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노무현 쇼크③노(盧) 가슴 후벼 판 사람들

‘노심’에 비수 꽂아도… 타협하지 않았다! 굴복하지 않았다! 구걸하지 않았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가슴으로 보낸 국민들의 마음속에 ‘인간 노무현’에 대한 향수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있을 땐 몰랐다’는 그리움과 ‘있을 때 잘할 걸’이란 아쉬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자책감에 ‘그냥 그렇게 보낸’ 울분과 탄식이 섞인 전 국민적 애도 물결이 여전히 출렁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국민들의 참담하고 비통한 심정이 원망과 분노로 격앙되면서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에 ‘상처’를 입힌 인사들에게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그동안 ‘노심’에 비수를 꽂은 옛 동지들과 정적들을 추려봤다.

‘영원한 적, 동지 없는’구린 정치판서 수많은 배신 맛봐
친노세력 속속 변절…옛동지 등 돌린 뒷모습에 한숨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탈권위과 수평적 리더십으로 국민과의 의사소통은 물론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분야의 ‘개혁’을 선창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원칙’과 ‘소신’이 그의 무기였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기존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뚜렷한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행동 하나 하나…
말 한마디에 시비

그러나 정치판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는 법. ‘구린 전통’은 노 전 대통령도 그냥 두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줄곧 ‘가시밭길’이었던 정치인생에서 수많은 배신과 모욕을 견뎌야 했다.
정치에 입문한 이후 지난 20여 년 내내 그랬다.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다. 같은 자리에서 한 시선으로 ‘노(盧)비어천가’를 외친 옛 동지들의 등 돌린 뒷모습을 쓸쓸히 지켜봐야 했고 행동 하나 하나 또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시비를 거는 정적들의 꼬투리 공세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타협하지 않았고 굴복하지 않았으며, 구걸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에게 가장 먼저 ‘배신’을 맛보게 해준 인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88년 13대 총선 때 김 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권유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그해 13대 총선에서 5공 신군부의 핵심인물인 허삼수(당시 민정당 후보)씨를 누르고 정계에 입문해(부산 동구) 곧바로 이어진 5공 청문회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을 정치권에 끌어들인 김 전 대통령의 손을 뿌리쳤다. 김 전 대통령이 1990년 3당 합당(민정당-통일민주당-공화당)에 나서자 민주화운동에 대한 배신으로 규정, ‘변절자’라고 맹비난하며 제 발로 뛰쳐나왔다.
결별 대가는 컸다.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평민당 총재)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지만 허삼수씨와 다시 맞붙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여당을 이끌던 김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대신 허씨를 “충직한 군인”이라고 거든 결과였다.

이어 1995년 부산시장 선거, 1996년 15대 총선, 2000년 16대 총선에서도 연거푸 물을 마셔야 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대놓고 “이명박을 지지한다”고 밝힌 것도 모자라 틈만 나면 각종 공식석상에서 “노무현을 괜히 키웠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노 전 대통령의 가슴을 후벼 파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아군’들로부터 깊은 상처를 입었다. 특히 이인제 의원(무소속)과는 경선을 거치면서 완전히 ‘앙숙’으로 돌아섰다. 당초 두 사람 간 관계가 원만했던 것은 아니지만 경선 이후 더욱 벽을 쌓았다.

‘이인제 대세론’이 ‘노풍’에 의해 서서히 함몰되자 다급해진 이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장인이 6·25 빨치산 활동으로 옥사한 좌익인사란 점을 부각시켜 공격했고, 노 전 대통령은 “그러면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고 받아쳐 엄청난 호응을 받았지만 대선 내내 ‘색깔론’에 시달려야 했다.
이 의원은 16대 대선을 코앞에 둔 2002년 12월 초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한 뒤 “노무현 지지율은 광기다. 노풍은 광풍”이라고 노 전 대통령을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지난 4월엔 ‘박연차 게이트’가 터지자 “노무현 정권이 비전도 신념도 없이 낡은 이념과 포퓰리즘에 의존해 생긴 결과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란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막판에 또 한 번 등에 칼이 꽂히는 아픔을 겪었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당시 국민통합21 대표)으로부터다.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로 확정된 노 전 대통령은 지지율 하락과 6·13 지방선거와 8·8 재보선의 연이은 참패로 같은 당 의원들이 집단 탈당하는 등 ‘반노’진영의 사퇴 압력을 받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한일월드컵 열기에 힘입어 상승세를 탔던 정 최고위원과 ‘단일화’란 승부수를 던진 것.
이 결과 같은 해 11월, 노 전 대통령이 단일후보로 선출됐으나 정 최고위원은 대선 하루 전날 밤 노 전 대통령이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란 피켓을 보고 “속도위반 하지 말라. 우리에겐 정동영, 추미애도 있다”고 말한 명동 유세 등을 문제 삼아 일방적인 지지철회를 선언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57만표 차로 이기고 극적으로 대권을 거머줬지만 정 최고위원과 후보단일화를 이룬 뒤 포장마차에서 기울인 소주잔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다. 정 최고위원 역시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을 앞두고 “노무현은 배신과 기만의 정치로 표를 얻은 정치꾼”이라고 몰아붙인 바 있다.

정치적 시련 겪자
가신들까지 짐싸

‘대통령 노무현’의 행보도 순탄치 않았다. 그중에서도 2004년 3월 헌정사상 최초로 한나라당이 꺼내든 탄핵소추안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인생에 최대 위기를 불러왔다.
노 전 대통령에게 ‘탄핵 폭탄’을 떨어뜨린 실질적인 주역은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당시 민주당 대표), 홍사덕 한나라당 의원(당시 한나라당 원내총무) 등이다. 조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 선대위원장을 맡은 참여정부 탄생의 일등공신.

‘여기서 맞고, 저기서 터지고’
정적은 소리 내 울지 못한다


하지만 민주당-열린우리당 분당 이후 2004년 17대 총선 때 노 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선거운동으로 비치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탄핵을 처음 거론했다. 노 전 대통령이 대선 때 정 최고위원과 결별을 감수하고도 치켜세웠던 추미애 민주당 의원도 이를 거들었다.
홍 의원은 한나라당 쪽에서 이들 의원과 손발을 맞춰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을 진두지휘했다. 이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 이후 불어 닥친 메가톤급 ‘역풍’으로 여의도를 떠났다가 가까스로 다시 정치권에 얼굴을 내밀 수 있었다.

탄핵 역풍을 불러온 촛불집회 속에서 국민들의 기대감으로 온 나라가 들썩인 것도 잠시.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동안 보수세력과 잦은 충돌을 빚었고, 사사건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 ‘희망의 메신저’에서 ‘원망의 표적’으로 추락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시련을 겪는 과정에서 측근들까지 하나둘 떠났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친노세력’들이 속속 변절한 것. 이들은 한때 노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탄 정치적 동지였으나 참여정부 중반 이후 점점 거리를 두더니 ‘뒤뚱뒤뚱’한 정권 말에 이르자 다른 편에 붙거나 욕을 해대기 시작했다.
정동영 무소속 의원, 김근태 민주당 상임고문, 천정배 민주당 의원, 강봉균 민주당 의원, 김한길 전 의원….

이들은 모두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와 ‘열린우리당 창당’(2003년 11월)의 일등공신들로 노 전 대통령의 보은 차원으로 참여정부에서 모두 한 자리씩(장관직) 차지했다. 그만큼 비수가 꽂힌 ‘노심’의 아픔이 더했다.
‘배반의 장미’는 열린우리당이 2004년 하반기부터 치러진 각종 재·보선과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연달아 수모를 당하면서 싹을 틔웠다. 그 화살이 노 전 대통령에게 날아간 것.

열린우리당 존폐를 둘러싸고 노 전 대통령과 친정그룹간 신경전은 단순히 의견충돌을 넘어서 감정싸움으로 확전돼 집단탈당 사태로 이어졌고 결국 2007년 8월 열린우리당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과 정동영-김근태 사이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노 전 대통령이 “지도급 인사들이 열린우리당의 해체나 탈당을 주장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라고 지적하자 두 전직 의장은 “대통령은 더 이상 당의 현안에 상관하지 말라”며 맞받아치기도 했다.

급기야 청와대가 정동영-김근태의 노 전 대통령 비판을 ‘배신’으로 규정했고 이에 친노그룹이 ‘의리 없는 대통령’이라고 응수하면서 양측의 사이는 더욱 멀어졌다. 올 들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자 일부 친노인사 출신들이 ‘노무현과 거리두기’에 나서는 씁쓸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노(盧)비어천가’서
‘명(明)비어천가’로

노 전 대통령의 뒤통수를 친 참여정부 핵심 수뇌부들도 눈에 띈다. 이들은 ‘노무현 옷’을 벗은 뒤 한나라당으로 말을 바꿔 탔다.
참여정부에서 청와대 치안비서관을 거쳐 서울경찰청장과 경찰청장을 지낸 허준영 코레일 사장은 2005년 말 시위대 강경진압의 책임을 지고 불명예 퇴진한 것에 불만을 품고 한나라당에 입당, 2006년 7·26 재보선(서울 성북 을)과 지난해 4·9 총선(서울 중구)에서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참여정부가 추진한 각종 부동산 대책과 행정수도 이전 작업에 충주적인 역할을 한 최종찬 전 건설교통부 장관도 4·9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안양 동안갑)로 나섰지만 배지를 달지 못했다.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국방부장관 자격으로 노 전 대통령을 수행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면서 허리를 굽히지 않아 ‘꼿꼿 장수’란 별명과 인기를 얻은 김장수 한나라당 의원은 4·9 총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해 비례대표로 선출됐다.

무엇보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직전인 2007년 10월 자신이 직접 임명한 임채진 검찰총장의 수사팀으로부터 ‘표적’이 되는 고통을 당해야 했다.
이외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전 금융감독위원장), 한덕수 주미대사(전 경제부총리),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전 산업자원부 장관) 등 노무현 정부 출신 인사도 이명박 정부로 자리를 옮겨 친노계에선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최근엔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막말을 쏟아낸 각계 인사들이 구설수에 오르고 있는 가운데 유난히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의 발언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안 원내대표는 지난달 27일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을 앞두고 “국민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변질시켜 소요사태가 일어날지 정말 걱정”이라고 말한 바 있다.

공교롭게도 안 원내대표는 노 전 대통령과 사법시험 17회 동기로, 노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사법연수원 시절 함께 찍었던 사진을 꺼내 들며 감회에 젖는 액션(?)을 취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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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단독] ‘1조4000억’ 세운5구역 재개발 이사 없는 이사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1조4000억원 규모 초대형 사업에 ‘변수’가 등장했다. 사업 진행 과정에서 불거진 절차적 정당성에 시비가 붙었다. 법정 공방으로 비화됐던 문제는 이제 결론만 남은 상태다. ‘모로 가도 수익만 내면 된다’는 재개발·재건축 시장에 브레이크가 걸릴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5-1구역, 5-3구역 도시정비형 재개발사업(이하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현재 확인된 소송만 ▲손해배상 청구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등 3건에 이른다. 겉으로는 순탄하게 진행 중인 듯한 사업의 이면에 ‘복마전’이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일요시사> 1539호 ‘<단독> 1조4000억원 세운5구역 재개발 복마전’(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50331) 기사 참조). 꼬리에 꼬리 사법 리스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은 서울 중구 산림동 190-3번지 일원 7672㎡ 부지에 지상 37층 규모의 업무복합시설을 짓는 프로젝트다. ㈜이지스자산운용이 주주로 참여 중인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PFV)가 시행을, GS건설이 시공을 맡고 있다. 태영건설이 시공권과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워크아웃에 돌입한 이후 GS건설이 인수했다. 대신자산운용이 업무시설에 대한 선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선매입 가격은 3.3㎡당 3500만원가량으로 계약금으로만 700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자산운용에 따르면, 현재 사업은 철거 단계로 예정대로 2030년에 개발이 끝나면 연면적 13만㎡가 넘는 최상급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게 된다. 문제는 몇 년째 꼬리표처럼 따라붙고 있는 ‘사법 리스크’다. 검찰, 경찰에 고발된 몇몇 사건은 종결됐지만 일부는 법정 공방으로 번졌다. 눈여겨볼 대목은 송사에 휘말린 이들이 현재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아무런 지분이 없는 ‘외부인’이라는 사실이다. 사업 초창기 기틀을 닦은 이른바 ‘개국공신’ 역할을 한 것은 맞지만 지금은 연결고리가 없는 상태다. 그런데도 이들의 송사에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끊임없이 언급되는 이유는 시행을 맡은 이지스자산운용이 연루돼있기 때문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자금 조달 역할로 합류했다. 부동산 매매, 분양 등을 하는 업체 대표 염모씨와 부동산 개발 관리 등을 하는 업체 공동대표 오모씨, 권모씨 등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토지 매입 자금이 부족해지자 이지스자산운용을 끌어들였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총괄하고 있는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사업에 합류할 무렵 인허가 문제 등이) 어느 정도 진행돼있었고 저희가 투자하기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돈을 투자해 진행하면 안정권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말했다. 염씨가 대표로 있는 연합와이앤제이(이하 연합)와 이지스자산운용은 2019년 1월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은 50대 50으로 맞췄다. 여기에 연합은 오씨, 권씨, 최씨, 박 전 이사 등과 따로 공동사업 약정을 맺었다. 지분 구조는 연합 50%, 오씨 30%, 권씨 10%, 최씨 7%, 박 전 이사 3% 등으로 구성됐다. 2030년 13만㎡ 업무복합시설 법정 공방 최소 3건 진행 중 2019년 6월 연합, 이지스자산운용, 국민은행(이지스펀드의 신탁사), 생보부동산신탁(현 교보자산신탁) 등은 주주협약서를 작성하고 ㈜세운5구역 PFV를 설립했다.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을 위한 시행사가 정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당시 지분 구조는 연합 47.1%, 이지스자산운용(17.2%)+이지스펀드(29.9%) 47.1%, 생보부동산신탁 5.8% 등이다. 대표이사는 염씨가 맡기로 했고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은 각 2명씩 이사를 추천해 총 4명으로 이사회가 구성됐다. 연합 측에서는 염 대표와 박 전 이사가 이사로 참여했다. 이 구성은 박 전 이사가 2020년 8월14일 이사직을 사임할 때까지 유지됐다. 이후 염 대표가 이지스자산운용에 지분을 넘기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빠져나왔다. 현재 진행 중인 소송은 염 대표가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서 손을 떼는 과정에서 오간 돈, 이지스자산운용이 오씨와 권씨, 최씨 등에게 준 돈을 두고 불거졌다. 염 대표가 받은 378억원, 오씨 등 3명 등이 받은 94억원 등 약 480억원을 둘러싸고 소유권 논쟁이 진행 중이다. 세운5구역 PFV, 이지스자산운용은 돈을 지급한 주체라 송사에 연루돼있다. 이 소송은 당시 사업의 지분 구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시작됐기에 어떤 결론이 나오든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최근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 소송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동안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에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했던 이사회 관련 소송이 1심 판결을 앞두고 있는 것. 세운5구역 PFV 4명의 이사 가운데 1명이었던 박 전 이사는 2023년 9월 ‘이사회 결의 부존재 또는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2019년 6월20일부터 2020년 8월14일까지 이사로 재직하는 동안 단 한 차례도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 기간 세운5구역 PFV가 진행했다고 알려진 이사회는 16번이다. 480억원 두고 초기 멤버 갈등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는 상근 직원이 없고 등기임원의 보수도 없는 특수목적법인으로, 이사회는 업무 집행의 법률적 효력과 정당성을 보장해 주는 가장 중요한 기구이자 어쩌면 회사 그 자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런 이사회가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진행됐으니 그 결의 내용은 무효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세운5구역 PFV는 명목상 구성된 페이퍼컴퍼니였던 만큼 사업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는 실질적인 경영 주체(이지스자산운용), 총괄 관계자가 책임져야 한다. 리모컨을 누른 사람(이지스자산운용)이 문제지, 리모컨(세운5구역 PFV)이 잘못이 아닌 것과 같다”며 “14개월 동안 이사로 재직하다가 정기총회도 거치지 않고 중도 사퇴한 건 더 가다간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휘말릴 것 같아서였다”고 털어놨다. 박 전 이사는 이사회가 실제로 진행되지 않고 서류 작업을 통해 조작됐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그는 “상법에 따르면 이사회는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게 돼있다. 어디에도 서면으로 진행해도 된다는 문구는 없다. 대표이사였던 염씨가 이사회를 소집 통지하는 과정에서 보낸 공문에도 정확하게 기재돼있다”고 주장했다. 상법 제391조(이사회의 결의방법)에 따르면 이사회 결의는 이사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 이사의 과반수로 해야 한다. 다만 정관으로 그 비율을 높게 정할 수 있다. 그러면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이사회는 이사의 전부 또는 일부가 직접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모든 이사가 음성을 동시에 송·수신하는 원격통신 수단에 의해 결의에 참가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실제 <일요시사>가 입수한 ‘세운5구역 피에프브이 주식회사 이사회 소집통지’ 공문에 따르면 2020년 3월27일 오전 11시 이지스자산운용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진행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방법’ 부분에 ‘직접 참석 or 컨퍼런스 콜’이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방어 근거 무너지나 박 전 이사는 해당 이사회에 참석한 적 없지만, 자신의 막도장을 이용해 의결이 이뤄진 것처럼 꾸몄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당일 다른 곳에 있던 적도 있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박 전 이사는 “2019년 3차 이사회 이사록을 보면 그해 10월31일 재적 이사 전원 출석으로 이사회가 개최된 것으로 기재돼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지인들과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서 스크린 골프를 치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1시간가량 차이 나는 곳에 있던 상황이다. 그런데도 이사회 결의는 이뤄졌다”고 강조했다. 박 전 이사는 이 내용을 가지고 서울영등포경찰서에 염 대표 등을 ‘배임’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경찰은 박 전 이사가 재직 당시 이사회 소집이나 의사록 작성 등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 사실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불송치 처분했다. 박 전 이사는 “사후에 통보식으로 이사회 의결 내용을 알았다고 해서 이사회 자체의 절차적 하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검찰은 물론 염 대표, 이지스자산운용 모두 물리적 행위 자체가 없었던, 그래서 의결 자체가 무효인 이사회를 무기로 각종 고소·고발건을 방어해 왔다”며 “이사회에서 특별 결의사항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본인들이 체결한 공동사업약정서 등에 기재돼있는데도 그조차 무시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이사는 세운5구역 PFV가 토지를 매입하는 내용을 안건으로 다룬 이사회가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연합과 이지스자산운용이 맺은 공동사업약정서에 따르면 ‘승인된 사업계획에 포함되지 않은 자본적 지출’은 이사회 특별 결의사항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 특별 결의사항은 재적 이사 전원의 동의로 의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법원 절차적 하자 인정하면 사업 자체 흔들릴 가능성도 연합 등이 토지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땅값 부풀리기’ 의혹이 제기됐다. 염 대표와 오씨 등이 재개발 구역의 땅을 사는 과정에서 특수관계인을 이용해 비싼 값에 매입했다는 의혹이다. 시행사가 직접 원주민에게 토지를 사는 방식이 아니라 그사이에 특수관계인을 끼워 넣어 차익을 봤다는 것이다. 당시 검찰은 불기소의 근거 중 하나로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언급한 바 있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도 <일요시사>와의 만남에서 “땅값은 사실 정해져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재개발사업에서는 토지 확보가 중요하기 때문에 협의에 따라 하는 것이지, 정확한 시세가 있는 것도 아니다. 만약 너무 비싸게 샀다면 의사결정 과정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의사회 결의는 무조건 다 있었고 더 큰 의사결정은 주주총회를 통해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박 전 이사의 주장대로 이사회의 절차적 하자가 인정돼 그 존재 자체가 무효가 된다면 결의 내용 역시 ‘없던 일’이 될 가능성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사회 관련 소송에 증인으로 참석한 당시 세운5구역 PFV 이사의 발언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4명의 이사 가운데 한 명이었던 그가 같은 이사였던 박 전 이사를 ‘전혀 모른다’는 취지로 증언한 것이다. 대면 혹은 컨퍼런스 콜 등 온·오프라인 이사회가 열리지 않았다는 박 전 이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대목이다. 박 전 이사는 “내가 증인으로 신청했다. 그런데 서로 얼굴 한번 본 적 없다. 만나기는커녕 전화 한 통 한 적 없다. 세운5구역 PFV 측은 그제야 대면 결의는 없었다고 인정하면서 서면 결의도 인정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서면으로 이사회 결의를 한다고 말하면 조합장이 당장 쫓겨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지스자산운영 측은 “해당 건은 소송이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답변드리기 어려운 점 양해 부탁드리며 향후 법적 과정에서 투명하게 밝혀질 수 있도록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입장을 전해왔다. 1심 판결 곧 나온다 일각에서는 세운5구역 재개발사업이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위반될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재개발·재건축 경험이 풍부한 한 관계자는 “SPC가 설립되고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사회 문제가 불거진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주무 관청의 인허가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