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계 러시’ 레이싱걸 빛과 그림자

새파란 걸그룹 가라…농익은 레걸테이너가 뜬다!

[일요시사=연예팀] 지난 2005년 레이싱걸계의 전설 오윤아가 KBS2TV 드라마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연기자로 전향했다. 수년 동안 그는 드라마, 방송 등 종횡무진 활약하며 가장 성공한 레이싱걸 출신 연예인으로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오윤아처럼 연예계 진출에 성공한 레이싱걸이 있는 반면에 이렇다 할 성과도 내지 못한 채 연예계를 떠나야만 했던 이들도 있었다. 레이싱걸의 연예계 진출 빛과 그림자를 살펴봤다. 



바야흐로 레이싱걸 전성시대가 왔다. 해마다 개최하는 모터쇼에서 섹시한 의상을 입고 포즈를 취하는 레이싱걸들의 인기는 해가 갈수록 하늘을 치솟고 있다. 이는 브라운관에서 화려한 입담과 아름다운 몸매를 한껏 뽐내는 아이돌보다 더 높은 수치다.

승승장구하는 인기 덕분에 수많은 레이싱걸들은 단지 노출의상을 입고 자동차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직종에서 벗어나 연기자, 가수, MC 등 다방면으로의 연예계 진출을 꾀하고 있다. 레이싱걸은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 거쳐야 할 일명 ‘스타 등용문’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노래, 연기, MC…
레걸 전성시대! 

첫 레이싱걸의 연예계 진출은 약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2년 서울모터쇼에서 레이싱걸 중에서도 특급 레이싱걸만 가능했던 미래형 자동차 메인 도우미를 맡아 세간의 화제가 된 오윤아가 2005년에 KBS 시트콤 <올드미스 다이어리>를 통해 ‘레이싱걸 출신 연예인 1호’로 등극했다. 이후 오윤아는 영화 <연애술사> <올드미스 다이어리>, SBS드라마 <그 여자> <연애시대> <외과의사 봉달희> 등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넘나들며 연기력과 재능을 공식으로 인정받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굵직굵직한 다수의 광고에 출연함은 물론, MBC <섹션TV연예통신> 리포터로도 활약해 가장 잘 나가는 스타 못지않게 맹활약을 선보인 바 있다. 최근에는 김수현 작가 집필의 JTBC <무자식 상팔자>와 SBS <돈의 화신> 등에서 극의 흐름을 연결해주는 주요한 역할을 맡으며 결혼 후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그는 <돈의 화신>에서 결혼과 득남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빼어난 몸매를 과시해 건재함을 알렸다. 이처럼 오윤아를 기점으로 레이싱걸의 연예계 등용문은 활짝 열렸다. 사실상 오윤아가 연예계 진출로를 터준 것이나 다름없다.


1세대 레걸 오윤아, 드라마 조주연급 종횡무진 활약
김시향, 볼륨감 넘치는 몸매로 지상파 게스트 낙점

레이싱걸 출신 중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꼽히고 있는 오윤아지만 그 역시 연예계 진출에 따른 남모를 고충이 숨겨져 있었다. 2006년 각종 드라마 출연으로 종횡무진 연기활동 할 당시 그는 KBS 드라마 <미스터 굿바이> 제작발표회에서 “주위 사람들이 일컫는 레이싱걸 출신이라는 꼬리표가 속상했다”고 발언했다. 이밖에도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노출의상 혹은 비키니를 입고 나오는 신이 매 작품에 포함돼 있었다”며 연기보다 몸매를 더 부각시키는 점에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기 욕심의 끝을 모르는 오윤아는 자신을 “천상 배우 팔자”라고 지칭하면서도 “아직 만족할 만한 연기는 멀었다. 40대쯤 내 매력과 연기력을 모두 발산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단언했다.

‘제2의 오윤아’를 꿈꿨던 레이싱걸 출신 방송인 김시향은 그토록 바랐던 연기자로 자리매김 할 찰나에 누드화보집이 유출돼 곤욕을 치른 케이스다. 2004년 대구모터쇼를 통해 레이싱걸로 데뷔한 김시향은 같은 해 지누션의 ‘전화번호’ 뮤직비디오를 통해 연예계와 연을 맺었다. 이후 그는 케이블방송 <나는 펫> 공개 모집을 통해 총 1천여 명의 지원자 중에 300:1의 경쟁률을 뚫고 나온 실력파로 인정받으며 <나는 펫 시즌3>에 출연해 인기를 끌었다. 이밖에도 김시향은 KBS <스타골든벨>과 MBC <섹션TV 연예통신>의 리포터로 활약하는 등 공중파로도 영역을 확장했다. <김시향의 놈놈놈>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쇼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등 MC로의 자질도 맘껏 표출했다. 이윽고 지난 2009년 SBS드라마 <스타일>에서 황보갑주 역을 맡아 신인답지 않은 탄탄한 연기력을 선보이며 지상파 드라마 조주연급 역할에도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한시적인 인기
연예인 전향 한계

그러나 인생은 한 치 앞도 못 본다고 했던가. 별 탈 없이 승승장구 할 것만 같던 그의 연예계 삶은 단 한 번의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해야하는 사태까지 이르게 했다. 사건의 시작은 2011년 그의 누드사진이 온라인상에 무차별 유출되면서부터다. 앞서 김시향은 훤히 드러난 등라인과 가슴이 깊게 팬 의상을 기본으로 한 과감한 섹시화보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공개하지 않기로 했던 가슴이 전부 드러난 김시향의 누드사진을 전 소속사 관계자가 무단유출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진흙탕싸움으로 번졌다. 이에 김시향은 전 소속사 관계자를 명예훼손혐의로 고소했을 뿐만 아니라 누드사진의 저작권을 주장하는 업체 관계자는 물론 모바일 서비스 업체 대표 등도 함께 고소했다.



당시 그는 레이싱모델 오윤아 만큼의 인지도를 얻는 것이 다소 힘겨웠었고, 이에 파격적인 섹시 화보를 공개하며 인기몰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이도 대중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부족이었고 화보는 반짝 이슈로 떠올랐지만 결국 본인에게 상처만 새 아쉬움만 남겼다.

‘시구여신’이라 불리는 레이싱걸 출신 방송인 이수정은 8등신 콜라병 몸매와 명품 시구폼 하나로 단숨에 연예계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유명한 레이싱모델 이수진의 친동생으로, 175cm의 장신에 육감적 몸매를 소유한 당대 최고 인기의 레이싱걸이었다. 그러다 2011년 그에게 우연히 시구기회가 주어졌고, 단 1번의 시구를 위해 이수정은 무려 400회에 걸쳐 피칭연습에 몰두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프로선수 못지 않은 그의 시구장면은 방송되자마자 모든 야구팬들을 홀렸고, 각종 언론은 ‘시구여신’ ‘화제의 시구녀’ 등 이수정의 시구폼을 연일 거론하며 ‘가장 개념있는 시구자’로 선정해 기사화했다. 


방송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스포츠계에서는 이수정을 섭외하기 위해 입질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는 시구여신으로 떠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MBC <스포츠매거진>의 리포터로 발탁됐고, 스포츠 프로그램 뿐 아니라 지상파와 케이블을 넘나들며 드라마, 시트콤, 쇼프로그램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빛 보지 못해
자살 시도도

반면 레이싱걸의 연예계 진출에 따른 부작용도 있었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가수 이혜린이다. 2005년~2008년까지 ‘얼짱 레이싱걸’로 불리며 잘나가던 레이싱 모델이었던 이혜린은 섹시 모바일 화보를 통해 다수의 남성팬도 확보했으며 같은 해 ‘부산국제모터쇼’에서 메인 모델로 활동하며 모터쇼 기간 내내 주인공인 자동차보다 더 주목받기도 했다. 입소문을 통해 유명해진 그는 많은 소속사들로부터 러브콜을 받으면서 모델계를 은퇴하고 본격 연예계에 발을 들였다.

그가 선택한 직업은 바로 가수. 이혜린은 타 동료 2명과 함께 ‘쎈(SSEN)’이라는 이름으로 걸그룹을 결성한 뒤 예명 ‘유주’로 활동했으나 인기는커녕 그녀가 누군지도 모를 만큼 사람들에게서 잊혀져갔다. 재작년 초 두 번째 앨범을 발매한다던 이혜린은 대중의 무관심과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아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던 중 우울증까지 동반돼왔다. 당시 이예린은 레이싱걸 시절보다 더 인지도 낮은 연예인 지망생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이수정, 언니 수진과 방송인으로 활동
섹시화보·영상…우울증·자살 부작용도

연예인은 대중의 사랑과 인기를 한몸에 받지 못 하면 쉽게 우울증에 걸린다고 한다. 이예린도 우울증이라는 무시무시한 병을 이겨내지 못 하고 2010년 10월,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네티즌들은 “얼짱 레이싱걸이 우울증 자살이라니…. 안타깝다” “역시 레이싱걸 출신의 한계인가” “레이싱걸 시절엔 누구보다 잘 나갔는데 연예계로 빠지자마자 이런 참담한 결과가…” 등 다양한 의견으로 조의를 표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이목을 끌어 씁쓸함만 남겼다.

선정성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레이싱걸도 있다.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 정은주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2007년 서울 모터쇼에서 ‘지프(Jeep)’ 메인모델로 주목받은 정은주는 175cm의 휜칠한 키, 글래머러스한 몸매, 강렬한 눈빛, 도도한 섹시함으로 현재 각종 패션 화보와 모터쇼의 모델 캐스팅 1순위에 랭크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이후 케이블방송 VJ로 왕성히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연예계로 발을 담갔고, 어려서부터 꿈이었던 가수데뷔를 준비했다. 그는 걸그룹이 아닌 섹시 트로트가수를 선택하며 ‘누디티 가수’로 데뷔를 알렸다. 누디티란 노출 또는 벌거숭이, 나체라는 의미다. 이윽고 음원과 티저 영상을 온라인에 공개했지만, 이는 곧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해당 영상은 그가 표방하는 누디티(Nudity)의 의미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신체적 장점을 적극 활용해 여타 섹시 가수와는 차별화하겠다는 전략이다.

과다노출은
독약 되기도

공개된 티저 홍보영상은 정은주가 데뷔곡 ‘짜릿짜릿’을 부르는 모습이 담긴 1분51초의 짧은 동영상이다. 영상에서 그는 재킷 안에 속옷만 입고 있거나 아예 반라의 상태로 등장한다. 또한 누운 상태로 성적인 행위를 암시하는 듯한 야릇한 표정을 짓고 망사 스타킹을 찢는 등 자극적인 장면도 다수 포함돼 있었다.

해당 영상은 각종 포털과 게시판에 옮겨져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정은주 관련 검색어도 인터넷 포털 검색 순위 1위에 오르며 화제를 모았지만 세인의 비난도 뒤따랐다.

영상을 접한 네티즌들의 의견은 “야하게 입고 옷만 벗으면 가수냐”, “10대들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느냐”, “노래 홍보 영상이라기 보다는 포르노에 가깝다”며 비난성 댓글이 폭발하는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았다. 현재는 다른 앨범을 발표하며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이 또한 선정적 홍보가 주를 이루고 있어 재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지선 기자 jisun86@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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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