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 조세형 70년 절도사 풀스토리

  • 김성수 kimss@ilyosisa.co.kr
  • 등록 2013.04.11 10: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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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이 지경…좀도둑 된 왕년의 홍길동

[일요시사=경제1팀] '대도' 조세형씨가 또 다시 쇠고랑을 찼다. 1970∼80년대 암울한 시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씨는 신출귀몰하게 고관대작 집만 골라서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회자된 인물. 한때 종교에 귀의해 개과천선한 모습을 보였지만 이도 잠시. 잇따른 절도 행각으로 철창을 들락날락하면서 일개 '좀도둑'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조씨는 어떤 삶을 살아 왔을까.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되짚어봤다.

 


조세형씨가 또 경찰에 붙잡혔다. 이번엔 강남 고급빌라를 털다 덜미가 잡혔다. 이번에 구속되면 그는 전과 11범이 된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지난 4일 고급 주택가 빈집에 침입해 귀금속 등 금품을 훔친 혐의(특가법상 상습절도)로 조씨를 검거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3일 오후 8시30분께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한 고급 빌라 1층에 불이 꺼진 것을 보고 침입, 고급시계와 금반지 등 시가 3000만∼5000만원 상당의 귀금속 33점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5세 때 구걸 갔다가
은수저 처음 절도

모자와 마스크를 쓴 조씨는 빌라의 화단 쪽 1층 베란다 유리창문을 깨고 들어갔다. 미리 준비한 노루발못뽑이(속칭 빠루)와 펜치 등을 이용했다. 당시 집은 불 꺼진 채 비어 있었다. 조씨가 유리를 깨는 광경을 본 이웃주민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현장에서 조씨를 체포했다. 롤렉스시계와 금목걸이 등 귀금속을 주워 담던 조씨는 만년필로 저항했으나 경찰이 총을 꺼내들자 이내 두 손을 들었다.

조씨는 "전처가 새 출발하라고 준 임대보증금 3000만원으로 선교사무실을 차리려다 무속인한테 사기를 당했다"며 "1년 동안 갖은 노력을 했는데 돈을 마련하지 못해 이성을 잃었다"고 진술했다.

1970∼80년대 암울한 시기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조씨에게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비단 이번 사건 뿐만 아니라 그가 철창을 들락날락할 때마다 그랬다. 드라이버 하나로 철통 경비를 뚫고 신출귀몰하게 '고관대작'들의 집만 골라 털어 '현대판 홍길동'으로 불린 인물이기 때문이다.


올해 75세인 조씨는 출생이 불분명하다. 호적이 없어 생년월일을 정확히 모르고, 부모도 누군지 모른 채 길거리에 자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학교문턱에도 못 가봤다. 조씨가 처음으로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은 5세 때 깡통을 들고 밥을 얻으러 갔다가 남의 집 부엌에서 은수저를 훔친 일이다. 당연히 나이가 어려 '도둑질이 나쁘다'는 범죄 의식이 없었지만, '세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을 증명이나 하듯 범죄 유혹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했다.

조씨는 1963년 특수절도 혐의로 전과자 신세가 된 이후 1970년대까지 절도 혐의로 10여 차례나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16세께 소년원에서 처음으로 글을 배우면서 도둑질은 나쁜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됐으나 '배가 고파서' '습관적으로'훔쳐온 그는 이미 전문 도둑이 돼 있었다.

강남 고급빌라 털다 쇠고랑
수천만원 귀금속 33점 훔쳐

그때까지만 해도 흔한 절도범에 지나지 않았던 조씨는 1970년대 말부터 본격적으로 '대도'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나름의 원칙도 세웠다. 가난한 사람의 물건엔 손대지 않고,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나라 망신이란 생각에 외국인 집도 털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또 도둑질로 생긴 돈의 40%를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다는 결심까지 했다. 이는 나중에 그가 '대도'로 불린 이유다.

조씨는 1980년대 초까지 부유층과 고위권력층의 대저택만 찾아다니며 수십억원대의 귀금속, 현금, 기업어음 등을 훔쳤다. 당시 수십억원은 지금의 수백억원과 맞먹는다. 피해자는 전직 경제부 총리와 국회의원, 그룹 총수, 기업체 사장 등 정·재계 인사가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뭐가 구린지 하나같이 피해 사실을 극구 부인해 국민들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조씨에게 도둑질을 당한 몇몇 집은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특히 조씨가 한 국회의원 집에서 훔친 수억원대에 달하는 2.2캐럿짜리 물방울 다이아몬드는 큰 화제가 됐다. 상류층의 부정부패에 염증을 느끼던 서민들은 조씨를 '의적'이라 불렀다.

1982년 수개월에 걸친 경찰의 추적 끝에 검거된 조씨는 재판 중 탈주해 또 한 번 국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줬다. 1심에서 절도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조씨는 이듬해 서울형사지법에서 항소심 공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기 직전 수갑을 찬 채로 구치감 환풍기를 뜯고 탈주했다. 탈주 후에도 조씨의 절도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5박6일간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서울 도심을 활보하며 5차례에 걸쳐 주택에 침입해 음식과 현금 등을 훔쳤다.


재판 중 6일간 탈주
선교활동 도중 재범

그러나 이도 잠시. 끈질긴 추적을 벌인 경찰이 쏜 총에 가슴을 맞고 붙잡힌 조씨는 특수절도에 도주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심청구 등을 통해 1998년 만기 출소했다.

1963년부터 시작된 조씨의 '절도인생'은 청송감호소를 나서며 끝나는 듯 했다. 조씨는 출감하자마자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겠다"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서울 종로에 늘빛선교원을 열고 교인으로서 착실한 신앙생활을 이어갔다. 1999년엔 자신을 검거했던 '수사반장' 최중락씨의 도움으로 에스원 범죄예방 자문위원으로 위촉, '범죄예방 전도사'로 새 길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조씨는 당시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대도를 벗은 지 오래됐다"며 "직장인이고 신앙인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에 대해 약간 서운한 감정이 있다"고 밝혔다. 또 보안업체에 일하게 된 배경에 대해선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를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범죄자의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라며 "회사가 신앙을 통해 변화된 인격을 인정해준 점에 대해 감사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눈앞에 천만금이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겠다"던 참회의 눈물은 금세 말랐다. 조씨는 2000년부터 선교활동 명목으로 일본 출장이 잦아졌고, 현지에서 또 절도행각을 벌였다. 신앙간증 차 간 일본 도쿄 시부야의 부촌을 돌며 라디오와 손목시계 등 13만엔 상당의 금품을 훔친 것. 2001년 그는 출동한 일본 경찰관이 쏜 총에 맞고 체포돼 3년6개월 동안 일본 고부형무소에서 복역했다. 석방된 조씨는 2004년 극비리에 귀국해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그랬던 그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곳은 다름 아닌 경찰서였다. 조씨는 일본에서 출감한 지 1년 만인 2005년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가정집에 침입, 손목시계 6개 등 165만원 어치의 금품에 손을 댔다. 금품을 훔쳐 나오던 조씨는 집안에 설치된 전자탐지기에 감지됐고, 곧바로 출동한 사설 경비업체와 경찰에 발각됐다. 조씨는 옆집 담을 넘어 달아났지만 경찰이 쏜 공포탄에 놀라 넘어지면서 덜미를 잡혔다.

경찰에 붙잡힌 조씨는 자신이 '조세형'인 사실을 극구 부인했다. 조씨는 경찰에서 "나는 조세형이 아니라 48세 노숙자 '박성규'"라며 "노점상 장사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범행했다"고 주장했다. 조씨는 지문감식 결과 신분이 확인되자 그때서야 "일본으로 밀항하기 위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고급주택을 털 계획을 짰다"고 털어놨다. 특수절도 혐의로 구속된 조씨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철창신세를 졌다.

드라이버 하나로 철통경비 뚫고
'신출귀몰'고관대작 집만 털어

이후 다시 종적을 감췄던 조씨는 장물아비 사건으로 '대도'란 호칭에 먹칠을 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2010년 5월 훔친 물건을 팔아주고 돈을 챙긴 조씨를 장물알선 혐의로 구속했다. 조씨는 청송교도소에 수감돼 있을 당시 방을 함께 쓴 노모씨가 훔친 귀금속을 처분해줬다. 노씨를 포함한 4인조 강도는 지난해 4월 광주 남구 한 금은방에 침입해 현금과 보석 3억원어치를 훔쳤다. 조씨는 노씨 등이 훔친 귀금속 가운데 1000여돈(시가 1억1000만원)을 서울 종로구 귀금속 상가에 팔아주고 수고비 1000만원을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조씨가 장물아비를 자처한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궁핍하게 살다 내연녀와 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경찰이 들이닥치자 창문에서 뛰어내려 도망쳤고, 막다른 골목에 이르자 다리미를 휘두르며 격렬히 저항했다는 후문이다. 70대 나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른 몸놀림이었다는 게 경찰의 전언이다.

조씨는 이 사건으로 징역 1년4개월을 선고받고 안양교도소에 수감됐다. 그리고 2011년 9월 형을 마치고 출소하던 조씨는 바깥공기도 제대로 맡지 못하고 또 다시 경찰서로 향했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2009년 금은방 주인과 가족을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은 혐의로 조씨를 구속했다. 조씨는 2009년 4월 청송교도소 수감 동료인 공범 2명과 함께 경기 부천시 원미구 소사동에 있는 금은방 주인 유모씨 집에 침입, 흉기로 위협해 현금 30만원과 금목걸이 등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를 받았다. "내 평생 도둑질은 했어도 강도는 안 했다"던 조씨의 말대로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도 9명 전원 무죄평결을 내렸다.

'가화만사성'이라 했던가. 조씨가 쉽게 손을 씻지 못하는 것은 반복된 가정불화도 한 원인인 것으로 파악된다. 조씨는 3번 가정을 꾸렸지만 모두 순탄치 않았다.


1963년부터 철창 들락날락 
손 씻었다 도벽 다시 도져

처음 결혼한 것은 도피 시절이다. 조씨는 사회 상류층 집을 잇달아 턴 혐의로 경찰의 추적을 받고 있던 1982년 6월 서울 모 살롱에서 호스티스로 일하던 나모씨와 만나 결혼했다. H여대를 중퇴한 나씨는 조씨를 보석가공업자로 알았다고 한다. 둘은 동거하다 정식으로 결혼했으나, 결혼식을 올린 지 27일 만인 11월25일 혼인신고를 하러 가던 중 경찰이 조씨를 체포하면서 신혼의 보금자리가 깨졌다. 나씨는 조씨의 실체를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아 임신 5개월 된 아이를 유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수감 초기만 해도 나씨의 극진한 내조를 받았다. 그러나 나씨는 조씨가 까마득한 세월을 교도소에서 보내게 되자 이내 변심했다. 국내 생활을 접고 해외로 이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11월 출소한 조씨는 2년 뒤 16세 연하인 이모씨와 결혼했다. 조씨가 자동차 부품생산 회사를 운영하던 이씨를 처음 만난 것은 1999년 3월. 지방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경부고속도로 망향휴게소에서 자신을 다른 목사로 알고 인사를 건네 온 이씨와 우연한 첫 만나게 됐다. 이후 둘은 용인 강남대학교에서 매주 만나 함께 선교관련 강의를 듣고 조씨가 이끌고 있는 늘빛선교회에서 함께 선교활동을 하며 사랑을 키웠다. 2000년 2월엔 아들도 낳았다. 두 사람은 그해 5월 경기도 여주 알로에마임 연수원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이후에도 조씨는 절도 행각으로 교도소를 들락날락했고, 이 사이 가정은 방치되다 시피 했다. 둘 사이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것은 2005년 조씨가 마포 사건으로 구속된 뒤부터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이씨는 '반야화 법사'란 이름으로 서울 중랑구에 포교원을 차렸고, 2009년 '청아'란 불명의 비구니가 되면서 조씨와 이혼했다.

재범 가정불화 탓?
3번 결혼생활 실패

조씨에게 다른 여자가 생긴 사실이 알려진 것은 2010년 5월 장물 사건 때다. 조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연녀와 살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경찰에 붙잡힐 당시에도 내연녀와 함께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의 한 은신처에 살고 있었다.

무심코 은수저를 훔쳤던 5세 아이는 어느덧 70대 노인이 되서도 제 버릇을 남 주지 못했다. 한때 '대도'란 국민적 영웅 대접을 받았지만, 장물아비로 전락하더니 급기야 좀도둑 신세로 추락했다. 아직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 '의적'으로 각인돼 있는 인물치곤 초라하기 그지없는 말년이다.



김성수 기자<kimss@ilyosisa.co.kr>

 

조세형-정홍원 인연 화제

그때 그 범인…그때 그 검사

조세형과 정홍원 국무총리의 특별한 인연이 화제다.

부유층과 고위권력층의 대저택만 찾아다니며 수십억원대의 귀금속, 현금, 기업어음 등을 훔친 조씨는 1982년 검거됐다가 재판 중 탈주했다. 탈주 6일 만에 경찰에 잡힌 조씨는 특수절도에 도주 혐의까지 추가돼 징역 15년과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재심청구 등을 통해 1998년 만기 출소했다.

조씨의 탈주사건을 맡은 검사가 정 총리였다. 당시 정 총리는 조씨에게 성경책을 건네며 마음을 가다듬기를 권했고, 조씨는 출소하자마자 "신앙인으로서 거듭나겠다"며 목회자의 길로 들어섰다. 조씨는 "자신을 기소했던 검사를 보고 싶다"며 정 총리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결과적으로 조씨는 정 총리의 기대를 저버렸다. 이후에도 수차례 철창신세를 면치 못했고, 이번에 다시 서울 강남 고급빌라를 털다 붙잡히면서 전과 11범이 될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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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마계 캄보디아’ 정부 뒷북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대학생 피살 사건에 대한 정부의 뒷북 대응에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급증했음에도 침묵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최초 보도했던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탈옥 사건에 이어 주무부처의 소극 행정이 지속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는 급히 대책을 마련 중이지만 ‘코리안데스크’가 능사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캄보디아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은 수백명이다. 스캠(사기) 산업에 연루된 수만 1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일부는 불법행위라는 걸 알면서도 발을 들였다. 문제는 구금 시설에서 빠져나오려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사건을 인지했음에도 그저 피해자들에게 “기다리라”고만 했다. 감금 한국인 그들은 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15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국인 대상 범죄 피해가 확산하는 캄보디아 문제에 대해 언급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월부터 8월까지 현지 공관에 접수된 감금 관련 신고는 약 330건, 외교부 공관 신고를 포함하면 약 550건인 것으로 파악했다. 대다수 사안이 처리된 가운데 현재 처리 중인 신고 건은 70여건이라고 위 실장은 설명했다. 위 실장은 “정부 차원에서 여러 대처를 하고 있지만, 캄보디아 내에서 범죄 대응은 본질적으로 캄보디아 주권 사안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응하는 데 일정한 한계가 있다”며 “우리 국민 중 불법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발적으로 발을 들인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 현지에서 고문당해 숨진 대학생의 시신 운구가 지연된 상황과 관련해서는 “유가족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공동 부검을 요구한 것과 관련이 있다”며 “캄보디아 측에서는 공동 부검이 흔치 않기 때문에 소화하려면 내부 절차가 있고, 내부 절차가 진행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고 부연했다. 위 실장은 현지 당국에 구금된 한국인 60명 송환 계획과 관련해서는 “빠른 시일 내 그분들을 서둘러서 데려오려는 입장”이라며 “항공편도 다 준비됐다”고 말했다. 돈이 급한 한국인들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을 보고 동남아로 향한다. 태국이나 라오스 및 캄보디아 국경지대서 피싱 조직에 납치당하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다. 현지 당국에 신고한다고 해도 오히려 살해 협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캄보디아는 필리핀처럼 현지 수사기관 및 공무원들과 범죄조직 사이의 비리가 만연하다. 범죄조직 아지트를 당국이 확인해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지 코리안데스크 있으나마나 똑같다? 유족·피해자에 “기다려라” 황당 대응 한 경찰 관계자는 “수감 중인 한국인이 다른 조직에 팔려가 인신매매가 벌어지거나 탈출을 시도하면 살해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은 대부분 중국계 갱단인 ‘흑사회’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들에게 우리나라 돈 수억원을 상납한다. 매수된 공무원은 구속된 조직원을 빼주는 것은 물론, 경찰 급습 시점을 사전에 알려주기도 한다. 캄보디아 피싱 조직이 드러나기 시작한 건 필리핀과 태국에 주둔했던 흑사회 간부들이 캄보디아에 자리 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피싱 조직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필리핀과 태국은 자본주의 국가다. 아무리 부패와 비리가 심해도 공산주의와 독재 국가 체제인 캄보디아보다 심하지 않다”며 “중국 갱단은 원래 필리핀에 자리 잡았다. 마약, 도박 범죄 등으로 여러 번 언급되자 4~5년 전부터 캄보디아에 모여들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캄보디아는 필리핀보다 공무원을 매수하는 비용이 싸다. 경찰관 한 명을 매수해 자신의 인터폴 수배 여부를 확인하는 등 수사 정보를 알기 위한 비용이 한국 돈으로 100만원이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한국인 대상 범죄 급증에 대한 대책으로 캄보디아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반)’ 설치를 추진 중이다. 지난 10일 조현 외교부 장관이 쿠언폰러타낙 주한 캄보디아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항의했다. 영사협의회에서도 코리안데스크 설치 협력을 요청하기도 했다. 경찰청도 최근 캄보디아와의 양자 협의에서 이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코리안데스크는 경찰 협력관과 달리 대사관 등 외교 채널을 거치지 않고 현지 경찰과 소통할 수 있어 합동 수사에 용이하다. 국외도피사범을 추적하거나 한국인 범죄 피해를 파악할 때 교민 사회 등에서 관련 내용을 수집해 현지 경찰관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수사를 돕는다. 실종, 살해… 뒤늦게 논의 현지 경찰관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어 국제형사사법공조나 인터폴(국제형사경찰기구) 등을 통한 공식 요청보다 빠르게 현지 수사가 가능하다. 필리핀에서 코리안데스크는 한국인을 상대로 자행된 청부살인 등 강력 사건 해결에 큰 역할을 했다. 캄보디아 공권력을 신뢰하기 어렵고 현지 치안이 열악한 점 등을 고려해볼 때 최우선 해결책으로 꼽히는 이유다. 국제 앰네스티는 지난 6월 보고서에서 캄보디아 내 범죄 산업이 성행한 원인이 “조직범죄와 부패한 공권력의 결합 구조”에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보·수사기관 안팎에서는 무의미한 조치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캄보디아 당국이 국제 공조에 소극적이기도 하지만 코리안데스크는 수사 권한이 없다는 게 핵심이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최근까지 캄보디아 당국에 20건의 국제 공조를 요청했으나 절반도 되지 않는 답변을 받았다. 특히 캄보디아 당국이 코리안데스크 설치를 세 차례 거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코리안데스크 출신 한 경찰은 “필리핀은 우리나라 정부가 집요하게 압박해 코리안데스크를 설치한 이후 현지 경찰과의 협조가 가능해졌다. 협조가 된다고 해도 범죄자 송환이나 사건 조사가 이뤄지는 경우는 절반도 안 된다. 캄보디아는 더 힘들 것”이라고 평가했다. 경찰 파견 무의미? 이 경찰은 “정부 차원에서 강하게 압박을 넣어야 한다. 외교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물도 없다’는 식의 각오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코리안데스크 설치가 불발될 경우의 수가 존재하는 만큼 경찰관 직무 파견 확대가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파견 경찰관을 선발한 뒤 1년 단위로 재발령을 거쳐 최대 2~3년간 현지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단기간에 경찰 주재관을 늘리는 게 쉽지 않은 게 이유다. 2021년 11월 가나 해군은 한국인이 승선한 어선을 위해 안전조치를 하고 있다. 선례도 있다. 앞서 정부는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 경찰 인력을 직무 파견했다. 2020년엔 가나 대사관에 해양경찰관을 직무 파견했다. 서아프리카 해역에 해적이 출몰하면서 한국인 선원 13명이 납치된 데 따른 조치였다. 정부는 외교 채널을 통해 가나 부처에 공식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동시에 파견 경찰은 물밑에서 움직였다. 현지 해군, 경찰 관계자를 지속해 접촉하며 설득을 이어갔고, 가나에 주재하는 타국 외교 사절과도 교류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또 가나가 필요로 하는 컴퓨터 등 기자재를 무상으로 제공하는 방식으로 호감을 얻으며 협의를 이어갔다고 한다. 이는 결국 가나 해군이 투입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소극 행정을 일삼는 우리 정부도 문제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외교부와 행정안전부 등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행안부는 지난해 주캄보디아 대사관 경찰 주재관을 증원해달라는 외교부의 요청을 불승인했다. ‘해외 도주’ 황하나 프놈펜 잠적 단독 확인 인터폴·경찰 수배 피하려 피싱조직 연루설도 당시 행안부는 외교부 증원 요청을 불승인한 이유에 대해 “사건 발생 등 업무량 증가가 인력 증원 필요 수준에 못 미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한인 범죄 피해는 2022년 81건에서 2023년 134건, 지난해 348건으로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까지 확인된 범죄 피해는 303건에 달한다. 현재 주캄보디아 한국 대사관에서 근무 중인 경찰은 주재관 1명과 협력관 2명 등 총 3명이다. 그나마 이렇게 늘어난 인력도 애초 경찰 주재관 1명만 있다가 지난해 10월과 지난달 직무 파견 형태로 협력관을 1명씩 추가 투입한 데 따른 것이다. 위 의원은 “캄보디아에서 우리 국민이 잇따라 납치·감금 피해를 당하고 있음에도 당시 윤석열정부가 경찰 주재관 증원을 외면한 것은 명백한 잘못”이라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조차 거부한 이유를 이번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따져 묻겠다”고 강조했다. 캄보디아는 범죄자들에게 천국이다. 필리핀에서 송환되지 않거나 자유롭게 탈옥해 붙잡히지 않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보이스피싱 원조 김미영 팀장 박정훈 등이 그렇다. 국내에서 수차례 마약 사건의 중심에 섰던 황하나씨도 이들의 수법을 활용 중인 것으로 보인다. <일요시사>는 지난해부터 황씨가 인터폴 수배 대상에 오르자 태국과 필리핀, 캄보디아 등을 오간 사실을 확인하고 취재해 왔다. 실제로 황씨는 지난해 3월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지금 태국에 있는데, 아파서 병원에 왔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황씨는 수년 전부터 화류계에 몸담거나 연예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재벌가에 연결하는 일종의 브로커를 담당했다. 그로 인해 마약을 강제로 투약당하거나 피해 본 인물이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의 생활이 어려워진 황씨가 캄보디아에서 브로커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범죄자 천국 악당 은신처 인터폴에 체포되지 않으려 캄보디아 피싱 조직에 한국인 여성들을 공급한다는 것이다. 실제 캄보디아 공항에 도착한 한국인 20~30대 여성들은 납치된 이후 여권과 휴대전화를 빼앗겨 범죄 단지 ‘웬치’에 감금된다. 이 여성들은 대부분 유흥업소로 끌려간 것으로 알려졌다. ‘웬치’에는 현재 한국인 1000명 이상이 거주 중이다. 다만 이들의 범죄 연루 여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