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금 먹는’ 수상한 금은방 실체

돈·귀금속 받고 ‘배째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동네 금은방이 동네 사람들을 피 말리게 하고 있다. 큰돈을 투자해 귀금속을 사려고 해도 금을 팔아도 적게는 몇 주, 길게는 몇 달 동안 시간을 끌었다. 가게를 찾아가도, 전화를 해봐도 회피하던 금은방 주인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나서야 피해자들의 피해 회복에 나섰다.

경기도 안성시에 위치한 한 금은방이 수년간 손님들을 기망했다. 금을 파는 손님에게는 ‘은행 거래가 갑자기 안된다’고 변명하고, 반지 등 귀금속 주문을 받았을 때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시간을 끌었다.

결혼 반지
맞추려다…

국제 금 가격이 사상 최고치에 근접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골드뱅킹을 판매하는 KB국민, 신한, 우리은행 등 시중은행 3곳의 골드뱅킹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조102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1년 전인 지난해 4월 말 잔액 6101억원 대비 4924억원(80.7%) 급증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금값이 오르자 금은방을 상대로 한 범죄도 계속 일어나고 있다. 지난달 9일에는 경기도 안산서 금은방을 턴 뒤 전국 각지로 도주했던 30대 남성이 4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A씨는 지난달 5일 오전 11시께 안산시 상록구의 한 금은방서 진열돼있는 금 목걸이 한 개를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범행 후 현장을 이탈했고, 이를 안 금은방 주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A씨의 주거지가 명확하지 않고, 휴대전화가 없다는 점 등을 고려해 3인 3개조로 나눠 A씨를 추적했다.


1개조는 지역 관제탑을 통한 폐쇄회로(CCTV) 확인, 1개조는 사설 CCTV 확인, 나머지 1개조는 주변을 탐문했다. 탐문 결과 A씨의 도주 경로는 수원, 창원, 울산이었으며 도주 과정서 현금만 사용하고 택시를 12번 탄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A씨의 도주 경로를 파악하던 중 지난 8일 오후 1시40분께 울산의 한 해수욕장 주변서 발견해 검거했다.

지난달 3일 부산 동래구에서는 20대 남성 1명과 30대 남성 1명이 한 금은방서 360만원 상당의 금팔찌를 훔쳐 달아났다가 열흘 만에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금은방을 노린 범죄도 있지만 금은방이 손님을 기망하고 금 매입 금액을 늦게 주거나 손님이 주문한 금붙이를 늦게 돌려준 사례도 있다.

<일요시사>는 경기도 안성시 진사리 소재의 금은방 정O당에 결혼반지 디자인을 맡겼다가 4개월이 지나서야 물품을 받았다는 한 피해자를 만났다. 피해자 B씨는 결혼반지에 많은 돈이 들어가는 것이 부담돼 갖고 있던 금을 녹여 맞추기로 했다.

B씨는 동네 금은방을 돌아보다 정O당이 가장 싼 가격에 맞출 수 있어 바로 계약했다. 계약 당시 B씨는 정O당 사장 C씨에게 “1주일 후에 찾으러 오시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약속한 날에 찾아갔지만, C씨가 “아직 제품이 준비되지 않았다”며 “2주서 3주가 소요될 것 같다”고 말했다고 한다.

B씨는 당시 C씨의 말을 듣고 ‘갖고 있던 금붙이들을 녹인 후 원하는 디자인으로 작업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O당은 약속한 날마다 같은 핑계를 대며 B씨에게 결혼반지를 주지 않았다.


결국 B씨는 4달이 지나서야 맡겨뒀던 결혼반지를 받을 수 있었다. 그는 결혼반지를 받는 과정서 공황장애를 얻었다고 한다.

비싸게 매입· 싸게 판매에 홀려
거래 뒤 차일피일 나몰라 미루기

피해자는 B씨뿐만이 아니였다. 진사리 주민들에게 정O당에 대해 물어보면 “원래 그런 곳인줄 몰랐냐” “많고 많은 금은방 중에 왜 정O당을 갔냐” “정O당이 그런 짓하는 거 모르는 동네 사람은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주민 D씨는 지난해 6월24일 금 35돈을 정O당에 팔았다. 그는 C씨와 원래부터 친분이 있었고, 그를 믿고 거래했다고 한다. D씨는 금을 1360만원에 팔았지만, C씨는 돈이 없다며 대금을 주지 않다가 D씨의 독촉에 주마다 400만원씩 금 대금을 갚았다.

D씨는 <일요시사>와 만나 “종종 가게에 들러 먹을 것을 전달해주는 등 (C씨와) 꽤나 가까운 사이였다”며 “잘 알던 사이고 급하게 돈이 필요해 귀금속을 팔았는데 이렇게 늦게 판매 대금을 받을 줄 알았다면 차라리 시간을 내 종로 등 유명한 금은방에 판매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씨는 쌍가락지가 작아서 정O당에 맡겼다. 이후 C씨와 약속한 날에 가게를 찾아가도 “서울로 물건을 보냈는데 아직 받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E씨는 반지를 찾기 위해 이후 가게를 5번이나 더 방문하고서야 반지를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반지 1개는 늘려놨지만 남은 1개는 손도 대지 않고 그대로인 상태였다.

다른 주민은 4돈 팔찌를 주문했다가 3달이 지나서야 받을 수 있었고, 또 급한 돈이 필요해 아기 돌반지 등 1280만가량의 금붙이를 팔았던 주민도 3달이 지나서야 그 돈을 받았다.

C씨의 핑계는 여러 가지였다. “서울로 판매한 물건을 보내 재측정 중이다” “디자이너가 바빠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금 돈이 없어서 내일(3일 뒤에) 오면 돈을 주겠다” 등이었다. 게다가 C씨는 가게로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도 않고 심지어 가게를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닫기도 했다.

“아직 미완성”
시간 끌기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주변 금은방보다 정O당이 금 매입은 더 비싸게, 귀금속을 사는 건 더 싸게 해준다는 말에 혹해 거래를 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피해담은 인터넷 커뮤니티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인터넷 검색창에 ‘진사리 정O당’을 검색하면 피해를 봤다는 글이 바로 검색된다.

이 같은 C씨의 행보에 몇몇 금은방 사장들은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종로구 예지동 귀금속 거리서 상가를 운영하고 있는 김모씨는 “귀금속 거래는 신뢰를 바탕으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며 “약속된 날짜에 약속된 중량과 함량의 제품을 팔고 귀금속을 매입할 때는 바로 계좌이체나 현찰을 주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가게를 운영하기 힘든데 C씨가 수년간 손님들을 기망하고 있는데 동네서 버젓이 가게를 운영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반응했다.

피해자들은 C씨의 이런 행보에 여러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동네에 어르신들이 많이 사신다”며 “어르신이 자녀들 몰래 금을 팔았는데 갑자기 돌아가시면 C씨는 금 판매 대금을 줄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금값이 계속 올라가고 있는 상황이라 낮은 가격일 때 금을 매입하고 높은 가격일 때 매도한다면 금 거래 시 나오는 부과세 10%에 추가 이익을 노리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금은방을 운영 중인 점주 중 일부는 현재 금은방을 운영하는 게 오히려 빚이라 C씨 역시 사정이 나빠 대금을 제때 못 줬다고 봤다.

서울 종로구 예지동 귀금속 거리서 40년째 귀금속 상가를 운영하는 박모씨는 “IMF(국제통화기금) 위기 이후 이렇게 장사가 안 되는 것은 처음”이라며 “작년 대비 매출이 30~50% 감소한 상황이라 섣불리 금을 매입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고 말했다.


철면 행보
여러 의혹

C씨는 이런 기망 행위로 수십차례 경찰에 신고됐다. 피해자들은 C씨가 차일피일 계속 약속 시간을 미루자 가게로 찾아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말해도 “신고해봐라. 아무런 죄가 없는데 경찰이 나서겠냐”라며 C씨가 배짱을 부렸고, C씨의 이런 행동에 화가 난 피해자들은 결국 경찰에 신고했다.

이때 C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사기 혐의다. 사기죄는 형법 제347조에 규정돼있으며 위반 시 10년 이하의 징역형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C씨는 경찰에 신고한 피해자들이 고발인 조사를 받고 C씨가 고소인 조사를 받은 후 바로 남은 금액을 이체받거나 요청했던 귀금속을 받았다고 한다. 수십차례 신고됐지만 C씨가 처벌받지 않은 이유다.

C씨에 대한 신고를 가장 많이 접수한 안성경찰서 관계자는 “사기죄는 피해자를 속일 의도가 있었는지 없었는지가 가장 큰 범죄 성립 요건”이라며 “C씨의 행위가 의도적인 기망행위였다는 것을 밝히기 어려웠고, 바로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해 검찰 송치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C씨에 관한 신고를 접수한 평택경찰서는 진사리와 그 주변 주민들에게 주의를 요하기도 했다. 평택경찰서 관계자는 “지난해 평택서 30년간 금은방을 운영한 사람도 금 투자라며 사람들에게 사기를 친 사례가 있다”며 “이번 사건은 이미 주민들이 해당 가게에 대해 신뢰를 하고 있지 않아 빠르게 신고가 접수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발생한 사고도 다른 금은방보다 싸게 골드바를 판다며 피해자를 모은 후 잠적하는 방식으로 범죄가 일어났다”며 “정O당은 대대적으로 홍보하지 않아 피해 금액이 크지 않지만 비슷한 양상으로 보이니 주의가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수십 번 신고에도 ‘배짱 장사’
“금 투자 사기와 비슷 주의 요망”

앞서 지난해 11월에 평택시 서정동에 있는 30년 된 금은방서 거액의 금 투자 사기가 발생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금을 싼 가격에 제공한다며 20여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받아 챙긴 금은방 주인 F씨가 구속됐다.

F씨는 오랜 시간 해당 지역서 금은방을 운영하며 쌓아온 신뢰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에게 금 1돈을 20~30만원에 판매하겠다고 홍보했다. 초기에는 소액의 수익금을 꼬박꼬박 챙겨줬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만 투자받는다며 선입금을 유도해 점차적으로 범행을 확대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일당은 피해자들에게 “일본 국보급 도검을 보유하고 있어 곧 500억원이 들어올 것이니 원금과 이자를 모두 갚아주겠다”며 도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피해자들이 고소할 경우 투자금을 돌려주지 않겠다고 위협해 추가 고소를 막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투자 영수증과 계약서를 보관하고 있으며, 일부는 이미 고소를 진행 중이나 ‘고소했다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라는 불안감에 고소를 망설이는 다수의 피해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0월에도 인천 연수구서 저렴한 가격에 금을 판매하겠다고 속여 수십억원을 가로챈 금은방 대표가 경찰에 붙잡혔다. G씨는 피해자 10여명에게 금을 시세보다 10~20% 저렴하게 판매하겠다고 접근해 10억원대 현금을 받고 이를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 ‘골드바를 한 돈에 30만원에 판매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피해자들을 끌어 모은 뒤 돈이 입금되면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피해자들에게는 한 달에서 6주 뒤 골드바를 발송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실제로는 이를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금액은 최소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모두 최소 징역 8년 이상을 선고받았다. 만약 C씨가 피해자 피해 회복을 하지 않았다면 C씨 역시 징역형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통상 징역
3~5년 가능”

한 서초동 형사전문 변호사는 “C씨가 늦게 나마 피해자들의 피해를 복구한 것이 맞지만 피해자들을 속일 의도가 없었다고 보기 힘들다”며 “앞서 형사 처벌을 받은 사람들은 법원서 사기 금 구매를 유도한 것이 의도성이 있다고 판단했고 C씨의 경우 마땅한 자금이 없는데 금을 더 비싸게 산다며 피해자들을 기망한 행위가 의도성이 있다고 판단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C씨가 재판에 기소됐다면 피해 금액이 크지 않지만 3~5년 사이의 징역형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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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