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몽키하우스’ 미군 위안부 수용소 ⑧모종의 자책감과 무기력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6.01.05 04:53:47
  • 호수 15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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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남대문이나 동대문이 아니라 ‘나라 보지’를 말하는 거야. 국가에서 우리 몸뚱이를 이용했으니…그 무서운 곳을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른 건 낭만이 아니라 야유하기 위해서였지…우리 보지는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

헌병은 청운을 한동안 주시했으나 별 말없이 뒤쪽으로 걸어갔다 청운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허약한 심정에 대해 비웃음을 흘렸다. 바로 그때 헌병의 가죽 장갑 낀 손이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헌병의 등장

“주민등록증 좀 보여 주시겠습니까.”

헌병은 이미 그의 앞에 와 서서 엄중히 훑어보며 말했다.

청운은 잠바 안주머니에서 귀향증을 꺼내 가죽 손에게 내밀었다. 헌병은 잠시 살펴보고 되돌려 주며 깍듯이 경례를 붙였다.


“실례했습니다.”

헌병이 내려가고 나자 고물 버스는 다시 털털거리며 행로를 짚어 나갔다. 마치 나무 지팡이를 짚고 바쁜 길을 가는 노인네처럼.

또록하다면 또록하고 흐릿하다면 흐릿한 기억하지만, 청운에겐 검문소에 의한 아픈 상흔이 있었다. 여섯 일곱 살쯤 된 어린 시절이었던 듯싶다. 지금과는 다른 여름철, 아버지와 함께 버스를 타고 외갓집으로 가고 있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술과 노름에 젖어 있었지만 제정신을 잃은 상태는 아니었다. 조금쯤 초조해 보이는 모습이긴 했으나 가끔 큼직한 손을 들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강을 따라 신나게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더니 군모를 쓴 어떤 아저씨가 올라왔다.

그는 청운의 볼을 슬며시 쓰다듬은 다음 아버지에게 민증을 보여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잠바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지더니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깜빡 잊었다고 변명했다. 냉정한 군인 아저씨는 “잠시만 내려주십시오” 하고 거듭 재촉했다.


왕년엔 아버지 자신도 순경으로서 수상쩍은 사람을 닦달하며 끌고 간 적도 있었고 그런 사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기도 했지만 군인 헌병에겐 통하지 않았다.

“뭘 죄가 없으면 왜 그리 자꾸 뒤로 빼는 거여. 다들 바쁜 길인데…….”

승객들의 구시렁거림을 못 이겨 아버지는 결국 주춤주춤 버스에서 내렸다.

청운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눈짓하면서……

하지만 아버지가 버스 문을 내려 사라지는 순간 청운은 질린 표정으로 곧장 뛰따라 내렸다.

푸른 강 위에 긴 철제 다리가 놓였고 그 앞쪽에 검문소가 설치돼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던 청운은 깜짝 놀랐다.

기다리마던 버스가 아무 말도 없이 출발해 다리 위를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청운은 두 손을 들어 내저으며 발을 굴렀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그 차의 선반 위엔 소중한 물건이 든 가방이 실려 있었다.

아버지는 다행히 별일 없이 풀려나왔지만 꿈이 든 그 가방은 이미 멀리 사라져 버리고 없었다.

청운은 다급히 아버지를 밀치고 검문소 안으로 들어가서 울먹이며 실상을 알렸다. 아버지는 뒤늦게 깨닫곤 헌병에게 화를 냈으나 뾰족한 수는 없었다.

기껏 헌병이 세워 준 다른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 봤지만 끝내 가방을 찾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불뚝성까지 내어가며 따지긴 따졌으되 차부 앞 술집에서 대포 한잔을 들이켜고는 시나브로 잊고 야릇한 유행가를 흥얼거렸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이 아빠가 초능력을 쓰면 저절로 돌아오고말고, 허헛허…….”

청운은 그런 얘길 믿고 싶지 않았을 뿐더러 어쩜 저럴 수 있을까 하고 외려 증오하고픈 심정이었다.

하긴 오랜만에 처갓집에 간다는 자가 제멋대로 자란 수염도 깎지 않고 후줄근한 꼴로 거들먹거리는 데야 누군들 믿을까 싶었다.

그 가방 속엔 약소하나마 어린 소년의 부푼 꿈이 담겨 있었다.

멋진 그림이 들어간 신기로운 옛이야기 책과 정글북, 피노키오, 보물섬 같은 미지의 동화…… 그리고 앙징맞은 만화경과 망원경, 산새가 지저귀는 듯한 옥색 호루가기, 예쁜 딱지, 돋보기 따위의 장난감…… 엄마가 그걸 마련해 주었을 때 미리 좀 슬쩍 살펴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른 채 가방 속에 챙겨 넣었었다.

외할머니 집에 가서 하나씩 꺼내 호기심을 풀고 산마을의 동무들과 함께 가지고 놀면 한층 더 즐거울 듯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이젠 날아가 버린 파랑새가 되고 말았다. 잃어버린 것이기에 더욱 신비롭고 그립고 아쉬운지도 몰랐다.

어린 소년의 부푼 꿈 담긴
소중한 가방을 잃어버리다

‘아, 그때 그 향긋한 자연 속에서 그 멋진 동화를 읽으며 예쁜 꿈을 키우고, 신기로운 장난감들과 함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놀았다면…… 혹시 그랬다면 내 미래는 좀더 밝게 변화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선감도에도 끌려가지 않고…….’

청운은 그 잃어버린 가방만 생각하면 언제라도 안타까운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소중한 물건을 상실한 외로운 아이는 모종의 자책감과 무기력증에 빠져 서글픈 여름을 보냈다. 얼마 후 아버지는 도박과 폭행죄로 경찰에 구속되었고 석방된 다음엔 술병에 걸려 집안 형편은 서서히 내리막길에 놓였다.

그리고 청운은 졸지에 고아 신세가 되어 세상의 밑바닥을 떠돌게 되었던 것이다.

‘백주 대낮에 무장간첩이 날뛰고 살인 강도 강간범들이 돌아다니는 세상이니 검문검색도 필요하겠지. 하지만 잠시면 된다며 끌고가 평범한 사람들의 꿈을 영원히 조각내 버리는 짓은 하지 말았으며 좋겠어. 자기들 멋대로! 차라리…… 겉모양을 점잖게 꾸민 채 한밤중에 나라 돈을 쥐새끼처럼 솔솔 빼 처먹는 높으신 분네들이나 제대로 검문검색해서 그 잘난 상반신 혹은 하반신을 상실케 했으면 좋겠네. 무엇을 하든 상하 한쪽이 격심한 갈증과 낙망을 느끼도록…….’

청운은 생각에 잠겨 차창을 열곤 밖을 내다보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답답한 심정을 조금쯤 날려보내 주었다.

버스가 종착지에 도착해 가래 끓는 듯한 괴로운 호흡을 겨우 멈추었다. 청운은 아직껏 잠에 빠져 있는 옆자리 여자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 뒤 버스에서 내렸다.

음습한 터미널을 벗어나 일단 한길가로 나선 청운은 갑자기 삭막한 기분에 휩싸였다.

겨울이라지만 아직 해가 많이 남은 세 시경인데도 길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마치 서부영화에 나오는 황량한 소읍 같은 인상을 풍겼다.

냉랭한 바람만이 전신주를 윙윙 울리며 불어대면서 먼지와 종이 조각 따위를 이리저리 흩날렸다. 빈 깡통이 굴러가는 소리가 으스산한 느낌을 자아냈다. 차도 그다지 다니지 않았다.

청운은 천천히 길 건너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급한 건 없으니까 방랑자처럼 슬슬 구경이나 해보지 뭐. 사심 없이 걷다 보면 의외로 목적지가 더 가까워지기도 할 테니 말야. 애써 찾으려 들면 길이 일부러 실타래처럼 꼬인 양 헤매게 되는 경우도 많더군.’

청운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미지의 딴세상에 온 듯 걸었다.

멋대가리라곤 없이 단조롭게 뻗은 길이지만 양옆으로 늘어선 건물엔 허바허바 사진관, 뉴욕 미장원, 마미 제과점, 샤인 금은방, 미미 양품점, 보이스 전파사, 러브 레스토랑, 신세계 극장, 로얄 애견숍, 샤론 의상실, 바우 전축, 동두천 제1직업소개소, 오쇼 복덕방, 법류사무소와 대서소, 친선 결혼상담소, 아델라이다 꽃집 등의 간판이 붙어 있었다.

ㄱ자로 꺾어 돌자 병원, 잡화점 같은 간판도 보였다. 그런데도 행인이 드물어서인지 유령 마을 같은 첫 인상을 던져주는 것이었다.

청운은 무표정한 얼굴로 느릿느릿 걸어갔다.

바로 그때, 요란스런 굉음이 지축을 울리며 멀찍이서 들려왔다. 이어 일군의 군용 차량이 줄지어 아스팔트를 지나갔다.

탱크, 장갑차, 검은 괴물 같은 트레일러, 뭔지 잔뜩 적재한 대형 트럭, 오일탱크를 실은 차량 등 기나길 수송행렬이었다.

성조기와 ‘U.S.A. Army’라는 흰 표식이 찍힌 그 차량들은 한국의 하늘에 뜬 태양을 무시하듯 아직 한낮인데도 굳이 인위적인 강렬한 헤드라이트를 켜고 있었다.

그건 거대한 드래곤의 눈알처럼 의뭉스럽고 자만심으로 무장된 듯이 보였다.

거대한 드래곤

잠시 후 저쪽 하늘 높이 헬리콥터 편대가 나타나더니 요란스런 프로펠러 회전음으로 공기를 찢고 햇빛을 조각조각내어 반사하면서 줄지어 날아갔다.

겨울 하늘 한구석에 떠 있던, 얇게 썰어 놓은 배의 속살 같은 희미한 반쪽 낮달이 불안감을 못 이겨 파르르 떠는 듯이 느껴졌다.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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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