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16)김철호의 명성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6.05 19:5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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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폈다 접었다 '레저재벌'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펴고, 접고, 펴고, 접고….' 김철호 전 명성그룹 회장의 행보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명성그룹 공중분해 후 김 전 회장은 그 어느 누구보다 재기의 날개를 많이 펼쳤으며 그만큼 많이 접었다.

김 전 회장은 그의 나이 29세이던 1966년 운수회사를 설립, 한때 130대의 코로나택시를 가진 대운수업자였다. 76년 ㈜명성관광을 설립하면서 레저산업에 뛰어든 김 전 회장은 78년 ㈜남태평양레저타운을 설립하고 79년 오성골프장을 인수했다.

부도에 음모설

세계적 관광타운 건설을 꿈꾸던 김 전 회장은 80년대 초부터 설악권 종합관광휴양지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81년에 1008실 규모의 콘도 건립을 시작으로 레저타운 57만평에 호텔·수영장·골프장·인공호수 등 관광타운을 건설하는 초대형 사업을 추진했다. 당시 명성의 설악레저타운 건설은 속초지역 개발은 물론 강원도 관광지도를 바꾸는 야심찬 사업이었다. 명성은 레저·관광·건설·무역·전자·식품 등 21개 계열사를 거느린 거대 재벌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김 전 회장이 83년 탈세 및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15년 벌금 79억3000만원을 확정 선고받으면서 세계적인 관광타운 건설의 꿈을 접어야 했다. 5공 시절 이른바 '명성그룹 사건'이다. 당시 명성그룹은 공중분해됐고 김 전 회장은 9년7개월간 복역하면서 재계에서 멀어져 갔다. 명성콘도는 한화로 넘어가 한화리조트 브랜드로 영업을 하고 있다.

항간에선 이 사건을 두고 '김 전 회장이 신군부의 정치자금 제공을 거부한 탓' 등의 '괘씸죄'가 작용한 5공 정권의 표적수사라는 관측이 무성했다. 김 전 회장도 "5공 정권의 희생양으로 억울하게 당했다"며 음모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93년 가석방된 뒤 꾸준히 재기를 모색했다.

그룹 공중분해 두고 '신군부 표적설'무성
큰소리만…93년 석방 뒤 꾸준히 재기 모색
올초 설립한 엠에스케이그룹홀딩스 정체는?

김 전 회장은 절치부심 끝에 태백산 폐광지역개발 프로젝트로 재기를 모색했다. 일명 '스노우 마운틴 월드' 프로젝트다. 김 전 회장이 사업신청을 한 곳은 태백시 황지동 함백산 일대 서학레저단지를 비롯, 태백시 화전동 태백관광레저단지, 정선군 고한읍 고토일복합리조트, 정선군 남면 관광레저단지, 영월군 상동읍 장산스키장 등 5개 사업이었다. 투자 예정액은 1조1000억원, 폐광지역 종합개발을 위한 강원도의 민자유치계획 1조9000억원의 57.9%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였다. 사업계획도 스키 슬로프 136면, 골프장 54홀, 콘도 3050실, 호텔 1100실 등 상상을 초월했다.

김 전 회장은 미국 캘리포니아에 소재한 관광레저 투자 전문회사인 VCC사 등으로부터 약속받은 12억달러가 사업자 지정과 동시에 지원되며, 나머지는 부동산신탁투자방식으로 개발하면 충분히 메울 수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러나 2000년 개발을 미끼로 20여억원을 사취한 사기 혐의로 불구속되면서 첫 번째 재기의 날개를 접어야했다. 이에 앞서 99년에는 '대한생명 인수'라는 색다른 카드를 들고 나와 재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기도 했다.

2006년 전남 영암군에서 '관광레저산업과 지역경제 발전전략'이라는 주제로 공직자와 지역 주민 및 관내 유관기관·단체 임직원 등 500여명을 대상으로 하는 '21영암포럼'이 개최됐다. 김 전 회장은 이 포럼의 초청 강사로 등장, 두 번째 재기의 날개를 펼쳤다.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그가 성공적으로 재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

2008년 5월에는 서울 인사동의 한 미술관에서 개인 서화전을 열고 관광레저 산업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다. 당시 김 전 회장은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에 맞춰 바다 위 호텔을 중심으로 40여만 평 규모의 해양 도시를 선보이겠다고 밝혀 주목을 받았다. 김 전 회장 측은 "스위스 금융사인 제네바파운데이션그룹이 총 공사비 1조6000억원 중 70%를 투자하기로 1차 양해각서를 체결한 상태"라며 "여수엑스포 개최에 앞서 2011년 12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여수엑스포 폐막이 10개월이 지난 지금 여수 앞바다 어디에도 해상 호텔은 찾아볼 수 없다.

괘씸죄 때문에?


2010년 완공 예정이라고 자신 있게 밝혔던 경남 함양 골프장을 중심으로 한 리조트도 감감무소식이다. 김 전 회장은 이를 위해 건설회사까지 인수했으나 자금조달이 그의 생각처럼 원활하지 않아 뚜렷한 성과는 보이지 못하고 있다.

현재 김 전 회장은 엠에스케이그룹홀딩스라는 회사에서 부인 신명진씨와 함께 공동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이 회사의 등기부등본을 보면 본점은 종로구 홍지동에 위치해 있으며 이들의 둘째 아들인 경국씨가 감사를 맡고 있다. 엠에스케이그룹홀딩스는 콘도미니엄 건설업, 부동산 개발·매매·임대·컨설팅·분양·분양대행업 등을 주요 사업으로 영위하는 회사다. 이는 김 전 회장이 아직도 레저타운 건설에 대한 열망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김 전 회장과 신씨는 기독교 관련 언론매체도 이끌고 있다. 종로구 인의동에 위치한 <크리스챤신문사>가 그것이다. 60년 발행된 <크리스챤신문사>는 실질적 사주였던 김 전 회장의 몰락으로 시련을 겪었다. 90년 대 중반 기자들이 대거 해직 당하는 사태까지 발생한 바 있다. 특이한 점은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이 신문을 이단옹호언론으로 규정하고 성명서까지 발표했다는 점이다. <크리스챤신문사>는 이에 반발, 한기총을 대상으로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과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소했지만 모두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바 있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명성그룹은?>

▲1976년 명성관광 설립
▲1978년 남태평양레저타운 설립
▲1979년 오성골프장 인수
▲1980∼1982년 설악권 종합관광휴양지 건설 발표 및 추진
▲1983년 명성그룹 사건 발발. 명성그룹 공중분해. 김철호 전 회장 실형(징역 15년·벌금 79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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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