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령700호 특집①>전두환 일가 수백억 ‘땅 대박’ 사연



장남 재국씨 조성 베일 속 ‘무릉도원’ 실체 드러나
1만7천평 꽃동산…자금출처·투기 의혹 여전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돈방석’에 앉았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가 수십억원을 들여 대거 매입한 땅이 대박을 터뜨린 것. 막바지 공사가 한창인 경기 연천군 소재 ‘허브빌리지’가 그곳이다. 주민들 사이에서 ‘연천 별천지’라 불리는 이곳은 재국씨가 지난 5년간 공들여 조성한 대규모 농원. 그 실체가 드러나면서 재국씨 땅은 물론 주변의 땅값까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일가가 뒤흔든 연천 지역을 가봤다.

지난 2일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망대로 유명한 태풍전망대(휴전선까지 800m)를 목전에 둔 이곳은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상황이라 유독 을씨년스런 기운이 가득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 이내 돌풍과 함께 천둥·번개를 동반한 변덕스런 날씨 속에서 간간이 인근 부대에서 총성이 들렸고, 어디론가 바삐 이동하는 군인들의 행렬과 시꺼먼 매연을 뿜어대며 내달리는 군용 트럭들은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켰다.

임진강 기암절벽
능선 안쪽에 자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심상치 않은 남북 난기류를 뚫고 도착한 곳은 북삼리에 위치한 ‘허브빌리지’. 임진강을 끼고 깎아내린 기암절벽의 완만한 능선이 감싸 안은 형상은 “그림 같다”는 탄성을 절로 자아냈다.
심란한 마을 분위기를 달래듯 입구에선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성인 6000원)을 끊고 들어간 그곳은 마치 지중해 휴양지를 연상케 하는 한마디로 ‘별천지’였다. 고요하고 인적이 드문 최전방에 숨은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5만7000여㎡(약 1만7000평) 규모의 허브빌리지는 1만3200㎡(약 4000평)의 국내 최대 라벤더 꽃밭과 100여 종의 허브가 심어있는 허브가든, 80여 종의 야생화 군락지인 들꽃동산 등으로 꾸며져 있다.
또 밤나무동산, 솟대동산, 문가든, 화이트가든, 시인의 길, 포도터널 등 각 테마별로 구성된 산책로와 이탈리아 요리와 커피, 허브차 등 다양한 음료를 판매하는 레스토랑, 도자제품을 직접 제작·판매하는 도예공방,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등도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6월 주요 시설은 이미 완성해 외부에 공개되고 있지만 펜션 등 부대시설과 주변 정리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다. 허브빌리지 관계자는 “올가을까지 마무리 작업을 끝낼 예정”이라며 안내 책자를 건넸다. 여기엔 남녘의 강물과 북녘의 강물이 섞이는 ‘화합의 땅’, 남녘의 산과 북녘의 산이 만나는 ‘평화의 땅’이라고 소개돼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연천의 명소로 떠오른 이곳의 주인은 다름 아닌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다.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재국씨는 자신과 부인, 자녀의 명의로 이 땅을 매입해 대규모 농원을 조성했다.
재국씨가 집중적으로 연천 일대 땅을 사들인 것은 2004년 3월부터다. 해당 토지의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당시 연천군 왕징면 북삼리 산 66번지 임야와 밭 등 8필지 2만5000여㎡(약 7500평)가 재국씨 부인 정모씨 명의로, 같은 해 5월 북삼리 222번지 6필지 1만5000여㎡(약 4500평)는 재국씨 딸 전모양 명의로 등기가 됐다. 올해 24세인 전양은 같은 시기 인터넷 홈피에 ‘우리나라가 제일 구리다’는 내용의 한국 비하 글을 올려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듬해 3월엔 북삼리 221번지 임야 1필지 1만3000여㎡(약 3900평)가 재국씨 명의로 이전등기가 완료됐다. 재국씨는 토지 외에도 222번지에 있는 3층짜리 건물 2채(1320여㎡·약 400평)를 2004년 5월 전양 명의로 매입했고 곧바로 자신을 포함해 가족들의 주소지를 서울 용산구 서빙고동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이어 매입한 토지 가운데 건물이 있는 이 일대 임야 1만3000여㎡를 부인과 딸 명의로 산지전용허가를 받아 첫 삽을 떴고, 완공이 마무리 단계에 이른 것이다.
재국씨가 부지를 처음 매입할 때만 해도 자금 출처에 관심이 집중됐다. 무슨 돈으로 땅을 샀냐는 의문이다. 혹시 ‘가난한 아버지’전 전 대통령에게 물려받은 재산으로 허브빌리지를 조성하지 않았냐는 것. 이 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대목으로 남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재산이 29만원”이라고 밝힌 전 전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무일푼이다. 국가에 납부해야 할 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997년 2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선고받은 추징금 2205억원 가운데 검찰이 강제 집행한 재산 등 납부한 532억원을 제외하고 1673억원을 지금껏 내지 않고 있다.
그는 2003년 4월 법원의 재산명시 심리에서 “전 재산이 예금 29만1000원뿐”이라고 밝힌 뒤 ‘전 재산’마저 추징금으로 납부했다. 검찰은 “전 전 대통령의 숨겨진 재산을 끝까지 찾아내 모두 추징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006년 6월 서울 서초동 땅 추징을 마지막으로 3년이 넘도록 추가 추징이나 납부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서울 ‘금싸라기 땅’팔아
연천 땅 사들여

그동안 ‘전두환 비자금’과 관련해 재국씨도 여러 번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지만 덫에 걸리지 않았다. 재국씨가 경영하는 ㈜시공사가 단순 출판사에서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종합미디어그룹으로 발돋움한 ‘문어발 확장’배경이 곱지 않은 시선을 받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매출 500억원에 이르는 굴지의 출판업체 ㈜시공사는 허브빌리지의 모회사 격이다.
재국씨는 딸이 소유했던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부동산(당시 시가 30억원 상당)과 부인과 아들의 공동명의였던 서울 마포구 서교동 부지(당시 시가 10억원 상당) 등 도심의 ‘금싸라기 땅’을 팔아 연천 땅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 대통령 한 측근은 “재국씨 가족의 재산은 전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며 “논현동과 서교동 땅은 재국씨의 장인이 딸과 외손자들에게 상속해 준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재국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천 땅을 타인 명의로 몰래 산 것도 아니고 나쁜 일을 하려고 산 것도 아니다”라며 “허브 농원을 건설해 출판사와 독자를 잇는 소통의 현장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재국씨가 땅을 매입하자 일각에선 투기 의혹도 불거졌다. 허브빌리지는 물론 주변의 땅값까지 들썩인 이유에서다.
실제 <일요시사>의 확인 결과 재국씨 가족은 연천 땅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돈방석’에 앉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재국씨 소유의 북삼리 221번지 공시지가는 2005년 ㎡당 5770원에서 2006년 3만8800원, 2007년 13만7000원, 지난해 14만8000원으로 폭등했다. 올해 상승세가 약간 주춤해 12만2000원을 기록했지만 구입 당시에 비해 5년 새 무려 20배 이상 뛰어오른 셈이다.
재국씨 부인 소유의 북삼리 산 66번지는 매입한 2004년 1100원에서 올해 4410원으로 4배 정도 올랐다. 딸 소유의 북삼리 222번지는 2004년 3만3200원에서 올해 12만2000원으로 역시 4배가량 상승했다.
현지 한 부동산 중개인은 “최전방 지역 가운데 연천이, 그중에서도 허브빌리지 라인이 임진강에 접한 데다 도로를 바로 끼고 있어 일대에서 가장 비싼 가격에 거래되는 곳으로 꼽힌다”며 “2000년만 해도 연천에서 평당 몇 백원에 거래되던 땅들이 이젠 실거래가로 보통 20∼30만원, 많게는 100만원을 웃돈다”고 말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연천을 비롯해 휴전선 접경지역 일대에 땅 투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여기에 2004년 개성공단에서 첫 제품이 생산되고 아테네올림픽 남북한 선수단의 공동입장, 북한 용천역 사고로 인한 대북구호지원 등 남북관계 호재가 맞물리면서 훈풍이 불더니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뒤 열풍이 불어 닥쳤다. 그동안 대북 위기도 수차례 있었지만 이 지역 부동산 시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진 못했다.
특히 2004년부터 본격 개발된 파주 LCD 산업단지 조성으로 대토를 원하는 주민들이 토지를 매입하면서 재국씨 땅은 물론 주변의 땅값까지 하루가 다르게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연천은 2005년 100%에 가까운 공시지가 상승률을 기록, 전국에서 가장 큰 폭으로 땅값이 뛰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자 이 일대의 토지 실거래가는 공시지가보다 수십∼수백 배 비싼 가격으로 흥정되는 실정이다. 재국씨 가족이 연천 땅을 매입한 2004년만 해도 실거래가로 보통 임야가 평당 5만원, 대지가 10만원 안팎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거의 대부분 10배 이상 올랐다는 게 부동산업계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그나마 허브빌리지 근처의 주민들은 평당 100만원을 줘도 안 판다고 한다. 결국 수십억원에 매입한 재국씨 가족의 땅들이 현재 수백억원을 호가한다는 계산이다.

가족 주소지도 이전
평당 5천원→12만원


한 주민은 “꼭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허브빌리지가 들어선 뒤 인근의 땅값이 몇 십배나 올랐기 때문에 ‘전두환 가족’을 땅값을 올려준 ‘반가운 손님’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지역의 유지들 사이에서 ‘전두환 일가가 그냥 땅을 사고 개발할 리 없다’ ‘대규모 관광단지나 휴양시설이 들어서는 것 아니냐’란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당분간 개집도 안 판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 전 전 대통령은 연천, 파주 등 휴전선 서부 접경지와 인연이 적지 않다. 전 전 대통령은 1978년 제1사단장을 지냈는데 1사단 주둔지가 바로 파주 지역이다. 전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는 2007년 탤런트 박상아씨와 파주 헤이리 한 화랑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으며 같은 해 재국씨가 대표이사로 있는 ㈜시공사는 파주 문발리에 ‘파주 사옥’을 세우기도 했다.
전두환 정권의 5공화국 시절 주도세력에 의해 정치권에 발탁된 이한동 전 총리는 1981년 11대 총선 때 연천·포천 지역구에서 당선된 이후 불출마한 2004년 17대 총선까지 같은 지역구에서 내리 6선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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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