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초대형 해외 원전 사업 수주에 대한 기대가 한껏 커진 분위기다. 그러나 웨스팅하우스가 해당 프로젝트의 위협요인으로 부각되면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난 7월 산업통상자원부는 체코전력공사(CEZ)가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업은 두코바니 지역에 1000㎿(메가와트)급 신규 대형 원전 2기를 짓는 것으로, 체코 역사상 최대 규모 투자 프로젝트다. 예상 사업비는 총 30조원, 최종 계약은 내년 3월이다.
냉소적 분위기
한수원은 해당 사업에 ▲한국전력기술 ▲한전KPS ▲한전원자력연료 ▲두산에너빌리티 ▲대우건설 등과 팀을 구성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최종적으로 계약을 따낼 경우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이후 15년 만에 역대 두 번째 해외 원전 수주 기록으로 남게 된다.
한수원은 체코 정부가 두코바니 원전 건설에 이어 추후 테믈린 원전 3·4호기 건설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또 한 번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테믈린 원전까지 따내면 원전 최강국 도약이라는 현 정부의 청사진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변수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한수원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수주가 유력해졌지만 최종 계약까지는 절차가 더 남아 있다. 무엇보다 ‘웨스팅하우스’가 향후 위협요인으로 부각될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웨스팅하우스는 체코 정부가 한수원을 두코바니 신규 원전 2기 건설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한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기 위해 지난달 26일(현지시각) 체코반독점사무소에 진정을 냈다. 웨스팅하우스는 1886년에 설립된 미국 원자력회사로, AP1000 원자로를 내세워 체코 원전 사업 수주를 놓고 한수원, 프랑스전력공사(EDF)와 경쟁했지만 최종 탈락한 바 있다.
웨스팅하우스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한국형 신형경수로 APR1400(APR1000 개량형)과 토대가 된 APR1000의 원자로 설계가 자사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런 이유로 자사 기술을 수출하는 데 미국 정부의 승인을 구할 법적 권리가 있고, 허락 없이 원전 기술을 제3자에 수출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쳤다.
웨스팅하우스의 특허권 주장이 처음 제기된 건 아니다. 2009년 UAE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에도 웨스팅하우스는 지적재산권 문제를 꺼낸 바 있고, 2022년에는 한수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지난해 9월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은 원전 수출 통제권이 미국 정부에 있다며 소송을 각하했지만, 웨스팅하우스는 즉각 항소했고 현재까지 소송이 진행 중이다.
공교롭게도 웨스팅하우스의 날 선 공세는 한수원 뿐 아니라 현대건설에도 부담으로 작용하는 양상이다. 국익을 저해하는 글로벌 기업과 협력하는 국내 기업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은 2022년 5월 웨스팅하우스와 AP1000의 글로벌 사업 공동참여를 위한 전략적 협약을 체결한 이래 협력관계를 다져왔다. 당시 현대건설은 ▲글로벌 시장에서 향후 프로젝트별 계약을 통해 차세대 원전 사업 상호 독점적 협력 및 EPC(설계·조달·시공) 분야 우선 참여 협상권 확보 ▲친환경, 무탄소 사업 영역 확장 ▲미래 에너지 사업 관련 포트폴리오 구축 등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이후 현대건설과 웨스팅하우스는 협력을 통해 원전 사업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해냈다. 불가리아, 북유럽 등에서 이 같은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코즐로두이 원전’ 신규 건설공사는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로부터 북쪽으로 약 200㎞ 떨어진 코즐로두이 원전 단지 내에 1100㎿급 원전 2기를 추가로 신설하는 프로젝트다. 지난 2월 현대건설은 이 사업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코즐로두이 원전 7·8호기는 웨스팅하우스의 AP1000 노형이 적용될 예정이며, 2035년경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건설과 웨스팅하우스는 북유럽 대형 원자력 발전소 건설 사업에서도 돈독한 파트너십을 드러내고 있다. <더구루>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는 지난 10일(현지시각) 현대건설과 AP1000 원자로 기술을 기반으로 스웨덴·핀란드 원전 사업에 협력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했다.
앞서 웨스팅하우스는 스웨덴 국영 기업 바텐팔과 스웨덴 남서부 할란드주 바르베리 지역에 위치한 랑할 원전에 신규 원전을 건설하기로 지난 2월 합의한 상태였다. 지난해 6월에는 핀란드 국영 기업 포르툼과 신규 원전 건설 기회를 모색하는 협약을 맺기도 했다.
이처럼 웨스팅하우스와 협력관계를 구축한 현대건설 입장에서 체코 원전 사업 수주 최종 결과는 자칫 민감한 사안이 될 수 있다. 다만 현대건설 측은 웨스팅하우스와 분명히 선을 그은 상태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웨스팅하우스와 수십년 전부터 관계를 맺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웨스팅하우스가 체코 원전과 관련해 최근 취한 행보를 현대건설과 연결 지어 생각할 건 아니다”라며 “원전 수출 활성화는 현대건설도 중장기적 측면에서 환영할만한 일이며, 현대건설은 동유럽·영국 등 가시적인 성과가 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눈총 신세
일각에서는 미국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이 국제 분쟁 양상으로 흐를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한다. 웨스팅하우스 본사가 위치한 펜실베이니아주는 미국 대선에서 손꼽히는 격전지인 만큼, 원전 사업이 정치적 이슈로 연결될 소지가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체코를 공식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지난 7월 양국 정상 간 통화에서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이 윤 대통령을 초청하면서 성사됐는데, 정상 차원에서 의지를 명백하게 표명하기 위함으로 비춰진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한-체코 정상회담 이후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체코와는 원자력 동맹이 구축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원전을 함께 짓는다는 것은 양국의 전략적 협력이 한 단계 도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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