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잡힌' 최세용, 필리핀 연쇄납치사건 추적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21 1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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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의문의 실종 수수께끼 풀리나

[일요시사=사회팀]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에서 납치 강도 행각을 벌인 최세용(46)을 태국 당국으로부터 인계받아 지난 16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압송했다. 2010년 이후 필리핀에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은 14명이다. 최씨를 통해 실종사건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지난 2007년 안양의 한 환전소에서 20대 여직원을 살해하고 1억8500만원을 빼앗아 필리핀으로 도주한 최세용씨. 필리핀에서 숨어 지낸 그는 지난해 태국으로 입국하려다 붙잡혀 현지서 징역 9년10월을 선고받았다. 법무부는 송환 장기화를 우려해 형집행 전 ‘임시인도’ 방식으로 최씨 송환을 추진해 부산으로 압송했다. 그간 필리핀에서 발생했던 10여건의 한국인 여행객 납치강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필리핀 납치단
리더 잡혔다

지난 16일 반바지 트레이닝복, 슬리퍼 차림으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나타난 최씨. 마른 체격과 검게 그을린 피부는 오랜 도피생활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씨는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기다리는 취재진을 발견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 대답 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다 대기하던 호송차량으로 이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태국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저항 없이 순순히 송환에 응했다”며 “곧바로 부산지방경찰청으로 인계돼 조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2007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의 한 환전소에서 20대 여직원을 살해하고 필리핀으로 도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8∼2011년 필리핀 마닐라 등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한국인 관광객에게 여행편의를 제공해 주겠다고 유인한 뒤 납치해 석방금 명목으로 수억원을 빼앗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후 필리핀에서 발생한 10여건의 한국인 여행객 납치강도 사건 역시 최씨가 저지른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최씨는 필리핀에서 숨어 지내다 지난해 11월 태국으로 입국하려다 붙잡혔고 여권 및 공문서 위조 등 혐의가 드러나 올해 초 태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9년 10월을 선고받았다.

한국서 살인
외국서 납치

법무부는 송환이 늦춰질 경우 살인과 납치강도 사건의 진상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형 집행중인 최세용을 ‘임시인도’ 방식으로 인계해 줄 것을 태국 당국에 요청했다.

한국·태국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국내로 송환된 최씨는 수용되기 전 “태국에서 오래 있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말하겠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최씨는 부산에서 부산·서울·경기·충북 등 5개 관할 지방경찰청의 조사를 받게 된다.

이번 송환은 태국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한국 국적의 범죄자를 현지에서 형 집행 전에 임시인도 하는 최초 사례다. 임시인도 방식은 해당 국가에서 선고된 형 집행이 종료된 후 이뤄지는 통상적인 범죄인 인도 방식과 달리 선고된 형이 집행되기 전에 진행된다.

그는 국내 수사·재판 과정을 거쳐 법원에서 형이 선고되면 태국으로 다시 인도돼 태국 당국에서 선고받은 9년10월의 징역형에 대한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이후 태국에서 형 집행이 종료되면 한국으로 다시 송환돼 국내 법원에서 선고받은 형을 살게 된다.

필리핀 납치단의 리더였던 최씨는 앞서 지난해 11월, 태국에서 검거됐다. 한국경찰과의 공조로 태국 이민국 직원들이 비자를 갱신하는 최씨의 부인을 추적, 태국 치앙라이의 한 커피숍에서 검거한 것이다. 공범인 김종석(41)은 지난해 10월 필리핀 현지에서 붙잡혔지만 가족들에게 유서를 남긴 뒤 경찰서 유치장에서 자살했다. 행동대장 김성곤(41)은 지난해 5월 필리핀 경찰에 잡혔다. 이들은 하나같이 필리핀에서의 납치 행각에 대해서는 발뺌하고 있다.


납치단은 2007년 환전소 여직원 살해 후 지명수배돼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도 범죄를 일으켰다. 바로 홍석동(35)을 납치한 것이다. 이들은 필리핀에서 홍석동을 납치하기에 앞서 말레이시아에서 김원빈을 납치해 구타하여 금품갈취를 시도한 뒤 자신들의 범행에 가담시켰다. 그리고 홍석동을 납치했다.

안양환전소 여직원 살해 피의자 송환
사건 직후 도주…태국 입국하다 검거

2011년 9월, 서울의 한 정보기술(IT) 업체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휴가를 얻어 5박6일간 필리핀 세부로 홀로 여행을 떠났던 홍씨. 얼마 후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필리핀 현지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는데 미성년자였다”며 “부모들이 찾아와 합의금을 내놓으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홍씨의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1000만원을 송금했다.

이튿날 다시 전화가 왔다.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 티켓 값을 또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여행갈 때 왕복 티켓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수상함을 느꼈다. 당시 홍씨 아버지는 “하루만 지나면 귀국인데 왜 돈이 필요하냐”며 참으라고 했다. 이후 홍씨와는 연락이 끊겼고, 돌아오기로 한 날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 아들은 없었다.

가족들은 아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보고 경찰과 외교통상부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기다려 보라는 것. ‘카지노에 빠졌거나 여자를 만나 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필리핀 현지에서 누군가 홍씨의 신용카드로 돈을 뽑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보했다. 여동생 경화씨(24)는 “돈을 인출하는 사람이 오빠가 아니었다”며 “이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2011년 12월 누군가가 “석동씨의 행방을 알려 주겠다”며 수천만원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는 지난해 6월까지 대여섯 차례 계속됐다. 가족들은 이 목소리를 녹음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곧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가족들에게 들려왔다. 필리핀으로 여행 갔다가 납치당한 뒤 돈을 주고 풀려났다는 피해자 3, 4명이 음성파일 속 인물에게 똑같이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 비산동에서 발생한 환전소 여직원 살해 강도단의 부두목인 김종석이었다.

한국인만 노린
납치 전문 강도단

대부분은 돈을 주고 풀려나 귀국했지만 홍씨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부두목 김종석이 지난해 10월 필리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그가 아들의 행방에 대한 결정적 증언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소식이 전해진 그날 김씨는 필리핀 경찰서 유치장에서 유서를 남긴 채 목매 숨졌다. 아들의 행방을 알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가족들은 절망했다. 이후 납치단의 두목 격인 최세용이 태국 경찰에 붙잡혔지만 홍씨 행방에 대해선 모른다는 입장을 취했다.

절망에 빠진 홍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평소 자주 다니던 산책로에서 농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아내와 딸, 친척, 친구 등에게 쓴 5통의 유서가 있었다. 홍씨의 아버지가 편지지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쓴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절하게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당신 힘든 짐만 지고 먼저 가지만 이승에서 못해준 거 죽어서라도 꼭 갚을게” “어디 나무랄 데 없는 우리 딸 그저 아빠는 착한 딸에게 나쁜 모습만 보여줬구나. 불쌍한 엄마, 항상 옆에서 잘 보살펴 드려라. 아빠가 하늘에서 지켜볼게”

사실 이들은 홍석동을 납치하기 전에 두 명을 더 납치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윤철완(39)이다. 김종석은 윤씨의 이름으로 윤씨의 동생에게 신용카드를 스캔해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 카드로 총합 3460만원이 인출됐다. 예비역 공군 중령인 윤씨도 2010년 8월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다가 행방불명돼 생사가 불분명하다. 현재 납치단 리더 최씨가 붙잡혔지만 아직 홍씨, 윤씨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 사건을 심층 취재했다. 또한 <딴지일보>는 ‘죽지않는 돌고래’라는 필명을 쓰는 기자가 이 사건을 다뤘다. 그런데 이 기자는 김종석으로부터 살해협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김씨는 <딴지일보> 미디어전략팀 ‘게으른 수다쟁이’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해 납치사건과 관련한 필리핀 현지 제보자로 위장해 취재팀장 ‘죽지않는 돌고래’를 찾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평범한 가족에 비극을 낳은 납치단의 수법은 간단했다. 이들은 범행 대상을 인터넷 카페 등에서 찾았다. 필리핀 여행 커뮤니티에 ‘필리핀 배낭여행 동반자를 찾는다’ 등의 글을 올린 여행객의 인적 사항과 연락처를 파악한 후 현지에서 아는 척을 하며 접근했다. 공항 등에서 반가운 척 “한국인이 아니냐?”라고 물으며 접근하기도 했다.

2008∼2011년 현지 강도 혐의 수사
한인 상대 범죄조직 실체 드러날까
14만∼27만원이면 청부살인도 가능

그런 후에는 한인 관광객에게 여행 편의를 제공하겠다며 유인해 납치한 뒤 현지 여성(미성년자)과 강제로 성행위를 시켰다. 외국인이 현지인을 상대로 저지르는 간통죄는 필리핀에서 중형에 처해진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지트인 펜션 등으로 유인한 후 쇠사슬 등으로 결박했다. 겁에 질린 피해자를 협박해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돈을 송금하도록 했다.

필리핀 유학 중 최씨 일당에게 납치되었다가 돈을 주고 풀려났다는 이모씨는 “납치당하면 돌아갈 확률은 50 대 50이다. 돈을 받아도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죽인다. 필리핀은 섬이 많은 나라여서 여기저기 숨겨놓고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약을 먹이고는 경찰에 신고한다며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목격도 했다. 나도 납치범들에게 당했다가 신분증까지 뺏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라며 몸서리를 쳤다.

지난해 8월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 인근에서 40대 한국인 재력가 정 아무개씨(당시 41세)가 차량으로 납치·살해된 후 암매장되었다. 범인은 정씨의 돈을 노린 한국인 일당들이었다. 이들은 카지노에서 수억원을 잃자 정씨의 돈을 노리고 범행에 나섰다. 외교부 관계자는 “필리핀 내 불법 총기 유통 등으로 한국 수배자들이 필리핀을 도피처로 선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필리핀 사건들
진실 밝혀지나


필리핀은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 돈만 있으면 누구든 총기를 구입할 수 있다. 불법 사제 총기가 넘쳐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반면 불안한 치안 때문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문제는 경찰도 치안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다. 범죄 조직과 결탁한 경찰도 흔히 볼 수 있다. 필리핀에서 10년 동안 거주했다는 한 교민은 “필리핀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총을 구입할 수 있고, 청부 살인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만 주면 경찰도 얼마든지 매수할 수 있다. 물론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암묵적인 ‘청부 금액’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현지인 등에 따르면 일반인은 1만 페소(한화 약 27만원)면 청부 살인 의뢰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5천 페소(한화 약 14만원)에 청부 살인에 나서는 현지인도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한국인 납치에 대해서는 주필리핀 영사관에서 맡고 있다. 한국인 실종 사건이 늘자 2010년 10월에 필리핀 경찰청과 각 지방청에 한인 관련 강력 범죄를 담당할 ‘Korean Desk’를 설치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경찰관 한 명(경감)을 파견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 정부나 주필리핀 대사관 측의 무성의를 질타하고 있다. 실종자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는 뜻에서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현지 영사관 직원들과 필리핀 경찰이 공조 체제를 구축해 실종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지 교민들은 “외국인이 자신의 일과 본분만 잘 지키면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행 금지 구역이나 위험 지역에는 절대 가서는 안 된다. 여행 전문가 등은 “필리핀은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행지에서 밤거리를 혼자 걷거나 번화가일지라도 으슥한 골목길은 피해야 한다. 또 필리핀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유흥업소 여종업원이나 성매매 여성과 숙박업소에 들어갔다가 여성과 결탁한 강도나 경찰에게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특히 인터넷 카페 등에 개인정보의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이 정보를 범행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현지인과는 가급적 접촉을 삼가야 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필리핀 단체관광객 납치 전말
못 믿을 여행가이드

필리핀으로 여행 간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한 후 돈을 받고 풀어준 현지 여행가이드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대전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이종림 부장판사)는 지난해 초 필리핀 마닐라로 여행을 떠났던 충남 천안의 한 단체 회원들을 납치하고서 몸값을 받고 풀어준 혐의(인질강도)로 기소된 A(49)씨에 대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2월 여행가이드 B(34)씨와 공모해 필리핀 마닐라로 여행을 떠났던 충남 천안의 한 체육회 회원 12명 중 4명을 현지 경찰을 동원해 납치한 뒤 석방 대가로 1인당 600만원씩 모두 2400만원을 받고 풀어준 혐의로 기소됐다.

현지 경찰 동원해 인질로 잡아
1인당 600만원씩 받고 풀어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필리핀 현지 경찰을 동원해 피해자들을 부당하게 체포·감금한 뒤 그들을 인질 삼아 가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안으로 죄질이 매우 중하다”며 “피고인이 비슷한 범행으로 형의 집행을 마친 뒤 누범 기간에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에 비춰 엄히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필리핀에서 구속돼 있었던 점, 범행으로 인한 피해액이 회복된 점 등은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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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고 흔드는’ 민주당 꽃놀이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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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1일 이재명정부의 첫 정기 국회가 열리면서 100일 대장정이 시작됐다. 늘 그렇듯 각종 입법과 개혁, 예산안 등을 두고 여야가 거세게 충돌할 것으로 예상된다. 개회 첫날부터 기싸움이 만연한 가운데 거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고삐를 틀어쥐면서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9월에 접어듦과 동시에 빽빽한 일정이 여야를 기다리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오는 10일, 국민의힘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이 진행되고, 15~18일 나흘 동안 정부를 상대로 ▲정치▲외교 ▲통일·안보 ▲사회 ▲교육 ▲경제 등 대정부질문이 예정됐다. 벌써부터 국정감사 제보센터를 개설하는 의원실도 눈에 띄었다. 사면초가 국민의힘 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에서 민생과 성장, 개혁 안전 등 4대 핵심 과제를 골자로 한 224개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검찰개혁, 금융위원회 등 정부조직법 개정을 포함해 언론개혁, 대법원 개혁 등 공약으로 내걸었던 법안도 지체 없이 빠르게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계획을 ‘입법 폭주’라고 비판하며 ‘경제·민생·신뢰 바로 세우기’를 기조로 하는 100대 입법 과제를 선정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미래 첨단산업 육성을 비롯한 경제 활성화 및 민생경제 회복, 청년 희망 및 취약계층 돌봄 등을 통해 국민신뢰를 회복하겠다는 계획이다. 큰 틀에서 봤을 때 이번 정기국회는 인사청문회와 대정부질문을 둘러싼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 특히 인사청문회서 국민의힘은 최교진·주병기 후보를 정조준하면서 이정부의 ‘인사 실패’ 프레임을 부각시키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먼저 국민의힘은 최 후보의 과거 음주 운전 전력과 천안함 폭침 관련 음모론을 제기한 것을 문제 삼았다. 당내 교육위원회 간사인 조정훈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최 후보는 인사청문회에서 음주 운전, 학생 체벌, 막말, 천안함 음모론 제기, 부산·대구 폄하 발언, 입시 비리 조국 사태 옹호 등 셀 수 없는 범죄와 논란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며 “그 사과가 진심이라면 자진 사퇴하라. 이재명정부는 후보를 즉각 지명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주 후보에 대해선 세금 ‘상습 체납’ 이력 등을 파고들었다. 국민의힘 강민국 의원실에 따르면 주 후보와 배우자가 공동 소유한 아파트에는 압류 등기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주 후보는 종합소득세 납부기한도 여러 차례 어겼으며 2023년(406만원)과 2024년(183만원) 종합소득세도 올해 6월에야 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민주당은 통일교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 체포동의요구서에 대한 국회 표결을 벼르고 있다. 앞서 지난 1일 권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제출된 만큼 국회의장은 요구서가 접수된 후 다음 본회의인 오는 9일에 국회 보고를 거쳐 72시간 이내에 표결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다만 국민의힘 교섭단체 연설일인 10일에 체포동의안을 처리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있어 이날을 제외한 11일 또는 12일 처리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이정부 첫 정기국회 100일 대장정 권성동 체포동의안 변수도 ‘주목’ 체포동의안은 무기명 투표로 진행돼 국회 의석 과반을 차지한 민주당의 주도하에 가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권 의원은 혐의를 부인하며 체포동의안 처리와는 관계없이 구속 적부심사를 받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민주당은 야당 교섭단체 대표연설 일정에 저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집어넣으려 한다”며 “이는 야당 대표 연설을 덮으려는, 국회를 정치 공작 무대로 삼으려는 행태”라고 주장했다. 이어 “우원식 국회의장은 민주당과 정치적 일정 거래에 저의 체포동의안을 이용하지 말라”고 밝혔다. 국회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였던 만큼 결국 개원 첫날부터 여야가 격돌했다. 우 의장은 “차이보다 공통점을 통해 함께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화합의 메시지”를 예로 들며 개회식에서 한복 착용을 권유했지만, 국민의힘은 “국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이재명정권의 독재정치에 맞서자는 심기일전의 취지”라며 검정 양복과 검정 넥타이, 근조 리본을 맨 상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민주당 한준호 최고위원은 “정부와 여당에 항의하는 차원의 퍼포먼스라고 들었지만 정작 애도해야 할 대상은 국민의힘 자당”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황명선 최고위원 역시 “국민이 국회에 바라는 것은 희망과 미래지, 장례식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국회 상임위에서도 크고 작은 해프닝이 발생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전체회의서 추미애 법사위원장이 ‘검찰개혁 공청회 계획서 채택의 건’을 표결하려 하자 국민의힘 의원이 위원장석 앞으로 몰려가 항의했고, 초선인 민주당 이성윤 의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들어가시라”고 목소리를 높이자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초선은 가만히 앉아 있어” “아무것도 모르면서, 앉아 있어”라고 반말로 말한 것이 문제가 됐다. 굽히지 않는 강대강 매치 이를 두고 범여권에서는 나 의원을 향한 질타가 쏟아졌고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초선 의원은 의정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냐”며 “5선 의원이 가만히 있으라면 무조건 따라야 하냐. 초선 의원이 가마니인가”라고 직격했다. 정 대표는 “초선 의원이 무엇을 모른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 의원은 일단 예의를 모르는 것 같다”고 공개적으로 저격했다. 검찰개혁 관련 공청회에서도 설전이 오갔다. 오는 25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담길 검찰개혁안의 핵심은 검찰청 폐지와 수사·기소권 분리 및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 신설인데, 국민의힘이 이를 두고 “검찰해체법을 통해 독재 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반발하면서 제동을 건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검찰개혁에 대한 국민적 여론이 높다는 점을 들어 추석 전에 개혁을 완수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오는 25일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검찰개혁안을 통과시킬 것으로 보인다. 3대 특별검사(내란·김건희·순직해병)의 수사 인력과 기한을 확대하고 재판 중계를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은 ‘더 센 특검법(특검법 개정안)’도 민주당 주도로 상정됐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특검 수사 기간은 기존 한 차례 30일 연장에서 두 차례, 최대 60일까지 연장할 수 있게 된다. ‘3대 특검(내란·김건희·순직해병)’ 재판의 녹화 방송 중계도 가능해진다. 재판 내용이 공개돼야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을 것이란 교훈을 후손에 남겨야 한다는 게 민주당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노란봉투법도 쟁점이다. 국민의힘이 ‘사용자’와 ‘노동쟁의 대상’ 범위를 제한하는 보완 입법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여야의 입법 주도권 싸움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의힘은 “파업 시 대체 근로 허용, 사업장 점거 금지, 형사처벌 규정 개선, 최소한의 방어권 보장도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오는 12월까지인 정기국회에서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민주당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 대표는 소상공인연합회를 찾아 중소기업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등 기업 달래기에 나서면서 경제 행보를 넓히고 있다. 저항해도 질질∼ 국민의힘은 매일같이 보이콧과 논평을 쏟아내지만 무용지물이다. 의석수로 민주당을 이길 수 없을 뿐더러, 특검의 대대적 압수수색 등 당 내부도 시끄러운 만큼 민주당이 휘두르는 대로 속절없이 끌려다니는 형국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겨냥해 ‘야당 탄압’ ‘야당 말살’ 프레임 씌우기에 나섰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정치 특검이 연이틀 국민의힘 심장부에 쳐들어왔다”며 “법사위에서는 특검 기간을 연장하고, 특별재판부도 설치하고, 재판까지 검열하겠다는 무도한 법들이 통과될 예정”이라고 소리 높였다. 오세훈 서울시장도 민주당을 향해 “요즘 정부여당을 보면 폭주 기관차를 떠올리게 된다”며 “역사적 전례를 보면 폭주 기관차는 반드시 궤도를 이탈해 전복된다”고 꼬집었다. 특검이 국민의힘 압수수색을 시도하고 민주당이 내란특별법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지금처럼 과도한 행태를 계속 보이면 국민의 냉엄한 견제가 시작될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오 시장은 “지금 국민의힘은 정권을 잃어버리고 이제 겨우 전열을 재정비하는 중”이라며 “그런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과도한 정치 공세로 야당을 뒤흔드는 폭주 기관차의 모습에서 저는 정말 전복이 멀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송언석 원내대표도 “(이번 특검은) 이재명정부의 앞잡이를 자처하고 있는 조은석 정치특검”이라며 “국회의 권위와 헌정 질서를 파괴하려는 이재명정권과 특검의 야당 탄압에 맞서 끝까지 싸우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풍 기우제” 오히려 똘똘 뭉쳤다 윤석열·김건희 지지율 올리는 주역 오히려 민주당은 단일대오로 뭉치면서 “역풍 기우제”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민주당이 야당이던 당시 개혁을 앞세워 조금이라도 앞서 나가려고 하면 역풍 타령이 이어졌다”며 “이는 개혁에 걸림돌이 된다. 지금이 개혁 적기다. 순풍이 부는데 이를 자꾸 역풍이라 하는 건 민주당이 돛을 펼치는 걸 막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을 당선시킨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목소리가 당원 전체의 목소리로 인식돼 당분간은 이들이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게 정치권 관계자의 중론이다. 정치 효능감을 느낀 강성 지지층이 당 분위기는 물론 방향까지 주도하는 만큼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민주당 의원들의 강경한 태도가 요구된다는 설명이다. 날이 갈수록 민주당 의원들의 혀가 독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게다가 강성 지지층에게 있어 지금은 ‘이재명과 개혁의 시간’이다. 아직 국민의힘이 ‘내란 동조범’이라는 꼬리를 떼지 못한 만큼 여야 협치에서 국민의힘은 논외 대상으로 여겨진다. 범여권 의석수를 합하면 180석이 넘는 만큼 입법 과정에서도 국민의힘 눈치를 보거나 숙일 필요가 없다. 정부여당 지지율이 소폭 하락하더라도 다시 솟아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씨가 수사에 비협조적일수록 민주당을 향한 여론이 다시 우호적으로 변하는 상황을 노리는 것이다. 그 예시가 바로 윤 전 대통령의 구치소 CCTV 사건이다. 윤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거부하며 속옷만 입고 있었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국민의 관심이 다시 전 정권으로 쏠렸다. 국회 법사위원장인 추미애 의원은 자신의 SNS에 “체포영장을 모면하려 한참 나이 차이가 나는 젊은 교도관들을 상대로 온갖 술수와 겁박을 늘어놓는 궁색하고 옹졸한 모습뿐이었다”고 비판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한때 대통령이셨던 분 아닌가, 옷을 입어달라”는 말에 “나 검사 27년 했다” “내 몸에 손대지 마라” “이거 따르면 앞길이 구만리인 여러분 어떻게 할 거냐” 등 극구 반발했다. 추 의원은 “(윤 전 대통령은) 내란의 밤에 불법 명령을 내리고, 사령관들에게 따르라고 거듭 재촉해 군 간부들의 신세를 망쳐 놨다”며 “재판 거부와 수사 방해, 회피로 책임지기를 거부하면서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갈수록 첩첩산중 여기에 국정감사까지 줄지어 있어 민주당의 강경한 태도가 더욱 강해질 것이란 해석이다. 국정감사는 흔히 야당의 시간으로 여겨지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탄핵의 강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정기국회가 시작된 만큼 국민의힘은 갈 길이 멀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악재가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터지니 빠르게 수습해도 세월이 걸릴 것 같다”고 푸념했다. 이어 “걱정인 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이다. 수사가 끝나고 상황이 일단락돼도 속은 여전히 곪아 있을 것”이라며 “(민주당은) 계속해서 밀고 들어올 텐데 여기에 대응할 현실적인 방법이 아직은 없어 보인다. 언제까지나 민주당의 실책에 기댈 수만은 없는 노릇”이라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민주당 또 다른 솟아날 구멍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 띄우기에 나섰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오는 22일부터 지급되는 정부의 2차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언급하며 “지난번 1차 소비쿠폰이 마중물이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물이 콸콸 나오는, 경제계에 활기가 넘치도록 하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것만으로 재계엔 긍정의 시그널을 줬다”며 “주가도 3200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고 시총이 700조원 늘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 역시 “이정부 출범 이후 실행한 민생소비쿠폰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22일부터 발급되는 2차 소비쿠폰은 내수와 소비 회복을 더욱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여당 의원들의 평가로 미뤄볼 때, 민주당은 정기 국회에 돌입하면서 정쟁으로 치우친 국회를 벗어나 민생과 경제로 시선을 돌리며 다시 한번 지지율 견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