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일 인권변호사 30년 임범부가 밝힌 혐한 실상

“교포 자녀들 다닐 학교가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일본 내에 만연하는 혐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스스로 차별된 삶을 자처한 남자가 있다. 현재 사단법인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회’ 회원이자 오사카변호사회 임원인 임범부 변호사다. 재일동포 3세인 그는 일본 영주권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인이다. 출세의 길을 마다하고, 한국 이름 석자를 포기할 수 없어 귀화를 포기했다.

일본 내 외국인 변호사로 활동하는 임범부 변호사는 차별받지 않기 위해 남다른 삶을 살고 있다. 30여년간 헤이트 스피치(증오 표현), 혐한 시위 피해자 등을 위해 싸운 임 변호사는 북한 인권 실태 알리기에 나섰다. 

한마음
한뜻으로 

1959년 12월, 재일조선인은 배를 타고 북한으로 건너가기 시작했다. 당시 북한과 일본 정부가 공동으로 추진한 ‘재일조선인 북한 귀국사업’은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 위한 취지였다. 다만, 북한이 고향이 아닌 사람들도 많았다. 1984년까지 재일동포와 그 일본인 가족 9만3000여명은 당시 부유했던 북한으로 갔다.

쌍수 벌려 환영한 북한 정권은 귀국 비용을 전부 부담했다. 

귀국자들이 북한서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 귀국자의 기억을 기록하는 회(이하, 기억기록회)는 재일동포와 일본인으로 구성된 단체로 변호사, 기자 등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로 구성돼있다. 이들은 귀국사업 당시 북한으로 갔다가 탈북해 한국이나 일본에 사는 ‘귀국자’들을 쫓아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지난달 17일 <일요시사>는 임 변호사가 운영하는 ‘한맘 법률사무소’를 방문하기 위해 오사카 니시텐마 지역으로 향했다. 빌딩숲이 일렬로 늘어선 이곳은 오피스 타운으로, 오사카 직장인의 근무환경을 엿볼 수 있었다. 화려한 간판 대신 법무법인, 유통회사 등이 자리를 잡았고, 일부 식당엔 외국어 메뉴판조차 흔치 않았다.

관광 수요를 만족시키는 여느 일본 지역들과 달리 다소 삭막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한맘 사무소를 겨우 찾아 들어서자 한글 서적이 빼곡히 나열된 책장이 보였다. 괜히 반가운 기분마저 들었다. 푸근한 인상을 주는 임 변호사는 환한 미소와 함께 “반가워요”라며 취재진을 맞이했다.

“지금도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 민족”
차별에 맞선 재일교포 3세 고군분투 

임 변호사는 지난 2015년 직원들에게 한국을 비하하는 내용을 교육해 논란을 빚은 주식회사 ‘후지주택’과 맞서기 위해 소송을 제기한 재일교포 직원을 변호했다. 당시 교육자료엔 ‘한국인은 야생동물’ ‘재일 한국인은 죽어라’ 같은 한국 혐오 문구가 실려있었다.

또 위안부 강제연행은 거짓말이라면서 실제로는 높은 급여를 받고 호화 생활을 했던 매춘부라고 역사를 왜곡하기도 했다. 

후지주택은 이 같은 내용의 자료를 수백 차례에 걸쳐 배포하고, 직원들에게 감상문까지 요구했다. 의뢰인이 문제를 제기하고 교육을 거부하자 후지주택은 3000만원을 줄 테니 회사를 그만두라고 제안했다. 결국 지난 2015년 소송을 제기했고, 임 변호사는 함께 싸웠다.

일본 법원은 5년 만인 지난 2020년 후지주택이 ‘모욕과 차별적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며 110만엔, 우리돈 약 1100만원을 의뢰인에게 위자료로 지급하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직원 개인을 향한 차별은 아니었다며 청구한 위자료의 30분의 1만 인정했다.

당시 임 변호사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서 “‘위안부는 없다’거나 ‘식민지 지배는 없다’든가 그렇게 주장하는 일본 회의와 (창업자가) 접촉한 것 같다”며 “일본 재판의 한계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람은 안 좋다, 나쁘다, 추악하다고 하는 건 개인이나 법인을 상대로 한 공격이 아니기 때문에 손해가 생겼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후지주택 측은 당시 판결로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즉각 항소하기도 했다. 사측은 “사원 교육을 할 때도 회사에 재량이 있고, 경영자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혐오 발언에 벌금을 부과하는 조례가 시행됐지만, 일본 곳곳서 혐한 움직임은 지속됐다. 대부분 혐한 시위 참가자들은 “(일본 정부가)왜 일본인보다 외국인을 우선해서, 생활보호도 받지 못하는 일본인이 피해를 보느냐”는 입장이다. 

창씨개명 잔재 여전
재일코리안 몸부림 처절

혐한에 맞서 싸우던 임 변호사가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변호사를 시작할 때부터였다. 대학 시절 임 변호사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조총련) 산하에 기업인 금강보험주식회사 등에 취업을 시도하는 학생들을 봐왔다.

1980년대만 해도 북한은 남한과 경제 수준이 비슷했고, 조총련 산하 기업은 차질 없이 운영됐기에 일본 국적으로 귀화하지 않은 재일교포들에게 유일한 희망이었다. 당시만 해도 재일교포가 일본 기업에 입사한다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기에 이력서에 출신을 숨기기도 했다. 

임 변호사는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대도시 진출은 어려웠다”며 “일본서 태어났지만, 한국 이름을 가졌다는 이유로 생계를 걱정해야 할 만큼 차별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당시만 해도 북한 귀국사업에 대해 자세히 몰랐지만, 북한에 살다가 일본이나 한국으로 돌아온 귀국자들이 하나둘 늘어나면서 그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뒤늦게 알게됐다”며 “지금도 일본서 귀국자들은 제대로 된 직업을 갖지 못해 어렵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재일조선인 북한 귀국사업’은 1959년에 처음으로 시작됐다. 해방 후 재일조선인은 일본 복지제도서의 배제, 사회적 차별과 억압, 가난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자유주의 진영에 속한 일본과 공산주의 진영에 속한 북한은 우호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그러나 재일조선인을 북한으로 보내고 데려가는 문제에 있어서는 양쪽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북한은 전후 사회와 경제를 복구하는 데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일본 정부에 재일조선인은 골치 아픈 존재였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재일조선인은 일본 국적을 상실했는데, 일본 정부는 이들을 추방할 수도 없었지만 일본 국적을 부여해 부양하고 싶지도 않았다.

현지 대기업 입사 포기하고 외길 
재일코리안 변호사협회 회장 역임

북한과 일본 정부의 협상은 급물살을 탔고 조선인이나 북한을 지지하는 사람 중 희망자를 북한으로 보내는 ‘귀국사업’이 시작됐다. 조총련은 재일교포들에게 북한의 사회주의 복지제도의 우수성을 선전하면서 귀국을 독려했다. 그렇게 9만3340명이 이 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재일교포 6.5명당 1명이 북한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렇게 귀국하게 된 9만여명 중 많은 이산가족이 발생했고, 북한으로 간 사람들의 생사나 행방을 알 수 없는 경우가 상당수에 이르렀다. 기억기록회는 2018년부터 이들 중 총 50명을 만났고, 한 사람당 평균 8시간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귀국자들의 삶이 고되고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귀국자들은 일본 내에서의 차별을 북한서도 겪었다. 심지어 일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심한 생활고가 그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했다.

실제로 취재진이 오사카 야오시서 만난 귀국자 A씨는 북한서 고위급 간부로 살다가 지난 2010년경 아내와 두 자녀, 손주들과 함께 탈북했다. 1960년경 귀국사업을 통해 북한으로 건너간 그는 량강도 혜산시서 목재가공공장을 운영하며 제법 부유하게 살았다.

당시 일본서 도요타 자동차를 수입해 “최룡해를 비롯한 장성들이 손님을 맞이한다며 빌려가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994년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제2대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올라 북한을 통치하더니 GDP는 (UN 통계 기준) 이전 해인 1993년 107억달러서 83억달러로 떨어졌고, 북한 주민들도 경제 빈곤을 몸소 느끼게 됐다고 한다.

재일코리안
몸부림 처절

이후 1995년 48억달러로 기존의 30% 수준으로 폭락하다 못해 GDP가 문자 그대로 초기화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과 당이 자신들의 삶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고, 배급제에 의존할 수 없어 장마당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게 됐다. 김정은은 북한 경제의 시장화 움직임을 막기 위해 2009년 화폐개혁을 실시하고 연장 차원서 장마당을 금지시켰으나 대실패로 막을 내려 북한의 내수 경제를 완전히 파탄 상태로 몰고 갔다.

김일성 시절부터 최빈국 수준이었던 북한의 경제는 김정일 시기에 재기불능의 극빈국 수준으로 떨어졌다. 

경제가 어려워지자 당은 A씨에게 수시로 트집을 잡아 외화를 벌어오라고 강요했다. 김일성대학교를 나온 장남은 평양에 입성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째포(재일교포를 비하하는 단어)’라고 차별받으며 변방을 맴돌았다. 또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이유로 불순 선전물을 수시로 검사하러 오자 A씨 가족은 견디다 못해 탈북을 결심했다.

A씨와 같은 귀국자들의 고초를 접하게 된 임 변호사는 기억기록회서 활동할 결심을 하게 됐다고 한다.

임 변호사는 사회적 지위를 얻었지만, 직접적인 차별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 2008년 1월 오사카가정법원은 이혼과 상속 문제 등을 중재하는 가사조정위원으로 추천된 임 변호사에 대해 공권력을 행사하는 국가공무원으로서 일본 국적이 필요하다는 점을 선임 거부 사유로 밝혔다.

북한 인권 문제 깊숙이 관심
평양 입성해도 변방 맴돌아

조정위원은 지방법원과 가정법원이 일반 응모자와 변호사회 추천을 받은 변호사를 후보자로 선고한 후 최고재판소가 임명하는 비상근 공무원으로, 최고재판소의 임명 기준에는 국적 제한이 없다. 재일교포 변호사가 국적을 이유로 조정위원 선임에 거부당한 것은 2003년 고베 가정법원 이후 2007년 9월 센다이 가정법원과 도쿄 간이재판소, 그해 12월 고베 가정법원에 이어 다섯 번째 사례다.

임 변호사는 “조정위원은 변호사회가 추천한 변호사를 가정법원이 명부에 싣고, 그 명부에 실린 변호사 중에서 최고재판소가 선임하는 것”이라며 “대한민국 국적 변호사도 변호사회의 추천을 받아 명부에 기재되지만, 최고재판소가 선임하지 않는다. 태어나고 자란 일본 사회서 배제됐다는 생각에 착잡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 국적 변호사도 파산관재인이나 상속재산관리인으로는 선임된다. 둘 다 남의 재산을 관리 처분하는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데 조정위원은 그런 일을 안 하고 당사자 간에 합의가 이뤄지도록 설득하고 유도하는 역할을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임 변호사는 귀화를 거부하고 소신을 지킨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국적은 태어나서부터 저절로 갖는 것이지만, 그 속은 나이를 거듭하면서 힘들게 손에 넣어온 것으로 가득하기 때문에 평생 손 놓을 수가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민족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일본에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는 학교가 없다. 조선학교는 북한 교육을 시켜 보내기 힘든데, 한국학교도 조선학교도 아닌 코리아국제학원이 오사카에 생겼지만 규모는 작다”고 말했다.

재일교포 자녀들은 주로 일본학교를 다니고, 오사카서 민족학급으로 민족교육을 시키지만 부족한 상황이다. 민족교육은 각 가정의 노력에 달린 문제라는 의미다.

한편, 임 변호사는 1963년 오사카와 나고야 중간에 있는 이가우에노라는 시골마을서 태어나 오사카시립대학을 졸업하고 1994년 변호사 활동을 시작했다. 재일교포 변호사들이 모인 ‘재일코리안변호사협회(Lawyers Association of ZAINICHI Koreans, 이하 LAZAK)’의 전 회장이며, NPO법인 코리아인권생활협회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귀화 거부
소신 지켜

실제로 협회는 서적 출판, 학습회 개최, 재일코리안의 인권에 관한 소송 지원, 재일코리안을 비롯한 재일외국인의 인권옹호를 위한 각종 의견서 및 성명 발표, 심포지엄 개최 등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도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 NGO 보고서를 제출하는 등 인종차별, 인권보호 등에 앞장서고 있다. 이에 지난 2007년 12월 재일코리안의 인권옹호에 이바지함을 인정받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대한민국인권상을 받았다. 


오사카 =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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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단독] ‘BBQ 정보 유출 사건’ 위증 재판으로 확대⋯박현종 목줄 잡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대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확정된 사건이 다시 법정으로 끌려 나왔다. ‘BBQ 내부망 불법 접속’ 사건의 핵심 증거였던 ‘ID·비밀번호 메모장’을 둘러싼 위증 여부를 다투는 후속 재판이다. 박현종 전 bhc 회장의 집행유예가 확정된 사건임에도 검찰은 관련 증인들을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했다. 핵심은 과연 BBQ 직원의 ID와 비밀번호가 적힌 그 메모장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유창성 전 bhc 정보전략팀장의 손을 어떻게 거쳐 전달됐는가다. 그리고 그 과정을 둘러싼 법정 진술의 신빙성이다. 검찰은 최근 공판에서 “피고인(박현종 등)에게 유리한 허위 증언이 반복됐다”는 판단 아래 유 전 팀장 등 관련자 3명을 위증 혐의로 고발했다. 메모장 전달자 통상 위증 여부는 재판부 판단 이후 별도 절차로 넘겨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처럼 검찰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단순한 진술 번복이나 기억 착오 수준이 아닌 사건의 본질을 뒤흔들 수 있는 중대한 허위 진술이 있었다고 본 셈이다. 이번 공판의 중심에는 ‘메모장 전달자’로 지목된 유 전 bhc 정보전략팀장이 있다. 그는 과거 재판에서 결정적 증거로 채택된 BBQ 직원들의 아이디와 비밀번호가 적힌 메모를 박현종 전 bhc 회장에게 전달한 인물이다. 이 메모장은 박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입증하는 핵심축이었다. 이 메모장의 출처와 작성 경위가 흔들리면, 사건 전체의 구조도 다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건넨 메모장의 내용 자체를 문제 삼았다. 메모장에 기재된 임직원 계정 정보 뒤에는 ‘퇴사자 임시’라는 내용이 덧붙어 있었다. 이는 BBQ 내부망에서만 확인 가능한 정보라는 점을 강조했다. 외부에서 추정이나 기억만으로 재구성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더 나아가 성명불상자가 BBQ 내부망에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해 계정을 취득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를 유 정보팀장을 거쳐 박 전 회장에게 전달했다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제시했다. 재판부 역시 “기억과 추리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떠올렸다는 설명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검찰 주장에 일정 부분 무게를 싣는 듯한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재판부는 “특정한 심증을 가진 것은 아니”라며 추가 심리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고인 측은 거칠게 반격했다. 변호인은 검찰 주장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bhc와 BBQ가 극도로 적대적인 관계였던 상황에서, bhc 소속 직원이 BBQ 내부 직원과 접촉해 계정 정보를 빼냈다는 가정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는 논리다. 나아가 검찰이 실제 내부망 침입을 입증하지 못한 채 추측만을 쌓고 있다고 공격했다. 6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에 리스크 추가 ‘BBQ 직원 ID·비밀번호 유출’ 둘러싼 공방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피고인 측은 기존 재판에서 채택된 증거와 증인 진술 전반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으며, 데이터베이스(DB) 조작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사실상 1·2심은 물론 대법원 판단의 기초 자체를 뒤흔드는 주장이다. 확정 판결 이후 재판에서 “증거 자체가 위조됐다”는 취지의 주장을 반복하는 것은 법조계에서도 보기 드문 강수로 평가된다. 유 전 팀장은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근무하다가 bhc 매각과 함께 bhc 정보전략팀장으로 이직한 인물이다. 이후 그는 박 전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적은 쪽지를 전달했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인물은 BBQ 재무임원과 재무 실무진이다. 2021년 11월3일 서울동부지방법원에서 열린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 관련 7차 공판에 유 전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유 전 팀장은 박 회장에게 BBQ 직원의 개인정보를 건넨 이유에 대해 “박현종 회장이 국제상공회의소(ICC) 중재 소송 때문에 BBQ 직원들의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했다”며 “해당 직원들의 개인정보가 업무 수첩에 적혀있어 이를 그대로 전달했다. 당시 위법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와 비밀번호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과 증인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는 데 대해 묻는 검찰 질문에 유 전 팀장은 “박 전 회장의 진술은 모르겠고 아이디만 필요하다고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유 전 팀장은 BBQ와 bhc의 ICC 중재 소송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못하고 소송에 관여하지도 않았다고 증언했다. BBQ 직원들의 개인정보 취득 경위와 관련해서는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BBQ 재무임원이 그룹 전산망의 데이터가 다르다고 확인 문의가 왔다”며 “당시 물류 전산망이 바뀐 지 얼마 안 돼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아 문제 해결을 위해 임원에게 개인정보를 요청해 받은 뒤 이를 업무 수첩에 적은 이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이 개인정보를 받았다고 지목한 BBQ 재무임원은 앞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개인정보를 아무에게도 전달한 적 없다”며 “업무 처리도 유씨가 아닌 다른 직원과 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검찰은 유 전 팀장이 그룹 전산망에 접근할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내부 정보 취득 시점이… 유 전 팀장은 재무임원의 개인정보를 취득한 시점에 대해서도 그간 검찰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2011년~2012년 즈음에서 2013년 1월로 시점을 바꿨다. 검찰은 증인에게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물류 전산망이 바뀐 시점으로 맞추기 위함이냐고 묻자 유 전 팀장은 “단순 착오”라고 답했다.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으로 일할 당시 BBQ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검찰 질문에 “자신이 BBQ 정보전략팀장으로 일할 당시 퇴사자의 개인정보를 어떻게 다루는지 알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추측해 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답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의 증언에 BBQ가 퇴사자에게 부여하는 임시 비밀번호를 줄 때 증인이 말한 방식을 쓴 것은 증인 퇴사 이후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유 전 팀장이 박 전 회장에게 BBQ 전·현직 직원들의 정확한 개인정보를 전달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bhc가 BBQ의 데이터베이스(DB)를 모조리 빼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박 전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BBQ 허락하에 BBQ DB를 모두 가져왔다”고 진술했다. 박 전 회장 진술 이외에 검찰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도 있다. 2013년 6월 말 bhc 매각 이후 bhc는 자체 전산망 구축을 위해 BBQ와 bhc 전산망 분리 작업이 필요했다. 그해 7월2일 외부 업체는 해당 작업이 최소 한달 이상 걸릴 것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유 전 팀장과 부하 직원 한 명, 그리고 한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판단했던 외부업체는 2013년 7월5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불과 12시간 만에 BBQ로부터 분리된 bhc 전산망을 구축했다. 이와 관련해 유 전 팀장은 “bhc 직원이 100명 남짓에 불과해 수작업으로 데이터를 옮겨 가능했다”며 “BBQ DB는 가져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재판부는 BBQ DB 관련 박 회장과 유씨의 진술이 배치되는 데 대해 유 전 팀장에게 묻자 “자신은 박 회장에게 BBQ DB를 가져왔다고 말한 적 없다”며 “박 회장이 검찰에서 왜 그리 말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다만 유 전 팀장은 노트북 하드 교체 관련 재판 과정에서도 말이 일치하지 않았다. 뻔히 보이는 해킹의 목적 첫 증언에서는 bhc 매각 시기인 2013년 이후 노트북 감가상각 5년을 계산해 2018년에 바꿨다고 했지만 이후 2017년으로 고쳤다. 기존 사건이 ‘불법 접속이 있었느냐’는 사실관계 다툼이었다면, 이번 후속 재판은 ‘그 사실을 둘러싸고 법정에서 거짓말이 있었느냐’는 문제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 거짓말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는지 여부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박 전 회장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이 BBQ 직원 계정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취득할 수 없었고, 불법적 경로일 가능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는 무죄였지만, 정보통신망법 위반은 명확히 유죄로 못 박았다. 그러나 사건은 집행유예 판결로 끝나지 않았다. 검찰이 위증을 별도의 범죄로 끌어올린 이상, 수사는 ‘위증교사’를 밝히는 단계로 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원이 관련자들의 위증을 인정할 경우, 그 진술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유도했는지가 핵심 수사 대상이 된다. 화살이 결국 박 전 회장을 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증교사는 기존 사건과는 별개의 범죄로, 추가 기소로 이어질 경우, 사법 리스크도 한층 더 커진다. 문제는 입증이다. 위증교사는 단순한 정황만으로는 성립하기 어렵다. 구체적인 지시나 교감, 사전 조율 정황이 확인돼야 한다. 하지만 검찰이 이미 “유리한 허위 증언 반복”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고발까지 단행한 점을 감안하면, 단순한 가능성 제기를 넘어선 그림을 그리고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BBQ 출신 정보전략팀장 진술 번복 검, 증인들 위증 혐의로 직접 고발 이 사건을 관통하는 또 하나의 축은 bhc와 BBQ 사이의 오랜 분쟁이다. 박 전 회장은 삼성전자와 삼성에버랜드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 BBQ 글로벌 대표로 영입됐다. 이어 2013년 BBQ 자회사 bhc가 미국계 사모펀드에 팔린 뒤 bhc 대표로 옮겨가며 양사 갈등의 중심에 섰다. 2018년 사모펀드 운용사 MBK파트너스 등과 함께 bhc를 사들여 오너 경영자가 된 동시에 각종 소송과 형사적 리스크의 한가운데에 서게 됐다. 이번 사건 역시 단순한 개인 비위가 아니라, 기업 간 치열한 법적 분쟁 속에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무게가 다르다. 검찰에 의하면 박 전 회장은 2015년 7월3일 서울 송파구 신천동 bhc 본사에서 BBQ 직원 2명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무단 도용해 BBQ 전산망에 접속한 뒤 bhc와 BBQ가 연루된 국제 중재 소송 관련 자료들을 살펴봤다. 이로 인해 박 전 회장은 2020년 11월 재판에 넘겨졌다. 아울러 박 전 회장은 유 정보팀장으로부터 BBQ 직원 이메일 아이디, 비밀번호, 전산망 주소가 적힌 메모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2년 6월 1심 재판부는 박 전 회장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혐의를 인정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입증이 부족하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사건은 항소심으로 넘어갔다. 항소심 3차 공판 때 검찰과 변호인은 파워포인트(PPT)를 통해 2시간 동안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먼저 의견 개진 기회를 얻은 변호인은 “BBQ가 여러 차례 박현종 회장을 영업비밀 침해 등의 이유로 고소했지만 계속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며 “그런데 검찰이 정보통신망법을 무리하게 적용해 박현종 회장을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변호인은 “검찰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혐의를 입증한 것도 아니”며 “왜곡 가능성이 큰 간접 증거만 제시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박현종 회장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에 참석해 BBQ 전산망에 접속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부연했다. 반면 검찰은 “bhc가 2013년부터 BBQ 전산망에 무단 접속한 횟수가 236회에 달하지만 행위자가 드러나지 않아 기소하지 못했다”며 “박현종 회장은 무단 접속이 명백해 기소했다”고 반박했다. 지시했나 사면초가 검찰은 박 전 회장의 범행 동기에 대해 “2015년 BBQ 직원들이 박현종 회장이 bhc 매각을 총괄했다”는 진술서를 국제 중재 법원에 냈다. 국제 중재 소송에서 질 경우 지위가 불안정해질 수 있었던 박 전 회장은 “해당 진술서를 검토하고 반박해야만 했다”고 했다. 이어 “박현종 회장 휴대전화에서 BBQ 직원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적은 메모 사진이 나왔다. BBQ 전산망 접속 데이터 분석 결과, 박현종 회장이 BBQ 사내 메일을 포워딩(전달)한 개인 메일을 2년 만에 열람한 기록도 있다”며 혐의를 입증할 물적 증거가 많다고 했다. 검찰은 “2015년 7월3일 순댓국 프랜차이즈 인수 회의 참석자 2명은 박현종 회장을 회의에서 보지 못했다고 했다”며 박 전 회장의 알리바이를 부인하기도 했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