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종북교육' 한창 예비군 훈련 가보니…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1.10 00:02:26
  • 댓글 0개

광우병 촛불시위가 북한 음모?

[일요시사=사회팀] '인혁당 사형수, 제주 4·3사건 희생자, 광우병 촛불시위자, 제주해군기지 반대시위자, 쌍용차 노동자, 진보정당 정치인 등이 종북세력?' 국가보훈처가 배포한 안보교육자료만 보면 그렇다. 이 자료에 따르면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은 '종북세력의 활동'이었고 이승만·박정희 전 대통령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신화적 존재'였다. 대선을 코앞에 두고 이 DVD는 예비군 훈련장, 초·중학교, 시민단체 등에서 상영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건장한 남자로 태어나면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바로 군대와 예비군 훈련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뤄오던 기자 역시 빨갛게 찍힌 '불참 시 고발'도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지난달 30일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52사단 연병장. 훈련을 받기 위해 서초구 일대 예비군들이 속속 도착했다. 이날 고급외제차를 끌고 온 직장인부터 하릴없는 백수까지 350여 명이 동원미지정자 훈련에 참가했다.

대선 앞두고…

3일 동안 훈련을 받으며 분위기가 예전과 비교해 사뭇 달라졌음을 느꼈다. 왜 그런가 했더니 훈련을 잘하면 집에 빨리 갈 수 있었다. 출퇴근 교육을 받는 동원미지정자 참가 훈련은 교육 태도와 목소리 크기, 사격 성적 등을 교관이 체크해 우수 분대를 선정하는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었다. 실제로 사격을 잘하거나 우수 분대로 선정되면 한두 시간 조기퇴소를 할 수 있었다. 그 효과는 상당했다.

훈련의 질도 개선됐다. 서바이벌 훈련이 추가돼 페인트볼건을 쏴 봤다. 영점사격훈련도 제대로 시행됐다. 덕분에 기자도 오랜만에 사격 감각을 익힐 수 있었다. 그 밖에 수색·정찰, 지뢰제거, 각개전투, 화생방 등 매 훈련 과정마다 교관이 평가했다. 예전의 예비군들이 아니었다. 집에 빨리 가고자 단합이 잘된 분대는 목소리가 이등병 못지않았다.


훈련 중 3시간은 정신교육에 할애됐다. 예비군들은 예외 없이 강당에 열을 맞추고 앉아 안보교육을 받아야 했다. 교육 도중 조는 것도 조기퇴소 여부에 반영됐다. 현역 장교의 자이툰 파병 경험담을 곁들인 안보교육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시청각 자료였다. 그 내용이 너무나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강당의 불이 꺼지고 전면에 '누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가'라는 제목으로 영상이 띄어졌다. 두 시간 동안 상영된 DVD들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DVD에 따르면 '인혁당 사건' '제주4·3사건' '86건대사건' 등 유신반대 투쟁과 민주화 운동은 모두 '종북세력'과 연결됐다. 유신체제 당시 민주화 투쟁세력은 사회주의 건설을 위해 반유신·반독재 투쟁을 빙자해 세력 확산을 기도했던 종북세력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종북세력의 실체'편은 한술 더 떴다. 쌍용차 노조 파업 시위 사진 위에 '순수 시민운동을 가장한 종북세력의 폭력시위'라는 문구가 삽입됐다.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유모차를 끌고 나온 엄마들도 졸지에 종북세력이 됐다. DVD는 "촛불시위 당시 북한의 종북세력과 연계해 사회혼란을 조장했다"며 "종북세력은 촛불시위가 반정부, 반미 투쟁으로 확산되도록 면밀히 주도하고 선동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학생단체의 시위 사진과 함께 "2000년대 종북세력이 제도권과 정부 내부에 침투하여 친북 사회주의 활동을 민주화·평화애호 운동으로 미화해 그 영향력을 국가 전반에 확산시켜 왔다"는 문구가 나왔다.

'위험한 반대'편은 4대강 사업, 제주 강정 해군기지, 평택 미군기지 이전, 천선상 터널 등 정부 시책에 반대하는 모든 시위를 두고 환경과 평화를 가장한 종북세력의 반정부 시위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정부 정책에 이견을 가지기만 해도 '종북주의자'가 됐다.

훈련 참가자들 억지로 종북DVD 시청해야 
정부에 반기 들면 '간첩'…박정희는 찬양

'북한의 대남전략은 무엇인가'편에선 "촛불시위 동안 주도적 역할을 한 단체들은 북한과 똑같이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 철수 등을 주장하는 종북세력이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편에선 베트남 사례를 들며 국내 종북세력을 경계토록 했다. 이 DVD에 따르면 "베트남은 공산화되기 직전까지 자유민주주의 정부였지만 매일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면서 "시위들은 '인권' '민족' '자주국방' '평화' 등을 외쳤지만 알고 보니 당시 시위를 주도한 재야세력과 야당 대표는 간첩이었다"라고 묘사했다. 특히 0.2%에 불과한 베트남 공산세력이 자유주의 정부를 밀어내는 데 성공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전쟁 통에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편집해 보여주고 슬픈 편지를 읽는 등 감성을 자극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엔 우리나라의 안보불감증을 부각하며 우리나라 상황은 당시 남베트남과 다르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한민국의 건국과 정통성'편에선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을 '신화'라고 언급하며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한 정통세력으로 부각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미래 녹색성장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홍보했다.

DVD들은 점심시간에도 계속 상영됐다. 물론 기자처럼 열심히 시청하는 예비군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정된 교육시간에는 의외로 많은 예비군들이 졸지 않고 열심히 DVD를 시청했다. 조기 귀가 열망은 '종북교육' 효과를 높이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보훈처에서 배포한 문제의 이 DVD는 '국가 정체성 확립'이라는 주제로 3편, '남북관계' 4편, '북한 실상' 4편 등 총 11편으로 구성돼 있으며 편당 5∼10분 분량의 동영상들이 3∼7개씩 묶여 편집돼 있다.

공식석상에서 처음 이 문제를 제기한 국회 정무위 정호준 민주통합당 의원은 '호국보훈자료'라는 이름의 이 DVD세트를 입수해 국감에 공개하고 출처를 밝혀줄 것을 보훈처에 요구했다. 그런데 담당과로 드러난 '나라사랑교육과' 관계자들은 영상 제작과 관련해 "외부에서 협찬 받은 자료로 실무선에서 밝히기 곤란하다"는 황당무계한 답변을 내놓았다. 이에 정 의원은 국가보훈처의 의도적인 자료 은폐, 폐기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문제의 DVD는 내용도 충격적이지만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 무슨 돈으로 제작했는지 미스터리다. 이 DVD에는 '국가보훈처'라고 분명히 적혀 있지만 정작 국가보훈처는 "협찬을 받은 것"이라며 관련성 일부를 부인했다. 그런데 이 DVD는 부산·경남지역 일부 학교와 시민단체에 배포됐고 몇몇 학교에서는 이미 학생들에게 상영되기도 했다. 특히 부산지방보훈청은 최근 부산지역 학교에 배포한 동영상을 상영해 달라고 공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앞에서 본 대로 이 DVD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미화하고,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촛불시위 등을 종북세력과 연계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어 정치개입 의혹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치개입 의혹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에 대한 의혹도 커지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특정 정당에 유리한 내용을 담은 DVD를 대량 배포했기 때문이다. 박 처장은 지난 2007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캠프에서 활동하는 등 친박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자리에서 "2040세대(20∼40대)의 안보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민석 기자 <ideaed@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