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합의제 폐지 막전막후

사공 바뀌고 점점 더 산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가 산으로 가고 있다. 최후의 보루인 ‘합의제’마저 폐지돼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다. 안창호 체제가 들어서면서 회의 분위기가 극우화됐다는 내부 의견도 적지 않다. 실제 인권 문제를 법리적으로만 해결할 수 없음에도 무대응으로 일관하거나 각하하는 경우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고도 안 하고 반드시 논의해야 하는 사건은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한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의 말이다. 안창호 전 헌법재판관이 신임 인권위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막말 논란서 빠지지 않는 이충상·김용원 상임위원의 영향력이 더욱 커져 회의도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선택적 의견
개진·권고

인권위가 소위원회의 만장일치 의결 관행을 폐기한 건 지난달 28일이다. 안 위원장은 같은 달 국회 운영위원회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만장일치 관행 폐기가 김 위원의 결정이 위법하다고 한 판결의 법망을 피하기 위한 시도가 아니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 40년 가까이 한 법조인의 양심을 걸고 해석한 것”이라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김 위원 등은 1명만 반대해도 진정을 기각할 수 있도록 운영 규칙을 바꾸려 시도했으나 송두환 전 위원장이 ‘사회 각계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고 요구했다”며 “문제는 지난 7월 법원이 기각이 위법하다고 판결하자 법망을 피하고자 규정을 바꾸려고 시도했는데도 ‘법꾸라지’라는 비판을 안 받겠느냐”고 지적했다.

안 위원장은 “법리적으로 그날 결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법리적으로 3명의 찬성이 있을 때만 인용될 수 있고 과반수로 의결되지 않으면 기각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다만 “그렇게 운영이 되면 미흡하게 처리될 수 있는 문제가 있기에 2 대 2일 경우에 있어선 소위서 노력해야 한다는 별도 의견을 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인권위는 3명으로 운영하던 소위원회를 4명으로 늘리고 구성위원 1명만 반대하더라도 진정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하지 않고 기각 또는 각하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변경하는 안건을 전원위서 의결했다. 지금까지 인권위 소위원회는 만장일치가 되면 곧바로 공식 입장이나 권고를 낼 수 있고 1명이라도 반대하면 합의에 이를 때까지 토의하거나 전원위에 넘겨 논의해 왔다.

지금까지 김 위원과 이 위원을 포함해 한석훈·한수웅·김종민·이한별 비상임위원 등 6명은 ‘소위원회서 의견 불일치 때의 처리’에 대한 의안을 전원위에 제출하면서까지 관행을 깨려는 움직임을 노골적으로 보였다.

법제처는 인권위 관행이 깨지는 것에 대해 “유권해석은 가결되지 않으면 부결된다는 식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인권위원회법 제13조의 의결을 가진 가결로 축소 해석할 필요가 없고 성문법 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서 법령 규정의 문자나 문장이 의미하는 바에 입각해 해석하는 게 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권 영역 법리만으로 해결 불가한데…
약자 보호해 온 ‘합의제’ 역사 속으로

인권위의 오랜 관례를 깨려는 위원들의 판단이 부적절하다는 지적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법제처가 부적절하다고 판단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소위원회서 진정 사건을 처리할 때 가결이 아니면 부결이라고 보거나, 위원회법 제13조를 권고 결정에 한정해 가중된 의결정족수로 해석하려는 시도는 타당하지 않다 ▲의결과 가결, 부결의 개념, 법 문언의 형식, 다른 유사한 합의제 행정기관의 입법례와 이에 대한 법제처의 유권해석, 더 나아가 위원회법의 목적과 취지, 위원회 결정의 효력 등을 전체적으로 고려할 때, 위원회 설립 이후 지속돼온 의결정족수 규정에 관한 해석과 적용을 위 새로운 주장에 근거해 변경할 수는 없다 ▲소위원회는 위원회법 제13조에 따라 각하, 기각, 권고 등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진정에 관해 의결할 수 있으므로, 어느 하나의 결정에 3인 이상의 찬성이 없으면 의결할 수 없다. 따라서 의결정족수에 미달할 경우, 위원들 간 토론과 설득을 통해 합의하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공통의 결론을 내리기 어려우면 본래 전원위원회에서의 위임 취지에 따라 전원위원회에 회부하는 것이 위원회 위원들에게 주어진 역할과 임무다.


김 위원의 막말과 비상식적 태도는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됐다. 민주당 신장식 의원은 김 위원을 향해 “자신의 사적 복수를 위해 정청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인권위 직권조사를 하려 한 것 아니냐”고 묻자 김 위원은 “답변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고 했다.

대답을 들은 야당 의원들은 일제히 쏘아붙였고 박찬대 위원장은 “신중히 답하라”고 경고했다.

김 위원은 국정감사에 앞서 하는 증인선서를 앞두고도 “저는 개별적으로 증인선서를 하겠다”며 “형사소송법은 증인이 증인 선서문을 낭독하고 서명·날인을 하게 돼있을 뿐이지 무슨 합동결혼식처럼 집단 선서를 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야당 의원들은 “운영위뿐만 아니라 많은 상임위서 증인들이 함께 선서한다. 국회에 나와서 증언했던 수많은 증인을 모독하는 언사”라고 비판했다.

20년 지킨
관행 폐기

안 위원장은 김 위원의 합동결혼식 발언이 적절했느냐는 질문에 “저 같으면 그런 발언을 안 했을 것”이라면서 즉답을 피했다.

이 위원 역시 막말 논란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달 30일 열린 제17차 전원위서 이 위원은 이날 상정된 ‘2023 국가인권위원회 인권보고서 발간의 건’을 심의하는 과정서 보고서에 서술된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 관련 부분을 언급하다가 “인권위가 민주노총 지원 인권위원회로 활동해 왔고, 북한 인권에 관해서는 부끄러울 정도로 소극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관련된 특정 팀장 이름을 거명하며 “일을 안 하면 안 할수록 송두환 전 위원장이 좋아했다”고 했다고 한다. 또 인권보고서에 적힌 재판 지연으로 인한 인권침해 서술 부분(재판 신속성 도모)에 수정할 대목이 있다며 “집필자가 누구냐”고 특정 직원 두 명의 이름을 댄 뒤 “쪽팔리다”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위원은 이날 전원위서 이런 발언에 대해 다른 위원이 항의하자 특정 팀장을 다시 거명하며 “정년퇴직 1년 남은 사람을 과장으로 승진 안 시키는 게 관례인데 굳이 승진시켰다”고 비난 수위를 더 높였고 “객관적 진실이자 공익을 위한 발언”이라고 항변했다.

인권위 내부 게시판에는 ‘그런 행태는 비판이 아니라 비난, 힐난임’ ‘전원위서 사무처가 아닌 직원 개인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을 보며 어떻게든 눈에 안 띄는 업무로 도망가야 하나 고민하게 됨’이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고 한다.

이 위원은 직원들에게 갑질을 일삼기도 했다. 정치권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 7월 이 위원과 관련해 제기된 갑질 사례를 조사한 직장 내 괴롭힘 감사 결과 보고서를 정리했다.

이 위원은 지난 2022년 10월 취임 직후 공직자 재산등록을 하는 과정서 담당 직원에게 신분상 불이익을 줄 듯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해당 직원은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고 주변에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잇단 막말
끼어들기

피해자의 상급자는 인권위 조사에서 “당시 이충상 위원은 ‘피해자가 잘못 말해서 팔 필요가 없던 주식을 팔았다’ ‘피해자가 미리 본인에게 교육 간다고 말하지 않았고 대체 업무 처리자가 누구인지도 말하지 않았다’며 화가 많이 나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이 위원은 “(피해자가)여러 가지로 잘못 안내했고, 내 재산공개에 관해 별로 한 게 없다. 담당 과장이 나에게 죄송하다고 사과하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감사반에 진술했다. 피해자는 이 위원의 압박에 “왜 업무 때문에 이런 협박을 당해야 하는지, 제가 저지른 미스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며 사의를 표명했으나 주변의 만류로 이를 철회했다고 한다.

인권위는 육군 12사단 훈련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의견 표명조차 하지 않았다. “군 스스로의 개선 노력이 유지되도록 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게 이유다.

인권위는 육군 12사단 신교대대 운영과 관련해 방문조사를 벌였다. 결과 보고서에는 12사단 신교대대가 교관 및 간부들에 대한 인권교육을 미실시하거나 상급부대의 적절한 조치가 없었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 담겨있다.

인권위는 인권교육과 관련해 “육군 12사단 신교대대는 훈련병 대상의 인권교육을 신병교육훈련 과목인 정신교육시간에 실시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 관련 지침을 준수하지 않은 부분도 확인됐다”며 “지정된 인권교관에 의해 신교대대 교관 및 간부들에 대해 인권교육이 실시된 적도 없었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또 보고서에서는 “여단 차원서 훈련병들을 대상으로 설문이나 고충 접수를 위한 여하의 관리적 측면의 점검이 있었다고 볼 기록도 확인되지 않는다”며 “사단 차원서 사전에 충분한 고충 접수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조치했다면 금번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고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안창호 체제 후 합리적 의사결정 무력화
이충상, 막말에 직원 갑질 징계도 못 해

그러면서 “육군 12사단 신교대대는 기존에도 훈련병 교육에 있어 불합리한 관행이 잔존했음에도 상급부대의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은 문제점이 있었음이 확인된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국회 운영위원회의 인권위 국정감사를 앞두고 방문조사 결과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중요 내용 일부를 삭제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육군사관학교 선임 기수 생도들이 파이 데이(3월14일)에 1학년 생도들에게 초코파이 등 파이류 과자를 강제로 과도하게 먹이고 있다는 제3자 진정과 관련해서도 모르쇠로 일관했다.

인권위 군인권보호국은 육사 1~4학년 생도를 대상으로 한 개별 및 집단 면담과 전체 생도 106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인권위는 “3월14일 파이 데이 당일 생도 면담 과정서 ‘파이류 과자’를 먹도록 하는 관행과 육사 생도 간 발생한 파이 데이 취식 강요 문화는 과거부터 존재해 오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생도 1·2학년의 경우 선배들의 취식 강요를 거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인권침해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했으며, 나아가 취식 강요 외에도 선배 생도의 후배에 대한 부당한 행위나 차별적 관행 등이 있을 개연성도 있다고 봤다.

전체 생도 1067명을 대상으로 한 모바일 설문조사 결과, 89%는 파이 데이 등 취식 강요 문화를 알고 있었다. 특히 응답 내용 중 일부에선 “3월14일 감시가 심할 것이라며 전날 실시했다” “3월10일과 18일 취식 강요를 경험했다” “10분 안에 음료수 없이 최대한 많이 취식해야 했고, 분대별 대결 형태라 과식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서 금지해도 암암리에 진행했고, 강압적 분위기를 형성해서 토하거나 괴로워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등 구체적인 피해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군 문제 조사
의견 표명 무

군인권보호국은 이 같은 방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육사에 파이류 과자 강제취식에 관한 인권침해 관행을 시정해야 한다’는 정책권고와 의견 표명안을 군인권소위에 올렸다. 하지만 지난 9월24일 열린 군인권소위서 군인권보호관을 맡고 있는 김 위원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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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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