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성범죄 전과 의혹 황석희

믿고 보던 번역가의 어두운 과거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스타 번역가’ 황석희가 성범죄 전과 의혹이 드러나며 곤욕을 겪고 있다. 평소 보여주던 가족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소신 있는 발언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쌓아온 만큼, 이를 접한 대중 사이에서는 그에게 배신감이 크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황석희는 1979년생으로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영어교육과를 졸업한 영화 번역가다. 자막의 뉘앙스를 살려내는 감각과 캐릭터의 말맛을 살리는 번역으로 입소문을 타며, 이른바 ‘스타 번역가’로 자리 잡았다. 대학 시절 그는 영어교육학을 전공했지만, 주변 동기들처럼 교원 임용시험을 준비하지는 않았다. 오랜 시간 시험에 매달릴 자신이 없었고, 교사라는 직업이 자신에게 맞는지에 대한 확신도 부족했다. 대신 그가 선택한 방향은 ‘번역’이었다.

길고 긴
무명 시절

특히 책 번역가를 꿈꾸며 진로를 설정했지만, 초보 번역가에게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현실적인 선택으로 시작한 것은 계약서, 매뉴얼, 서신 등을 다루는 이른바 ‘단순 번역’ 작업이었다.

대학 4학년 시절부터 각종 아르바이트 형태의 번역을 맡으며 생계를 이어갔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실무 경험을 쌓았다. 당시만 해도 영화 번역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황석희는 미국 토크 프로그램 <닥터 필 쇼> 번역 작업을 맡으면서 영상 번역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이게 됐다. 그때까지 그는 영상 번역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도, 제대로 된 작업 환경을 갖춘 적도 없었다. 단지 “영상 자막은 두 줄로 쓴다”는 정도의 기본적인 정보만 알고 시작한 수준이었다.

작업 환경 역시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악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영상 파일이 아닌 비디오테이프로 작업이 이뤄졌다.

그는 중고 매장에서 비디오 재생 장비를 직접 구입한 뒤, 리모컨을 이용해 영상을 ‘돌리고, 멈추고’를 반복하며 번역을 진행했다. 한 문장을 확인하기 위해 수차례 되감기를 반복하는 방식은 시간과 체력을 동시에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황석희는 이 시기를 두고 “아마 이 바닥에서 나만큼 밑바닥부터 시작한 번역가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현장에서 하나씩 체득해 온 경험에 대한 자부심인 것이다.

이후 그는 다큐멘터리와 방송 번역으로 활동 영역을 넓혔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을 비롯한 다큐멘터리 번역을 약 1년 반가량 맡으며 영상 번역가로서의 기반을 다졌고, 이어 미국 드라마 번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했다.

그는 <밴드 오브 브라더스> <24> <왕좌의 게임> <뉴스룸> <더 퍼시픽> <로앤오더> 등 다수의 인기 미드(미국 드라마)를 번역했다. 장르와 분위기가 각기 다른 작품들을 번역하면서 축적한 경험은 상황과 감정을 살려내는 번역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특히 드라마 번역은 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의 엄격함을 요구하는 분야였다. 케이블 채널의 경우 맞춤법과 띄어쓰기를 사전 수준으로 맞춰야 할 정도로 검수가 까다로웠고, 표현 수위 역시 강한 제한을 받았다. 번역 과정에서 제작사나 채널이 직접 개입하는 경우도 많아, 번역가의 자율성이 상대적으로 제한되는 구조였다.

이처럼 오랜 기간 드라마 번역으로 경력을 쌓았지만, 그의 목표는 분명히 영화였다. 그는 “많은 영상 번역가들이 영화 번역을 하고 싶어 한다”며 “극장에서 내가 번역한 작품을 관객과 함께 보는 경험은 큰 의미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영화 번역 시장은 이미 기존 번역가들이 자리 잡고 있는 폐쇄적인 구조였다. 실제로 그는 첫 영화 번역 기회를 얻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나에게 실망할 날 온다”
의미심장 발언 재조명

처음 맡은 영화는 2009년 개봉한 <선샤인 크리닝>으로, 비교적 규모가 작은 작품이었다. 운 좋게 기회를 얻었지만, 그 이후에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첫 작품 이후 약 4년간 추가적인 영화 번역 작업을 맡지 못하는 공백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던 와중 두 번째 영화 번역을 맡으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황석희는 영화 <웜 바디스> 번역을 통해 다시 영화 작업에 참여하게 됐다. 그는 당시 “첫 작품을 맡았던 회사였지만 나를 기억하지 못했고, 미드 번역 이력을 본 실무자가 추천해 기회를 얻게 됐다”고 설명했다.

<웜바디스>는 예상 외로 흥행했고, 번역에 대한 좋은 평가도 받게 되면서 이후 영화 번역 작업이 꾸준히 이어졌다. 이를 계기로 황석희는 본격적인 영화 번역가로 활동하게 됐다.

황석희는 지금까지 500편이 넘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번역했다. 그가 참여한 작품은 <스포트라이트> <사울의 아들> 등 해외 주요 영화제 수상작이 많다. <스포트라이트>는 아카데미 작품상을, <사울의 아들>은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황석희라는 이름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된 영화는 히어로물 <데드풀>이었다. 국내에서 약 290만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기존 히어로 영화와 달리 19금 유머와 비속어, 은어가 다수 포함된 이른바 ‘B급 정서’가 특징이다. 번역 난도 역시 상당히 높은 작품이었다.

황석희는 당시 작업을 마친 뒤 “개봉하면 욕을 많이 먹을 것 같아 잠수를 고민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개봉 이후 반응은 정반대였다. 관객들은 그의 번역을 두고 ‘약 빤 번역’이라는 표현을 쓰며 호평을 보냈고, 기존 자막과는 다른 방식의 표현이 신선하게 받아들여지면서 ‘초월 번역’이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번역 과정에서 그는 캐릭터의 성격을 기준으로 표현을 선택한다고 설명했다. 오프닝 크레디트 번역에는 원문 표현을 단순히 직역하는 대신, 캐릭터의 성격을 반영해 ‘호구들’과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대해 그는 “데드풀이 직접 썼다면 어떤 표현이 어울릴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데드풀>처럼 대사의 비중이 큰 작품의 경우, 말의 리듬과 뉘앙스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황석희는 <스파이더맨: 홈커밍>과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번역 과정에서도 시리즈의 설정과 캐릭터 톤을 고려해 작업을 진행했다. 특히 <스파이더맨: 파 프롬 홈> 자막에서 등장한 ‘피터 찌리릿’이라는 표현은 원문 ‘Peter tingle’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약 3주간 표현을 검토했으며, “유치한 느낌과 의미 전달을 동시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데드풀>로
초월 번역

표현 수위 조정 역시 번역 과정의 일부다. 예를 들어 ‘male escort’라는 표현은 ‘애인 대행 알바’로 순화해 번역했다. 그는 해당 사례에 대해 “장면의 분위기를 고려해 표현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황석희의 번역에 대한 철학은 남다르다. 여러 인터뷰에서 번역의 역할을 “연출자의 의도와 대사의 의미를 관객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설명해 왔다. 그가 말하는 좋은 자막은 ‘들리는 자막’이다. 관객이 자막을 읽는다는 느낌이 아니라, 마치 인물이 한국어로 말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단순히 영어를 한국어로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캐릭터의 말투나 상황, 장면의 흐름까지 함께 고려해 문장을 다듬는다. 작업 방식도 이런 기준에 맞춰져 있다.

원작이 있는 작품은 사전에 관련 자료를 충분히 찾아본다. <데드풀>이나 <로건>을 번역할 때는 코믹스 세계관을 따로 공부했고, <알리타: 배틀 엔젤>을 맡았을 때도 원작 만화를 직접 찾아봤다. 팬들이 낯설지 않게 느끼도록 하기 위한 과정이다.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는 작품에서는 더 꼼꼼해진다. 전쟁 영화라면 군사 용어를 따로 확인하고, 언론이나 법조 분야를 다룬 영화는 실제 종사자에게 자문을 구한다.

<더 퍼시픽>이나 <스포트라이트> 같은 작품에서 이런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는 “관련 분야 사람이 봤을 때 어색하지 않은 게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표현 선택에도 나름의 기준이 있다. 특정 단어나 욕설이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되면 다른 표현으로 바꾼다.

단순히 원문을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상황에 맞고 자연스럽게 들리는 쪽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번역가들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오역에 대한 태도도 비교적 분명한 편이다. 문제가 제기되면 인정하고 사과하는 쪽을 택한다. 이후 수정이 가능한 경우에는 자막을 다시 손보기도 한다.

과거에는 비판을 반박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인정하고 고치는 게 가장 빠른 해결”이라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번역 기준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달라졌다.

초기에는 본인이 생각하는 ‘좋은 번역’에 더 무게를 뒀다면, 지금은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더 중요하게 본다. 관객이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선택하는 쪽으로 방향이 바뀐 셈이다.

그렇다고 기준이 느슨해진 건 아니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기준은 더 엄격해졌다. 그는 지금까지 번역한 작품 중에서도 “100% 만족한 대사는 없다”고 말한다. 개봉 이후에도 더 나은 표현이 떠오른다고 할 정도로, 작업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 남겨두는 편이다. 이처럼 완벽주의적인 작업 때문에 황석희는 흔히 ‘초월 번역가’로 불린다.

남다른
철학으로

하지만 최근 황석희의 성범죄 전과에 대한 의혹이 보도되면서 ‘스타 번역가’의 명예가 땅으로 떨어졌다. 지난달 30일 <디스패치> 보도를 통해 황석희의 과거 성범죄 전력 의혹이 공개됐다.

매체 보도에 따르면 황석희는 2005년과 2014년 두 시기에 걸쳐 총 3차례 사건에 연루됐으며, 이 과정에서 피해자는 총 5명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졌다.

황석희는 2005년 강원 춘천 일대에서 길을 가던 여성들을 상대로 연달아 범행을 저질렀다. 한 여성에게는 뒤에서 접근해 신체를 만지며 넘어뜨린 뒤 추행을 이어갔고, 이를 제지하던 피해자의 지인을 폭행해 상해를 입힌 것으로 보도됐다.

같은 날 인근에서 또 다른 여성을 상대로 유사한 방식의 추행을 시도했고, 이를 말리던 동행인을 폭행하는 등 추가 피해가 발생했다. 해당 사건으로 황석희는 강제추행치상 및 상해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2014년에는 당시 자신이 강의를 맡고 있던 문화센터 수강생을 상대로 술자리를 가진 뒤 만취 상태의 수강생을 숙박업소로 데려가 유사강간을 시도하고, 피해자의 신체를 촬영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사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에 있었다고 판단해 준유사강간 및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를 인정했고, 징역 2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이와 함께 성폭력 치료 강의 수강과 사회봉사 명령도 내려졌다.

재판 과정에서는 황석희의 반성 여부와 함께 가족의 생계 등이 양형에 고려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2014년 사건에서는 아내의 선처 호소가 재판부 판단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따라 징역형이 선고됐지만 법정 구속은 이뤄지지 않고 집행유예가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보도되자 황석희는 자신의 SNS를 통해 입장을 밝혔다. 그는 “현재 관련 사항에 대해 변호사와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보도 내용 중 사실과 다른 부분이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 법적 판단 범위를 벗어난 표현이 포함될 경우 정정 및 대응을 검토하겠다”고 짧은 입장문을 남겼다.

다만 해당 입장문에서는 구체적인 사실관계에 대한 설명이나 피해자에 대한 언급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황석희는 기존 게시물 대부분을 삭제하거나 비공개 처리하면서 SNS 활동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논란이 확산되면서 방송가와 출판계, 광고업계 전반에서 관련 콘텐츠를 정리하는 움직임도 빠르게 이어졌다. 먼저 방송가에서는 황석희가 출연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전지적 참견 시점> 회차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서 비공개 처리됐다.

해당 방송의 하이라이트 영상과 유튜브 클립 역시 대부분 삭제되거나 접근이 제한된 상태다. 라디오 프로그램과 인터뷰 콘텐츠 등에서도 그의 출연분이 잇따라 정리되며 사실상 노출이 중단됐다.

‘3차례’ 성범죄 전력 알려져 논란
방송·출판·광고 ‘전방위 손절’

출판계에서도 비슷한 조치가 이어졌다. 황석희가 펴낸 에세이 <번역: 황석희>와 <오역하는 말들>은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등 주요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가 중단되거나 품절 처리됐다. 일부 서점에서는 “출판사 유통 중단” 사유가 안내되며 사실상 유통이 멈춘 상태다.

광고 및 브랜드 협업 콘텐츠 역시 빠르게 정리됐다. 그가 참여했던 광고 영상과 홍보 콘텐츠가 잇따라 삭제되면서, 상업 활동 영역에서도 그와 거리 두기가 이어지고 있다.

개인 SNS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논란 직후 입장문을 제외한 기존 게시물이 대부분 삭제되거나 비공개 처리됐고, 하루 사이 팔로워 수가 약 1만명가량 감소하는 등 대중 반응도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이번 논란은 그동안 대중에게 알려졌던 그의 이미지와도 괴리가 있어 더 큰 파장을 낳고 있다. 황석희는 방송과 SNS를 통해 가족, 특히 딸에 대한 애정을 자주 드러내며 이른바 ‘딸 바보’ 이미지로 굳어졌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을 당시 그는 “32개월 된 딸이 하는 말을 전부 번역해보고 싶다”며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고 말하는 등 자녀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또 다른 인터뷰와 방송에서도 그는 딸과 관련된 일상을 언급하며 “아이를 볼 때마다 하루가 영화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거나, 놀이터에서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모습을 떠올리며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는 등 가족 중심적인 모습을 강조해 왔다.

SNS에서도 육아와 관련된 고민이나 일상을 꾸준히 공유하며 대중과 소통해 왔고, 논란이 불거지기 불과 이틀 전에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언급하며 “새로운 시작을 앞둔 아이를 응원한다”는 글과 함께 자신이 번역한 그림책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그의 과거 발언과 글들도 온라인을 중심으로 다시 확산되고 있다. 황석희는 과거 SNS와 인터뷰를 통해 “롤모델이나 멘토로 생각하지 말라. 언젠가 반드시 실망할 날이 온다”는 취지의 글을 남긴 바 있다. 또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유해하다”는 표현을 사용하며 스스로를 완전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는 인식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신의 과거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도 “영웅화나 낭만화를 경계한다”며 “기억에 살을 덧붙이고 각색하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여러 차례 해왔다. 당시에는 현실적인 조언으로 받아들여지며 공감을 얻기도 했다.

이대로
나락행

하지만 이번 논란 이후 해당 발언들이 다시 조명되면서, 온라인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본인의 성범죄 전과가 알려질 것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 아니냐”는 반응을 보였고, 또 한편에서는 “과거 발언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imsharp@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