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민주당 사건’ 집중 내막

‘더 노골적으로’ 다시 문 여는 검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국면이 진행될수록 검찰이 더욱 정치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헌법재판소서 탄핵 심판이 계속 진행될 때에는 정치 사건 관련 수사를 중단하면서 눈치를 봤지만 점차 야권에 대한 수사에 힘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정권교체를 생각하지 않고, 윤 대통령의 탄핵 기각에 투자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문재인 전 대통령을 겨냥한 수사에 다시 집중하고 있다. 당초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상직 전 의원과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인 서모씨, 그리고 문 전 대통령을 대상으로 수사 중이던 타이이스타젯 부정취업 사건서 문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딸 다혜씨를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외에도 검찰은 야권 관계자가 연루된 사건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야권 관계자
의혹들 캔다

앞서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이하 서민위)는 지난해 11월5일 다혜씨를 뇌물수수죄 공범과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했다.

서민위는 “다혜씨의 전남편 서모씨가 항공업계서 일한 경험이 없는 상황서 이상직 전 의원이 실소유주인 타이이스타젯 전무로 채용됐다”며 “뇌물성 급여의 직접 수혜자인 서모씨뿐만 아니라 다혜씨 역시 수혜자로 볼 때 뇌물수수죄의 공범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문 전 대통령 자서전 <운명>의 출간 과정서 출판사 측이 2억5000만원을 다혜씨에게 입금했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전형적인 거래를 가장한 부녀간 증여세 포탈 수법이라고 강조했다.

당초 이 사건은 2020~2021년 국민의힘 등이 관련 의혹을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수년간 지지부진하던 수사는 지난 2023년 9월 ‘친윤계’(친 윤석열)로 분류되는 이창수 당시 전주지검장(현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임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민주당은 ‘보복수사’로 규정하고 검찰의 전 정권 죽이기라고 비판했다.

검찰은 태국 저가 항공사 타이이스타젯 실소유주인 이 전 의원이 지난 2018년 3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으로 임명된 후 4개월 뒤 항공업 경력이 전무한 문씨의 전 남편 서씨가 타이이스타젯 전무이사로 채용된 것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 중이다.

서씨는 타이이스타젯서 약 2년간 매달 급여 800만원과 주거비 350만원 등을 받으며 문씨, 아들과 태국에 거주했다. 검찰은 문씨 가족이 받은 각종 혜택을 사업가이자 전직 국회의원인 이 전 의원이 향후 자신의 사업 또는 정치적 이득을 노리고 문 전 대통령에게 건넨 뇌물로 보고 있다.

전주지검은 문 전 대통령을 뇌물수수 혐의로, 이 전 의원을 뇌물공여 혐의로 각각 입건하고 문재인정부 당시 청와대 주요 인사들을 줄소환했다. 또 문 전 대통령 부부의 금융계좌를 압수수색하고 자금거래 흐름을 분석했다. 지난해 8월에는 다혜씨의 주거지도 압수수색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해 이 전 의원의 서씨 채용과 태국 이주 지원 전후에 문 전 대통령 내외와 다혜씨 부부의 경제적 의존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세 차례에 걸쳐 다혜씨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출석을 요구했으나 불발됐다.

당시 다혜씨 측은 “형사소송법상 참고인 조사는 출석 의무가 없으니 출석을 대체할 다른 방법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문씨 부녀 피의자 입건
1월 중단 후 재수사 시작

이에 검찰은 ▲주거지 인근 검찰청 출석 조사 ▲제3의 장소 방문 조사 ▲전화 녹음 등 유선 조사 등 3가지 방식을 제안했지만, 이마저도 다혜씨 측이 서면조사를 원하면서 무산됐다.

검찰 관계자는 “뇌물수수 혐의 사건서 이득 수취·취득자 조사 없이 사건을 처분할 수 없어 (다혜씨) 대면 조사가 필요했다”며 “압수물 등 다른 객관적 자료를 통해 실체적 진실관계를 규명할 계획”이라고 사실상 다혜씨에 관한 조사는 무산된 것으로 보였다.

당시 검찰은 김정숙 여사에 관한 참고인 조사도 추진했었다. 검찰은 김 여사 측에 참고인 조사를 받을 것을 요청하면서 조사 시기·장소·방법 등은 김 여사 측이 원하는 대로 맞추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검찰 내부에선 “문 전 대통령 조사 전에 김 여사를 참고인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하지만 김 여사 측이 “참고인 신분이라 출석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을 전하면서 조사가 무산됐다. 이후 검찰은 피의자 신분으로 강제수사가 가능한 문 전 대통령을 불러 조사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다혜씨가 참고인이 아닌 피의자로 입건되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전주지방검찰청은 지난 25일 시민단체의 다혜씨 뇌물수수 혐의 관련 고발 사건을 경찰로부터 이송받았다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해 시민단체가 서울 종로경찰서에 다혜씨의 뇌물수수 혐의 고발장을 제출했는데 지난달 말에 이 사건을 이송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까지 구체적인 수사 방식은 정해진 바 없다”며 “서씨를 뇌물수수 혐의 피의자로 입건할 수 있는지 법리 검토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의 조사 여부에 대해선 “조사를 위해서 다각도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더 이상 구체적인 말씀은 드리기 힘들다”며 말을 아꼈다.

다만 김정숙 여사까지 피의자로 입건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전 사위
부정채용

검찰은 전 정권에 대한 표적수사 논란을 의식한 듯 “단순히 수사가 지지부진한 상태서 고발장 접수를 계기로 피의자 전환이 들어간 것은 아니다”라며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는 계속 진행하고 있었다”고 강조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다혜씨에 대한 대면 조사가 가능해지면서 수사에 속도를 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수사팀 한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과 민주당 이재명 대표 형사재판 등을 통해 사법절차에 대한 불공정 논란이 증폭된 가운데, 문 전 대통령과 다혜씨를 소환조사할 명분이 생긴 만큼 속도를 내서 수사를 마무리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벗을 기회”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면서도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조차 진행하지 않았다. 조 전 수석은 2017년 12월, 이 전 의원이 ‘대통령비서실 인사추천위원회 간담회’서 중진공 이사장으로 내정되자, 관련 부처 공무원들에게 이 전 의원이 최종 임명되도록 사전 지원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그러다 수사 막바지에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만 남겨둔 상황서 윤 대통령의 탄핵 국면에 들어서자 전주지검은 지난 1월 “문 전 대통령 사건과 관련해 물밑에선 확인하는 게 몇 개 있다”면서도 “현재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소환이나 조사 여부는 홀딩(일시 중단)시킨 상태”라고 밝혀 ‘정치 수사’라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의 전 사위 타이이스타젯 부정취업 사건 외에도 검찰이 야당과 관련된 사건 수사에 집중할 것으로 예측된다.

검찰이 수사 중인 중요 정치 사건은 ‘성주 사드 기지 군사비밀 누설 사건’, 이 대표가 연루된 ‘정자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428억원 약정 의혹’ 등이다.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3부(김태훈 부장검사)는 성주 사드 기지 군사비밀 누설 사건을 수사 중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 2월9일 사드 기지 반대 집회가 열렸던 시민단체 천막과 서주석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의 주거지 등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증거물 등을 디지털포렌식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재명
타깃으로?

이 사건은 지난해 10월 감사원이 검찰에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서 전 1차장, 정경두 전 국방부 장관, 민주당 이기헌 의원(당시 청와대 시민참여비서관) 등을 수사 의뢰한 사건이다.

감사원은 이들이 2017년 성주군에 임시 배치된 사드의 정식 배치를 지연시키기 위해 ‘환경영향평가’를 거치도록 하고, 한미군사작전을 중국 측과 시민단체에 유출했다고 봤다.

수원지검 성남지청(부장검사 강성기)은 지난 2023년 2월 서울중앙지검으로부터 이 대표의 정자동 특혜 개발 의혹 사건을 이첩받고 수사 중이다.

이 대표가 성남시장 시절 한 시행사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시유지에 관광호텔을 지으면서 성남시로부터 용도변경, 대부료 감면 등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게 의혹의 골자다.

검찰은 이 대표가 성남시장이던 2015년 정자동 호텔 시행사에 특혜를 줬는지 여부 등을 살펴보고 있다. 2023년 6월엔 호텔 건립을 추진한 시행사와 성남시청 등을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본격 착수했던 바 있다.

수원지검 형사6부(부장검사 서현욱)는 이 대표의 ‘쪼개기 후원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2023년 8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불법 대북 송금 혐의 재판서 “2021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 전 부지사 부탁으로 이재명 캠프에 1억5000만원 정도를 쪼개기 (방식으로) 후원했다”고 증언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김 전 회장에게 요청해 불법 정치자금을 이 대표 측에 기부하게 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로 이 전 부지사를 지난달 25일 6번째로 추가 기소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이준동)는 대장동 특혜 의혹서 비롯된 이 대표의 ‘428억원 약정설’도 수사 중이다. ‘428억 약정’ 의혹은 이 대표 측이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특혜를 제공한 대가로 천화동인 1호 지분 428억원을 받기로 했다는 의혹이다.

앞서 검찰은 2023년 3월 대장동 의혹을 받는 이 대표를 배임 등 혐의로 기소했으나, 해당 의혹은 함께 기소하지 못했다. 당시 측근인 민주당 정진상 전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등은 이를 강하게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드기지·이 대표 사건도 다시
“검 개혁 두려움에 수사력 몰빵”

다만 검찰은 이 대표 공소장 속 전제 사실에 이 대표가 428억원 약정 내용을 정 전 정무조정실장으로부터 보고 받았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중앙지검 반부패수사3부(부장검사 이승학)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관련 재판 거래 의혹도 수사 중이다. 재판거래 의혹은 권순일 전 대법관이 재직 중이던 2020년 7월, 이 전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때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단 의혹이다.

이후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이 불거진 뒤 김만배씨가 이 대표의 대법원 선고 전후로 여러 차례 권 전 대법관 사무실을 방문했던 사실이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이 퇴임 후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을 맡아 매달 1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사실도 알려졌다.

권 전 대법관이 해당 판결의 대가로 화천대유 고문으로 영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고발로 이어졌다.

검찰은 지난해 3월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권 전 대법관 변호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며 “재판 거래 의혹은 이번 압수수색 영장 기재 내용과는 다르지만 그 부분까지 포함해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하기 위한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다시 전 정권 및 야당 관계자에 대한 수사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윤 대통령의 탄핵 기각을 확신한 게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노무현 대통령 당시부터 검찰개혁(검찰 수사권 조정)의 위험을 겪어왔다”며 “하지만 이를 이겨낸 것은 검찰로서 수사력을 증명한 것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문재인정부 들어서 축소된 수사권이 윤석열정부서 다시 어느 정도 복원된 것을 지켜본 검찰은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검찰이 와해될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어 야권에 대한 수사를 강하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한 검찰 내부 관계자도 “윤 대통령의 구속이 취소되기 전까지 거의 모든 정치 사건에 대한 수사가 중지됐었다”며 “구속 취소에 대해 즉시항고하지 않아 야권이 검찰총장을 고발하면서 내부 분위기는 ‘상황을 지켜보자’에서 ‘이미 많은 수사를 진행한 정치 사건을 먼저 마무리해 야권의 검찰 공격에 대해 방어하자’는 쪽으로 변화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이 항소심서 무죄가 나오면서 이 대표가 추후 대통령이 될 경우 검찰개혁에 속도를 낼 것이라는 생각도 야권 관계자가 연루된 정치 사건에 더욱 집중하게 된 이유”라고 설명했다.

정적 죽이기?
피의자 불만?

이 대표는 윤정부 출범 후 검찰의 자신에 대한 수사에 대해 강력 반발하며 “정치 검찰” “정적 죽이기”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 같은 반발은 민주당 지지층 사이에선 공감대가 형성됐지만, 지지층이 아닌 다른 유권자들에겐 ‘피의자(피고인)의 불만’ 정도로 인식돼오고 있다. 위증교사 1심에 이어, 선거법 2심서도 법원이 검찰의 공소 사실 일체를 부인하며 무죄를 선고함에 따라 이 대표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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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