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 700호 특집> ⑦ 특별 인터뷰 전지현 할리우드 진출

“ 다사다난 했으니까 이젠 잘 풀리겠죠”

2009년 전지현은 다사다난한 해를 보냈다. 휴대폰 불법복제사건에 휘말리기도 했고 화교설이 다시 제기되기도 했다. 이제 전지현은 모든 악재를 딛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려 한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할리우드 진출작 <블러드>를 통해서다. 전지현은 이번 영화를 통해 그동안 ‘스타 전지현’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각인시키길 원하며 그동안 알려졌던 CF스타, 청순한 이미지를 벗고자 한다. 20대의 마지막을 할리우드 진출로 시작한 그녀를 만나 속 깊은 얘기를 나눠보았다.

2008년 영화 <슈퍼맨이었던 사나이> 흥행 실패 이후 할리우드 진출 계획으로 한동안 국내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던 전지현은 영화 <블러드>로 오랜만에 국내 관객에게 연기를 선보인다. 전지현은 <공각기동대>로 유명한 오시이 마모루의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한 <블러드>에서 뱀파이어를 처단하는 헌터 사야 역을 맡았다.

미국, 유럽까지 활동영역 넓힐 예정

<블러드>는 홍콩의 거물 프로듀서 빌콩, 프랑스 출신의 크리스 나흔 감독 등이 어우러진 다국적 프로젝트로 3500만 달러(약 5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판타지 액션 블록버스터. 전지현은 전세계 동시 개봉되는 <블러드>를 통해 아시아를 넘어 미국, 유럽까지 활동영역을 넓혀갈 예정이다.
“빌콩 프로듀서로부터 출연제의를 받았어요.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국내외 다수 팬을 확보한 애니메이션 원작을 먼저 봤는데 한마디로 너무 매력적인 시야 캐릭터에 꽂혔죠. 액션이라는 새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그래서 참여하게 됐어요.”

10년 가까이 ‘CF 여왕’ 자리 지켜
‘연기력 논란’ 잠재우는 것이 과제
 뱀파이어 처단하는 헌터 사야 역… 정통 액션 도전
화교설·휴대전화 복제소속사 재계약 등 이슈화


전지현은 교복을 입은 채 와이어 액션, 검술 액션 등 그간 시도하지 않았던 정통 액션을 선보인다.
원래 움직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는데 이번 작품이 결정되고 난 후 액션 연기를 위해 운동을 시작하게 됐다. 특히 중국과 미국에서 오래 달리기부터 복근 단련, 발차기까지 3개월간 집중적으로 트레이닝을 받았는데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단다.
“와이어 액션도 쉽지 않은 촬영이었는데 한 번은 사인이 맞지 않아 크레인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어요.

당시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했나 서러워 눈물이 나더라고요. 특히 아르헨티나에서 한 달, 중국에서 세 달 반을 머물며 오랫동안 집을 떠나 있으니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컸어요.” 전지현에게 액션 연기보다 더 고역이었던 것은 영어 대사였다. 대사와 발음 강사를 별도로 두고 과외를 받았다.
“아무리 비싼 과외를 받았더라도 한계는 분명히 있더라고요. 한국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시간을 한국에서 보냈잖아요. 특히 영어 대사는 딕션(의미 전달)뿐 아니라 감정까지 표현해야 해 이중고였어요. 대사 한 줄을 위해 100번도 넘게 중얼거려야 했죠.”

<블러드> 개봉을 앞둔 전지현은 최근 화교설, 휴대전화 복제, 소속사 재계약 등 숱한 이슈를 몰고 다녔다.
“1년치 언론 보도될 것이 이번에 다 나온 것 같아요. 황당한 소문도 있고 확대 해석되는 부분도 많아 아쉬워요.”
화교설은 데뷔 때부터 꼬리표처럼 따라 붙었다.
“정말 그렇게 믿는 사람이 있나요. 배우를 시작하면서 믿음을 주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배우는 그래야 되는 사람이잖아요. 배우란 명예를 가지고 사실을 아니라고 하는 일은 절대 없어요.”

사회적 파장까지 일으킨 휴대전화 복제 사건과 소속사 재계약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분명 불미스런 일이지만 과장된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여태까지 걸어왔던 길인데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도 곰곰이 생각하게 됐어요. 재계약을 안 할 수도 있었지만 이별하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어요. 사람을 대할 때 말보다 행동을 보고 스스로 판단하는 편이죠. 이번 선택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전지현은 지난해 가을 미국 교포들 사이에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는 은행가와 열애 중이며 결혼을 준비 중이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 적이 있었다. 당시 전지현은 소속사를 통해 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친한 친구가 결혼을 해서 같이 드레스를 봐 주러 다녔는데 그걸 보고 오해하셨나 봐요. 저랑 제 친구, 친구 남편, 그리고 남편의 남동생 이렇게 여자 둘, 남자 둘이 웨딩숍을 다녔어요.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을까요.”

화교설·휴대폰 복제 소문 확대 해석

이번 영화를 통해 전지현이 풀어야할 과제는 ‘연기력 논란’이다. 1997년 잡지 표지모델로 데뷔한 전지현은 1998년 SBS 드라마 <내 마음을 뺏어봐>를 통해 연기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전지현은 모 CF에서 섹시한 테크노댄스를 선보이며 일약 CF퀸으로 등극했고 2002년에는 영화 <엽기적인 그녀>를 통해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배우로서 최고의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후 공포, 멜로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 도전했으나 잇단 흥행참패로 연기력 부재, 전지현 거품설 등 수많은 논란에 시달려야 했다. <엽기적인 그녀> 이후 7년 동안 특별한 흥행작이 없이 CF 스타로만 명성을 이어온 상황이다.
“2002년 대종상을 수상할 때만해도 여배우로서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살아가는 삶이 너무 아름답고 기대가 됐어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면 하는 얘기가 ‘CF 스타다’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고 그럴 때면 정말 무너지는 듯한 기분이었죠.”

그래서 전지현은 그동안의 수많은 논란들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영화 <블러드>의 출연을 결심한 것이다.
“‘전지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나 일들을 모두 다 버리고 하얀 종이가 돼서 떠났어요.”
전지현은 연예계 ‘엄친딸’로 통하기도 한다.

“제가 잘나서는 절대 아니고요, 저는 현재에 만족하는 사람이에요. 2010년보다 지금 전지현은 한 살 젊은 거잖아요. 과거, 미래에 얽매이고 싶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이 저한테는 가장 소중하죠. 그런 점에서 익숙해지는 걸 경계해요. 익숙해지면 방심하고 나태해질 수 있잖아요.”
잡지모델로 데뷔해 벌써 11년. 그녀는 “그동안 내 인생은 앞만 보고 달려야 했던 경주마였다”고 말한다.
“서른 전에 <블러드> 같은 경험을 하게 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저는 늘 노력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여자니까 더 예뻐지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믿음 주는 배우로 다양한 작품 선보일 것

전지현은 경력에 비해 작품 수가 부족하다.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은 반성하고 노력해야겠지만 스스로를 돌이켜 봤을 때 지금까지 다른 생각 많이 안 하고 계속 일만 해왔다. 전지현에게는 그것이 아쉽다.

“그때 그 감정을 느껴야 하는 순간에 못 느끼고 일만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 소중함을 깨닫고 있죠. 그래서 지금이 가장 행복해요. 지금은 느낀 감정을 연기로 표현 해보고 싶은 욕심이 많아요. 연기를 표현해낸다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름답고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거잖아요.”
“앞으로 무슨 연기를 하든 어떤 배역을 맡든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전지현은 “관객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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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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