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 신화’ 강덕수 STX그룹 회장 흥망 풀스토리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3.05.13 11:4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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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한 날갯짓에 체력 바닥나 급추락

[일요시사=경제1팀] 월급쟁이에서 시작해 재벌 오너가 된 ‘샐러리맨 신화’. 강덕수 STX그룹 회장이 백의종군을 선언했다. 그룹 출범 13년 만이다. 침몰하는 STX를 살리기 위해 강 회장은 지분과 경영권 일체를 내려놓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마지막 승부수가 ‘위기 극복의 신화’가 될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자산기준 재계 13위인 STX그룹이 진퇴양난에 빠졌다. 유동성 위기의 여파로 지주회사인 ㈜STX를 비롯 STX조선해양, STX중공업 등이 자율협약을 신청하고 금융회사들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채권단에 모든 지분을 포기하고 경영권을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고 협의를 진행 중이다.

불과 13년 만에
재계 13위 우뚝

강 회장은 ‘샐러리맨 신화’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강 회장의 손이 닿으면 법정관리에 있던 기업들도 회생해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기도 했다.

동대문상고를 졸업하고 1973년 쌍용양회에서 평사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그는 20년 만인 1993년 쌍용중공업 이사로 승진했다. 2000년 말 회사가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거쳐 외국계에 인수된 뒤엔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2001년엔 일생일대의 승부수를 던졌다. IMF 당시 외국 자본에 넘어갔던 쌍용중공업이 다시 매물로 나오면서 전 재산 20억원을 털어 경영권을 인수, STX그룹을 설립했다. 그의 나이 51세 때다.


이후 강 회장은 공격적인 인수ㆍ합병(M&A)을 통해 그룹 외형을 확장했다. STX팬오션과 STX조선해양의 근간인 범양상선, 대동조선을 잇따라 인수했다. 조선업을 근간으로 해상운송까지 사업 분야를 넓혔다.

산업단지관리공단을 인수해 STX에너지를 세우는 등 에너지, 건설업에도 뛰어들었다. 2007년엔 세계 2위인 크루즈선 건조사인 아커야즈(STX유럽)을 인수해 ‘조선 기자재와 엔진 제조→선박 건조→해상 운송→에너지’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특화했다.

2000년대 중반부터 이어진 세계 조선·해운업계의 호황으로, STX그룹은 짧은 기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설립 첫해인 2001년 5000억원도 되지 않던 매출액은 불과 10년만에 18조 8300여억원으로 20배 가까이 성장했다. 

M&A 부메랑에 자금난…결국 그룹 공중분해
“조선만 남기고 정리”채권단 자율협약 신청

하지만 강 회장의 공격적 M&A 경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 속에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세계 교역 물동량이 줄면서 해운업이 망가지기 시작했고, 이어 선박 발주량이 줄면서 극심한 수주 가뭄에 시달렸다.

그룹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가 넘던 해운 업황은 곤두박질쳤고, 후방 산업이자 그룹의 핵심인 조선업도 심각한 유동성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STX그룹은 지난해 매출이 18조8300여억원에 달했지만, STX조선해양(6300억원 손실)과 STX팬오션(4500억원 손실)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해 그룹 전체로 1조4000억원이 넘는 순손실을 기록했다. 결국 강 회장은 채권단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룹 쪼개지고
회장직도 흔들

STX그룹은 지난해 5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맺은 뒤 대대적인 구조조조정에 나섰다. 지난해 12월 유럽자회사인 STX OSV지분을 이탈리아 조선업체인 핀칸티에리에 7680억원 팔았고, STX에너지 지분 약 40%를 일본 오릭스에 3600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여기에 캐시카우 역할을 하는 STX팬오션 매각도 결정했지만 해운업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마땅히 나서는 인수자가 없어 지난달 공개매각이 불발됐다.

STX팬오션 공개매각이 실패하면서 강 회장은 지난 4월 2일 STX의 핵심 계열사인 STX조선해양까지 채권단에게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요청하게 됐다.

강 회장은 채권단으로부터 6000억원의 긴급자금을 지원받는 조건으로 대주주 주식 처분 및 의결권 행사 제한 위임장과 구상권 포기 각서를 제출했다. 지난달 말에는 강 회장 일가가 지분 60%를 보유한 STX건설이 서울중앙지법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전격 신청하기도 했다.



최근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채권단이 발표한 STX그룹의 구조조정 방안에 따르면, 현재의 STX그룹은 사실상 해체될 예정이다. 자율협약을 신청한 STX조선해양 외에도 그룹 지주회사이자 STX조선해양 대주주(30.6%)인 ㈜STX를 포함해 STX엔진과 STX중공업이 모조리 자율협약 대상이 됐다.

STX엔진과 STX중공업은 선박용 엔진과 해양플랜트 기자재 등을 만들어 STX조선해양에 납품하는 회사로, STX조선해양과 수직계열화된 관련회사다. 이 조선해양 부문과 역시 자율협약 대상이 된 시스템통합 업체인 포스텍을 제외하면 그룹의 주요 사업 부문은 모두 매각 대상에 올랐다.

매각으로 방향이 잡힌 사업 부문을 제외하면 큰 갈래에선 ‘㈜STX→STX조선해양→STX엔진·STX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조선업 부문을 중심으로 그룹이 재편되게 된다.

그룹 외형도 크게 작아진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자료를 보면 작년 말 기준 STX그룹 자산 규모는 24조 3000억 원이다. 이는 STX유럽, STX다롄 등 해외 자회사 자산은 제외한 것이다.

여기서 STX팬오션(7조1500억원), STX건설(5484억원), STX에너지(1조6790억원)가 분리되면 현재 24조3000억원인 전체 자산 규모는 재계 20위권에 해당하는 16조8700억원으로 쪼그라든다.

버릴 건 버리고
핵심계열 위주로

강 회장 역시 그룹의 곁가지를 잘라내고 조선사업분야를 단단히 하는 쪽으로 채권단과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STX조선해양의 주요 해외 계열사인 STX다롄, STX프랑스, STX핀란드의 매각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STX그룹의 지배구조는 정점에 있는 포스텍에 따라 달라질 전망이다. 시스템통합(SI) 사업체인 포스텍은 그룹 지주회사인 ㈜STX의 지분 23.1%를 보유해 실질적인 그룹 지배구조의 최상층부에 있다.


강 회장은 이 포스텍 지분 69.4%에 ㈜STX 지분 9.9%를 갖고 있어 오너 역할을 해왔다. 강 회장 일가와 포스텍이 주요 주주여서 개인회사 격인 STX건설을 빼면 나머지 주요 계열사들은 모두 ㈜STX 아래 자회사 형태로 있는 구조다.

평사원서 총수 올라 “IMF가 낳은 영웅”
2008년 금융위기 직격탄 맞고 백의종군

채권단은 앞으로 약 6주 동안 STX조선해양에 대한 실사 작업을 벌여 대주주 지분 감자와 출자 전환 등 구체적 회생 계획을 확정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럴 경우 오너인 강 회장의 지분은 크게 쪼그라들게 된다. 채권단 말대로 경영권은 유지한다 해도 기존 오너 지위는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명시적으로는 채권단과 ‘자율협약’이지만 STX조선해양 지분을 담보로 한 채무상환 유예 및 긴급 운영자금 수혈 등이 핵심 내용이기 때문이다.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STX그룹은 결국 채권단 결정에 따라 좌우될 운명이 됐다.

실낱같은 희망
이제 회생 신화?

이는 금호그룹 등 다른 대기업 집단의 구조조정에서도 있어왔던 관행이다. 오너가 부실 경영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진다는 사회적 합의인 셈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STX그룹은 짧은 시간 몸집을 부풀리기 위해 주 거래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많은 사업을 벌려오면서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다”며 “담보를 통한 부실채권을 높여놓고 강 회장이 이제 와서 경영권을 포기한 다는 것은 ‘눈가리고 아웅’식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재 강 회장이 품고 갈 것으로 보이는 곳은 STX조선해양, STX건설, STX중공업, STX엔진 등인데, 이들 모두 채권단 자율협약이나 법적관리, 어음 및 수표의 부도, 대출원리금 연체 등의 상황에 빠져 있어 회생 결과를 확실히 예측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STX그룹 임직원들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면서도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STX 한 관계자는 “일부 계열사는 매각설이 꾸준히 나왔고 자금난으로 기업의 골간이 흔들리면서 어느 정도 예상한 시나리오”라면서도 “허탈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향후 채권단과 STX그룹 간 협의를 통해 구체화되겠지만, 매각선상에 오른 계열사는 물론이고 자율협약 대상이 된 계열사 역시 강도 높은 인적·물적 구조조정과 긴축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STX 다른 관계자는 “채권단이 경제파급 효과를 고려해 경영정상화에 방점을 찍고 대책을 마련 중인만큼 조속한 시일 내에 자리를 잡아갈 것”이라며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김설아 기자 <sasa7088@ilyosisa.co.kr>


‘닮은꼴’강덕수-윤석금 비교하니…
‘승자의 저주’덫에 발목

‘샐러리맨 성공 신화’ 강덕수 회장이 이끄는 STX그룹이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시련을 맞았던 ‘세일즈맨 성공신화’ 윤석금 회장의 웅진그룹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맨손으로 출발해 대기업 총수로 올라선 신화의 주인공들이 연이어 위기를 겪자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

자수성가한 세일즈맨 출신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위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영업사원이었던 윤 회장은 1980년 자본금 7000만원으로 웅진출판(현 웅진씽크빅)을 세우고 출판·학습교재 사업을 시작했다. 윤 회장은 웅진그룹의 성장 초기 임직원들에게 “뭐든 잘만 만들어라, 파는 건 내가 책임질 테니”라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일즈맨으로서 30년간 꾸준히 기초를 닦은 셈이다. 이후 건강식품(웅진식품)과 화장품(코리아나화장품), 정수기·가전(웅진코웨이)으로 사업 영역을 넓힌 후에도 윤 회장은 ‘세일즈’의 힘을 강조했다.

이후 직원 7명의 소규모 출판사는 30년 만에 수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윤 회장은 웅진출판을 세운 이후 30년간 꾸준히 사업을 늘려왔다. 잇따른 M&A로 1997년 IMF 외환위기 당시 자금 사정이 악화됐지만 그룹 내 매출 2위였던 코리아나화장품을 매각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그리고 다시 공격적인 M&A에 나섰다. 

2007년 극동건설, 2008년에는 웅진케미칼을 인수했고 태양광 사업에도 발을 들였다. 2010년에는 저축은행을 인수해 웅진캐피탈을 설립했다.

그러나 세계 경기 침체로 건설·금융·에너지 등 신규 사업이 한꺼번에 흔들렸다.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며 극동건설의 재무 상황이 악화됐고, 웅진캐피탈의 경우 저축은행 사업이 대규모 적자를 냈다. 웅진의 폴리실리콘 사업도 태양광 시장 침체에 직격탄을 맞았다.

이 과정에서 도덕성에 대한 의구심이 불거지기도 했다. 윤 회장이 채권단과의 협의 없이 단독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하고 이후에도 경영권을 놓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결국 윤 회장은 바로 국민들과 채권단에 사과했다. 

최근에는 회사의 악화된 재무상태를 숨긴 채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증권선물위원회에 의해 검찰에 고발됐다. 윤 회장은 이외에도 웅진홀딩스 회생절차 개시 신청이 알려지기 전 배우자 명의 계좌 주식을 팔아 손실을 회피한 불공정 혐의도 받고 있다. 

결국 윤 회장은 채권단과의 협의를 통해 웅진홀딩스와 함께 최초 그룹을 일궈낸 출판계열사 웅진씽크빅과 북센의 경영권을 유지하게 됐지만 잇따른 구설수로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됐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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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