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정치팀] '아껴야 잘 산다'는 만고불변의 명제는 최소한 선거판에서는 틀린 말이었다. 이번 대선에서 양 캠프는 그야말로 아낌없이 썼다. 대선이 초접전으로 치러지면서 양측 모두 대대적인 물량공세에 나선 까닭이다. 전문가들은 양 캠프가 사용한 선거비용을 모두 합하면 1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선거비용 지출에 문제점은 없을까? <일요시사>가 살펴봤다.
안철수 전 무소속 대선 후보가 지난달 반값선거운동을 제안했을 때 양 캠프는 모두 "취지에 공감한다"면서 "선거비용 줄이기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발표했었다. 그런데 막상 본격적인 대선전에 돌입하니 양 캠프 모두 이번 대선에서 사상최대의 선거비용을 지출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상최대 선거비용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양 캠프는 이번 대선기간 동안 선거사무소와 연락소를 330개씩 설치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법적으로 설치할 수 있는 최대한도를 채운 것이다. 선거사무소와 연락소에 등록할 수 있는 선거사무원도 법적 한도를 거의 채웠다. 선거사무소 및 연락소마다 한 대씩 운영할 수 있는 유세차도 법적 한도를 채워 300대 가량 운영했다.
선거비용의 40% 정도를 차지하며 최다 지출 항목인 TV·라디오·신문 광고 및 TV·라디오 연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거비용 줄이기에 적극 나서겠다는 당초 약속과는 거리가 먼 행보였다.
이처럼 양측 모두 대대적인 물량공세를 펼치면서 전문가들은 양 캠프가 이번 대선에서 사용한 선거비용을 모두 합할 경우 1000억원을 훌쩍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선거비용은 선거가 끝난 후 40일 이내에 선관위에 신고하면 된다.
소비자 물가변동률, 인구비 등을 감안해 책정된 이번 대선의 법정선거비용 제한액은 559억7700만원이다. 2002년 16대 대선 때는 341억8000만원, 2007년 17대 대선의 경우 465억9300만원이었다.
16대의 경우 새누리당 전신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226억320만원, 266억5100만원을 집행, 한도액의 66.1%, 78%를 썼으며, 지난 17대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한도액의 80.2%, 86.5%인 373억9400만원, 399억7900만원을 집행한 바 있다. 이 비용들은 모두 국민 세금으로 충당됐다.
한 정당 관계자는 "상대 후보는 유세차량을 10대 돌리는데 우리 후보는 5대 밖에 안 돌린다면 아무래도 손해가 아니냐"며 "선거비용을 아낀다고 해서 인센티브가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선거가 초접전 양상으로 흐르면서 선거비용 제한액 내에서 최대한 물량공세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이번 선거비용은 사실상 '남의 돈'이었다는 점이다. 15%이상 득표할 경우 선거비용을 전액 보전 받을 수 있는 제도 때문이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양 후보는 '쓰는 게 남는 것'이었다.
선관위는 여러 제품의 통상가격을 조사하고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수량을 제한해 선거비용 지출 과정에서 부정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대한 감시하고 있지만 한계는 있다. 지난 10월 선거비용을 부풀려 착복한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기소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또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비용 보전을 못 받는)군소후보 사무실은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이면지를 쓰는데 (선거비용 보전이 확실한) 유력후보 사무실은 온갖 사무용품이 박스째 쌓여있는 모습을 종종 본다"고 말했다. 어차피 전액보전 된다는 점에서 캠프 내에서도 굳이 선거비를 아껴야겠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반값선거 공감한다더니…선거비용 사상최대
"어차피 내 돈 아닌데..." 도덕적 해이 심각
한편 지난 17대 당시 선관위의 선거비용 보전 내역을 기준으로 지출 항목별로는 광고 및 TV 관련 비용이 약 40%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인건비 24% ▲차량 등 유세관련 비용 21% 등의 순이었다. 따라서 이번 대선 역시 광고 및 TV 관련 비용이 선거비용의 상당수를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이 부분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낸다. 한 전문가는 "토론회에 출연하는 것은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미디어에 장시간 노출될 수 있는 가장 좋은 홍보방법인데, 이번 대선에서는 양 후보가 단 세 차례만 토론에서 맞붙어 역대최소기록을 갈아치웠다"며 "토론회를 제쳐두고 비싼 후보자 광고를 남발한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선거비용 지출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선거비용이 국민들의 삶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곳에 사용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정책공약개발비 등은 선거비용 보전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한 정치전문가는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 시대에 유세차량이 몇 대 더 줄어든다고 해서 국민들이 알 권리를 침해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유세차량의 대수는 양 후보 간의 '승패'의 문제이지 국민들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양 캠프가 정말 선거비용을 줄일 의지가 있었다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었다"며 "물론 한 쪽이 일방적으로 선거비용을 줄이는 것은 손해겠지만 양측이 합의하에 가이드라인을 정하고 동시에 줄이기로 한다면 얼마든지 줄일 수 있는 항목이 있었음에도 서로 경쟁하기에 바빴다. 양 캠프 모두 혈세를 아껴 국민들을 위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무조건 이기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선거제도에 개혁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전문가는 "해당 선거의 유권자수에 따라 수십, 수백억원의 선거비용을 쓰며 당선되고도 임기 중에 다른 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중도에 사퇴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며 "현행 선거법으로는 이 같은 일이 벌어져도 전혀 제재할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이 함께 치러진 올해의 경우 선거비용으로만 수천억원의 혈세가 투입됐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좀 더 효율적인 선거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효율적인 선거 시급
마지막으로 한 전문가는 "너무 선거비용을 줄이다보면 선거의 왜소화로 인한 권위의 상실, 국민들의 알 권리 침해가 우려되는 부분도 있지만 미디어와 통신의 발달로 이를 보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며 "선거가 국민들의 혈세로 치러지는 만큼 최대한 효율적인 방법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