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해도 너무한 한국마사회 비리 백태

  • 김민석 ideaed@ilyosisa.co.kr
  • 등록 2012.10.26 0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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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날 얘기해도 들은체 만체 '마이동풍'

[일요시사=김민석 기자] "청렴한 세상 만들기에 앞장서는 한국마사회입니다." 한국마사회 대표번호로 전화를 걸면 흘러나오는 멘트다. 하지만 마사회가 지금까지 보여준 행보는 '청렴'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사회를 '비리백화점'이라 부른다. 마사회는 올해 국감에서도 어김없이 '비리종합 선물세트'를 선보여 한바탕 곤욕을 치르게 생겼다.

"원수를 만나면 경마장으로 데리고 가라"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다. 누구라도 경마에 잘못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해 스스로 망가짐을 일컫는 말이다. 그만큼 경마는 카지노, 복권, 도박 등과 함께 사행성 짙고 중독성 강한 놀이 중 하나로 꼽힌다.

공기업 KRA 한국마사회에겐 청렴하고 투명하게 경마장을 경영해야 한다는 책임이 뒤따른다. 우리나라 경마산업을 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과욕으로 보인다. 마사회의 경마장 경영 실태를 살펴보면 방만한 경영을 넘어 비리와 특혜의 온상지가 되고만 느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사회는 국감 시즌만 되면 연례행사라도 되는 듯 지탄을 받고 있지만, 각종 비리와 특혜 의혹 정도는 줄지 않고 있다.

불법도박 고의방치
불법조장 부당편취

마사회는 올해 국정감사 역시 그냥 넘어가지 못했다. 지난 15일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농림수산식품위 국감에서 온갖 특혜와 비리가 적발돼 명실상부한 '비리백화점'임을 입증해버린 것이다.

무엇보다 매년 반복되는 비난세례에도 개선의 여지가 없는 것을 보면 마사회에게 특혜와 비리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부정을 묵인한 채 국감 및 감사 기간만 넘기려 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1인당 구매상한액인 10만원을 초과해 마권을 파는 부분에 대해 매년 지적을 받으면서도 제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오히려 농식품위 국정감사에서 배기운 민주통합당 의원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사감위)로부터 제출받은 '구매상한액 위반 등에 대한 점검결과' 자료에 따르면 경마장서 구매상한액 위반을 적발한 건수가 2009년 786건에서 2010년 3945건, 지난해 5261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었다.

구매상한제도는 경마를 보러온 일반인들의 과도한 구매를 막기 위해 한 번에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을 제한한 제도로 사행성을 줄여 건전한 경마문화를 안착하려는 취지로 도입됐다. 이에 2009년 8월부터 사감위 소속 현장조사관을 두고 이를 상시 지도·감독하도록 했다.

과거 무제한이었던 경마 배팅 금액은 1984년 이후 점점 줄어 현재는 1회 10만원 하루 최대 15회가 마권 구매상한액이다. 따라서 하루 동안 할 수 있는 배팅을 150만원으로 제한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구매상한액 위반 건수가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 더구나 마사회는 대부분 고객이 규정을 잘 지키고 있어서 특별한 어려움이 없다는 이유로 별도의 통계자료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윤리경영·청렴한 세상 말뿐…돈벌이에 혈안
매년 반복되는 비리적발, 개선 의지는 있나?

이를 두고 배 의원은 "구매상한제를 지키지 않으면 그만큼 마사회의 수익이 늘기 때문에 제재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며 "마사회가 도박 중독자를 양산한다는 비판을 듣지 않으려면 강력한 의지로 구매상한제를 철저히 지키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개선책 마련을 촉구했다.

마사회가 불법 온라인 마권 1387억원 어치를 팔아 이중 130억원 상당을 부당 편취했다는 폭로도 터져 나왔다.


김춘진 민주통합당 의원에 따르면 마사회는 온라인 마권 발매의 법적 근거가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지난 2008년 12월23일부터 이듬해 7월19일까지 약 8개월 동안 판매를 계속해 130억원의 수익금을 얻었었다고 한다.

온라인 발매란 마사회가 마권을 대리인 입력방식, 자동입력방식 음성안내시스템, 인터넷PC 및 모바일 휴대단말기로 소비자들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으로, 경마장 발매창구를 통하지 않고도 온라인상에서 전국 어디서나 마권을 살 수 있는 방식이다.

시민단체들이 이 제도의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자 사감위가 법제처에 법령해석을 의뢰, 법제처는 지난 2008년 12월17일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사감위는 농림수산식품부에 온라인 발매를 폐지토록 요청했고, 농림부는 12월23일 마사회에 통보했다.

마사회는 공문수령을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8개월간 계속 온라인 마권을 팔아 130억원의 이익을 챙겼던 것이다.

마권구매표 및 마권용지 납품과정도 석연치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업체 두 곳이 독점을 해왔는데, 이 업체들이 낙찰받는 과정에서 불공정한 행정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이 제출받은 마권구매표 및 마권용지 입찰 관련 문서에 따르면 마권구매표의 경우 지난 3년(2008~2010년)간 A업체가, 마권용지의 경우 지난 4년(2008~2011년)간 B업체가 독점을 해온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입찰심사결과를 보면 A업체는 2008년 6등, 2009년 5등, 2010년 6등으로, B업체는 2008년 3등, 2009년 3등 등 2011년까지 3등으로 심사결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마권 구매표 납품 사업을 수주한 것이다. 그동안 A업체가 그동안 거둬들인 마권구매표 사업 매출은 33억6700만원이고 B업체가 거둬들인 마권용지 사업 매출은 53억5998만원으로 확인됐다.

이를 두고 마사회는 "적격심사 및 제한입찰로서 납품 실적 등 업체에 대한 실사까지 한 후 사업권을 준 것으로 문제가 안 된다"고 맞섰다.

하지만 제한입찰 및 적격심사라 해도 객관적인 점수가 중하위권 업체에 매년 사업권을 준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도덕불감증 넘어
비리불감증 만연

이뿐만 아니다. 경마장용 모래를 구입하는 과정에서도 업체 간 입찰 담합 정황이 드러났다. '모래 구매 입찰 자료'에 따르면 부산경마장의 경우 상대 업체가 입찰 상한가를 넘는 가격을 적어내 특정 업체를 고의로 밀어준 사례가 최근 2년간 4차례 발생했다.

2011년 4월에는 A업체를 위해 B업체가 입찰 상한가 대비 102% 가격을 써내 탈락하고, 같은 해 9월에는 C업체를 위해 A와 D업체가 각각 105%와 109%의 가격을 적어내 탈락했다. 제주경마장의 모래 구매 입찰 과정에서는 두 업체가 5년간 돌아가면서 나눠 먹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마사회가 장외경마장(마권장외발매장) 설치를 추진하면서 부실사업자에 600억원이 넘는 거액을 선지급하는가 하면 매장 설치인가를 받지 못해도 토지를 매입해 준다는 비상식적 매매확약서를 써주는 등 무책임하고 방만한 경영으로 날릴 위기에 처한 돈이 1800억원 대에 달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황주홍 민주통합당 의원은 마사회에 대한 국감에서 "마사회가 서초, 마포, 용산, 순천장외경마장 개설을 무리하게 추진하면서 보증금이나 선지급금 등으로 지급한 뒤 회수하지 못하거나 건물·토지 등에 묶여있는 돈이 무려 1823억원에 달한다"며 회수대책을 추궁했다.

황 의원은 마사회가 미회수한 돈은 지난해 마사회 당기순익의 59%에 달하는 것으로 매매대금이나 보증금 등이 과다지급된 것도 문제지만 부동산 경기하락 등으로 토지를 매도한다고 해도 회수할 수 있는 돈이 많지 않을 것이며 기회비용 상실, 소송비용 등 2차 피해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시세보다 전세보증금과 건물평가액을 높게 계산한 순천(101억)과 용산(357억), 부실사업자에게 매매대금을 과다하게 선지급한 마포(669억), 장외매장 인허가를 받지 못해도 토지를 사겠다는 상식 밖의 매매확약서를 발급한 서초(696억) 등으로 이와 관련해 마사회 임직원 13명이 이미 징계됐다.

이를 두고 황 의원은 "공기업이 아닌 사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법 위반 여부를 떠나 경영진이 통째로 바뀔 중대 사안이지만, 경영진 어느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실무진에게만 책임을 지게 했다"며 "마사회가 문제가 된 자금 회수에 총력을 기울이는 한편 관련자들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의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 넘은 무책임 경영
총체적 부실로 이어져


한국마사회 임직원들의 도덕불감증이 극에 달했다는 지적도 반복됐다. 그 정도를 면밀히 살펴보면 이젠 도덕불감증을 넘어 비리불감증으로 발전한 듯하다. 올해 마사회 임직원들은 근무시간에 골프를 치는 것을 넘어 을지훈련 기간에도 골프를 치러 다닌 것으로 확인됐다.

마사회는 을지훈련 의무 수행기관으로 훈련 참가 직원 외 모든 직원이 을지훈련에 대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임직원들은 2009년 을지훈련 기간 중 7회, 2010년 5회, 2011년 7회, 2012년 5회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에 공직기강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려운 실정이다.
또 마사회는 마주 등 관계자에 대한 복지를 위해 10억여 원을 들여 총 3개의 골프 회원권을 구입했다고 밝혔지만, 회원권은 마사회 직원들이 대부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홍문표 새누리당 의원이 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국마사회는 라온컨트리클럽, 세인트포컨트리클럽, 에덴밸리컨트리클럽 등 3개 골프리조트의 회원권을 보유하고 있으며, 마사회 임직원들이 근무일에 이 세 곳의 골프장을 찾아 이용한 일수가 최근 3년간 814회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일까지 포함하더라도 4일에 3회 꼴로 골프를 치고 다닌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경마일인 금요일과 토요일 이용횟수도 26건이나 돼 근무지를 이탈해 골프를 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반면 올해 제주경마장이 소유한 골프 회원권 이용 실적을 살펴보면 임직원 외에 외부인의 사용실적은 단 한 차례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마사회 임직원들이 도덕 불감증은 오래전부터 계속됐다. 2007년부터 2009년까지 1급 시설처장부터 4급 과장을 포함한 총 9명이 용역회사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현금, 한우선물세트, 장뇌삼, 룸살롱 비용 등 총 32건에 걸쳐 727만원의 향응을 수수해 처벌을 받은 바 있고 2008년부터 2년간 마사회 임직원 18명이 카드사의 지원을 받아 모두 5차례에 걸쳐 5600만원에 상당하는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이 적발됐다.

부산경남경마공원에선 2009년 4월부터 2011년 3월 사이 마필행정센터 직원 2인이 공모하여 마필관리자 상해보험 가입금, 조교사회 대팻밥 보증금, 관리사 통근버스 비용 잔여금 등을 총 82회에 걸쳐 6676만원을 횡령해 온 것이 밝혀져 징계처분을 받았다.

또 부산경남경마공원 서비스팀에 근무하는 4급 직원은 2010년 5월10일부터 5월14일까지 서울 삼성동에서 진행된 외부교육에 왔다가 교육장소를 무단이탈하여 5일간 강원도 카지노에서 도박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총무팀의 직원이 2010년 4월부터 2011년 2월까지 향정신성 의약품 메스암페타민(속칭 필로폰)을 매수, 투약해 오다 적발되어 징계 처분을 받는 사건도 있었다.

마사회의 연도별 징계건수를 살펴보면 2009년 9건(11명), 2010년 6건(10명), 2011년 10건(13명)이 발생했고 올해 8월까지는 8명이 경마비위행위로 재판을 받고 있다.

을지훈련 중 골프치고 출장 중 카지노 가고
평균 연봉 8000만원 '신이 내린 직장' 답네 

이번 국감에서는 마사회가 규정을 어기고 임직원에게 사택을 제공한 것도 모자라 아파트 관리비에다 식비까지 지원해 온 것도 드러났다.

김우남 민주통합당 의원이 마사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마사회는 현재 안양에 위치한 천마아파트 3개 동을 임직원 337명에게 제공하고 있다. 문제는 입주 대상 관련 규정은 '무주택 세대주인 기혼자'로 제한돼 있지만, 마사회는 주택을 보유하고 있는 임직원 98명(29.1%)에게 사택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 것. 특히 이 가운데 26명은 아파트 등을 2채 이상 보유하고 있었고, 6명은 무려 4채나 있는데도 사택에 입주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함께 지난 2011년에는 지방경마자 등으로 전보된 직원 중 기혼자로서 부양가족이 없이 근무하거나 독신으로 입주한 직원에게 아파트 관리비 및 도시가스 요금 등 관리비 4750만원과 조·석식비 5659만원 등 1억원 넘는 예산을 사택 입주 자격에 미달되는 임직원들에게 지원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마사회는 사전에 통제해야 할 감사와 이사회 등의 내부통제시스템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총체적 부실을 안고 있는 것 아니냐는 국회 안팎의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감사원에 의해 2005년부터 경마 홍보와 저변을 확대하겠다며 무료 승마 회원 제도를 운영하면서 사회 고위계층에게만 혜택을 준 사실이 적발됐다.

감사원이 2010년 6월부터 7월까지 한국마사회에 대해 감사를 벌인 결과 한국마사회는 무료 승마회원제를 운영하면서 국회의원과 은행 고위 임원, 개인병원장, 건설업체 대표 등 사회 상위 특정 회원 16명만을 대상으로 폐쇄적으로 운영한 점이 드러난 것. 마사회는 무료 승마 회원제를 공평하고 투명하게 가급적 많은 사람이 골고루 이용할 수 있도록 회원을 모집해야 했는데 이를 어긴 것이다. 또한 홍보도 제대로 하지 않아 무료 승마제를 아는 일반인 마주는 거의 없었다.

특권층만 주는
'특혜 보따리'

감사원에 따르면 마사회는 비리와 특혜를 넘어 돈 잔치까지 벌이고 있었다. 감사원이 공개한 '한국 마사회 기관 운영감사' 자료를 보면 지난 2009년 경마관련 영화제작에 20억원을 지분투자 했다가 17억7200만원의 손실을 봤다. 당시 면밀한 타당성 조사 없이 제작자의 과거 영화 흥행기록만 믿고 투자액을 산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퇴직금을 부풀려 지급하고 과도한 피복비를 지급하는 등 방만한 운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올해 국감에서 경대수 새누리당 의원에 따르면 783명의 마사회 임직원 중 회장(2억2000만원), 1급(평균 1억2000만원), 2급(평균 1억600만원) 등 총 96명의 임직원이 지난해 1억원 이상의 연봉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마사회의 전체 평균 연봉은 8100만원 수준으로 고액연봉이다.

온갖 비리와 특혜가 만연한데 연봉까지 빵빵한 마사회, 괜히 '신이 내린 직장'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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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