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호주의 상징적인 휴양지인 시드니 본다이 비치 인근에서 열린 유대교 축제 ‘하누카’ 행사장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 사건으로 사망자가 16명으로 늘어났다.
범행을 저지른 용의자들이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밝혀지며 충격을 더하는 가운데,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강력 범죄를 넘어 호주 사회 내부에 누적돼 온 반유대주의 갈등과 국제 정세가 맞물린 최악의 증오 테러라는 분석이 나온다.
15일 <AP통신>과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 14일(현지시각) 오후 6시45분쯤 시드니 동부 본다이 비치 북쪽의 본다이 파크 인근에서 열린 하누카 행사 도중 무장 괴한 2명이 인파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다. 당시 행사에는 약 1000명 이상의 시민과 관광객이 모여 있었다.
이 사건으로 10세 아동과 87세 노인을 포함해 최소 16명이 숨졌고, 부상자는 42명에 달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중상을 입어 사망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희생자 중에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부와 유대교 성직자(랍비)도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 경찰은 현장에서 사살된 50세 남성과 체포된 24세 남성이 부자(父子) 관계라고 공식 발표했다.
이들은 검은 옷을 맞춰 입고 육교 위에서 축제를 즐기던 가족 단위 인파를 향해 약 10분간 총기를 난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아버지의 은신처에서 총기 6정을 추가로 발견했으며, 차량에선 사제 폭발물(IED) 2개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사 당국은 이들이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공모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테러 혐의로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1996년 태즈메이니아주 포트 아서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약 30년 만에 발생한 호주 최악의 총기 참사로 평가된다.
호주는 당시 사건을 계기로 자동·반자동 총기 소유를 전면 금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총기 규제 국가로 꼽혀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호주에 대해 “선진국 중 총격 사망률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50세 용의자가 합법적인 총기 면허를 소지한 채 여러 정의 총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정보당국의 감시 대상이었음에도 ‘즉각적 위협’으로 분류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치안 시스템의 허점이 도마위에 올랐다.
크리스 민스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총리는 “총기법 추가 개정이 거의 확실하다”며 규제 강화를 시사했다.
현지에선 총격범 중 한 명을 맨몸으로 제압한 시민의 용감한 행동도 화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에 확산된 영상에는 한 남성이 총격범을 피해 숨어 있다가 뒤에서 달려들어 총기를 빼앗는 장면이 담겼다.
이 남성은 시드니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43세 아흐마드 알 아흐메드로 확인됐다. 그는 이 과정에서 다른 공범의 총격을 받아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행동으로 더 큰 피해를 막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크리스 민스 뉴사우스웨일스(NSW) 주총리는 그에 대해 “진정한 영웅”이라면서 “이 분의 용감한 행동의 결과로 오늘 밤 많은 사람이 살아있게 됐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치켜세웠다.
앤서니 엘버니지 호주 총리도 “많은 호주인이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봤다”면서 “이 분들은 영웅들로, 그들의 용감함이 사람들의 목숨을 살렸다”고 경의를 표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번 테러의 근본 배경으로 호주 내에서 급증한 반유대주의 정서를 지목한다.
텔아비브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사건이 소폭 감소한 것과 달리, 호주에서는 1700건이 넘는 사건이 발생해 가장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특히 2023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시드니와 멜버른에서는 유대인 학교와 시나고그를 겨냥한 방화와 낙서 테러가 잇따랐다.
이번 사건은 호주와 이스라엘 간 외교 갈등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반유대주의는 지도자들이 침묵할 때 확산되는 암과 같다”며 “이를 마주할 때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호주에선 그런 대응이 이뤄지지 않았고, 그 결과 오늘 그곳에서 끔직한 일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호주 정부가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 움직임을 보인 것이 반유대주의의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를 정면 비판했다.
실제로 호주 정부는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 국가 인정에 동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다만, 앨버니지 총리는 이 같은 비판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앨버니지 총리는 이번 사건을 “하누카 첫날, 기쁨과 신앙의 축제가 돼야 할 날에 호주 유대인들을 겨냥한 표적 공격”이라며 “호주의 심장을 찌른 순수한 악이자 반유대주의 테러”라고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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