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사돈기업 흥망성쇠 비사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9.09 15:02:45
  • 댓글 0개

살아 있는 권력 덕분에 '살고' 죽어 가는 권력 때문에 '죽고'

[일요시사=경제1팀] 효성그룹이 세무당국의 압박을 받고 있다. 그 강도가 너무 세서 검찰 수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예상이 딱 맞아떨어졌다. 효성그룹은 'MB 사돈기업'인 탓에 새 정부 차원에서 한번은 손볼 타깃으로 지목돼 왔다. 역대 대통령의 사돈기업들이 정권 바뀌고 모진 고초를 당한 전례대로다.



재벌가 혼맥은 거미줄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한 두 다리만 건너면 사돈'이란 말이 통용될 정도로 '그들만의 성'은 갈수록 견고해지고 있다. 재벌가문은 정·관계 및 학계 쪽으로도 거대하고 강력한 연줄망을 형성하고 있다. 사세 확장을 위해 권력층과의 정략 결혼도 서슴지 않는다. 전략적 통혼을 통해 최고의 부와 명예, 권력을 한 손에 쥘 요량에서다.

사세용 정략 결혼
정경 혼테크 유행

재벌가문과 고위 권력층의 혼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사세 확장을 꾀하는 기업인으로선 더 바랄 나위 없는 통혼이 아닐 수 없다. 최고 통치권자와 사돈을 맺은 재벌가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정경유착 고리로 비쳐져 오히려 화를 부른 경우가 많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경영의 운신이 제한되는 부담으로 이어지고, 대통령직 퇴임 후 절체절명의 위기가 따랐다. 이를 못 이기고 침몰한 재벌도 한둘이 아니다.

대통령과 사돈을 맺은 첫 재벌가문은 풍산그룹(당시 풍산금속)이다. 풍산일가는 고 박정희 전 대통령 가문과 1982년 인연을 맺었다. 고 류찬우 풍산그룹 창업주의 장남 류청씨와 박 전 대통령의 둘째딸 근령씨가 혼례를 올린 것. 이미 박 전 대통령이 세상을 뜬 이후였다.

하지만 결과는 득보다 실이 많았다. 이들은 결혼 생활이 순탄치 못해 결국 6개월 만에 파경을 맞았다. 류청씨는 현재 미국을 오가며 개인 사업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근령씨는 2008년 14세 연하인 신동욱 선경일보 사장과 재혼해 화제를 모았다.


박 전 대통령은 벽산그룹 일가와도 사돈지간이다. 박 전 대통령의 셋째 형인 박상희씨의 딸 설자씨와 고 김인득 벽산그룹 창업주의 차남 희용씨는 1972년 결혼했다. 설자씨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처제이기도 하다.

벽산그룹은 1970년대 초반부터 승승장구했다. 당시 정부는 전국 방방곡곡에서 새마을운동을 벌였는데 벽산그룹은 지붕 재료인 슬레이트를 독점 공급해 사세를 키웠다. 1974년엔 국영기업 대한종합식품을 인수하는 특혜도 누렸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면서 강도 높은 세무조사를 받는 곤욕을 치르더니 1998년 외환위기(IMF) 때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가 구조조정을 통해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했다.

대통령과 혼사 맺은 재벌들 '툭하면 의혹'
재퇴임시 각종 스캔들로 곤욕…운신폭 제한

간신히 부도 위기를 모면한 벽산그룹은 2008년 기업신용위험 평가 결과 부실징후기업으로 분류돼 또 다시 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주력 계열사인 벽산건설의 경우 채권단으로부터 1000억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는 등 재무구조 개선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나, 매출이 2011년 6675억원에서 지난해 4183억원으로 줄었고 순손실도 870억원에서 3737억원으로 적자폭이 더 커지는 등 힘든 상황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사돈관계를 원만히 유지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와 박 명예회장의 4녀 경아씨는 1988년 결혼했으나 성격 차이에 따른 불화로 2년5개월 만에 이혼했다. 당시 강원도 백담사에서 은둔생활을 하던 전 전 대통령은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이혼만은 안 된다"며 극구 반대했다고 한다.

두 가문은 이로 인해 급속도로 냉랭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재용씨는 경아씨와 이혼 후 1992년 두 번째 아내인 최모씨와 결혼 생활을 하다 2007년 또 다시 갈라섰다. 그는 같은 해 탤런트 박상아씨와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려 이목을 끌었다.

박 전 대통령의 무한 신뢰로 '영일·광양만의 기적'을 이룬 박 명예회장은 전 전 대통령의 '러브콜'을 받고 정치계에 입문했다. 우연일까. 박 명예회장은 3선 경력을 쌓고 1990년 집권여당의 민정당 대표까지 올랐지만, 김영삼 정권 출범 직후인 1993년 정치색 짙은 국세청 세무조사로 외국을 떠도는 야인 신세가 됐다.


국세청은 포항제철(현 포스코) 세무조사를 실시했고, 이는 곧바로 박 명예회장과 그의 가족, 친인척, 측근들에 대한 전방위 비자금 수사로 확대됐다. 박 명예회장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총리로 발탁됐지만 조세 회피 목적의 부동산 명의신탁 의혹이 불거져 4개월 만에 불명예 퇴진했다. 이를 마지막으로 박 명예회장은 현실 정치에 등을 돌렸다.

전 전 대통령은 동아원그룹 일가와도 인연을 맺었다. 전 전 대통령의 3남 재만씨와 이희상 동아원그룹 회장의 장녀 윤혜씨가 1995년 혼례를 치른 것. 두 가문은 '모종의 거래설'로 여러 번 구설수에 올랐다.

모종의 거래설
여러번 구설수

실제 이 회장은 1995년 전 전 대통령이 내란 혐의로 수사를 받을 당시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그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관리한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듬해 전 전 대통령의 채권 160억원을 차명으로 소유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이 돈을 전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의심했지만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그로부터 7년 후. 최근 이 회장이 전씨 일가의 재산 은닉에 협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동아원그룹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재만씨가 소유한 서울 용산구 한남동 100억원대 빌딩도 '전두환 비자금'이 유입된 의혹을 받고 있다. 재만씨는 이 빌딩을 이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해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 회장은 전 전 대통령뿐만 아니라 노태우-이명박 일가와 인연을 맺은 '대통령 사돈집안'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은 세 딸이 있는데, 3명의 전현직 대통령 가문과 직간접적으로 사돈관계다. 차녀 유경씨는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의 동생 신영수씨의 아들 기철씨와 혼인했다. 신 전 회장 사위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였다.

집권 기간 내내 쏠쏠한 특혜
물러나면 모진 고초에 시달려

3녀 미경씨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장남 조현준 효성 사장과 결혼했다. 효성가는 조 회장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그룹 회장의 차남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과 사돈관계를 맺고 있다. 결국 동아원 일가는 이 전 대통령과 한다리 건너 사돈인 셈이다.

SK그룹과 신동방그룹은 대통령 집안과 사돈관계를 형성했다가 곤욕을 치른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두 기업은 노태우 전 대통령과 재임 때 사돈이 됐으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어려움에 빠졌다.

고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의 장남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장녀 소영씨와 1988년 백년가약을 맺었다. 당시 최 전 회장은 "대통령과 사돈을 맺는 것 자체가 정경유착이 아니라 부정한 방법으로 무슨 일을 도모할 때 비로소 정경유착이 되는 것"이라고 당당했다. "앞으로 지켜보라"고 큰소리쳤던 최 전 회장은 끝내 사돈 덕을 봤다는 소리를 들었다.

SK그룹은 이 혼사로 1992년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 등 사업 확장 때마다 온갖 루머에 시달렸고, 툭하면 정경유착에 따른 특혜 의혹이 제기됐다. 그 이후로도 사업을 확장할 때마다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의 장남 재헌씨는 이동통신 솔루션업체 텔코웨어의 대주주로 있다가 2009년 주식을 매각해 수십억원의 차익을 얻기도 했다. 텔코웨어는 SK텔레콤 등에 소프트웨어를 납품하면서 성장했는데, SK가 노씨 일가의 사돈기업이란 점에서 말들이 많았다.

신동방그룹(당시 동방유량)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은 1990년 외동딸인 정화 씨를 노 전 대통령의 외아들 재헌씨와 결혼시켰다. 신동방그룹은 노 전 대통령 집권 때 숙원이던 증권업에 진출했지만 특혜 의혹을 받았다. 1992년 홍콩페레그린증권과 합작해 동방페레그린증권사 설립을 추진했다. 당시 신동방그룹은 설립 요건을 갖추지 못했지만 결국 증권사를 세웠고 줄곧 특혜 시비에 시달렸다.


게다가 1996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파문 당시 검찰의 타깃이 된 신 전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빌딩을 매입하고 주가조작으로 수백억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해표식용유로 유명했던 신동방그룹은 이런 시련을 겪은 뒤 IMF 전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워크아웃을 신청한데 이어 2004년 CJ그룹에 매각됐다.

'세풍'에 휘청 
'검풍'에 침몰

신 전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은 이미 남남이다. 정화씨와 재헌씨는 2011년 각각 한국과 홍콩에서 이혼 소송을 냈고, 지난 5월 결혼 23년 만에 이혼이 확정됐다. 그래도 악연은 계속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의 일부를 신 전 회장에게 맡겼다는 내용의 진정서를 지난해 6월 검찰에 제출했다. 노 전 대통령은 비자금을 돌려 달라고 신 전 회장에게 요구했고, 버티던 신 전 회장은 최근 노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 80억원을 대납하기로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도 최근 각종 시비에 휘말려 있다. 바로 효성그룹이다.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지난 5월 효성그룹에 대한 특별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국세청은 조사 과정에서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차명 재산과 분식회계를 통한 탈세 혐의를 포착해 조세범칙조사로 전환하면서 조 회장 등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조세범칙조사는 일반 세무조사와 달리 조사기관의 탈루 혐의가 드러났을 때 진행하는 사법적 성격의 세무조사다. 추후 결과에 따라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 효성 측은 "출금은 단순히 조사에서 필요에 의해 내려진 조치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업계에선 'MB 기업' 손보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조 회장은 동생 조양래 한국타이어 회장의 아들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을 통해 이 전 대통령과 사돈 관계를 맺고 있다. 조 사장은 2001년 이 전 대통령의 3녀 수연씨와 결혼했다.


득이냐 실이냐
정해진 운명?

상황이 이렇자 이 전 대통령의 또 다른 '재벌 사돈'에 세간의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형 이상득 전 의원을 통하면 LG가와도 사돈이 된다. 이 전 의원의 딸 성은씨는 2000년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된 LB인베스트먼트(구 LG벤처투자) 구자두 회장의 장남 구본천 LB인베스트먼트 사장과 결혼했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노무현·김대중·김영삼 사돈은?

"재벌사돈 없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노무현·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벌가와 직접적으로 혼맥을 갖고 있지 않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모는 평생 농사를 지은 농부였다. 형인 건평 씨 또한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73년 권양숙 여사와 결혼했는데, 처가 집안도 마찬가지로 부호는 없다.

그의 아들 건호씨는 2002년 연세대 후배인 배정민씨와 화촉을 밝혔다. 건호씨의 장인 배병렬씨는 농협에서 은퇴한 후 노 전 대통령과 같은 고향인 김해에서 살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딸 정연씨는 2003년 곽상언 변호사와 결혼했다. 곽 변호사는 부친이 일찍 세상을 떠나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대부분 평범한 가문과 인연
형편 넉넉지 않은 집안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사돈들도 평범한 집안이다. 장남 홍일씨는 1974년 충칭 임시정부에서 광복군 활동을 했던 윤경빈씨의 딸 혜라씨와 결혼했다. 차남 홍업씨는 1984년 5공화국에서 감사원 감사위원을 지낸 신현수씨의 딸 선련씨와, 3남 홍걸씨는 1990년 부산에서 자영업을 하는 임정상씨의 딸 미경씨와 백년가약을 맺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2남3녀를 뒀는데, 대부분 재벌가와 거리가 멀다. 장남 은철씨는 황경미씨를, 차남 현철씨는 김정현씨를 부인으로 두고 있다. 이중 황씨 집안은 부유하다. 그의 친정어머니는 아트그룹 시우터(구 서울미술관)의 실소유주다. 황씨는 경기 일원에서 대형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다.

장녀 혜영씨는 재미사업가 이창해씨와, 차녀 혜경씨는 재미동포 송영석씨와, 3녀 혜숙씨는 재미변호사 이병로씨와 결혼해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