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강제철거 쑥대밭' 구로 S오피스텔 가보니…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13 09:4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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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일주일 만에…포크레인이 덮쳤다"

[일요시사=사회팀]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S오피스텔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땅주인과 집주인 사이 이권 다툼에 애꿎은 세입자들만 쫓겨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땅주인에 의해 지난 6월 철거명령이 떨어졌는데 집주인은 철거 전날까지 세입자를 받았다. 또 경찰은 등기부등본조차 없는 유령건물이라는데 구청에서는 문제없다며 등기부등본을 떼어줬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빗방울이 추적추적 내린 지난 6일은 공기가 유난히 찼다. 기자는 겨울이 다가왔음을 실감하며 구로경찰서 맞은편에 위치한 S오피스텔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S오피스텔은 토지주와 건물주 간 싸움에 세입자들이 거리로 내몰렸다는 바로 그 건물이다.

출근 땐 멀쩡
퇴근 후 박살

지난 2일 오전 10시 서울남부지법은 S오피스텔이 '준공허가를 받지 않은 위법 건축물'이라며 철거용역 130여 명과 중장비를 동원해 건물 철거를 위한 명도집행을 시행했다. 이날 집행관들과 용역들에 의해 건물철거가 일부 진행돼 12층 건물의 지상 1층부터 3층까지 초토화됐다.

당시 S오피스텔의 일부 세입자들은 아침 출근 때 멀쩡했던 집이 퇴근 후 돌아오니 엉망진창이 돼 있는 황당한 일을 겪어야 했다. 철거 중 집을 지키고 있던 세입자들 역시 강하게 항의했지만 경찰도 방관하는 통에 자신의 집이 부서지는 것을 눈뜨고 지켜봐야 했다.

강제 철거 4일 후 기자는 해당 오피스텔을 다시 찾았다. 멀리서부터 붉은 스프레이로 쓴 '철거'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건물 앞에 다다르자 1층 유리창이 모두 깨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건물 입구엔 알루미늄 구조물 더미와 쓰레기가 한데 뒤엉켜 있었고 건물 안쪽은 부서진 건물 자재가 널브러져 있었다. 천장 곳곳이 뜯겨나가 있었는데 어떤 곳은 천장 타일이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건물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커다란 거울도 망치로 내려치기라도 한 듯 금이 쩍쩍 나가 있었다. 거울 외에도 유리라는 유리는 모두 깨져 바닥엔 유리조각 천지였다. 벽면에는 철거와 X자가 곳곳에 표시돼 있었다. 철거 당일 소형 굴착기까지 동원됐다는 1층은 한 마디로 아수라장 그 자체였다.

철거당한 집을 살펴보기 위해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2층에 도착하자마자 한 세입자를 만나 이것저것 물으려 했지만 그는 바쁘다며 "땅주인·집주인 싸움에 죽어가는 건 세입자들이야"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주거구역인 2층은 복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1층보다 을씨년스러웠다.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가운데 뻥 뚫린 공간 덕에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건물 중앙 하늘이 뚫린 터엔 2층과 3층에서 부서진 채 떨어진 창문틀과 부서진 현관문이 널브러져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스산한 기운이 돌았다. 또 벽면 곳곳엔 붉은색으로 철거와 X자가 표시돼 있었다. 조금 더 들어가자 현관문 뜯겨 나간 집이 보였다. 있어야 할 문은 없고 '안전제일' 테이프가 바람에 너덜거리며 으스스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토지·건물주 싸움에 세입자 거리로 내몰려
이른 아침 예고 없이 용역 철거반 들이닥쳐

현관문이 사라진 집들은 2일 철거를 당한 곳이었다. 입구에는 철거 당일 붙인 것으로 보이는 서울남부지방법원의 '강제집행예고 고시문'이 보였다. '이 건물은 철거대상 건물로 건물에 입주하고 있는 점유자들은 2012년 6월30일까지 자진하여 퇴거하시길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방 안으로 들어서자 부서진 가구들과 깨진 전등이 굴러다녔다. 벽지가 찢긴 벽면엔 어김없이 붉은색으로 철거라고 쓰여 있었다. 화장실의 변기와 세면대는 망치로 깨부순 티가 역력했다. 집안 창문도 깨져있었다. 깨진 창 너머로 구로경찰서가 보였다.

처참한 광경은 3층에서도 볼 수 있었다. 철거당한 가구수를 세보니 2층은 20세대 중 6가구, 3층은 20세대 중 7가구였다.


3층을 둘러보던 중 한 여성이 낑낑거리며 쓰레기더미를 옮기는 것을 발견했다. 기자가 "입주자냐"고 물으니 뒤편에 있는 문을 가리키며 "일주일 전에 입주했는데 다행히 철거를 당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기자라고 밝히니 할 말이 많은 듯 집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대학생 최모(25)씨의 집은 깔끔했다. 철거할 당시 집을 지키고 있었다는 최씨는 "사람들이 문을 열려고 할 때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며 강하게 반항했다"며 말을 시작했다.

철거 당일 어땠는지 묻자 그는 "그날 아침 예고도 없이 불법건물이라며 짐을 빼라는 방송이 나왔다"며 "어안이 벙벙한 채 집안에 그대로 있었더니 해머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몰려온 사람들이 벽과 유리를 내려쳐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이어 "부동산을 통해 등기부등본도 다 뗐었고 이것저것 충분히 알아보고 입주한 것인데 들어온 지 일주일 만에 나가라니 말이 되느냐"며 울분을 토했다.

다른 세입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최씨는 함께 입주한 송모(25)씨 집으로 안내했다. 송씨의 집안은 온통 핑크색으로 꾸며져 있었고 귀여운 고양이가 기자를 반겼다.

송씨는 "으슥한 골목에 위치한 오피스텔이나 반지하 방 등에서 살면서 몇 차례 위험을 느껴 안전한 집을 찾게 됐다"며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60만원으로 괜찮은 조건인데다가 경찰서가 바로 맞은편에 있어 기쁜 마음에 입주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사전에 분쟁이 있는 건물인지 몰랐느냐고 묻자 "입주 전엔 토지주와 건물주 사이에 분쟁이 있다는 얘기를 전혀 듣지 못했고 불과 며칠 전에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오피스텔엔 젊은 여성들과 임산부도 많이 살고 있는데 그 난리통에 현금 뭉치와 귀금속을 잃어버린 사람들도 많고 옷가지와 식료품 등이 한 자루 속에 뒤섞여 엉망이 된 사람이 대다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집 비운 사이 
집이 없어졌다"

주민 대표 전모(38)씨를 만났다. 318호에 살았던 전씨는 집을 철거당한 직접적인 피해자였다.

피해 정도를 묻자 그는 "20만원에 상당하는 고급 책상이 완전히 파손돼서 버렸고 선물 받은 아디다스 신발은 신어보지도 못한 채 용역들이 가져갔는지 없어졌다"며 "대부분 세입자들의 침대 매트리스는 컨테이너 녹에 젖어서 버렸고 모든 가구를 함부로 밖으로 빼내는 통에 흠집은 물론 다리가 부러진 가구들이 많다"고 호소했다.

전씨는 "건물주와 토지주 간 싸움 때문에 세입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2층과 3층 같은 경우 실질적인 피해를 많이 받았는데 대표자 협의회를 구성해서 공동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건물주는 보증금을 한꺼번에 다 지급할 여력이 없다며 버티고 있고 자신도 전세보증금 6000만원이 걸려있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답답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기자가 집을 철거당한 세입자들은 다들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전씨는 "불안해서 살 수 없다며 다른 집으로 이미 옮기신 분도 있고 나머지 분들은 11층에 살고 있다"고 답했다. 건물주가 11층에 비어있는 방들을 임시로 쓸 수 있게 해줬다는 것. 전씨도 남은 짐을 추슬러 1116호로 주거지를 옮긴 상태였다.

집을 잃은 세입자를 더 만나보기 위해 11층으로 올라갔다. 퇴근 시간이 지났지만 빈집이 많았다. 문을 몇 차례 두드린 끝에 박모(42)씨를 만났다. 그는 "준공이 나지 않은 건물에 대해 구청에서 전입신고나 확정일자 등 요구를 다 받아 줬다"며 "구청에서 입주 허가를 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불법이라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는 "심지어 중개료까지 받아가면서 이곳에 입주를 시킨 일부 부동산업자들은 연락도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만난 대학생 최씨, 송씨 모두 부동산 업자에게 복비를 냈다고 말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그렇다면 정당한 계약절차를 밟고 입주한 세입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이 황당한 상황은 왜 벌어진 것일까.

구로구청에 따르면 S오피스텔이 들어선 부지는 학교재단 A학원의 부지였다. A학원은 학교를 폐지하면서 해당 부지 일부를 공원용지로 구청에 기부 채납했고 이때 12층짜리 오피스텔 건설을 허가받았다.

그런데 A학원이 파산하면서 건물주가 성원건설로 바뀌었고 이후 성원건설도 부도나면서 건물주가 B주식회사로 넘어가는 등 오피스텔이 완공되지 못한 채 주인이 여러 번 바뀌었다. 그 와중 해당 토지는 경매에 붙여져 제3자가 낙찰받아 그때부터 토지주가 건물주가 나뉘게 됐다. 

이후 토지주와 건물주는 서로 토지와 건물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고, 양측의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준공허가가 차일피일 미뤄졌다. 그러다 현 건물주가 건물을 완공한 후 오피스텔 임대사업을 철거 하루 전날까지 지속했던 것.

반면 토지주는 토지주대로 불법점유물 철거소송을 진행해 2006년 10월 대법원으로부터 "건물주는 건물을 철거하고 토지를 토지주에게 돌려주라"는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그로부터 6년이 흘러 지난 6월에 이르러서야 철거통지가 내려졌다.


토지주 법정 대리인은 "오래전 철거 발표가 났는데도 건물주는 이를 무시하고 세입자를 받아 왔다"며 "건물주가 세입자들을 계속 받아들이며 이들을 방패로 삼아 최대한 시간을 끌어 그 임대사업으로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속셈"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지난 6월 법원에서 입주자들에게 퇴거 명령을 내렸는데도 건물주는 "아무 문제 없으니 걱정하지 말라"며 기존 세입자들을 안심시켰고 철거 전날까지도 신규 입주자를 받아온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이 오피스텔 건물은 건축 도중 건설사가 부도나면서 준공검사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등기부 등본조차 없는 유령 건물"이라며 "법원의 판결과 지난 6월 퇴거 고지 이후에도 건물주가 유령 건물도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부동산 임대가 가능하다는 법의 빈틈을 악용해 지속해서 세입자들을 받아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건물주 측은 "350억원의 가치를 가진 건물을 토지주가 15억원이라는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며 "가치의 30%만 인정해줘도 깨끗하게 건물을 넘길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철거 전날까지도 세입자 받아
경찰·구청 나몰라라 구경만

구로구청 측은 "대법원 판결이 났어도 토지주와 건물주 사이에 공동소유나 둘 중 하나의 소유로 협의만 이뤄지면 되는데 사인 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 신규 세입자의 전입신고를 받아준 것에 대해서는 "행정안전부에 문의한 결과 전입신고를 받아주라는 의견을 전달받았다"고 해명했다.

문제는 또 있었다. 건물주가 1명이 아닌 김모씨, 이모씨로 2명인 것. 게다가 220여 세대 중 130세대를 소유하고 있는 김모씨와 88세대를 소유하고 있는 이모씨는 서로 입장이 달랐다. 또 김씨는 연락이 두절된 반면 이씨는 1층에 사무실을 두고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며 세입자들을 설득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씨는 철거 당일 건물 1층 바닥에 인화성 물질을 뿌리며 "차라리 불을 지르겠다"라고 난동을 피워 공무집행방해죄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이에 세입자들은 경찰의 입장과는 반대로 이씨에 대해 호의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씨의 보증금을 한꺼번에 돌려주기 곤란하다는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는 듯했다. 세입자들에 따르면 이씨는 철거당한 세입자를 위해 11층 빈집을 내어주는가 하면 보증금도 돌려주려고 노력하는 등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

요약하면 토지주와 건물주 간 이권 다툼과 구청 측의 안일한 행정 처리로 인해 세입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특히 토지주 측은 "15억에 건물을 팔아라"는 입장인 반면 건물주 측은 "적어도 100억은 넘어야 한다"며 맞설 정도로 간극이 벌어져 있어 빠른 해결은 힘든 실정이다. 

이에 세입자들은 "토지주·건물주 양쪽 모두 돈 없고 힘없는 세입자들을 인질로 잡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앞으로 세입자들은 대책모임을 꾸려 준공허가가 나지 않은 건물에 대해 전세권설정, 확정일자, 전입신고 등을 가능하게 해 준 구로구청을 상대로 계속 항의할 예정이다. 전씨는 "S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세입자는 총 300여명으로 임차인 보증금만 3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이들 중 큰 보증금이 걸려있는 일부 세입자들은 보증금만 돌려받을 수 있으면 바로 떠날 것이라 말한다. 날이 어두워진 후 퇴근하던 이모(34)씨는 "건물주 측은 항상 분쟁이 마무리 단계고 조만간 끝날 것이라고 말해왔다"며 "전세보증금만 준다면 지긋지긋한 이곳을 당장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아있는 최근 입주한 세입자 중에선 용산 때처럼 끝까지 남아서 싸우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건물주 이씨의
진짜 속마음은?

주위를 둘러보던 건물 관리직원은 "이렇게 철거를 할 것이었다면 오래전 건물이 올라가기 전에 할 것이지 왜 이제 와서 이 난리를 치는 것이냐"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건물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건물주 이씨는 기자가 또 다른 건물주 김씨와의 관계와 세입자를 계속해서 받은 이유에 대해 물으려 하자 중요한 회의가 있다며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다음 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땅주인과 집주인이 벌이는 이권 다툼에 힘없고 이용당하는 세입자들만 추운 겨울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 곧 불어 닥칠 엄동설한, 올겨울은 유난히 추울 것이라 한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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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