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신종마약 백태

먹어도 안 걸리는 환각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마약 청정국’이라는 이름은 사라진 지 오래다. 검찰과 경찰,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서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지만 마약사범들은 오히려 새로운 마약을 개발해 법망을 피하려 하고 있다. 지난해 압수된 마약 중 신종마약의 비율은 지난 2017년 대비 10배가량 증가했다. 이에 신종마약을 마약류로 분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려 법망을 피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만명을 넘어선 마약사범의 수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게다가 먀약 유통도 더 교묘해지고 대담해졌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신종마약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국립과학수사원(이하 국과수)서 감정한 압수품 중 35%가 신종이다.

2만명
넘었다

행정안전부 소속인 국과수는 지난 25일 마약류 국내 확산 실태를 분석한 ‘마약류 감정백서 2024’를 발간했다.

국과수는 “세계적으로 사회관계망서비(SNS), 다크웹, 가상화폐, 국제 우편 및 특송 서비스, 도어-투 도어 택배 등으로 마약 유통망이 다변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마약류에 대한 접근성이 좋아지면서 마약류 관련 사건이 증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대마 합법화와 합성 대마 등 신종마약류의 유행이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으며, 연령대별로 마약 오·남용자가 꾸준히 증가하는 가운데 특히 10대와 20대서의 마약 오남용이 늘어나고 있다”며 최근 7년간 국과수 서울연구소에 의뢰된 압수품을 중심으로 최근 동향을 살폈다고 설명했다.


감정 백서에 따르면 국과수는 지난해 12만703건의 마약류를 감정했다. 이는 지난 2023년 대비 5.2%가 낮아진 수치다. 지난 2018년 4만3808건에서 2019년 6만3865건, 2021년 7만6528건, 2022년 8만9000건으로 매년 증가하다, 지난 2023년 12만7365건으로 역대 최다 감정 건수를 기록했다.

감정 건수가 소폭 줄어든 이유는 소변과 모발 감정 의뢰가 전년보다 각각 17%, 15% 감소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압수품 감정 의뢰는 5만406건으로 지난 2023년 대비 12% 늘었다.

국과수 관계자는 “지난해 한 해 동안 마약류 단속 대상이 마약류 남용자보다 유통책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의뢰된 압수품 중 검출된 마약류(3만669건)의 종류를 살펴보면 여전히 메트암페타민(1만3123건), 대마(2846건), 양귀비(2828건)와 같은 고전적인 마약류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했다.

그러나 메트암페타민이 전년 대비 10% 넘게 감소한 반면, 합성대마(5650건)와 반합성대마(882건)는 7.3%, 1.9% 증가해 전체적인 마약류 남용의 변화가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전자담배, 알약, 사탕…
새로운 종류 압수 10배↑

이들 마약류를 유형별로 분류한 결과, 여전히 분말(8044건) 형태의 유통이 가장 많았다. 이어 주사기(5161건), 식물(4594건) 등의 순이었다.


다만 주사기는 예년에 비해 많이 감소한 반면, 전자담배 유통 시 카트리지에 충전할 수 있는 액상(3320건) 형태가 크게 증가했다. 전자담배(2058건) 형태의 마약류도 적지 않은 수준이다.

최혜영 국과수 마약과장은 “주로 전자담배 및 액상 형태로 유통되는 합성대마류의 유행이 원인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신종마약의 경우 더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압수품서 검출된 신종마약은 34.9%로 역대 최대 비율이었다. 지난 2017년에는 3.4%에 불과했던 신종마약의 비율은 2020년까지 전년 대비 1.5%에서 4.8% 소량 증가하다가 지난 2021년 들어서 14.4% 대폭 증가한 26.2%를 기록했다.

지난 2022년과 2023년에는 2021년과 비슷한 비율의 신종마약이 검출됐다.

합성대마류가 15.2%로 가장 많았고, 케타민(10.1%), 엠디엠에이(4.2%), 반합성대마(3.0%), 코카인(1.6%) 등이 뒤를 이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국내서 관리하는 마약은 약 2000종이다. 게다가 매년 50개에서 100개가량이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다만 지난해 추가로 발견된 신종마약은 합성 대마를 포함해 100건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역대급 적발
심각한 상황

한 마약 사건 전문 변호사는 “마약 사건서 감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유·무죄를 가릴 중요한 단서”라며 “특히 합성 대마 같은 경우 종류가 너무 많아서 지금도 감정이 가능한 종류가 몇 가지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경찰과 검찰서 단순 투약자가 아닌 유통책 검거에 힘을 쓰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현재 발견되는 신종마약의 종류는 합성 대마 종류”라며 “대마와 다른 화학물을 합성하는 방식이라 대마의 성분 감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에 문제가 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마약”이라며 “이는 국과수의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마약 종류가 부족해서 마약으로 분류되지 않는 것이지만 기존 마약을 합성한 경우 감정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현재 국과수 데이터베이스로 감정할 수 있는 약 2000여가지”라며 “국과수가 감정하지 못한 마약 종류는 5년 동안 40여가지에 불과하다”고 부연했다.

실제로 국과수는 지난 2월 신종마약류 ‘2-플루오로-2-옥소-피시피알(2-fluoro-2-Oxo PCPr)’을 세계 최초로 검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 마약은 수사기관의 최초 검사에선 음성 반응이 나왔지만, 국과수 정밀 분석을 통해 마약류로 판정됐다.


피시피알은 일명 ‘천사의 가루’로 불리는 펜사이클리딘 계열 유사체다. 펜사이클리딘은 복용 시 환각, 고열, 탈수 등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나 사망에 이를 수 있다. 국내서 유행하는 케타민도 펜사이클리딘의 일종이다. 그동안 마약류 데이터베이스(DB)에 아예 등록도 안 돼있었기 때문에 마약사범 사이에선 “해도 걸리지 않는 마약”이라고 홍보됐다.

법망도
피한다

하지만 국과수서 피시피알을 마약류로 판정하면서 이를 유통·구매한 마약사범은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피시피알은 2022년 8월 용산서 현직 경찰관이 아파트서 추락사한 ‘집단 마약 모임’ 사건서 검출된 신종마약과 유사한 화학 구조를 지닌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추락해 숨진 경찰관의 몸에서는 ‘2-플루오로-2-옥소 피시이(PCE)’가 검출됐다. 이후 피시이는 자살충동 등 부작용이 심한 탓에 국내에선 드물게 적발되고 있다고 한다.

신종마약에 대한 감정이 가능하더라도 법적으로 처벌이 가능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마약에 마약, 향정신성의약품, 대마를 규정하고 있고, 마약류는 법에 따라서 규제 및 관리되고 있다. 따라서 마약류를 오용 또는 남용하면 법에 따라서 처벌받게 된다. 법에서 정하고 있는 마약류의 범위에 들어가는 물질의 종류가 일일이 있고, 법으로 규정하는 근거가 제시돼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메스암페타민, 코카인, LSD, 아편, 대마 등 총 384종의 마약류를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다고 관세청 홈페이지에 게시돼있다.

국과수서 감정이 가능한 마약류가 2000종이 넘는데 법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것은 단 384종인 것이다. 우리나라는 마약류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관리 중이다. 마약류 분류도 마찬가지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약처가 어떤 물질을 마약류로 분류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근거가 있어야 한다”며 “세포 실험, 조직실험, 동물실험에 의한 의존성, 독성, 작용, 기전 등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마약류로 분류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는 데 이 과정이 1년여가 걸린다”고 말했다.

국내 마약류 분류 384종
이외 시중 돌아도 무대책

이어 “신종마약은 계속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 해당 과정을 계속 진행하면 법망을 피한 마약이 계속 유통되고 투약될 가능성이 있어 식약처는 신종마약을 임시 마약류로 분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식약처는 마약류가 아닌 물질·약물·제제·제품 등(물질 등) 중 오용 또는 남용으로 인한 보건상의 위해가 우려되어 긴급히 마약류에 준해 취급·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물질 등을 임시 마약류로 정의하고 있다. 아직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물질 중에서 국내외의 오·남용 사례가 있고, 위해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경우 3년간 한시적으로 임시 마약류로 분류해 사용을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는 셈이다.

현재 98종의 물질이 임시 마약류로 지정돼있고, 기존의 임시 마약류 중 62종이 마약류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규제의 속도보다 변종 마약류의 생성이 더 빠른 상황이라 신종마약으로 법망을 피할 길은 계속 생겨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신종마약의 감정이 어렵지만 법적인 처벌은 받게 된다고 ‘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주의를 요한다.

한 서울중앙지방검찰 형사부 소속 검사는 “최근 신종마약과 관련된 마약사범들에게도 법적인 처벌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며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아 안전하다는 것은 마약사범들의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최근 법원에서는 마약류로 분류되지 않은 신종마약에 대해 항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하고 우선 처벌을 하고 있다”고도 말했다.

판별 위한
신규 연구

정부는 합성생물학 등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불법 유통이 늘고 있는 신종마약을 빠르게 검출하는 판별 시스템 개발에 나선다. 지난 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행정안전부는 '국민생활안전 긴급대응연구' 사업 추진을 위해 2025년 상반기에 신규 연구개발 과제 5건을 선정했다.

그중 신종마약과 관련해서는 불법 유통과 오·남용이 증가하고 있는 신종마약(벤조디아제핀 및 펜사이클리딘 계열 등)을 현장서 빠르고 정확하게 검출하기 위한 마약 판별 키트도 개발한다. 합성생물학 기반 간편 검출 시스템을 통해 단속과 수사의 효율을 높이고, 마약의 불법 유통과 오·남용 방지에 효과적으로 기여할 예정이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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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고립무원’ 여야 수장 동병상련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당내 강경파의 반발로 인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동병상련을 느낄 법한 두 사람은 여야 지도부 회동이라는 전략적 제휴에 가까운 선택으로 각자의 어려움을 풀고 정국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8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했다. 오찬은 약 1시간 동안 진행됐고,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30분 동안 비공개 영수회담을 진행했다. 유튜브 권력자?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여야의 수장이지만, 각자의 이유로 자신의 진영에선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두 사람의 회담은 이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정 대표는 지난달 26일 장 대표가 선출된 이후 줄곧 ‘무시’ 전술로 대응했다. 정 대표는 장 대표 선출 여부와 관계없이 국민의힘에 대해 정당해산심판 청구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강공 기조를 잇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영수 회담을 진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장 대표와 만난 것 자체가 고립무원에 처한 이 대통령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겪는 어려움은 여당인 민주당과의 관계로부터 시작된다. 이 대통령과 민주당의 관계에 대해선 “대통령 위에 방송인 김어준씨가 상왕으로 군림한다”는 설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이 대통령은 문재인 전 대통령 등 친문(친 문재인) 진영과 오랜 갈등 관계에 있었고 “민주당에서 세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김어준 상왕설’은 이젠 진보 성향 언론에서도 공공연하게 거론한다. <주간경향>은 지난 8일 ‘김어준 상왕설’을 다루면서 “김씨가 비판·견제가 어려운 신성불가침 영역이 됐다”는 민주당 내부 반응과 “김씨는 민주당의 고정 상수고, 당의 일부 기능이 김씨의 유튜브 채널로 이관됐다”는 일부 정치평론가 반응도 소개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은 지난 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면서 김씨를 강하게 비판했다. 다음 날엔 “저는 ‘유튜브 권력자’에게 머리를 조아리면서 정치할 생각은 없다”며 “이 방송에 출연하면 공천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조선일보>는 민주당 경선에서 손을 떼라’는 의견을 밝히셨다”고 강조했다. 곽 의원은 곧바로 반격을 받았다.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곽 의원을 일컬어 ‘부화뇌동 국회의원님’이라고 지칭하면서 “자존감을 좀 가지시라. 부끄럽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최 의원이 곧바로 반격한 것은 역설적으로 김씨와 이 대통령의 위상을 확인시켜 줬다. 이 대통령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5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 해체 ▲각종 외교 현안 ▲조국혁신당 성범죄 의혹 등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서 누르고 옆에서 치받고 이 대통령 앞에 수북한 난제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검찰개혁 관련 공세를 주도한다. 현재 진행 중인 3개의 특검(내란·김건희·채 상병)과 관련해 수사 기간·범위·인력 대폭 확대와 관련 재판 녹화 중계를 추진하는 특검법 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개정안은 이미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고, 국민의힘은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치 가처분을 신청했다. 검찰을 겨냥해선 “추석 전 검찰을 해체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과 공소청을 설치하겠다”는 방침을 유지하고 있다. 사법부를 겨냥해선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 내부에선 중수청의 소속 부처를 놓고 이미 갈등이 있었다. 친명(친 이재명)계 좌장으로 알려진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중수청을 행정안전부에 설치하면 민주적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면서 사실상 ‘법무부 설치’를 주장했다. 그러자 친민주당 진영은 정 장관에게 강하게 반발했다. 그동안 친민주당 성향을 강하게 드러냈던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은 지난달 29일 검찰개혁 공청회에서 “정 장관도 검찰에 장악돼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검찰개혁 후속 법안을 마련하는 정부 기구 구성과 관련해 정 대표와 대통령실 우상호 정무수석이 크게 언쟁을 했다”는 설까지 불거졌다. 장 대표는 이 대통령과 만났을 당시 공개 발언에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와 관련해 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했다. 장 대표가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명분은 ‘견제와 균형 붕괴’였다. 장 대표는 이어진 비공개 회동에서도 “오랫동안 되풀이된 정치 보복 수사를 끊어낼 수 있는 적임자는 이 대통령”이라면서 특검 연장·특별재판부 설치에 강한 우려와 유감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장 대표에게 뚜렷한 답변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의 반응을 놓고 “이 대통령이 제어하지 못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정 장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중수청 소속 부처도 행정안전부로 결정됐다. 이에 대해서도 “이 대통령이 당의 의사를 이겨내지 못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4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현대차·LG 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의 한국인 노동자 300여명 구금 사태도 이 대통령에게 비판의 화살이 집중되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현지 시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했다. 그로부터 불과 10일 후 발생한 사태였다. 안팎 모두 꼬인 실타래 한미 양국은 정상회담 후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를 조성하기로 합의했고,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관세율은 15%로 확정했다. 일본은 550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하기로 한 후 15% 관세율을 받아냈다. 그런데 일본의 관세율 15%가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내려지면서 명문화된 것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서를 받아내지 못했다. 미국 정부는 “3500억달러 투자처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300여명이 구금된 구체적인 이유는 이들이 최대 90일 동안 단기 체류만 할 수 있는 무비자 전자여행허가 제도를 통해 입국해 근무한 것이었다. 단기 체류 비자로 입국해 근무한 이상 불법체류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까지 진행한 이 대통령에겐 “미국을 왕래하는 국민의 비자 문제에조차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냐”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커진다. 일본과의 외교도 난항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진행한 후 17년 만에 공동언론발표문을 채택했다. 정상회담도 그만큼 훈훈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하지만 낮은 지지율과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의 지난 7월 참의원 선거 패배로 인해 사퇴 압력에 시달리던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결국 사퇴를 선언했다. 후임 총리 후보로는 자민당 다카아치 사나에 의원과 고이즈미 신지로 농림수산상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농림수산상은 자민당 내에서 파벌 색이 짙지 않아 비교적 온건한 정치 성향을 지닌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다카이치 의원은 강경한 우익 포퓰리스트였던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알려졌다. 다카이치 의원은 ▲야스쿠니 신사 참배 ▲헌법 개정 ▲재무장 추진 ▲아베노믹스 계승 등 아베 전 총리와 거의 비슷한 정치색을 드러냈다. 지난 1994년엔 <히틀러 선거전략>이란 책의 추천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책엔 “단기간에 여론을 모아 권력을 빼앗았다”거나 “긴급조치로 적을 섬멸했다”는 등의 독일 나치의 선거전략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설득할 수 없는 유권자는 말살한다”는 등 작전을 일본 정치인의 선거 승리 전략으로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에게 호의적인 국내 여론을 조성하기 위해 고의로 신사 참배를 했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민주당 소속임에도 강경한 우익 성향으로 유명했던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와 갈등하면서 지난 2012년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하는 강수를 뒀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재임 중 아베 전 총리와 상당한 갈등을 빚으면서 대중국 외교에 공들였다. 다카이치 의원이 후임 총리가 되면, 이 대통령도 전임 대통령들처럼 상당한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 나비효과 게다가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3일 중국 전승절 80주년 경축 행사에 참석한 것으로 보수 성향 유권자들에게 큰 비판을 듣고 있다. 우 의장은 행사에 함께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짧게 인사를 나눴다. 반면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김 위원장을 2번이나 불렀음에도 아무 반응을 얻지 못해, 이 역시 보수 성향 유권자들로부터 큰 비판을 받고 있다. 이 대통령은 대통령 취임 이후 친서방 외교에 유화적인 방향으로 선회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의 전통적 방향과 충돌하는 상황으로 해석되고 있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내부에서 불거진 성추행·성희롱 사건도 이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혁신당은 조국 비상대책위원장 등 친문 핵심 일부가 창당했다. 이 사건은 혁신당 강미정 전 대변인이 탈당하면서 폭로해 외부에 알려졌다. 가해자로 지목된 김보협 수석대변인은 문 전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우석 전 사무부총장은 조 비대위원장이 민정수석이었을 당시 민정수석실 행정관을 지냈다. 조 비대위원장은 그동안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이 여파는 민주당과 이 대통령에게 번지고 있다. 기성세대 남성의 위선과 운동권 특유의 성 문화 논쟁으로 확대되면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범죄 사건까지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으로선 친문계와 빚고 있는 광범위하면서도 조직적인 엇박자가 국정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그 뒷감당까지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장 대표도 이 대통령 못지않은 고립무원 상황에 직면했다. 시작은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로부터도 신임받았던 김도읍 의원을 지난 1일 정책위의장으로 임명한 것이었다. 그러자 “장 대표 당선에 큰 공을 세웠다”고 자부하던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이 크게 반발했다. 특히 고성국 ‘고성국TV’ 대표는 지난 2일 “내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려면, 국민의힘이 지자체장 30석을 자유통일당 등 자유 우파 정당 4개에 양보하면 된다”고 요구했다. 강경 보수 공세 친한 숙청 시동 민주당의 각종 입법 공세 방어 등 대여 공세 수단도 마땅치 않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노란봉투법 통과를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동원했지만, 큰 의미를 두기 어려웠다. 노란봉투법은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 종료 직후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힘이 할 수 있는 일은 본회의 불참밖에 없었다. 3개의 특검은 이미 국민의힘을 사정권에 두고 있다. 현실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은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외 집회밖에 없다. 장 대표는 강경한 대여 공세를 약속하면서 당 대표에 당선됐지만, 강경한 대여 공세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수단은 처음부터 없었다. 따라서 여야 지도부 회동은 장 대표에겐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기회였다. 최소한 “이 대통령에게 우리의 요구를 가감 없이 전달했다”고 자부할 만한 명분이 마련된 것이었다. 내부 사정도 녹록하진 않다. 장 대표에겐 지난해 12월 결별한 친한계(친 한동훈)와의 내부 투쟁도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다만 장 대표가 당선된 것 자체가 이미 친한계엔 큰 타격이었다. 아울러 친한계엔 ▲김종혁 전 최고위원 ▲신지호 전 사무부총장 ▲윤희석 전 대변인 ▲송영훈 전 대변인 등 국민의힘을 대표해 각종 시사프로그램 패널로 출연하는 인사들이 다수 소속돼있었다. 이들은 대체로 친한계의 이해관계를 각종 방송에서 대변했다. 장 대표는 지난 7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서 “방송에서 당의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적으로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장 대표의 방침은 “국민의힘 몫 토론자로 출연해 친한계를 대변하는 인사들을 방송에서 솎아내려는 것”이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이처럼 장 대표는 당내에서 양면 전선을 펼쳐놨기 때문에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하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로선 여야 지도부 회동이 동병상련에 가까운 전략적 제휴였을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도 국민의힘의 의견을 모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도 뚜렷한 확답만 하지 않았을 뿐, 대통령 당선 이전 강성 이미지를 중화하려는 듯 유화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불화를 이용하려고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장 대표도 내부 반발이 있고, 강도 높은 내부 투쟁을 진행해야 해서 제 코가 석 자”라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 대통령과 장 대표는 그동안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중도를 지향하고자 강경파와 투쟁해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당분간 이들이 전략적 제휴를 맺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과 장 대표의 회담 분위기를 무색하게 하듯이 다음 날인 지난 9일 진행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란 청산은 정치 보복이 아니”라며 “국민의힘이 내란 세력과 단절하지 못하면, 위헌정당 해산심판 대상이 될지도 모르니 명심하라”고 경고했다. 수북한 현안들 ‘내란’은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을 공격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일반 명사가 됐다. 정 대표는 대표적인 당내 강경파로서, 국민의힘에 대한 강경한 태도가 정치적 상징이 된 지 오래다. 이 대통령과 장 대표가 마주 보고 성과를 낼수록 정 대표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 대표의 제동은 “고립무원에 처한 여야 수장이 서로에게 동병상련을 느껴도 큰 의미가 없을 것”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바퀴들이 삐걱대는 사이 현안은 더욱 수북이 쌓이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