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도 푸릇하게 ②국립생태원 & 장항송림산림욕장

계절을 거스르는 초록빛 여행

짙푸른 열대 우림 속을 걷다 어느 순간 메마른 사막에 도달한다. 그러다 어느새 올리브나무와 허브 식물 가득한 지중해에 이르더니 제주 곶자왈을 지나 결국 펭귄이 사는 극지에 도착한다. 반나절 만에 지구상의 여러 기후대를 모두 경험하는 거짓말 같은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곳, 바로 국립생태원이다.

생물 다양성의 보고 서천에 자리한 국립생태원은 생태계 보전을 위한 연구 및 조사, 교육, 전시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됐다. 우리나라와 세계의 주요 생태계를 생생하게 구현해 다양한 체험과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데, 대표 시설로 에코리움이 있다.

핵심 전시 5대기후관

에코리움 핵심 전시는 5대기후관으로, 열대관, 사막관, 지중해관, 온대관, 극지관으로 이뤄진다. 5대기후관 탐방은 일반적으로 1층 열대관서 시작한다. 약 3000㎡ 규모의 온실에 꾸민 열대관에 들어서자마자 머나먼 이국땅으로 순간 이동한 기분이다. 눈에는 초록빛이, 몸에는 따뜻함이 감돌며 입고 온 두꺼운 외투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아시아와 중남미, 아프리카 등 대륙별 열대 우림을 재현한 열대관에는 각종 열대 식물과 열대 해수어, 담수어, 양서류, 파충류가 서식한다. 세계 최대 담수어인 피라루크와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커다란 보아뱀부터 모래 속에서 머리만 내밀고 사는 자그마한 정원장어와 물구나무선 것처럼 유영하는 레이저피시까지 신기한 생물이 가득하다.

그중 흔히 시서스(Cissus)라고도 불리는 커튼담쟁이가 늘어진 터널 같은 공간이 열대관의 백미로 꼽힌다. 영화 <아바타>를 떠올리게 하는 신비로운 분위기 덕에 포토존으로 인기가 높다.


열대관을 나와 사막관에 들어서자 풍경과 기후가 확연히 달라진다. 건조한 공기 속에 각양각색의 다육식물과 선인장이 자라나 사막 풍경을 실감 나게 연출한다. 방울뱀, 도마뱀 같은 사막 파충류를 볼 수 있는데 사막관 최고 인기 스타는 누가 뭐래도 귀여운 사막여우와 검은꼬리프레리도그다.

지중해관에는 올리브나무, 라벤더, 유칼립투스 등 친숙한 이름의 식물들이 가득한 가운데, 소설 <어린왕자>에 등장하는 바오바브나무나 벌레를 잡아먹는 식충 식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반도 기후 환경과 생태계를 재현한 온대관에서는 제주도를 느껴볼 수 있다. 제주 곶자왈을 테마로 꾸민 공간에 숲속 산책로와 신비로운 연못이 어우러지고 겨울에는 동백꽃이 피어올라 화사함을 더한다. 온대관은 실내외 공간이 연결되며 야외에는 설악산 계곡 지역과 수달사, 맹금류사를 배치했다. 마지막에 자리한 극지관 앞에서는 외투를 다시 여미게 된다.

기후대 체험 과정을 세심하게 기획한 덕에 온대관서 극지관으로 곧바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한반도 북부 개마고원과 시베리아 북부의 타이가, 툰드라를 거쳐 서서히 북극과 남극에 이르도록 전시를 설계했다. 박제 표본과 영상물이 주를 이뤄 다른 전시관보다 생동감은 덜하지만, 마지막 코너에서 남극과 북극에 서식하는 펭귄을 만날 수 있다.

5대기후관을 좀 더 알차게 관람하려면 생태해설 프로그램에 참여하자. 생태해설사와 함께 각 전시관의 특징 및 대표 생물을 살펴보고 더 나아가 기후 위기에 대해 고민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프로그램은 온라인 예약이 우선이며 남은 자리가 있으면 현장서도 신청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할 상황이 안 된다면 전시관별 생태해설서와 대상별 활동지를 활용하길 추천한다.

에코리움에는 5대기후관 외에도 상설주제전시관, 4D입체영상관, 어린이생태글방, 기념품점 등 다양한 시설이 있다. 특히 전시와 체험, 휴식 공간을 결합한 ‘에코라운지 숨, 쉼’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 시설을 갖춰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 인기다. 방문자센터 건물에 있는 생태 미디어 체험관 미디리움도 아이와 방문하기 좋다. 증강현실(AR), 동작 인식 같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다채로운 콘텐츠가 아이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지구상의 다양한 기후대 경험하는 국립생태원
이곳에서 즐기는 다양한 생태해설 프로그램


국립생태원서 차로 10여분 거리에 사시사철 푸르른 장항송림산림욕장이 자리한다. 1950년대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조성한 방풍림으로, 현재는 국가산림문화자산에 지정돼있다. 울창한 해송림 내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겨울에도 온몸 가득 피톤치드가 스며들어 웰니스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솔숲 옆에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서천갯벌이 펼쳐지고, 숲 위로는 15m 높이의 장항스카이워크가 지난다. 숲속 산책로와 갯벌, 스카이워크를 걸으며 육해공의 재미를 모두 만끽할 수 있다. 장항스카이워크 끝에는 서해와 갯벌을 시원하게 조망하는 전망대가 있는데 신라와 당나라가 벌인 기벌포해전의 현장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담아 기벌포해전전망대라고 불린다.

QR코드를 찍어 관광지 해설을 듣는 서비스가 제공되니 활용해보자. 국립생태원 동절기 운영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월요일은 쉰다. 입장료는 어른 기준 5000원이고 미디리움과 4D입체영상관은 관람료 별도다. 장항송림산림욕장은 상시 무료 입장이나 장항스카이워크는 유료(입장료 4000원/2000원은 지역 상품권으로 환급) 시설이라는 점 참고하자.

장항송림산림욕장서 5분 정도 걸어가면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이 나타난다. 국내 유일의 해양생물자원 전문 연구·전시·교육기관으로 일반 관람객을 위해 씨큐리움이라는 전시관을 운영한다. 전시관은 누구나 해양생물이라는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입체적인 전시와 체험으로 구성했다.

가장 상징적인 전시물은 25m 높이 생명의 탑으로, 우리나라 해양생물 다양성을 보여주는 4600여개의 표본 병을 수직 구조로 배치했다. 총 4개 층에 걸쳐 전시실, 바다극장, 어린이체험전시실, 해양영상실 등의 시설이 있고 4층에서 시작해 내려오는 순서로 관람하면 된다.

레트로 감성 여행지인 장항6080음식골목 맛나로도 들러보자. 장항은 장항선, 장항항, 장항제련소와 함께 번성했던 지역으로 과거 산업화 시대의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장항 별미인 박대구이부터 꽃게무침, 아귀찜, 서대탕, 홍어탕 등 다채로운 음식을 즐기는 동시에 서천군문화예술창작공간으로 활용 중인 구 장항미곡창고(국가등록문화유산), 아담한 전시관인 예소아카이브 같은 공간도 둘러볼 수 있다.

레트로 감성 여행지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금강하구둑’은 국내 대표 철새 도래지로, 겨울철에 수많은 철새가 모여들어 장관을 연출한다. 하굿둑 일대에는 서천군조류생태전시관, 산책로, 관광지가 조성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금강하구둑관광지’는 놀이공원, 풍차공원, 놀이터 및 각종 음식점이 밀집해 주말 나들이 명소로 인기이며 야간에는 경관 조명이 불을 밝혀 또 다른 운치를 자아낸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코스

장항송림산림욕장→장항6080음식골목 맛나로→국립생태원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장항송림산림욕장→국립해양생물자원관 씨큐리움→장항6080음식골목 맛나로→금강하구둑
-둘째 날 국립생태원→서천특화시장→한산모시관

관련 웹 사이트 주소
-서천군 문화관광 www.seocheon.go.kr/tour.do
-국립생태원 https://www.nie.re.kr/nie/main/main.do?section=0& InSection=0
-국립해양생물자원관 www.mabik.re.kr

운영 정보
-국립생태원 *운영시간: 동절기(11~2월) 9:30~17:00, 하절기(3 ~10월) 9:30~18:00 관람 종료시간 1시간 전 매표마감 *휴무: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첫 번째 평일 휴관) *요금: 어른 5000원, 청소년 3000원, 어린이 2000원


-장항 스카이워크 *운영시간: 09:30~18:00(10~3월에는 17:00까지 단축 운영, 마감시간 30분 전까지만 입장 가능) *휴무: 월요일(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1월1일, 설날, 추석 *요금: 4000원 (2000원 서천사랑상품권 교부) 경로우대, 영유아 등 무료

문의 전화
-국립생태원 041)950-5300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씨큐리움 041)950-0695
-장항송림산림욕장(장항스카이워크) 041)956-5505
-서천종합관광안내소 041)952-9525

대중교통
-기차 서울역-익산역 또는 천안아산역(환승)-장항역, KTX 및 새마을호·무궁화호 환승 하루 19회(06:03~20:58) 운행, 총 1시간50분~2시간40분 소요

-기차 용산역-장항역, 새마을호·무궁화호 하루 14~15회(05:32~20:43) 운행, 약 3시간~3시간20분 소요. 장항역서 국립생태원 서문 매표소까지 도보 3분

*문의: 레츠코레일 www.letskorail.com, 1544-7788

-버스 서울-장항, 서울남부터미널서 1일 2회(10:50, 16:45) 운행, 약 2시간30분 소요. 창선1리 정류장서 600번 버스 탑승, 송림리 정류장 하차, 장항송림산림욕장까지 도보 7분


*문의: 시외버스통합예매시스템 https://txbus.t-money.co.kr/, 서울남부터미널 02)520-6871, 서천군대중교통정보 www.seocheonbus.com

자가운전
동서천IC→동서천IC교차로서 군산·금강하구둑·장항 방면 우회전→장산로→하구둑사거리서 부여·서천 방면 우회전→금강로→국립생태원교차로서 국립생태원 방면 우회전→국립생태원

서천IC→서천IC삼거리서 군산·서천 방면 좌회전→대백제로→군사교차로서 장항국가산업단지 방면 우회전→장항산단북로→송림리 방면 우회전→장항산단로→댕뫼사거리서 장항산단로34번길 방면 좌회전→신화송로130번길 방면 좌회전→장항송림산림욕장

숙박 정보
-문헌전통호텔: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041)953-5896, https://munheonhotel.co.kr/
-카몬호텔: 장항읍 장산로317번길, 0507-1456-8922
-서천유스호스텔: 장항읍 장항산단로34번길, 041)956-0003, www.scyh.or.kr

식당 정보
-유정식당(꽃게살무침): 장항읍 장서로29번길, 041)956-5494
-서해안식당(박대정식): 장항읍 장서로47번길, 041)956-7500
-우리식당(아귀찜): 장항읍 장서로29번길, 041)957-0465

주변 볼거리
신성리 갈대밭, 춘장대해수욕장, 한산모시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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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