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망해도 잘사는 부자들 ⑦정태수의 한보그룹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3.04.03 14: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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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로 일어나고 로비로 쓰러졌다

[일요시사=경제1팀] '기업은 망해도 기업주는 산다.'
잘 나가던 기업이 망했다는 소식은 심심찮게 들려온다. 그런데 망한 재벌이 '깡통'을 찼다는 소식은 들어본 적이 없다. IMF 이후 내로라하는 대기업들이 줄줄이 공중분해 됐지만 해당 기업에서 중책을 맡았던 경영진과 그 가족들은 멀쩡히 잘 살고 있다. 미리 '주머니'를 채워놔서일까.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망한 기업' 수뇌부들의 현주소를 조명해봤다.



"수단은 목적을 합리화한다."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한보그룹은 '로비'로 성장해 '로비'로 무너졌다.

한보그룹은 정 전 회장과 성장·추락을 함께했다. 1923년 경남 진주에서 빈농인 부친 정용석씨와 모친 황맹옥씨의 1남1녀 자녀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정 전 회장은 26세가 되던 49년 첫 번째 부인인 김순자씨를 만나 결혼했다.

현대판 거품 대명사
대치동 은마아파트

결혼 후 세무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그는 부산경남지역 일선 세무서에서 하위직인 주사보로 일하다가 김씨 사망 후 서울로 거처를 옮겼다. 이때 만난 사람이 한보그룹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한보상사를 설립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둘째 부인 이수정씨다. 이씨와 결혼을 한 정 전 회장은 70년대 초 일제시절 폐광이 된 강원도의 몰리브덴광산을 사들여 74년 이를 수출하는 한보상사를 설립했다.

몰리브덴수출이 성과를 이루자 정 전 회장은 주택사업에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75년 정 전 회장은 한보주택의 모태가 된 서울 구로동 영화아파트 172가구를 건립하면서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정 전 회장은 강남구 대치동의 쓸모없는 유수부지 7만여평을 매입해 당시 단일 물량으로 최대 규모였던 2200세대를 은마타운이라는 이름으로 분양했고 2400세대를 추가 분양하면서 큰 돈을 만지게 됐다.

당시 이씨는 건설현장에서 일꾼들의 새참을 나르고 자금을 구하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닐 정도로 남편 이상으로 사업에 열의를 보였다.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회사 일을 챙겼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 전 회장은 83년 이씨가 암으로 타계하자 경기도 김포의 부인 묘소를 6개월에 걸쳐 화려하게 치장하기도 했다.


정 전 회장은 은마타운 성공분양의 여세를 몰아 79년 초석건설을 인수해 한보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하고 해외건설에 뛰어들었다. 이후 주택, 상사, 종합건설, 목재, 탄광, 상가 등으로 계열기업을 화장했고 골프장뿐만 아니라 은행관리업체였던 태화방직을 인수했다.

이씨가 세상을 떠난 직후인 84년 정 전 회장은 금호철강을 인수, IMF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한보철강을 설립하게 됐다. 한보그룹의 재계 랭킹은 30위권으로까지 치솟았다.

86년을 기점으로 한보그룹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철강을 제외한 대부분의 업종에서 적자를 기록했고 재무구조는 걷잡을 수 없이 취약해져 갔다. 정 전 회장은 감량경영과 계열사 처분 및 합병이라는 극약처방을 통해 돈을 마련했다. 이 돈으로 강남구 수서-대치 지역 개발제한구역 땅을 사들인 정 전 회장은 '통큰' 로비를 벌이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예상하는 액수에 '0'을 하나 더 붙여 정관계 인사들에게 전달했고 해당 땅을 택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정권 바뀌고 수서비리·한보사태 등 줄줄이 터져
6년 전 재판 중 해외도피…유유자적 호화로운 생활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정 전 회장의 무차별적 로비가 91년 수서비리 사건으로 불거진 것. 사건이 표면화되면서 서울시, 건설부, 정치권에 있던 수많은 공직자들이 옷을 벗었고 정 전 회장도 뇌물공여죄로 구속됐다. 당시 서울시장이던 고건 전 총리가 청와대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특정 업자에게 특혜분양을 할 수 없다고 끝까지 버티다가 결국 경질됐을 정도로 정 전 회장의 로비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3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난 정 전 회장은 한보철강을 통해 엄청난 추가금융지원을 받으며 보란 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한보철강은 아산만에 새 공장을 건설하는 등 철강 호황기를 만나 급성장했다. 95년 기준 한보그룹 재계 순위는 24위였다. 하지만 당진 제철소가 문제였다. 초기 2조2800억원을 염두해 두고 시작한 제철소 건립 투자금은 2년 만에 5조7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정부와 채권은행단이 한보 측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투자비를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한보그룹은 18개의 회사를 설립 또는 인수하는 일을 벌였다. 95년 11월 기준 한보그룹 계열사 수는 26개였다.

결국 외부차입금이 약 5조원에 이를 정도로 취약한 재무구조 때문에 제철소 완공 이후에도 적자경영이 불가피할 것으로 뒤늦게 판단한 금융기관이 기존 대출금의 회수에 나섬으로써 97년 1월 한보는 최종 부도 처리됐다. 이는 대한민국 IMF 관리체계를 향한 첫발로 기록됐다. 97년 4월 삼미그룹, 진로그룹이 부도유예에 들어갔고 5월에는 대동주택이, 7월에는 기아그룹 등 연쇄부도가 발생했다.


한보그룹 부도 후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대의 금융부정 사건으로 꼽히는 한보사태가 터졌다. 정 전 회장과 정관계, 금융계의 핵심부가 서로 유착한 이 사건은 전 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

한보사태의 핵심은 당진제철소 프로젝트에 있다. 한보그룹이 당진제철소 프로젝트를 추진할 당시 건설부는 부지매립 허가를 9개월 만에 내주고 통상산업부(산업자원부)는 검증도 되지 않은 코렉스 공법의 채택을 적극 권유하기까지 했다. 정부 차원의 견제는 없었다.

그룹 부도 불러온
무리한 제철소 사업

97년 5월 이 사건으로 인해 정 전 회장은 공금횡령 및 뇌물수수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고 한보로부터 돈을 받은 정치인과 전직 은행장 등 10명이 징역 5∼20년을 선고받았다.

국회에서는 한보사태 국정조사특별위원회가 열려 58명의 증인과 4명의 참고인이 채택됐고 이른바 '정태수 리스트'에 오른 정치인 33명이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여당인 황병태 의원, 홍인길 청와대 총무수석 뿐만아니라 야당인 정대철, 권노갑 의원을 비롯 김우석 내무부장관, 문정수 부산시장 등이 대출 관련 청탁 또는 국정감사 선처 청탁 등으로 뇌물 수수에 관여한 것으로 밝혀졌으며 그에 따라 대거 철창신세를 졌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이후 정 전 회장에게는 '비리백화점' '로비의 귀재'라는 대명사가 따라 붙었다. 정 전 회장은 5년5개월을 복역하다가 고혈압·협심증의 병세로 석방됐다. 그러나 2005년 강릉영동대학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형을 선고받고, 2심 재판 도중인 2007년 신병 치료를 이유로 일본으로 건너 간 뒤 현재까지 해외 도피 중이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정 전 회장의 자녀들도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았다. 끊임없는 부정 행위로 법정에 섰다. 먼저 장남 종근씨는 대성목재 회장으로 있던 96년 8월부터 이듬해 1월 자금난에 시달리던 한보그룹 계열사 3곳에 우량 어음을 넘겨주고 계열사 어음을 받는 방법으로 모두 224억원을 불법 지원하다 2002년 불구속 기소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차남 원근씨는 한보그룹이 자금난에 시달리던 96년 6월 경 미국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거액의 도박을 벌인 혐의로 기소됐다가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및 벌금 500만원과 함께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받았다.

삼남 보근씨와 그의 아내 김모씨는 정 전 회장이 1980년대 설립한 학교법인 정수학원이 운영하는 강릉영동대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호화로운 생활을 누려왔다. 지난 3월5일 대법원 3부는 업무상 횡령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정 전 회장의 셋째 며느리 김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함께 기소된 보근씨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이 확정됐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해외 도피를 하면서 간호사 4명을 고용했으나 급여를 주지 못하게 되자 며느리가 학장으로 재직하던 강원영동대학의 교비로 이를 지급하도록 지시했다.

그룹 부도 후 삼미·진로·기아 연쇄부도
고액체납자 부동의 1위…아들은 3위 굴욕

김씨는 이들 4명을 학교교직원으로 허위 채용해 4000여만원의 급여를 지급했다. 또 대학의 해외학생유치센터를 이용해 정 전 회장에게 도피자금을 빼돌렸다. 카자흐스탄 등지에 해외학생유치지사를 만들어 운영비 명목으로 빼돌린 돈 1억3000여만원을 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


2007년 감사에서 교육부는 교비 2억여원이 정 전 회장의 해외도피자금으로 빠져나간 사실을 적발했다. 이에 김씨는 다시 학교법인 소유 2억여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를 은행에 맡기고 대출받은 돈을 횡령해 교비를 반환했다. 횡령금으로 횡령금을 막은 것이다.

보근씨는 아내와 함께 학교 운영비를 횡령하고 자신의 개인 사무를 수행하던 2명을 교직원인양 위장해 교비로 임금 2200만원을 횡령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오너의 그릇된 생각
그룹 실패 예고됐다

보근씨는 정 전 회장과 함께 고액·상습 체납자 상위 명단에 매해 오르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말 국세청이 공개한 체납 명단을 보면 정 전 회장이 누적 체납액 2225억원으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는 가운데 보근씨는 644억원의 체납액을 기록, 1073억원의 세금을 체납한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남 한근씨는 1997년 동아시아가스를 세운 뒤 회삿 돈 320억원을 스위스의 한 은행 계좌로 빼돌린 혐의로 검찰의 추적을 받자 1998년부터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도피행각을 벌이고 있다.

한보그룹의 한 전직 임원에 따르면 정 전 회장은 아직도 재기를 꿈꾸고 있다. 9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건강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밑천은 동아시아가스와 보광특수산업이다. 숨겨놓은 '땅'도 많다. 정 전 회장이 보유한 땅은 용인, 인천, 안산 등 수도권 여러 곳에 분산되어 있었다. 국세청이 적발한 땅만 해도 시가 1500억원을 넘는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357 일대 땅이 대표적이다. 시가 1000억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땅은 국세청이 즉각 압류했다. 국세청은 정 전 회장이 30년 동안 미등기 상태로 숨겨놓은 180억원 상당의 부동산도 찾아 등기 촉탁을 위한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 300억원대의 땅을 숨겨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또 다른 은닉 재산이 없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머슴이 뭘 알겠는가." 정 전 회장이 청문회장에서 한 이 말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의 모든 직장인들을 한순간에 머슴으로 격하시켰다. 한보그룹에서 일하던 자신을 제외한 모든 직원들은 머슴이라는 오너의 생각. 어쩌면 이미 한보그룹의 실패가 내재되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한종해 기자<han1028@ilyosisa.co.kr>

 

<한보그룹은?>

1974년 한보상사 설립
1979년 은마아파트 분양, 초석건설(한보종합건설) 인수
1984년 금호철강(한보철강) 인수
1991년 수서비리 사태
1995년 당진 제철소 건립 추진
1997년 그룹 부도, 한보사태 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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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받아들일 의사가 있어야 진행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서 합의점에 도달하면 합당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대통령 있는데 당대표가 어떻게 의사 관철?” “장동혁은 대권 욕심 갖고 계속 변화할 것”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 혁신당은 총선을 치르면서 호남에서 선전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호남 민심이 어떤 선택을 할 거라고 보나? ▲두고 봐야 안다. 호남 민심은 제19대 대선에선 안 의원이 아니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선택했다. 호남 유권자들은 상당히 전략적으로 투표한다. 그들은 정권 재창출이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준다. 그러니 선거를 치러봐야 알 수 있다. 지금은 뭐라고 얘기하기 어렵다. -장 대표가 취임하자, 강경 보수 유튜버들은 “군소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과 강경 보수 유튜버들이 너무 밀착한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는가? ▲국민의힘이 계속 지금과 같은 자세를 유지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우리 정치 지형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분석해야 한다. 변화가 있어야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처럼 강경 보수로 회귀하면, 희망이 있다고 보이진 않는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과 중도층 공략 사이에서 계속 의견이 바뀐다. ▲장 대표에게도 정치적 목표가 있을 텐데 그는 목표 달성을 위해 많은 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강경 보수의 지원을 받아 당 대표가 됐지만, 자신의 정치적 지향점을 어떻게 결정할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지나치게 강경 보수와 밀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그들과 선을 그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선을 긋는 데 한계가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그에게는 크게 정치적 기대를 하기 힘들다고 본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가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어차피 당 대표가 됐으니, 대권 욕심을 가질 것이다. 정치인은 언제나 시대 변화에 적응해야 한다. 장 대표 스스로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계속 많이 변할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장 대표가 당선되면서 위상이 많이 훼손됐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 전 대표의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국민의힘 당원들은 상당한 분노에 차 있었기 때문에 갑자기 강경해졌다. 세월이 흘러 당원들이 당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 또 변할 수도 있다. 지금 상황만으로 판단하기엔 굉장히 이르다. 한 전 대표가 당시 여당 대표로서 비상계엄 선포 직후 반대 의견을 밝히면서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에 찬성한 것은 굉장히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앞으로 어떻게 정치적으로 발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래도 국민의힘에선 가장 올바른 판단을 했다고 본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고 있다. ▲장 대표로선 당연히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쫓아낼 수 있겠는가? 어떻게 쫓아내겠나? 오늘의 장 대표는 한 전 대표 덕분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오세훈 서울시장 등과 지방선거에서 연대할 가능성을 내비친다. ▲뻔한 사람들끼리 하는 거라서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다. 모두 국민의힘 사람이거나 국민의힘 출신인데 특별한 효과가 있겠는가? -진영 간 대결 구도가 성별·세대 갈등 구도로 번졌다. 정치권 원로로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시대·사회·경제 구조가 변하고, 새 기술이 도입되면 의견이 분분할 수밖에 없다. 국민 사이에 형성되는 ‘그룹’을 조화시킬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필요하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이준석·안철수·오세훈? 뻔한 사람들” “국힘, 강경 보수로? 희망 보이지 않아” -일부 정치인은 갈등을 이용해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면서 후원금을 벌고 있다. ▲큰 도움이 되진 않을 것이다. 갈등을 전체적으로 포괄한 후 최대공약수를 찾아 정치해야 한다. -과거 정치와 현재 정치의 가장 큰 변화와 차이점은? ▲못 살던 시절엔 먹고사는 게 가장 중요해서 경제가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지금은 국민의 의식 구조가 과거와 다르다. 이 시대의 젊은 세대는 우리 국민 중 성숙도가 가장 높다.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도 가장 좋다. 이들은 공정하지 못하고, 불평등하며, 민주적이지 않은 것에 크게 저항한다. 세대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극우화됐다”고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4050 남성이 2030 남성에게 가장 불만을 품는 부분은 “너희는 왜 국민의힘을 지지하면서 보수화되느냐”는 것이다. ▲2030 남성은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게 아니다. 최근 국민의힘은 장외 집회를 하고 있는데, 이들은 이런 걸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너무 소란을 피우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흔히들 “장 자크 루소가 얘기하는 계몽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낳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계몽주의가 뭔가? 성숙지 못한 국민을 성숙하게 만들어서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성숙도는 매우 높아졌다. 이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도 실패했다.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 정치가 이를 따라가야 하는데, 접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정계의 킹메이커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대통령은 정직해야 한다. 시대 변화에 민감하게 적응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한 원인은 너무 탐욕스러웠고, 시대 변화를 제대로 못 따라갔다는 것이었다. -최근 한국 정치·사회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봤거나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 반대가 된 일이 있다면? ▲우리나라의 제일 시급한 과제는 아주 극단적인 양극화 현상이다. 이를 완화하지 않으면, 한국 정치는 국민통합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초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고, 출산율은 매우 낮다. 경제의 역동성이 거의 없어지고 있다. 정치인이 말로만 소통·통합을 외친들 아무 소용이 없다. -추석 연휴를 앞둔 <일요시사> 독자에게 남길 덕담 한마디가 있다면? ▲대통령을 선출하는 기준이 여론조사에 휩쓸리는 식으로 정해지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윤 전 대통령도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됐다. 오랫동안 검사였던 사람이 지도자가 된 사례가 세계적으로 별로 없다. 이들은 남의 부정적인 측면만 따지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창의적·긍정적 역할을 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제가 그를 호의적으로 봤던 것도 큰 잘못이었다. 당시 국민의힘엔 대통령감이 없었다. 그래서 저는 윤 전 대통령의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은 것을 일컬어 “별의 순간을 잡았다”고 말했다. 결국 윤 전 대통령은 제가 우려했던 행동을 했다. 저는 이승만 전 대통령 외엔 모든 대통령을 만나봤다. 직접 자문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왜 대통령은 실패하는가>라는 책도 출간했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초심을 관철하지 못했단 것이었다. 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선 오래전에 보수·진보가 사라졌다.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제15대 대선도 보수·진보의 싸움이 아니었다. 모두 보수였다. 1980년대 운동권 출신들은 정치권에 진출한 후 스스로 대단한 진보를 자처했다. 그런데 이들은 진보의 뜻도 모른다. 이들은 정권을 네 번 잡을 동안 양극화 하나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무슨 진보 정권인가? 국민이 정치 상황을 냉철하게 관찰하시고 올바른 선택을 하는 자세를 갖추셔야 한다. 대통령·국회의원도 결국 국민이 선출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란다. <ctzxp@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