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잡힌' 최세용, 필리핀 연쇄납치사건 추적

  • 이광호 khlee@ilyosisa.co.kr
  • 등록 2013.10.21 1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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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 의문의 실종 수수께끼 풀리나

[일요시사=사회팀]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필리핀에서 납치 강도 행각을 벌인 최세용(46)을 태국 당국으로부터 인계받아 지난 16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으로 압송했다. 2010년 이후 필리핀에서 실종된 한국인 관광객은 14명이다. 최씨를 통해 실종사건의 열쇠를 찾을 수 있을까.



지난 2007년 안양의 한 환전소에서 20대 여직원을 살해하고 1억8500만원을 빼앗아 필리핀으로 도주한 최세용씨. 필리핀에서 숨어 지낸 그는 지난해 태국으로 입국하려다 붙잡혀 현지서 징역 9년10월을 선고받았다. 법무부는 송환 장기화를 우려해 형집행 전 ‘임시인도’ 방식으로 최씨 송환을 추진해 부산으로 압송했다. 그간 필리핀에서 발생했던 10여건의 한국인 여행객 납치강도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필리핀 납치단
리더 잡혔다

지난 16일 반바지 트레이닝복, 슬리퍼 차림으로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나타난 최씨. 마른 체격과 검게 그을린 피부는 오랜 도피생활을 여실히 보여줬다. 최씨는 입국장에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기다리는 취재진을 발견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아무 대답 없이 무표정으로 일관하다 대기하던 호송차량으로 이동했다.

경찰 관계자는 “태국에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아무 저항 없이 순순히 송환에 응했다”며 “곧바로 부산지방경찰청으로 인계돼 조사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씨는 2007년 안양시 동안구 비산동의 한 환전소에서 20대 여직원을 살해하고 필리핀으로 도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2008∼2011년 필리핀 마닐라 등에서 인터넷을 이용해 한국인 관광객에게 여행편의를 제공해 주겠다고 유인한 뒤 납치해 석방금 명목으로 수억원을 빼앗은 혐의도 받고 있다. 이후 필리핀에서 발생한 10여건의 한국인 여행객 납치강도 사건 역시 최씨가 저지른 것으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다.


최씨는 필리핀에서 숨어 지내다 지난해 11월 태국으로 입국하려다 붙잡혔고 여권 및 공문서 위조 등 혐의가 드러나 올해 초 태국 법원으로부터 징역 9년 10월을 선고받았다.

한국서 살인
외국서 납치

법무부는 송환이 늦춰질 경우 살인과 납치강도 사건의 진상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 형 집행중인 최세용을 ‘임시인도’ 방식으로 인계해 줄 것을 태국 당국에 요청했다.

한국·태국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국내로 송환된 최씨는 수용되기 전 “태국에서 오래 있어서 기억나지 않는다. 나중에 말하겠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최씨는 부산에서 부산·서울·경기·충북 등 5개 관할 지방경찰청의 조사를 받게 된다.

이번 송환은 태국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은 한국 국적의 범죄자를 현지에서 형 집행 전에 임시인도 하는 최초 사례다. 임시인도 방식은 해당 국가에서 선고된 형 집행이 종료된 후 이뤄지는 통상적인 범죄인 인도 방식과 달리 선고된 형이 집행되기 전에 진행된다.

그는 국내 수사·재판 과정을 거쳐 법원에서 형이 선고되면 태국으로 다시 인도돼 태국 당국에서 선고받은 9년10월의 징역형에 대한 수감생활을 해야 한다. 이후 태국에서 형 집행이 종료되면 한국으로 다시 송환돼 국내 법원에서 선고받은 형을 살게 된다.

필리핀 납치단의 리더였던 최씨는 앞서 지난해 11월, 태국에서 검거됐다. 한국경찰과의 공조로 태국 이민국 직원들이 비자를 갱신하는 최씨의 부인을 추적, 태국 치앙라이의 한 커피숍에서 검거한 것이다. 공범인 김종석(41)은 지난해 10월 필리핀 현지에서 붙잡혔지만 가족들에게 유서를 남긴 뒤 경찰서 유치장에서 자살했다. 행동대장 김성곤(41)은 지난해 5월 필리핀 경찰에 잡혔다. 이들은 하나같이 필리핀에서의 납치 행각에 대해서는 발뺌하고 있다.


납치단은 2007년 환전소 여직원 살해 후 지명수배돼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필리핀에서도 범죄를 일으켰다. 바로 홍석동(35)을 납치한 것이다. 이들은 필리핀에서 홍석동을 납치하기에 앞서 말레이시아에서 김원빈을 납치해 구타하여 금품갈취를 시도한 뒤 자신들의 범행에 가담시켰다. 그리고 홍석동을 납치했다.

안양환전소 여직원 살해 피의자 송환
사건 직후 도주…태국 입국하다 검거

2011년 9월, 서울의 한 정보기술(IT) 업체에 취직한 지 1년 만에 휴가를 얻어 5박6일간 필리핀 세부로 홀로 여행을 떠났던 홍씨. 얼마 후 그는 다급한 목소리로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필리핀 현지 여성과 잠자리를 가졌는데 미성년자였다”며 “부모들이 찾아와 합의금을 내놓으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홍씨의 어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1000만원을 송금했다.

이튿날 다시 전화가 왔다. 한국에 돌아갈 비행기 티켓 값을 또 보내달라는 것이었다. 여행갈 때 왕복 티켓을 마련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수상함을 느꼈다. 당시 홍씨 아버지는 “하루만 지나면 귀국인데 왜 돈이 필요하냐”며 참으라고 했다. 이후 홍씨와는 연락이 끊겼고, 돌아오기로 한 날 새벽 인천공항에 도착한 비행기에 아들은 없었다.

가족들은 아들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다고 보고 경찰과 외교통상부에 신고를 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기다려 보라는 것. ‘카지노에 빠졌거나 여자를 만나 지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필리핀 현지에서 누군가 홍씨의 신용카드로 돈을 뽑는 폐쇄회로(CCTV) 화면을 확보했다. 여동생 경화씨(24)는 “돈을 인출하는 사람이 오빠가 아니었다”며 “이때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감은 현실로 다가왔다. 2011년 12월 누군가가 “석동씨의 행방을 알려 주겠다”며 수천만원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는 지난해 6월까지 대여섯 차례 계속됐다. 가족들은 이 목소리를 녹음해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렸다. 곧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가족들에게 들려왔다. 필리핀으로 여행 갔다가 납치당한 뒤 돈을 주고 풀려났다는 피해자 3, 4명이 음성파일 속 인물에게 똑같이 당했다는 것이었다.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2007년 7월 경기 안양시 비산동에서 발생한 환전소 여직원 살해 강도단의 부두목인 김종석이었다.

한국인만 노린
납치 전문 강도단

대부분은 돈을 주고 풀려나 귀국했지만 홍씨는 그러지 못했다. 그러던 차에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부두목 김종석이 지난해 10월 필리핀 경찰에 붙잡힌 것이다. 이 소식을 들은 가족들은 그가 아들의 행방에 대한 결정적 증언을 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소식이 전해진 그날 김씨는 필리핀 경찰서 유치장에서 유서를 남긴 채 목매 숨졌다. 아들의 행방을 알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었던 가족들은 절망했다. 이후 납치단의 두목 격인 최세용이 태국 경찰에 붙잡혔지만 홍씨 행방에 대해선 모른다는 입장을 취했다.

절망에 빠진 홍씨의 아버지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평소 자주 다니던 산책로에서 농약병의 뚜껑을 열었다. 그의 손에는 아내와 딸, 친척, 친구 등에게 쓴 5통의 유서가 있었다. 홍씨의 아버지가 편지지에 볼펜으로 꼭꼭 눌러쓴 유서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이 애절하게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당신 힘든 짐만 지고 먼저 가지만 이승에서 못해준 거 죽어서라도 꼭 갚을게” “어디 나무랄 데 없는 우리 딸 그저 아빠는 착한 딸에게 나쁜 모습만 보여줬구나. 불쌍한 엄마, 항상 옆에서 잘 보살펴 드려라. 아빠가 하늘에서 지켜볼게”

사실 이들은 홍석동을 납치하기 전에 두 명을 더 납치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윤철완(39)이다. 김종석은 윤씨의 이름으로 윤씨의 동생에게 신용카드를 스캔해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이 카드로 총합 3460만원이 인출됐다. 예비역 공군 중령인 윤씨도 2010년 8월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다가 행방불명돼 생사가 불분명하다. 현재 납치단 리더 최씨가 붙잡혔지만 아직 홍씨, 윤씨의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당시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이 사건을 심층 취재했다. 또한 <딴지일보>는 ‘죽지않는 돌고래’라는 필명을 쓰는 기자가 이 사건을 다뤘다. 그런데 이 기자는 김종석으로부터 살해협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지어 김씨는 <딴지일보> 미디어전략팀 ‘게으른 수다쟁이’ 기자의 휴대폰으로 전화해 납치사건과 관련한 필리핀 현지 제보자로 위장해 취재팀장 ‘죽지않는 돌고래’를 찾는 대범함까지 보였다.


평범한 가족에 비극을 낳은 납치단의 수법은 간단했다. 이들은 범행 대상을 인터넷 카페 등에서 찾았다. 필리핀 여행 커뮤니티에 ‘필리핀 배낭여행 동반자를 찾는다’ 등의 글을 올린 여행객의 인적 사항과 연락처를 파악한 후 현지에서 아는 척을 하며 접근했다. 공항 등에서 반가운 척 “한국인이 아니냐?”라고 물으며 접근하기도 했다.

2008∼2011년 현지 강도 혐의 수사
한인 상대 범죄조직 실체 드러날까
14만∼27만원이면 청부살인도 가능

그런 후에는 한인 관광객에게 여행 편의를 제공하겠다며 유인해 납치한 뒤 현지 여성(미성년자)과 강제로 성행위를 시켰다. 외국인이 현지인을 상대로 저지르는 간통죄는 필리핀에서 중형에 처해진다는 것을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아지트인 펜션 등으로 유인한 후 쇠사슬 등으로 결박했다. 겁에 질린 피해자를 협박해 한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전화해서 돈을 송금하도록 했다.

필리핀 유학 중 최씨 일당에게 납치되었다가 돈을 주고 풀려났다는 이모씨는 “납치당하면 돌아갈 확률은 50 대 50이다. 돈을 받아도 자기들 마음에 안 들면 죽인다. 필리핀은 섬이 많은 나라여서 여기저기 숨겨놓고 일을 시킬 수도 있다. 약을 먹이고는 경찰에 신고한다며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목격도 했다. 나도 납치범들에게 당했다가 신분증까지 뺏기고 도망치듯 빠져나왔다”라며 몸서리를 쳤다.

지난해 8월 필리핀 마닐라의 한 호텔 인근에서 40대 한국인 재력가 정 아무개씨(당시 41세)가 차량으로 납치·살해된 후 암매장되었다. 범인은 정씨의 돈을 노린 한국인 일당들이었다. 이들은 카지노에서 수억원을 잃자 정씨의 돈을 노리고 범행에 나섰다. 외교부 관계자는 “필리핀 내 불법 총기 유통 등으로 한국 수배자들이 필리핀을 도피처로 선호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필리핀 사건들
진실 밝혀지나


필리핀은 미국처럼 총기 소지가 자유롭다. 돈만 있으면 누구든 총기를 구입할 수 있다. 불법 사제 총기가 넘쳐나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반면 불안한 치안 때문에 사건사고가 많이 일어난다. 문제는 경찰도 치안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점이다. 범죄 조직과 결탁한 경찰도 흔히 볼 수 있다. 필리핀에서 10년 동안 거주했다는 한 교민은 “필리핀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총을 구입할 수 있고, 청부 살인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돈만 주면 경찰도 얼마든지 매수할 수 있다. 물론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그래도 암묵적인 ‘청부 금액’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 현지인 등에 따르면 일반인은 1만 페소(한화 약 27만원)면 청부 살인 의뢰가 가능하다. 심지어는 5천 페소(한화 약 14만원)에 청부 살인에 나서는 현지인도 있다고 전해진다.

현재 한국인 납치에 대해서는 주필리핀 영사관에서 맡고 있다. 한국인 실종 사건이 늘자 2010년 10월에 필리핀 경찰청과 각 지방청에 한인 관련 강력 범죄를 담당할 ‘Korean Desk’를 설치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경찰관 한 명(경감)을 파견하고 있다.

실종자 가족들은 우리 정부나 주필리핀 대사관 측의 무성의를 질타하고 있다. 실종자 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다는 뜻에서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현지 영사관 직원들과 필리핀 경찰이 공조 체제를 구축해 실종자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현지 교민들은 “외국인이 자신의 일과 본분만 잘 지키면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여행 금지 구역이나 위험 지역에는 절대 가서는 안 된다. 여행 전문가 등은 “필리핀은 ‘배낭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여행지에서 밤거리를 혼자 걷거나 번화가일지라도 으슥한 골목길은 피해야 한다. 또 필리핀에서는 성매매가 불법이기 때문에 유흥업소 여종업원이나 성매매 여성과 숙박업소에 들어갔다가 여성과 결탁한 강도나 경찰에게 큰 코 다칠 수도 있다.

특히 인터넷 카페 등에 개인정보의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된다. 이 정보를 범행에 이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신분이 확인되지 않은 현지인과는 가급적 접촉을 삼가야 한다.


이광호 기자 <khlee@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필리핀 단체관광객 납치 전말
못 믿을 여행가이드

필리핀으로 여행 간 한국인 관광객을 납치한 후 돈을 받고 풀어준 현지 여행가이드에게 실형이 선고됐다. 대전지방법원 제11형사부(재판장 이종림 부장판사)는 지난해 초 필리핀 마닐라로 여행을 떠났던 충남 천안의 한 단체 회원들을 납치하고서 몸값을 받고 풀어준 혐의(인질강도)로 기소된 A(49)씨에 대해 징역 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A씨는 지난해 2월 여행가이드 B(34)씨와 공모해 필리핀 마닐라로 여행을 떠났던 충남 천안의 한 체육회 회원 12명 중 4명을 현지 경찰을 동원해 납치한 뒤 석방 대가로 1인당 600만원씩 모두 2400만원을 받고 풀어준 혐의로 기소됐다.

현지 경찰 동원해 인질로 잡아
1인당 600만원씩 받고 풀어줘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필리핀 현지 경찰을 동원해 피해자들을 부당하게 체포·감금한 뒤 그들을 인질 삼아 가족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안으로 죄질이 매우 중하다”며 “피고인이 비슷한 범행으로 형의 집행을 마친 뒤 누범 기간에 또다시 범행을 저지른 점 등에 비춰 엄히 처벌할 수밖에 없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다만 “필리핀에서 구속돼 있었던 점, 범행으로 인한 피해액이 회복된 점 등은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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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