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슬 열리는 ‘건진법사 게이트’ 막전막후

2018년 지선 영향력 행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원조 비선 실세’로 불린 건진법사 전성배씨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연결고리가 다시 주목받는 분위기다. 검찰이 전씨의 자택과 핸드폰을 압수수색하면서 여권 인사 또는 김 여사와의 물밑거래가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건진법사 전성배씨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선 캠프서 활동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친분이 있고 딸은 김건희 여사와 인연이 깊다. 여권 인사 대부분은 전씨의 행보가 윤 대통령에게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전씨와의 인연을 끊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전씨는 김 여사와의 커넥션을 과시하며 2년간 사기 행각을 벌여온 것으로 전해졌다.

체포된
내막은?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수단(단장 박건욱)은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자택과 강남구 법당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전씨의 컴퓨터와 장부, 핸드폰 3대를 확보했다.

그러나 지난 19일 서울남부지법 한정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전씨를 구속하기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뒤 “피의자가 금원(금전)을 받은 날짜, 금액, 방법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한 부장판사는 “검사가 의심하는 대로 피의자가 정치권에 해당 금원을 그대로 전달했다면 피의자의 죄질을 달리 볼 여지가 있다”며 “피의자가 수사기관의 출석 요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진술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전씨에 대한 검찰 수사는 지난 2018년 지방선거 과정서 전씨가 경북 영천 지역 정치인들에게서 불법 정치자금 1억원을 받은 사실이 포착되며 시작됐다. 2018년 영천시장 선거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공천을 받으려고 경쟁했던 인물은 정재식 전 영천시 농업기술센터소장, 하기태 전 영천시 행정자치국장, 김수용 경북도의원 등이다.

자유한국당 공천은 김수용 경북도의원이 받았지만 본선서 승리한 사람은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현 최기문 시장이다. 당시 지역 정가에선 ‘지역구 현역 의원과의 관계가 공천에 결정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고, 각종 금품 비리 의혹이 난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은 최근 YTN 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해 윤 대통령 탄핵 정국과 전씨 체포와 관련해 “건진법사는(지난) 대선 과정서 완전히 배제됐고 그 이후에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없고 2018년도 지방선거와 관련된 것”이라며 “2018년이면 아시다시피 윤 대통령이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 한참 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게 대통령과는 전혀 무관한 사안이라는 점을 말씀드린다”며 “취재한 바에 따르면 남부지검서 다른 사건으로 구속 수감된 피의자가 자기 형량을 줄이려는, 이른바 플리바게닝 하려고 몇 달 전에 제보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여권 지역 정가 금품수수 의혹 난무
“전성배 믿고 돈 줬다” 진술들 확보

진행자가 이를 두고 “코인 사기와 연결된 모양”이라고 묻자, 장 전 최고위원은 “그 코인 사기 피의자가 건진법사의 심부름을 하던 사람인 것 같다”며 “남부지검이 피의자 제보를 몇 달 묵혀뒀다가 탄핵 국면서 대통령 권력이 떨어졌다고 생각하니까 긴급 체포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몇 달 전부터 제보가 있었던 건이라 남부지검서도 어느 정도 증거수집을 했을 거라고 본다”며 “2018년 공천과 관련돼 무리한 정치자금 오간 게 있다면 당연히 조사하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했다.


검찰은 이번 수사가 2018년 지방선거에 한정돼있다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압수물을 분석하는 과정서 나오는 내용에 따라 정치권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 부부와의 인연을 강조하며 국민의힘 공천에까지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경우 휴대전화서 대통령과의 통화 녹음 파일, 김 여사와의 텔레그램 메시지 등이 나왔기 때문이다.

검찰의 핸드폰 및 컴퓨터 포렌식 과정서 인사청탁이나 세무조사 무마 등과 관련된 내용이 나오면 이권 개입 수사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지난 2018년은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시절이고 아직 정계에 입문하기 전이었기에 지역 정치권 인사들이 국민의힘 공천과 관련해 전씨에게 돈을 건넨 것에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영천시장 선거 과정서 자신이 받은 1억원의 정치자금은 ‘경선 승리를 위한 기도비’고 이후 돈을 일부 되돌려줬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전씨의 자금 수수 경위를 집중 조사 중이다. 전씨에게 돈을 건넨 지역 정치인에 대해서는 조사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21년 상장 폐지된 가상화폐 ‘퀸비코인’ 자금 흐름을 수사하던 검찰은 전씨와 관련된 자금 정황을 포착하기도 했다. 퀸비코인은 사업 목적 없이 투자를 받는 ‘스캠(사기) 코인’으로, 검찰은 올 7월 피해자 1만3000명으로부터 300억원을 편취한 퀸비코인 발행업자 등 6명을 사기죄로 재판에 넘긴 바 있다.

정치인
커넥션

남부지검 관계자는 “배우 배용준씨의 투자 참여는 앞에서 욘사마 코인으로 불렸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서 확인된 사실”이라며 “전씨가 정치자금을 세탁하려고 했는지는 아직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지난 2022년 1월 윤 대통령의 대선 캠프 하위 조직인 네트워크본부서 고문으로 활동했다. 윤 대통령의 메시지와 일정, 인사 등에 관여한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전씨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부터 자신이 윤 대통령의 대선 도전을 조언했고, 스스로를 국사가 될 인물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전씨의 ‘비선’ 논란이 커지자 국민의힘은 문제의 네트워크본부 자체를 해산했다. 권영세 당시 선대본부장은 “‘고문’이라는 것은 스스로 붙인 명칭에 불과하고 공식 임명한 적도 없다”고 했다. 전씨는 과거 김 여사의 전시 기획사 코바나컨텐츠서 고문을 맡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최근 ‘명태균 게이트’ 수사 과정서 명씨와 ‘공천 신통력’을 두고 경쟁했던 정황이 드러나기도 했다. 명씨는 지난 1월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회계 담당자 강혜경씨와 통화하며 “(김영선이)건진 법사가 (자기한테)공천 줬다더라. 나 내쫓아내려고.(내가) 공천 줬는데 나한테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건진법사가 (자기한테)공천 줬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김 전 의원이 국회의원 공천을 받기 위해 명씨를 전씨로 교체하려고 하자 명씨가 항의했다.

전씨는 ‘한국불교 일광조계종(일광조계종)’ 소속 승려다. 일광조계종은 건진 법사 전씨의 스승인 승려 ‘혜우’ 원모씨가 창종한 종파로, 충주 일광사를 본산으로 두고 있다. 전씨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골목에 있는 2층짜리 단독주택에 법당을 차려 유력 인사들과 교류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네트워크
비선 원조


원씨는 지난 2021년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전씨에 대해 “신내림을 받고 나한테서 자랐다” “(전씨에게)윤석열을 지키라고 했다”는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전씨가 속한 일광조계종은 과거 가죽을 벗긴 소 사체를 제물로 바치는 행사를 주관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광조계종은 지난 2018년 9월 충주 중앙탑공원서 열린 ‘2018년 수륙대재 및 국태민안 등불축제’를 개최했는데, 머리와 발끝만 남기고 가죽이 모두 벗겨진 소 사체를 온종일 전시했다. 한 시민단체는 전씨를 동물 학대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 대선 당시 야권에선 문제의 행사에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이름이 적힌 등이 달려있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윤석열 후보 부부가 등 값을 내거나 그 어떤 형태로든 행사에 관여한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전씨의 딸은 지난 2013년부터 코바나컨텐츠 행사를 담당했고 2년 뒤 한 화장품회사의 대표를 역임했다.

중국 진출을 염두에 뒀던 이 회사는 한한령과 코로나19 등 상황 악화로 2017년을 전후로 사업을 철수했다. 미국 유학생 출신인 전씨의 처남 김모씨는 네트워크본부 활동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았다. 본인과 가족이 함께 대선 캠프서 일한다는 것은 캠프 내 실세의 지시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김 여사와 전씨의 사이가 틀어진 이유는 대통령실 고위 간부들의 읍소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계로 알려진 N씨가 전씨와 같이 활동하면서 이권과 인사청탁에 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소위 ‘지라시’로 돈 데 이어 정치권에서는 전씨와 N씨의 불화설까지 들렸다. 윤석열 캠프 출신 한 인사는 “서울 한 건설사에서 마련한 땅 임대료를 두고 둘이 싸웠다. 특히 지방선거 시즌 강남구청장 선거서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한 인사가 두 사람을 믿고 경쟁하다가 제3자가 공천을 받았다는 뒷말이 상당하다”고 주장했다.

컴퓨터·핸드폰 포렌식 따라 정치권 파장
딸은 김건희와 인연 “제대로 해명 안 돼”

전씨의 영향력이 가라앉자 ‘MB(이명박 전 대통령)계’ 국민의힘 중진들이 N씨에게 줄을 섰다는 얘기는 지난 2022년 7월에 언급됐다. 특히 그가 특정 지역 인맥을 활용해 경찰 인사에 개입했다는 말까지 나왔다. 여권 입장에서는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해도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된 상황서 달가울 리가 없었다.

국민의힘 한무경 전 의원이 대표이사로 있던 회사에서 전씨가 소속된 불교 종파의 사회복지법인에 1억원을 출연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효림에이치에프는 지난 2017년 설립된 사회복지법인 연민복지재단에 1억원을 출연했다. 효림에이치에프는 자동차, 중장비 등 단조부품 공급 전문업체로, 한 전 의원이 21대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인 2020년 초까지 대표로 있던 회사다.

돈을 받은 연민복지재단은 노인·청소년·장애인 등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곳인데, 주소지와 연락처 모두 충주에 위치한 일광사와 동일하다.

연민복지재단은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설립을 추진했다. 이 전 청장은 지난 2017년 10월29일 재단 발기인회의를 열고 본인을 포함한 8명의 재단 이사진을 임명하고 정관을 통과시켰다.

이때 이사로 참여한 인물들은 대부분 이 전 청장과 고향(대구)·학교(영남대)·직장(국세청)으로 얽힌 지인들이다. 재단 설립을 주도한 임모 이사는 서울 역삼세무서장을 지냈고, 감사를 맡은 조모씨도 국세청 고위 관료 출신이다. 임원 박모씨는 전 대형 회계법인 대표였는데, 박씨와 조씨 등은 모두 이 전 청장과 ‘대구·영남대’로 묶인다.

연민재단
실체는?

그해 12월 초 이 전 청장은 재단 설립 인가권을 가진 충청북도에 정식으로 설립허가를 신청한다. 당시 재단 자산은 현금 13억원과 토지 3억5000여만원이었다. 현금 13억원 중 7억원은 임 이사가 대표로 있는 회계법인서 출연했다. 이 전 청장의 사비는 한 푼도 들어가지 않았다. 기부된 토지는 원씨의 가족이 소유한 땅이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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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