을 경우, 법원에서 채권회수율을 60%로 정하고 불완전판매율이 40%로 결정됐다면 투자자는 회사채 발행회사로부터 원금의 60%인 600만원을, 판매한 증권사로부터 나머지 금액인 400만원의 40%인 160만원을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문제는 개인 투자자가 불완전판매를 인정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금융소비자연맹(이하 금소연)에 다르면 불완전판매에 의한 손해배상 공동소송은 투자성향, 투자이력 등 개인별 불완전판매의 정도가 다르다. 개별적으로 설명의무이행 정도가 다르며 더구나 원고인 피해 투자자가 불완전판매를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민사소송은 많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승소 가능성이 희박하다.

같은 약관을 적용한 금융사 '근저당설정비반환' 공동소송은 약관무효라는 대법원의 위법 판결이 있었음에도 원고의 개별 입증에 어려움이 있고 증거 부족 등으로 피해소비자들이 1심에서 패소판결을 받는 실정이다.

민사소송에서 법원은 불완전판매 행위를 조사할 수 없어 감사권이 있는 금융감독원이 감사와 조사를 해 불완전판매임을 밝혀주어야만 보상이 가능하다. 이 불완전판매비율의 조정안을 금융사가 수용하지 않아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비 지원까지도 검토하고 있는 금감원에 피해신고를 해 절차가 간편하고 신속한 분쟁조정절차를 거친 후에 상황에 따라 소송절차를 취하는 것이 유리하고 효과적이다.

금감원은 규정에 따라 소송진행 중인 사안은 민원이나 분쟁조정 대상에서 제외된다. 소송을 먼저 제기하면 비용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감원의 분쟁조정을 받을 수 없어 개별적 소송이나 공동소송 전에 반드시 금감원 조정절차를 먼저 밟는 것이 우선순위가 돼야 한다.

강형구 금소연 금융국장은 "금감원은 투자자의 소중한 재산을 투자부적격 회사의 회사채·기업어음을 매입하게 한 것은 불완전판매로 인정하고 투자자 보호를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여 이를 신속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며 "불완전판매 피해자들은 공동소송을 하기 전에 금융감독원에 반드시 피해신고를 해 분쟁조정을 거친 이후 상황에 따라 소송여부를 결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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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표 계승?’ 이재명정부 태양광 로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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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적으로 기후 위기가 가시화되면서 에너지 정책은 범국가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 환경부 장관 후보자의 발언으로 이재명정부의 에너지 정책 방향이 윤곽을 드러내는 모양새다.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어른거린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23일 대통령실은 “국회 기후위기특위에서 활동하는 등 미래 환경문제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온 3선 국회의원”이라고 소개하면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성환 의원을 환경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김 후보자는 22대 국회 기후위기특별위원회(위원장 한정애, 민주당) 위원으로 활동하며 탈원전·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노력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선공약 대통령실은 그가 “‘기후 위기는 모두의 생존 위기’라는 대통령의 문제의식을 잘 이해하고 그동안의 입법 경험을 바탕으로 환경문제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김 후보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안’ ‘환경친화적 자동차의 개발 및 보급 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 등을 발의한 바 있다. 이번 김 후보자의 지명으로 이재명정부의 환경 정책이 구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김 후보자는 지난 24일 오전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을 만나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모든 에너지 체계를 바꾸고 화석연료에 의존하지 않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체계를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뜻도 비쳤다. 그는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료가 오른다’는 우려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균등화발전비용(같은 양의 전력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가장 싼 전원은 이미 풍력과 태양광”이라며 “다만 아직 한국에선 여러 기회 비용, 시간 비용, 금융 비용이 쌓여 상대적으로 비쌀 뿐이다. 실제 요금이 오를 일은 없다. 오히려 그런 식의 접근이 대한민국의 에너지 전환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탈원전에 대해서는 “각 나라 특성에 따라 원전을 쓰는 나라가 있는데 한국도 탈원전을 바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주 에너지원으로 재생에너지를 쓰고 원전을 보조 에너지원으로 쓰는 것이 (이재명정부의) 탈탄소 정책 기조”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으로 신설 예정인 기후에너지부 장관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기후에너지부는 분리돼있는 기후와 에너지 관련 부처 업무를 통합한 조직이다. 그는 “기후에너지 문제를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지 빠른 시일 내로 큰 방향을 잡겠다”며 “국정기획위원회에서 조직개편안을 검토하고 있는 사안”이라고 말했다. “신재생에너지로 전환 필요” “원전은 보조 에너지원으로” 환경부 장관 후보자가 에너지 ‘전환’을 예고하면서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의 태양광 사업이 떠오른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내세운 바 있다. 이를 세부적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태양광 사업이 크게 대두돼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 문정부는 출범하면서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까지 높이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리기 위해 설비를 확충하기로 했다. 태양광, 풍력발전소 등이다. 당시 내용대로면 총 110조원에 이르는 돈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정부는 국가 예산과 공기업, 민간 등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정부 임기 내내 전국 단위로 태양광 사업을 위한 지원금이 뿌려졌다. 당시 문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대와 함께 탈원전 로드맵을 동시에 진행했다. 일부 원전이 영구적으로 정지됐고 짓고 있던 원전 공사가 중단됐다. 단계적 원전 감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나온 잡음이다. 특히 태양광 사업을 둘러싼 각종 비리 의혹은 정권이 교체된 이후에도 문정부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국가 주력 사업이었던 만큼 정권이 바뀐 이후 새 정부의 표적이 된 상황에서 실제 문제가 드러난 것이다. 천문학적 예산 투입 윤석열정부는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을 진행했다. 윤정부 국무조정실은 일부 표본만 조사했는데도 불구하고 2000억원이 넘는 돈이 불법으로 사용된 정황이 드러났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무조정실 정부합동 부패예방추진단은 전국 12개 지자체와 한국전력, 한국에너지공단을 대상으로 ‘전력산업 기반기금 사업’ 운영 실태에 대한 합동 점검을 벌인 결과 총 2267건(2616억원)의 위법·부당 사례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해당 기금은 산업자원통상부(이하 산업부)가 전기 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돈으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지원과 보급에 주로 사용됐다. 5년간 투입된 금액은 12조원에 이른다. 1차 조사에 따르면 신재생에너지 지원 사업에서 부적절한 대출과 보조금 부당 집행, 회계 부실 등이 적발됐다. 태양광 사업의 경우 점검 대상의 17%인 1129건에서 1847억원의 위법 대출 등이 확인됐다. 2차 점검에서는 적발 금액이 2배로 늘었다. 국무조정실은 2019~2021년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에 쓰인 금융지원사업(1조1325억원) 내역과 2017~2021년 보조금 지원 규모가 컸던 25개 지자체의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사업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금융지원 사업에서 4898억원, 발전소 주변 지역 지원 보조금 사업에서 574억원, 전력 분야 연구개발 지원사업에서 266억원, 기타 전력기금 사업에서 86억원의 부정 집행 사례가 나타났다. 당시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신재생에너지 지원금 대부분은 태양광 사업에 쓰였다”며 “가장 규모가 컸던 부정 금융지원 사업 사례 중 99%는 태양광 사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태양광 업자들은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불법 대출을 받았고 가짜 세금계산서로 공사비를 부풀려 지원금을 타냈다. 감사원 조사로 검찰 수사까지 대출을 받은 뒤 세금계산서를 취소, 축소하는 등 탈루가 의심되는 정황도 드러났다. 가짜로 버섯 재배 시설이나 곤충 사육 시설, 축사 등 농림축산업 시설을 만들어 놓고 신재생 시설을 짓겠다고 대출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 농지에 신재생 시설을 지을 때는 용도변경 등 인허가 절차가 필요하지 않고 생산한 전력을 팔 때 받을 수 있는 보조금 한도도 커진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한 마을회는 마을 창고를 짓겠다며 전력기금에서 돈을 받아 부지를 사들였지만 실제 창고는 짓지 않았고 부지는 마을회장이 6촌에게 되팔았다. 지방자치단체의 문제도 드러났다. 한 군은 타낸 보조금을 다 쓰지 못하고 약 24억원이 남자 이를 다른 계좌로 빼돌렸다가 적발됐다. 한 시는 보조금을 빼돌려 관용차를 사기도 했다. 감사원 조사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2023년 11월 ‘신재생에너지 사업 추진 실태’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목표와 이행, 인프라 구축, 관리 등 3개 분야로 나눠 추진 과정과 집행 전반을 들여다봤다. 감사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2017년 신재생 발전 목표를 상향하면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검토했지만 막상 후속 조치 이행에는 소홀했다. 감사원은 “톱다운(하향식) 방식으로 내려온 목표에 따라 무리한 계획이라도 수립해야 했다는 이유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데도 면밀한 검토 없이 강행되고 짧은 기간 내 일관성 없이 변경됨으로써 정책 혼선과 신뢰성 저하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정부서 전반적 점검 8000억 넘는 예산 줄줄 샜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었던 만큼 정부 부처가 이를 맞추기 위해 과도하게 정책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문정부가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야기될 수 있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을 감췄다는 지적도 나왔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따르면 산업부는 문정부의 국정 과제대로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늘릴 경우 2030년까지 전기요금을 40% 가까이 올려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시 청와대의 압박에 12년 동안 10.9%만 오를 것이라고 국민 부담을 축소했다. 태양광 사업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새만금 태양광 발전사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지난 1월 군산시청에 대한 추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 군산시 태양광 발전사업 수주 과정에서 뒷돈이 오간 정황이 포착됐고 이를 검찰에 수사 의뢰를 하면서 시작된 일이다. 당시 군산시장은 군산시가 1000억원 규모의 태양광 사업을 추진할 때 자신의 고교 동문이 대표로 있는 업체에 특혜를 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해당 업체가 사업자금을 조달하는 금융사가 제시한 연대보증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계약 체결을 지시했다는 게 감사원의 판단이다. 앞서 검찰은 새만금 태양광 사업을 주도한 회사 대표를 알선수재 혐의로 기소했다. 그는 태양광 발전사업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에게 로비를 해주겠다며 뒷돈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그의 진술로 비리 의혹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핵심 수사 대상에 올랐던 건설사 대표가 실종됐다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일도 일어났다. 관련 시장은 반응 오는 중 이 대통령이 기후, 에너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김 후보자가 재생에너지를 언급하면서 관련 시장이 다시 들썩이는 모양새다. 실제 태양광 관련 주가가 오르는 등 주식시장에는 벌써부터 반응이 나타나고 있다. 윤정부는 문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통째로 부정하다시피 했다. 반대로 문정부의 정책을 다시 끄집어낸 이정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