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전성시대’ 제2막 풀스토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6.17 12:4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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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적끈적 ‘인의 장막’…죽지않고 ‘살아있네’

[일요시사=경제1팀] ‘모피아’라 불리는 옛 재무부 관료 출신들이 박근혜 정부 출범 100일만에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금융권 알짜자리를 이들이 속속 접수하면서 모피아의 파워를 보여주고 있는 것. 금융 공기업과 금융단체는 물론 주요 민간 금융회사까지 거의 싹쓸이 수준이어서 관치금융 논란이 거세질 전망이다.



국내 재무 관료들은 다른 정부 부처 관료들과 격을 달리한다. 굳이 이들에게 ‘모피아’라 는 꼬리표가 따라붙는 이유다. ‘모피아’(MOFIA)는 재무부 출신 인사를 지칭하는 말로, 재정경제부(MOFE·Ministry of Finance & Economy)와 범죄조직인 마피아(MAFIA)의 합성어다. 끼리끼리 정부 고위직과 금융회사 주요 자리를 독식한다고 붙은 별칭이다.

한 번 모피아는
‘영원한 모피아’

이질적인 용어의 절묘한 화음 속에서도 유독 모피아 출신들은 기수 중심의 독특하고 끈끈한 결속력을 자랑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죽하면 해병대를 능가한다고 해서 ‘한 번 모피아는 영원한 모피아다’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다.

모피아의 대부로는 여전히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꼽힌다. 이 전 부총리는 1998년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촉발된 IMF 관리체제에서 금융권 및 재벌 구조조정을 수행하는 등 신자유주의의 화신으로 분류된 인물이다. 그는 국민의 정부를 거쳐 참여정부에서도 경제부총리를 거치며 시장을 중시하는 모피아의 대부로 자리매김했다.

한국 경제의 정책과 감독을 좌지우지하던 그에게 사람이 몰리는 건 당연한 일. 이 전 부총리는 인간적 매력과 카리스마, 내 사람 챙기기로 주변 인사들을 매료시키며 인재풀을 확대시켰다. 이른바 ‘이헌재 사단’은 200여명의 모피아 출신이 정·재계와 금융계에 포진해 끈적끈적한 인적 고리를 만들었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현직 중에는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계보를 잇고 있다. 기획재정부 내에서는 은성수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과 국제통화기금(IMF)에 파견된 윤종원 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이 전 부총리와 신 위원장 등 현직을 연결해주는 매개는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다.

역대 정권은 대부분 초기 인사에서 부정부패의 온상으로 인식되고 있는 ‘모피아 출신’을 배제했다. 대신 대학 교수나 민간인을 발탁했지만, 정권 중반 이후에 재무 관료들을 중용하는 방향으로 기울곤 했다.

임영록·임종룡 귀환…금융권 수장 잇단 입성
거래소·신보 이사장에 최경수·홍영만 거론

정치권 출신의 전직 고위 인사는 “정권 초기 때마다 모피아는 일종의 ‘부패 권력’ ‘기득권 세력’ 등으로 치부되면서 통치권자들이 멀리하곤 하지만 집권 1년만 지나면 다시 찾게 된다”며 “서로 간에 밀고 당겨주는 묘한 화음 앞에서는 통치권자도 당할 수가 없다”고 털어 놨다. 

부활하는
‘패거리 금융’

박근혜 정부에서도 반전은 이뤄지지 않았다. 정권 초기 전면에서 밀리는 듯하던 모피아들이 출범 100일이 지나고, 금융권 기관장이 물갈이 되는 틈을 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는 모양새다.

KB금융 회장에 임영록 전 기획재정부 2차관이 내정된 지 하루 만에 기재부 1차관 출신의 임종룡 전 국무조정실장이 NH농협금융 회장으로 자리를 잡았다. KB금융 회장 내정자는 행정고시 20회, 농협금융 회장 내정자는 행시 24회로 금융정책을 주로 맡았던 경제관료 출신이다.


이에 대한 금융계의 반응은 싸늘하다. 특히 민간 금융회사인 KB금융 회장 자리는 늘 민간의 몫으로, 모피아가 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과정에서 신 금융위원장은 “관료도 능력과 전문성이 있으면 금융지주 회장을 할 수 있다”면서 임 내정자에게 힘을 실어줘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농협금융 회장 자리도 마찬가지다. 직전까지 행시 14회인 신동규씨가 맡았지만, 이번에는 농협 내부 출신에서 나오리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막판에 이를 뒤집어 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요직을 두루 거친 임 전 실장을 내정한 것은 금융당국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적지 않다.

정부 산하 기관과 각종 금융 공기업을 독식하던 모피아가 급기야 민간 금융회사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금융계 안팎에선 모피아들이 금융당국과의 소통이 원활하다는 장점을 토대로 알짜 보직을 싹쓸이 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금융지주를 넘어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최근 선임된 금융 관련 협회 7곳 중에서도 순수 금융인 출신인 박종수 금융투자협회 회장을 제외하면 모피아 일색이다.

국제금융센터 원장에는 행시 26회인 김익주씨가, 여신금융협회장에는 행시 23회 김근수씨가 선임됐다. 김 신임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 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장 등을 거쳤고, 김 신임 여신금융협회 회장도 기재부 국고국장 출신이다.

이 자리에는 당초 모피아가 아닌 다른 공공기관 임원이 거론됐으나 “(낙하산으로) 나가야 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른 기관에 자리를 줄 수 없다”는 모피아의 논리에 밀렸다.

모피아들의 득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한국거래소 이사장 자리에는 최경수 전 현대증권 사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최 전 사장은 행시 14회로 재정경제부 국제심판원장, 세제실장을 거쳐 조달청장을 지냈다. 7월 중 결정될 신용보증기금 차기 이사장에는 홍영만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거론된다.

상명하복 익숙
‘그들만의 리그’

모피아가 금융권에 낙하산으로 계속 자리를 틀 수 있는 건 선후배간 밀고 끌어주기식의 끼리끼리 행태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전ㆍ현직 모피아들은 다양한 사적 모임을 통해 유대 관계를 형성하고 이 속에서 절묘하게 권력을 유지해나간다.

모피아는 검찰에 버금갈 정도로 철저한 선후배 상명하복을 자랑한다. 더욱이 이른바 인맥을 형성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전통의 명문학교, 즉 경기고와 서울ㆍ경복고와 서울상대ㆍ법대 등으로 국한돼 있고 지역별로 다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기에 수직적 인맥 구조는 더욱 심해진다.

현직 한 관료는 “전직에 있음에도 현재 돌아가는 관계와 민간 금융회사의 인사 구도까지 훤히 꿰뚫고 있어 깜짝 놀랐다”며 “그들의 인적 호흡은 한마디로 ‘장막’에 비유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대부’이헌재 이어 김석동·신제윤 계보
200여명 인적고리…곳곳서 막강한 영향력


또 다른 관료 역시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헌재 사단’ 역시 모피아의 네트워크 속에서 힘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며 “때로는 정치적 연줄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는 ‘선배가 잘 나가야 나도 산다’는 말이 불문율처럼 돼 있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은 때로 민간 출신 인사에 대한 구축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실제로 민간 출신의 한 고위인사가 들어오자 관료들 간에 일종의 따돌림 현상이 벌어지기는 사례도 있었다.

‘관치금융’
반발정서 확대

물론 모피아의 금융계 진출을 비판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대부분 업무능력이 탁월하고 일의 추진력과 돌파력도 뛰어나다는 것이다. 모피아 특유의 ‘끌어주고 밀어주는’ 단결력을 통해 어떤 일이든 매끄럽게 잘 처리하는 데 선수들이라는 것도 장점이다.

한 금융당국의 관계자는 “이번에 발탁된 관료 출신들의 면면을 보면 스펙(학력·경력)과 경험 면에서 민간 출신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피아가 금융계로 세력을 확장할수록 ‘관치’에 대한 우려도 커지기 마련이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금융당국 수장이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해 전직 고위관료 출신 인사를 민간 금융회사 회장으로 선임하라고 사외이사들을 압박하는 행위는 명백한 관치금융”이라고 비판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도 “모피아들이 퇴임 후 낙하산을 당연히 여기는 데는 자신들이 뛰어난 사람이라는 선민의식도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으며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의사 결정에 익숙하고 시장이나 민간의 논리는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 장기적으로 한국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에게 ‘장기 집권’의 문제를 거론하며 특정한 사유 없이 자진사퇴를 종용한 것도 ‘관치금융의 부활’에 대한 금융권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BS금융지주는 정부가 단 한 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금융회사다. 금융당국의 압박에 이 회장 측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경남은행 인수를 마무리 지은 뒤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는 “정부가 단 한주의 주식도 보유하지 않은 KB금융 인사에 종횡무진 개입했다”며 “정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는 BS 금융 회장까지 바꾸라는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역시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번 인사와 흘러가는 흐름을 보면 정치색이 강하게 드러난다”며 “회장 교체에 따른 금융계열사의 연쇄 인사이동이 불가피한 만큼 향후 명확한 인사검증시스템을 거쳐야 이와 관련한 잡음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모피아 대부’이헌재는…
위기관리 대가? 관치금융 화신?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초대 금융감독위원장과 두 차례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정통 경제관료이다. “위기관리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와 “관치금융의 화신”이라는 평가가 양립하는 인물이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이 전 부총리는 경기고, 서울대 법대를 다니는 동안 ‘천재’ 소리를 들었고, 1968년 행정고시(6회)에 수석 합격했다. 재무부 금융정책과장 시절인 1972년 8·3사채 동결조치를 입안했고, 1974년 1차 석유파동 당시 외환문제 해결에도 참여했다. 1979년 율산그룹 파동에 휘말려 공직에서 물러났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신설된 금융감독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임명돼 20년 만에 공직에 복귀했다. 2000년 재정경제부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3년여간 금융·기업 구조조정을 지휘해 ‘금융계의 황제’ ‘구조조정 전도사’ 등으로 불렸다. 시중은행이 망할 수 있으며, 대기업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입증했다.

2004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부총리로 복귀한 이 전 부총리는 정보기술(IT)과 사회간접자본(SOC)에 10조원을 집중 투자하는 ‘한국형 뉴딜’ 정책을 추진했다. 그러나 단기간에 주택과 토목공사를 늘려 반짝 효과만 내게 하고 근본 처방이 되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전 부총리는 부인의 토지거래 관련 위장전입 의혹을 받자 2005년 부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법무법인 김앤장 고문을 거쳐 사촌동생인 이윤재 전 청와대 비서관이 운영하는 코레이에서 이사회 의장을 맡아왔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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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