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대기업 전문경영인 빛과 그림자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10.21 18: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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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한마디면…파리 목숨 사장님

[일요시사=경제1팀] 파리 목숨이다. 3년을 넘기기가 너무 힘들다. 대기업 전문경영인 얘기다. 국내 500대 기업 중 3년 임기를 넘긴 이는 3명 중 1명. 경쟁이 치열한 30대 그룹, 10대 그룹은 사정이 더 심각하다. 독단적인 의사결정을 막고 합리적인 경영노선을 이끌던 전문경영인들이 최근 수난시대를 맞고 있다. 1973년 고 정수창 전 두산그룹 회장을 시작으로 올해로 40년째를 맞은 국내 전문경영인 체제의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국내 500대 기업 현직 전문경영인(CEO) 중 법정 임기 3년을 넘겨 재선임된 사람은 3명 중 1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30대 그룹, 10대 그룹 등 규모가 커질수록 CEO의 재선임 비율이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6일 기업경영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가 연말 재계의 사장단 인사를 앞두고 500대 기업 현직 CEO 516명의 재직기간을 조사한 결과, 3년 임기를 한 번이라도 넘긴 재직자는 총 188명으로 36.4%에 불과했다. 3명 중 1명꼴이라는 얘기다.

회사 규모 커질수록
재선임 비중 하락

규모가 큰 대기업으로 올라갈수록 CEO의 재선임 비중은 낮아졌다. 어려운 관문을 뚫고 CEO가 되더라도 임기를 채우기 어렵다는 것이다. 500대 기업 내 30대 그룹 소속 CEO의 경우 3년 이상 재직자는 총 227명 중 69명으로 30.4%에 불과했고, 10대 그룹은 150명 중 39명으로 다시 26.0%로 낮아졌다.

반면 30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중견 기업들의 3년 이상 중임자 비중은 41.2%로 대기업 그룹 계열사들보다 훨씬 높았다.


CEO 평균 임기로 따져도 500대 기업 현직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3.1년에 달한 반면 30대 그룹은 2.6년에 불과했다. 500대 기업 내 30대 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기업들의 CEO 재임기간은 3.6년으로 30대 그룹 소속보다 1년이나 길었다.

특히 신세계와 대림, 현대, 부영, 동국제강 등 5곳은 3년 이상 재임자가 단 1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세계와 동국제강 현직 CEO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0.6년에 불과했고, 부영도 0.9년으로 1년 미만이었다. 대림과 현대는 각각 1.1년, 1.6년이었다.

5대 그룹 중에서는 삼성의 재선임자 비중이 3.3%로 매우 낮았다. 총 30명 중 단 1명만이 3년 임기를 넘겼다. 5대 그룹 현직 CEO의 평균 재임기간은 롯데 3년→현대차 2.9년→LG 2.7년→SK 2.4년→삼성 1.6년이었다.

CEO 체제는 해당 분야의 전문적인 능력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경영인에게 거대 기업의 경영전략 전반의 수립과 이행권한 등을 맡기는 일이다. CEO는 기업 오너와 직원 사이에서 경영 관리를 수행하는 사람을 말한다.

국내 CEO 체제는 고 정수창 두산그룹 회장이 처음 열었다. 1967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선출된 고 박두병 두산그룹 회장은 공직에 전념하기 위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결심, "자기가 사장이라고 해서 반드시 아들이나 동생이 사장을 계승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은 있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박 회장이 선택한 후계자가 정 회장이었다. 정 회장은 광복 후 적산기업이 된 '소화기린맥주'에서 미군과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통역, 즉 의사소통 역할을 담당하면서 박 회장 밑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았다. 입사 7년 만에 동양맥주 상무에 올랐으며 박 회장과 함께 동양맥주 정상화, 양조기술 자립, 맥아공장 가동, 와인 ‘마주앙’ 생산 등 수많은 일을 함께 했다.


'CEO 수난시대' 3명 중 1명만 재선임
대부분 3년 임기 못 채우고 ‘집으로’
신세계·대림·현대·부영 '툭하면 교체'

하지만 전무 승진 후 2년 만인 1965년 정 회장은 돌연 삼성그룹 계열인 새한제지로 자리를 옮겼다. 보수적 경영을 하는 박 회장 밑에서는 CEO로서의 성장에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다.

4년간의 외도를 마친 그를 박 회장이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시 불렀고 정 회장은 1973년 박 회장 폐암 판정과 동시에 그룹 회장에 올랐다. 이후 정 회장은 10여년간 자리를 지키며 두산그룹 제2 중흥기를 이끈 후 1981년 박두병 회장의 장자인 박용곤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가 1991년 페놀유출 사건이 발생하자 다시 그룹 총수로 복귀, 상황을 안정화시키며 능력을 발휘했다.

정 회장의 CEO로서의 탁월한 능력은 한국 재계에 CEO 시대를 열었다. 과거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이 분리되지 않아 소유주가 직접 경영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던 한국 재계도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서 CEO의 필요성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국내 대기업 오너 못지않은 CEO 3인방으로 꼽히는 이들은 김창근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협) 의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이석채 KT 회장이다.

1974년 선경합섬(현 SK케미칼)에 입사, 현재 SK에 재직 중인 임직원 중 입사 기수가 제일 빠른 최고참인 김 의장은 국내 4대 그룹 중 하나인 SK의 수장으로 SK 최고 의사결정지구인 수펙스협을 이끌고 있다.

그는 오너 부재는 물론 한·중·일 권력교체, 미국 재정위기 등 유례없는 격동기 속에서도 경영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5월 초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미국 순방에 경제 사절단으로 동행, 오너 총수들 사이에서 "우리 정부의 창조경제와 미국 정부의 국가혁신전략이 시너지 효과를 내고 그 결과로 글로벌 경제가 새롭게 활력을 찾을 수 있도록 기업도 노력하겠다"며 목소리를 냈다.

지난해 3월 정기 주주총회를 통해 대표이사로 연임된 정 회장은 결단력 있는 리더십으로 자신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하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2011년 한국거래소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주회한 '기업지배구조 우수기업'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주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노력한 점과 감사 업무의 독립성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창근·정준양·이석채
국내 CEO 3인방

정 회장은 미국 발 금융위기와 유럽 발 재정위기 등 세계 경제 위축이라는 어려운 경영여건 속에서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 베트남 냉연공장 준공, 인도네시아 제철소 착공 등 장기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09년 취임한 이 회장은 희망퇴직을 통해 직원 6000여 명을 줄이고 KT와 KTF의 합병을 두 달 만에 이끌어내는 등 과감함으로 승부했다. 같은 해 말 아이폰을 국내에 들여오며 스마트폰 혁명을 이끌었으며 지난 1월에는 숙원이던 프로야구 10구단 창단에 성공했다.


이처럼 CEO 체제는 경영인이 전문성을 발휘하고 조직 내부에서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투명성 높은 주주 중시 경영을 펼친다는 점 등이 장점으로 꼽힌다. 그러나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에 어긋나는 방향으로 의사결정을 하거나 자신의 사익을 추구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실적부진·사고책임
잇따른 CEO 교체

최근 오너 일가인 설윤석 전 사장이 경영권을 내려놓는 등 유동성 위기에 빠져있는 대한전선의 경우 CEO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사익추구가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사람이 많다.

회장 비서실장 출신인 임종욱 전 부회장은 2002년 대한전선 대표이사에 오른 후 무주리조트를 시작으로 선인상가, 남부터미널부지 매입, 쌍방울 인수, 진로인수전 참여, 이탈리아 프리즈미안, 남광토건 등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진행했다. 2008년까지 투자한 금액은 무려 2조원에 달한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도래로 부동산과 증권 등에 투자해 몸집을 불렸던 대한전선에 유동성 위기가 찾아왔다. 2009년에는 54년간 이어온 흑자 신화가 붕괴됐다. 총자산 중 절반 이상이 투자자산이던 대한전선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견디지 못했고 2009년에는 차입금 규모가 2004년의 8배가 넘는 2조5000억원에 달하면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설 전 사장이 부회장에 오른 2010년은 상황이 더 악화한 후. 임 전 부회장이 망쳐놓은 회사를 살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임 전 부회장은 지난해 11월 회사의 공금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당시 업계는 대기업 오너뿐만 아니라 CEO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도 엄하게 물어야 한다는 법원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박기석 전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는 지난 7월26일 발생한 삼성정밀화학 내 SMP(폴리실리콘 생산법인)사의 신축 공사장 물탱크 파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8월1일 전격 경질됐다. 이 사고로 삼성엔지니어링은 3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15명의 사상자를 냈다.

지난 6월 물러난 서종욱 전 대우건설 사장의 경우 사측은 서 전 사장이 과로로 인한 건강상의 이유로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밝혔지만 업계 안팎에서는 4대강 사업 담합과 수주관련 비리의혹 등 수사에 연루되자 서 전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기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했다.

실제로 대우건설은 4대강 담합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의 받고 있는데다 건설업자 윤모씨의 사회 유력인사 불법로비의혹 수사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당했다. 서 전 사장은 지난 2월 낙동강 칠곡보 사업의 비자금 비리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자격으로 검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CEO 체제는 실적 중심의 성과경영을 낳기도 했다. 경영실적에 따라 CEO에 대한 냉혹한 평가가 이뤄졌고 이는 CEO들의 단명으로 이어졌다. 보령제약그룹의 경우 계열사 보령메디앙스에서 2006년 김은정 부회장 취임이후 5년간 CEO 4명이 교체됐다. 매출 실적 부진이 이유였다. 보령메디앙스의 최근 3년간 당기순이익은 10억원 안팎으로 특히 2011년에는 적자 전환해 10억원의 손실을 낸 바 있다.

2008년 3월 취임한 이상희 대표이사 사장은 1년6개월 만인 2009년 12월 해임됐으며 2010년 3월 취임한 유승재 대표이사 부사장은 9개월 만에 사임했다. 2011년 부임한 최기호 대표이사 또한 1년 후 사임했다. 현재는 경영전략실장을 지낸 윤석원 대표이사가 김은정 부회장과 각자 대표를 맡고 있다.

체제 도입 40년…오너 경영 전환 목소리도
장점만 살린 '오너+CEO' 협업체제 부상

증권가에서도 CEO 교체는 이어졌다. 실적 부진이 정권교체와 맞물려 몇몇 증권사 CEO들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 사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6월10일에는 황성호 전 우리투자증권 대표이사가 사의를 표명했다. 황 전 사장은 지난해 6월 연임에 성공했으며 임기는 오는 2015년 6월까지였다.

이에 앞서 6월4일에는 이승국 전 동양증권 사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했다. 지난해 현대증권 부사장에서 동양증권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던 이 전 사장은 취임 1년 만에 중도하차하게 됐다. 업계는 동양증권의 CEO 교체를 두고 실적악화와 함께 그룹 차원의 구조조정 진행에 따른 이유로 분석했다.

5월23일에는 현대증권이 김신·윤경은 각자 대표체제에서 김신 대표의 사임에 따라 윤경은 단독 대표체제로 변경됐다. 김 전 대표는 지난해 4월 현대증권 사장에 취임, 1년여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초 임기는 2015년 4월까지였다.

김 전 대표의 사임 이유로는 현대그룹 경영진과의 갈등과 업계의 전반적 불황 속 실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짊어졌다는 게 중론이다.

CEO 교체 바람은 유관기관에도 불었다. 김봉수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지난 5월 자진 사퇴한 데 이어 우주하 코스콤 사장도 사의를 표명했다.

대기업 전현직 CEO들이 법정구속, 갑작스런 퇴진 등 잇따른 악재로 수난을 겪자 재계는 'CEO체제의 한계'라며 술렁이고 있다. 연말 대기업 인사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업계 분위기가 전면적인 CEO교체 쪽으로 흘러갈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현재 진행 중인 국감에 기업인 200여 명이 증인으로 채택되고 '기업국감'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각 사 CEO들은 좌불안석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계에서는 CEO체제 전환 이후 실적부진 등 악재가 이어진다면 오너 경영 체제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임기가 정해져 있다고 하더라도 재임기간 동안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는 CEO체제는 기업의 내적 성장보다 가시적인 성과에 치중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장기적인 전력을 앞세워 거시경제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추진력을 갖춘 오너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재계 연말 인사
CEO 좌불안석

하지만 오너 경영은 지나치게 독단적인 의사결정으로 기업을 결정적인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오너 경영과 CEO 경영의 장점만을 살린 '협업'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가 대표적인데 이건희 회장의 삼성전자는 오너 경영이지만 최지성·권오현 부회장이 CEO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그룹에 행사하고 있다.

물론 '오너 경영' 'CEO 경영' '오너+CEO 경영' 중 어느 쪽이 더 유리한지 지금 당장 판단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성공적인 오너들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수난을 겪고 있는 CEO들이 고생 끝에 빛을 볼 수도, 협업 체제의 단점이 나타날 수도 있다.

협업 체제로의 전환을 주장하는 한 경제전문가는 "어느 한쪽이 옳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각각의 체제의 장점만을 살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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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