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사회팀] 유천 오수철 선생은 오직 사군자만으로 미술계에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작가다. "남들이 하는 건 싫다"고 말한 그는 "다른 걸 할 수 있어야 예술"이라고 말했다. 유천의 거침없는 언변과 확고한 철학은 그가 평생을 곁에 둔 사군자처럼 올곧으면서도 당당했다.
"잘하는 사람은 많아요. 하지만 잘하는 걸 뛰어넘는 게 바로 예술이죠."
유천 오수철 선생은 문인화가다. '회화'가 다수인 미술판에서 '문인화'만 그리는 화가는 흔치 않다. 그래서인지 주변에선 '사군자 말고 다른 것도 그려보라'는 유혹이 있다. 하지만 오 선생은 30년 넘게 사군자만을 고집했다.
공부 또 공부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대의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죠. '퓨전'이나 '크로스오버'와 같은 지금 시대의 조류가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는 유행을 따라하거나 남들과 비슷한 그림을 그리는 게 싫었어요. 시류에 편승한다는 얘기도 듣기 싫고. 물론 사군자가 미술의 전부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 아직 그림에 대해 공부할 나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거든요."
오 선생은 미술을 논할 때 '기교'보다는 '깊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나라에도 일찍이 두각을 나타낸 천재 작가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가는 오랜 시간 노력을 통해 좋은 작품을 남겼다"고 강조했다. 즉 내공이 쌓여야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것.
"서양의 음악을 봐도 몇백년 전의 음악을 지금도 연주하고 있죠. 하지만 그 음악이 예전과 똑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고전을 재현한다고 해도 모든 예술은 작가만의 재해석이 들어가거든요. 판소리하는 사람들을 봐도 '춘향가'를 지금까지 부릅니다. 하지만 그 '소리'는 분명 예전과 다르죠. 이런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는 게 바로 예술입니다. 일종의 '깨침'의 경지죠. 그리고 그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선 한 장이라도 더 그리는 수밖에 없어요."
오 선생은 자신이 고전을 다루고 있지만 다른 장르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고 밝혔다. 다양성의 측면에서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도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다만 오 선생은 유행과 한 발짝 떨어져 자신이 갈 수 있는 길을 걷는 중이다.
"문인화만 한다고 하면 제가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는데 저란들 왜 변화를 위해 몸부림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변화는 억지로 되는 문제가 아니에요. 만약 제가 사군자 말고 다른 걸 그린다고 하면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저를 보고 변했다고 할 거예요. 하지만 그건 변한 게 아닙니다."
"예를 들어 가수 조용필씨가 트로트를 했다가 락을 하면 그건 조용필이 변한 겁니까? 아니요. 그의 장르가 변한 겁니다. 정작 중요한 건 장르가 아니라 소리를 내는 예술가에요. 예술가가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은 거죠."
오 선생이 붓을 잡은 건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 그는 "내가 문인화를 잘 할 수 있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이것보다 잘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붓을 잡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납득할만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또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오 선생은 지난 30년간 누구보다 치열하게 그림을 그렸다.
30년 화선지 사군자만 고집
거침없는 언변 확고한 철학
"남들처럼 유행 쫓긴 싫다"
“일찍이 재주가 있다는 사람들은 중도에 그만두는 경우가 99%입니다. 예술은 재주로 하는 게 아니에요. 재주는 나중에 발휘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흔히 어릴 때부터 소질이 있으면 좋다고 하죠. 그런데 제가 주위 동료들을 본 바로 재능이 넘치면 금방 도태됩니다. 조로하는 거죠. 그건 자신의 재능을 너무 믿기 때문이에요. 제가 후배들을 가르쳐보니 오히려 뒤늦게 재능이 발휘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끈기인 거죠."
그는 요즘 미술계를 가리켜 "관객보다 배우가 더 많은 꼴"이라며 이름뿐인 작가가 너무 많다고 꼬집었다. 이어 "공모전만 입선되면 작가가 된 것처럼 으스대는 사람이 많은데 이건 감상자, 즉 대중이 판단해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감상자를 매도했다고 할까봐 조심스럽긴 합니다. 그런데 예술은 그렇습니다. 그 나라의 정치 수준은 유권자 수준입니다. 예술도 마찬가지. 작가를 올바르게 평가해 줄 감상자가 없으면 예술도 휘둘리는 거예요. 포장만 거창하게 하고요. 예술이란 씨앗은 토양이 만들어져야 발아할 수 있는 거예요."
"이중섭이나 이응로 같은 거장들도 당대에는 무척 고생했어요. 왜냐면 그들의 작품을 올바로 봐줄 안목이 당시에는 없었거든요. 지금 이들의 작품이 수십억원을 호가하는데 그때는 아무도 몰랐지 않습니까. 이건 친일 작가들이 득세하면서 미술계를 흐린 것도 있고. 사회상과 맞물린 문제기 때문에 참 어렵죠."
예술은 노력
문인화가에겐 척박한 현실, 하지만 오 선생은 한 눈 팔지 않고, 오직 한 길 만을 위해 정진해 온 장인이다. 그런 오 선생이 "나의 그림은 이제 변할 때가 됐다"고 말했을 때 적잖이 놀랐다. 하지만 뒤이은 그의 설명에서 놀라움은 이내 감탄으로 바뀌었다.
"나의 그림은 분명 변할 겁니다. 하지만 유천이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화선지 안의 사군자가 변할 겁니다. 작가들은 자신의 그림이 마음에 들면 죽을 때가 된 거라고 해요. 하지만 전 아직 마음에 드는 그림이 없어요. 그러니 죽을 때까지 그려야죠."
강현석 기자 <angeli@ilyosisa.co.kr>
[오수철은?]
▲대한민국 서예대전 입선 다수(국립 현대미술관)
▲대한민국 문인화 부문 초대작가
▲서예대전 우수상 및 특선·입선 다수
▲추사선생 추모 휘호대회 특선 및 초대작가
▲예술의전당 서예관 개관 15주년 기념 특별전
▲문인화 대전(예술의전당 서예관) 입선 및 특선
▲원광대학교 서예학과 사군자 강사 외 다수 출강
▲유천서실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