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한 죽음’ 자발적 안락사의 세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9 11:23:26
  • 호수 14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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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마지막을 선택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정말 죽음을 원합니까? 당신은 ○○씨가 맞나요? 이걸 마신다면 죽게 됩니다. 정말 당신의 뜻이 맞나요.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겠습니다.” 이 질문은 모두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받는 질문이다. 질문을 받는 사람이 모두 “네”라고 대답하면 스스로 안락사 약을 복용하고, 곧 깊은 잠에 빠진다.

안락사는 불치병에 걸린 등의 이유로 치료나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생물에게 직·간접적 방법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행위다. 안락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일 때가 있다. 드리스 판 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는 동갑내기 부인과 93세를 일기로 고향인 네덜란드 동부 네이메현에서 동반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다. 

모두 다
스위스로

그는 평소 아내를 ‘내 여인’이라고 부르며 애정을 드러내는 등 아내 사랑으로 유명했는데, 이 부부의 사연이 알려진 뒤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의 관심이 일었다. 특히 한국은 초고령화 사회로, 내년부터는 한국인 10명 중 4명이 65세 이상이다.

국내는 안락사가 불법이다. 다만 질병이 있는 환자에 관해 의사가 치료할 수 없는 상태라고 판단했을 때 산소호흡기 등을 설치하는 연명 치료를 거부하는 소극적 안락사는 가능하다. 소극적 안락사의 경우 생명 유지에 최소한으로 필요한 진통, 영양, 물, 산소의 공급을 하지 않는다.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 곳은 현재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는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다르다. 현재까지 오리건과 워싱턴, 몬태나, 버몬트,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6개주서 합법화됐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자발적 안락사는 불가능한 일일까? 국내서도 자발적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은 꽤 있다. A씨는 선천적으로 희귀병을 가지고 태어났다. 온몸에 마비가 되는 병이었고 외모도 일그러졌다.

수술과 재활을 하던 중 다리에 후유증도 생겼다. 무엇보다도 병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고통으로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고 있다. A씨는 “태어날 때부터 있었던 병으로 항상 고통받고 살았다. 이제는 고통받고 싶지 않고 자발적 안락사가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이유가 있다. 그래서 이들이 찾는 것은 자발적 안락사를 도와주는 단체다. 스위스 바젤에 한 비영리단체는 자발적 안락사가 허락되지 않은 나라의 사람이 자발적 안락사를 희망할 때 절차를 도와준다. 이 단체는 2019년에 생겼으며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가 없더라도 고령에 안락사를 선택하는 것을 지지한다.

초고령화 사회서 반드시 필요?
“스스로 선택한 후 평화로웠다”

이들은 건강 상태와 관계없이 정신적으로 건강한 성인이라면 누구나 죽음의 방식과 시기를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단체의 사이트에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사람의 사연들이 소개돼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B씨의 친구는 “난 스위스 바젤서 친구와 나흘 밤을 함께 보냈다. 친구는 죽기 12시간 전에 자신의 삶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B씨는 20대 때부터 쌓아 올린 경력을 35살에 그만뒀다. 갑자기 생긴 근육통성 뇌척수염과 만성 피로 증후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B씨는 병원을 꾸준히 다녔지만 B씨의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28세에는 갑상선을 제거했고, 50대에는 헤일리병이라는 희귀 유전 질환을 앓기 시작했다.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질환으로, 이제 B씨에게는 ‘또 어떤 병이 올지 모르는 고통’만이 남아 있었다.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길 기다리다가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B씨는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하기 위해서 해당 단체에 연락했다.


이민을 간 뒤 B씨는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삶의 마지막을 꾸민다는 생각이었고, 삶이 의미 있길 바랐다. 죽음을 선택하기 4~5년 전에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죽을 수 있다는 희망이 삶의 원동력이 됐다. B씨는 그렇게 자신의 삶을 채우고 ‘존엄한’ 죽음을 맞이했다. 

B씨는 삶의 마지막 길을 해당 단체와 함께했다. 자발적 안락사를 선택한 마지막 길은 친구와 함께였고, 친구는 “그의 죽음은 평화로웠다”고 평했다.

해당 단체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연간 100유로(한화 약 14만원 정도)가 필요하다. 이름, 주소, 생년월일, 국적, 여권 정보 등을 입력하면 가입할 수 있다. 가입 후에는 안락사를 신청해야 하는데, 이때 필요한 서류가 있다.

죽음 후
절차는?

필요 서류는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하는 이유 ▲시민권과 현재 생활 상황 ▲간단한 자기소개 ▲가족 상황 ▲건강 진단서 ▲연락 담당자 지명 ▲출생증명서 ▲거주 증명서(요금 고지서, 공과금 고지서 등) ▲결혼·이혼 증명서(미혼은 법정선언문) ▲화장, 유골 등의 주의사항이다. 

이 서류를 제출하면 해당 업체는 신청서를 검토한다. 승인이 나면 업체는 신청자와 함께 자발적 안락사를 할 날짜를 정한다. 자발적 안락사의 방법은 일반적으로 넴뷰탈(펜토바르바탈)을 정맥 주사로 투여받거나 마시는 방법이 있다. 이때 신청자가 직접 정맥 주사의 밸브를 열어야 하고,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발적 안락사를 하는 경우 필요한 비용은 총 1만유로(한화 약 1435만원)다. 여기에는 자발적 안락사가 가능한지 서류 평가와 관리 비용, 예약, 의료상담, 장례서비스, 사후 관리 비용까지 포함된다. 나라나 지역이 다른 경우는 비행기 값이나 숙소 비용이 추가된다. 

이 단체의 특징은 ‘장기간의 우울증’ ‘극심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더라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정신질환이 있다고 자발적 안락사가 거절당하지 않는다.

중요한 점은 해당 업체는 영어를 잘 하지 않아도 안락사를 진행할 수 있다. <일요시사>는 해당 업체에 “영어가 능숙하지 않아도 진행할 수 있는지” “한국인 회원은 얼마나 있는지”를 물었다. 업체는 “영어가 부족해도 안락사가 필요한 사람은 어떻게든 적극적으로 도와준다. 한국인 회원이 있다”고 답했다.

스위스의 또 다른 업체는 회원이 되면 ‘위험한 자살 예방’ ‘완화 치료에 대한 조언과 지원’ 등의 정보를 보내준다. 평생 회원 회비는 140만원 정도이고, 연간 회원은 7만원 정도다. 이곳은 회원에 한해 자발적 안락사를 요청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불치병에 걸렸거나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 정도의 장애가 있는 경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하고 있고 ▲가능한 치료와 대안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정신질환
환자는?

또 ▲죽음을 다른 사람에게 영향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해야 하고 ▲오랫동안 죽음을 원했으며 ▲가족에게 죽음을 통보한 경우여야만 했다.


이곳에서 안락사를 진행하고 싶으면 두 번의 의사 상담을 통과해야 하는데, 이때 의사는 회원을 진찰한다. 왜 죽고 싶은 건지, 온전한 정신에서 죽음을 선택했는지 판단하는 시간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안락사는 회원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를 열어야 한다. 이것이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죽음을 원했다는 증거다. 해당 순간은 녹화된다.

해당 업체의 한 담당 의사는 고의적 살인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2019년 1심에는 징역 5년을 구형받았지만, 2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검찰은 의사가 정신질환자의 의견을 듣고 안락사를 허용한 것을 두고 고의적 살인을 한 간접 가해자라고 판단했지만, 재판부는 안락사 회원이 상담 중에 “정신질환에 불만이 없다. 몸에서 오는 고통이 너무 힘들다. 치료할 수 없는 질환 때문에 죽음을 원한다”고 말한 것을 두고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으로 봤다.

해당 업체의 경우는 한국 사람은 거의 없고 일본 회원이 많은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알아본 업체는 창립자가 변호사이며, 의사들이 협력해 안락사 약물을 처방해 주는 곳이었다. 다른 곳과 다 비슷했지만, 이곳은 우울증과 같은 정신질환 병력이 있으면 진행이 매우 까다로웠다.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말기 암 등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돕기 위한 곳이었다.

다른 곳에 비해 준비할 서류도 많고, 업체 쪽에서 언어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안락사를 준비하는 한국 회원이 있었다.


합법적으로…금액은 1400만원 들어
본인이 직접 정맥 주사 밸브 열어야 

가장 최근 안락사가 합법화된 나라는 호주다. 호주서 인구가 가장 많은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는 자발적 안락사를 허용하는 존엄사법이 발표됐다.

지난해 11월28일 호주 <AAP 통신> 보도에 따르면 이날 NSW에서 안락사가 허용되면서 노던 준주(NT)와 수도 준주(ACT) 등 2개 준주를 제외한 호주의 모든 주에서 안락사가 가능해졌다. NSW주 의회는 2022년 5월 환자 자의에 따라 안락사를 허용하는 내용의 존엄사법을 통과시켰고 시행일은 1년6개월 뒤인 지난해 11월28일로 미뤄 놓은 상태였다.

이날 법이 시행되면서 기대 수명이 최대 6개월이라고 진단받은 불치병 환자나 기대수명이 최대 12개월이라고 진단받은 신경계 퇴행성 질환자는 안락사 신청을 할 수 있게 됐다. 안락사 신청은 NSW주에 최소 12개월 이상 거주한 자의식 있는 성인 환자가 직접 해야 한다.

안락사를 신청하면 보건부와 법무부 장관이 임명한 위원 5명이 승인해야 하며 이와 별도로 독립된 의사 2명의 승인도 필요하다. 안락사 지지 단체인 NSW 존엄사 협회는 첫 12개월 동안 약 600~900명의 말기 환자가 안락사를 선택할 것으로 예상했다.

NSW 존엄사 협회의 셰인 힉슨 대표는 “사람들이 이 법으로 여러 선택권이 있다는 사실에 큰 마음의 평화를 얻을 것”이라고 했다.

반면 기독교 단체인 호주 크리스천 보이스는 안락사법이 ‘반 생명 로비스트’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며 “인간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공격”이라고 비난했다.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안락사에 대한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한국존엄사협회는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조력 존엄사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해당 토론회는 녹색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주최하고 한국존엄사협회가 함께 했다.

이날 화상회의 토론자로 척수염 환자 이명식(63)씨가 발표했다. 이씨는 3시간 이상 앉아 있기 어려운 탓에 화상회의를 통해 이날 토론에 참여했다. 그는 조력 존엄사를 입법하지 않은 현행법은 위험이라며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제기한 바 있다. 이씨는 “(국내서 조력 존엄사를) 반대하고 싶다면 제 통증을 완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반대해야 할 것이다. 통증 완화나 치료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는 무책임한 반대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반대하는 이들에게는 “지금 내 몸이 아무렇지 않게 건강하다고 해서 죽는 그 날까지 튼튼하게 살다가 죽을 것이라고 자신하느냐. 현대의학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이라면 그 통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거나 멈출 수 있는 마지막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도
공론화

반대 측에서는 자발적 안락사가 법제화된다면 취약 계층의 생명권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정아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장애, 노령 등 자본주의 안에서 생산능력을 의심받는 이들에게는 (자발적 안락사가) 의무사항으로 여겨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인으로서의 양심의 자유 문제도 거론됐다. 김 교수는 “의사들에게는 이에 대한 실질적인 역할을 하거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사들에게 의뢰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한다. 조력사가 윤리적으로 논쟁적인 지점에 있는 만큼, 어떤 의사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과 상충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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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쪼개는 보이지 않는 손

민주당 쪼개는 보이지 않는 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7일 이재명정부가 출범 6개월을 맞았다. 정부가 안정 궤도에 접어들면서 탄핵 정국부터 바짝 긴장한 더불어민주당의 결집력이 이전보다 느슨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을 형성하고 때로는 한발 앞서 나가는 당원들에 의해 각기 다른 목소리가 분출되면서 이견이 드러난 탓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에 휘둘린다는 지적이 나온 건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이던 시절 개딸(개혁의 딸)을 자처하고 나선 ‘원조’ 강성 지지층의 영향력도 상당했다. 팬덤 정치 대물림 당시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놓고 개딸의 집단 움직임이 최고조에 달했다. 체포동의안이 가결되자 이들은 친문(친 문재인), 비명(비 이재명)계 의원 이름이 적힌 ‘수박 리스트’를 만들어 문자 폭탄을 돌렸다. 민주당 의원을 대상으로 체포동의안에 부결했다는 확답 메시지를 받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는 ‘수박 색출’ 인증 릴레이를 펼치기도 했다. 일각에서 과도하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말리는 의원은 없었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차기 권력이 누구인지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반기를 들기는 쉽지 않았던 탓이다. 당시 이 대표를 따르는 팬덤은 점점 커졌고, 여기에 올라타는 정치인이 대거 확산되면서 견고한 친명(친 이재명)계 울타리가 세워졌다. ‘개딸에 휘둘리는 민주당’을 정면으로 비판하던 비명계 일부는 4·10 총선에서 컷오프됐고 이들 중 다수가 탈당하는 등 심리적 분당 상태로까지 내몰렸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팬덤이 들어섰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내걸었고, 개혁 의지로 똘똘 뭉친 민주당은 가장 강하고 전투적인 인물(정청래 후보)을 차기 대표로 세웠다. 지난 8월 전당대회서 당선된 정청래 대표 역시 ‘강경파’ 꼬리표를 달고 당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내란의 밤을 뒤로하고 이제는 강력한 개혁으로 대한민국을 정상화해야 한다는 게 국민 대다수의 여론이라는 설명이다. 당시 정 대표는 수락 연설을 통해 ‘당원 주권’이라는 단어를 거듭 강조했다. 정 대표는 “강력한 개혁 당 대표가 되겠다는 약속대로 검찰, 언론, 사법개혁을 추석 전에 반드시 마무리하고 전당대회가 끝난 즉시 검찰·언론·사법개혁TF를 가동시키겠다”며 “당원 주권 정당으로 1인 1표 시대를 열겠다. 당원 주권 정당 TF도 열어 당헌당규를 정비하고 중요한 당 의사 결정은 당원의 뜻을 묻도록 전 당원 투표를 상설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기점으로 당원중심주의라는 명분을 등에 업은 강성 지지층의 지배력이 빠르게 확산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빈틈없이 굴러갔던 민주당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정부와 엇박자를 보이는 정 대표를 향해 ‘자기 정치’ 지적이 나오는가 하면 국민의힘과 협치를 보인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에게 사퇴 요구가 쏟아졌다. ‘개딸’이 밀어준 이재명, 정청래는? 마음 안 들면 ‘수박’…사라진 다양성 3대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이지 않는 민주당 의원에게는 ‘수박(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을 일컫는 은어)’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개혁 과도기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건 민주주의가 건강하다는 증거”라지만 당이 원하는 방향으로 향하지 않을 경우 원인을 찾아 개혁의 걸림돌로 낙인 찍고 상대방을 공격하는 등 다양성을 묵살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본격적으로 당원들의 목소리가 커진 건 ‘검찰개혁’의 속도와 수위를 두고 당정간의 온도 차가 노출되면서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민주당은 강성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장 검찰청을 없애자고 주장했지만 대통령실은 형사사법 체계를 바꾸는 만큼 충분한 논의를 통해 논란을 최소화하기를 바랐다. 이후 사법개혁을 앞두고 대통령실이 ‘조용한 개혁’을 주문하면서 본격적으로 불만이 터졌다. 우상호 대통령실 수석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접근 방식으로 개선해야 한다. 시끄럽지 않게 개혁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전하는 등 당정 간의 온도 차가 드러난 것이다. 강하게 개혁 고삐를 쥔 정 대표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개혁의 적기라고 판단한 강성 지지층도 힘을 보탰다. 정 대표는 우 수석의 발언 이후 자신의 SNS를 통해 “상기하자 검찰 만행, 잊지 말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상기하자 조희대의 난, 잊지 말자 사법개혁!” 등의 글을 여러 차례 게시하며 개혁 의지를 드러냈다. 진통 끝에 개혁을 매듭지은 정 대표는 ‘1인1표제’를 시작으로 본격 당원 주권 시대를 열어젖혔다. 정 대표가 추진한 1인1표제는 당헌·당규상 현행 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선출할 때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이 20:1 미만으로 규정된 것을 1대1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이를 기반으로 강성 지지층의 당내 장악력이 높아질 것이란 분석이 나오면서 당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이틀에 걸쳐 당헌·당규 개정안에 대한 전 당원 여론조사를 실시했고 그 결과 1인1표제 찬성률은 86.81%로 집계됐다. 이를 토대로 정 대표는 “90% 가까운 당원의 뜻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며 “대한민국 어느 조직도 1인 1표, 헌법에서 보장한 평등 정신을 위반해서는 곤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여론조사 투표율이 16.81%에 그치는 등 한계점도 드러났다. 결국 1인1표제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채 중앙위원회로 넘어갔다. 꺾이지 않는 여론 증폭기 지난 5일 중앙위원회에서 ‘1인1표제 도입을 위한 당헌 개정의 건’에 대한 투표를 진행한 결과 부결로 마무리됐다. 찬성 수는 271명, 반대 수는 102명으로 과반(299명) 찬성을 얻지 못한 것이다. ‘당원 대다수가 찬성했다’는 주장과 달리 정 대표의 ‘자기정치’ 의구심을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투표 직후 정 대표는 “전당대회 때 약속한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으나 중앙위원회에서 부결돼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됐다. 1인1표 당헌개정안은 지금 즉시 재부의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어 보인다”며 당원에게 사과했다. 이어 “따라서 부결된 제2호 안건 1인1표제는 당분간 재부의하기 어렵게 됐다”면서도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이재명정부의 국민 주권 시대에 걸맞은 당원 주권 시대에 대한 열망은 여기서 멈출 수 없다.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당원들에게 길을 묻겠다”고 약속했다. 당원들의 반응은 당혹에서 분노로 바뀌었다. 각종 친민주당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대의원을 ‘기득권’이라고 지적하는 비판이 쏟아졌다. 당원 주권 명분을 앞세웠던 만큼 당내 기득권 세력에 의해 당의 ‘진짜 주인’인 당원의 목소리가 묻혔다는 점에서다. 지지자들은 커뮤니티, 유튜브 등의 공간에서 1인1표제에 대한 저마다의 생각을 쏟아냈고, 앞과 다를 바 없이 ‘정청래의 자기 정치’와 ‘개혁 발목을 잡는 수박’이라는 두 프레임의 싸움으로 번졌다. 강성 지지층과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친민주당 성향 유튜브가 스피커 역할을 하면서 팬덤은 점점 몸집을 키웠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우리(국민의힘)도 유튜브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민주당은 굵직한 소통 창구가 정해져 있어 위(지도부)에서 지령이 떨어지면 의원들이 주요 유튜브에 출연해 아젠다 세팅을 하고 톤을 맞추는 등 깔끔하게 움직인다”며 “지금 국민의힘은 각개전투 중이고 출연하는 유튜브도 메시지도 다 다르다. 여론의 큰 흐름을 읽지 못하니 쌍방향 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성 지지층의 중심에 선 정 대표는 이미 ‘뉴스공장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이하 뉴스공장)’와 김어준씨가 운영하는 <딴지일보>를 띄우면서 스피커를 키웠다. 정 대표는 당 초선 의원 모임 ‘더민초’ 워크숍에 참석해 “우리 민주당 지지 성향으로 봤을 때 <딴지일보>가 가장 바로미터다. 거기 흐름이 민심을 보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요즘 언론에서 <딴지일보> 게시판에 글 쓴다고 그러는데 저는 10년 동안 1500번 썼다. 평균 이틀에 한번 썼다”며 “꾸준히 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갈라치기 책임 전가 이 같은 정 대표의 주장을 정면으로 들이받은 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민주당 곽상언 의원이었다. 곽 의원은 (뉴스 공장)을 향해 “이런 유튜브 방송이 ‘유튜브 권력자’라면, 저는 그분들께 머리를 조아리며 정치할 생각이 없다”고 반기를 들었다. “유튜브 권력이 정치권력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한 곽 의원은 “2002년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는 ‘<조선일보>는 민주당의 경선에서 손을 떼라’며 분명한 입장을 밝히셨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적었다. 이후 각종 커뮤니티 등 온라인 공간은 곽 의원을 향한 욕설과 비난으로 도배됐고 기사에 ‘좌표’를 찍는 등 지지층이 집단으로 움직였다. 강성 지지층은 지난해 치러진 국회의장 선거나 전당대회 등 크고 작은 선거에 영향을 끼쳤다. 정치 양극화가 강해지는 만큼 내년 치러질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란 해석이다. 먼저 다음달 11일 민주당 최고위원 보궐선거가 예정돼있다. 지방선거 출마를 준비하는 전현희·한준호·김병주 최고위원의 사퇴로 치러지는 이번 선거는 중앙위원 50%·권리당원 50% 투표를 반영해 치러지는 만큼 여타 다른 선거처럼 당심 잡기가 최대 과제로 자리 잡았다. 사퇴한 최고위원 중 전현희·김병주 의원은 정 대표에게 우호적인 인물로 분류됐던 만큼 새 지도부가 어떤 인물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민주당의 성격도 바뀌기 때문이다. 유동철 부산 수영지역위원장이 출마를 선언하자 이번 보궐선거가 친명 대 친청(친 정청래) 간의 대결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 시절 영입돼 친명으로 분류되는 유 위원장은 지난 부산시당위원장 선거에서 컷오프된 뒤 정청래 지도부를 향해 “결자해지하라”며 공개적으로 항의했던 인물이다. 유 위원장은 지난 9일 오전 국회에서 최고위원 보궐선거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공정하고 투명한 공천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이미 당원들은 의심하고 우려하고 있다. 당내의 비민주적 제도를 개선하고 당내 권력을 감시·견제할 수 있는 최고위원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현 정청래 지도부를 저격했다. 최고위원 보선 당심 바로미터 급부상 진화 나선 당정 “우리 모두가 친명” 이어 “당 대표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컷오프는 이미 현실이 됐다”며 “조직강화특위는 당헌·당규의 미비를 이용해 제어할 수 없는 권한을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리 민주당에 무소불위의 권력은 존재할 수 없다”며 “이재명 대통령처럼 정정당당하게 맞서 공정과 민주의 가치를 복원하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엔 이재명 대통령의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변호인이었던 이건태 의원이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밖에도 친명계인 강득구 의원도 최고위원 후보군으로 거론되면서 당원들의 눈길도 보궐선거로 향했다. ‘심리적 분당’ 트라우마를 겪은 민주당은 다시 한번 원팀으로 모든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부 역시 출범 6개월째인 만큼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일 정 대표, 김 원내대표와 함께 만찬 자리를 가졌다. 2시간30분 동안 진행된 회동서 그는 두 사람에게 “개혁 입법은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합리적으로 처리되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1인1표제가 부결되면서 정 대표의 리더십 타격이 불가피해지자 이를 방어하기 위한 의도로 해석된다. 민주당 역시 화합의 메시지를 내놨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에 ‘친청’은 없다. ‘친명’만 있을 뿐”이라며 “‘친명·친청’은 민주당을 분열시키려는 기우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이재명정부의 성공과 공동운명체다. 이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사람이 민주당에는 단 한 사람도 없다”며 “외부의 갈라치기에 단호히 대응해야 한다. ‘갈라치기’는 당을 흔들고 결국 이정부를 흔드는 것이 목적”이라고 강조했다. 언론을 향해서는 “‘친명·친청’이라고 쓸 때 근거 아니면 자제를 요청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당의 당부에도 이 같은 설명이 나오는 것 자체가 갈등을 인정하는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앞으로 다가올 크고 작은 선거들이 한때 민주당을 벼랑으로 내몰았던 계파 싸움의 도화선이 될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네 편? 내 편? 한 민주당 관계자는 “온라인을 통해 여론이 형성되고 지지자들이 결집하면서 양날의 검이 됐다”며 “(온라인은) 익명이 보장되기 때문에 여론을 흐리려는 사용자가 마음만 먹으면 금세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끝없이 의심하고 반격하다 보면 같은 지지자끼리도 분란이 생긴다. 지난 전당대회서 선명성 경쟁을 할 때부터 민주당 내 갈등은 예견된 수순”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이어 “친청 라인은 강성 의원들을 시작으로 지금부터 조금씩 생길 것”이라며 “선수가 높거나 이름이 알려진 의원들은 대놓고 줄을 서지 못해도 개혁에 힘을 실어주는 등의 방법으로 민주당과 강성 지지층을 움직이고 있다”고 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국힘도 당원 전쟁 강성 지지층을 대하는 국민의힘 상황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 6개월을 앞두고 ‘마이웨이’ 강성 우파 행보를 걸으면서 당내 중진들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서 국민의힘 지방선거총괄기획단은 ▲당원 투표 50% ▲일반인 여론조사 50%인 현재 경선 룰을 ▲당원 70% ▲일반인 여론조사 30%로 바꾸는 방안을 당 지도부에 건의했다. 당심과 민심이 다르지 않다는 취지인데, 중도 확보가 필수인 선거에서 해당 전략이 오히려 당의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심 70%로는 필패한다는 지적이 많다”고 밝혔으며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은 “민심에 역행하는 ‘정치적 자해 행위’”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총괄기획단 위원장인 나경원 의원은 “당심 안에는 이미 민심이 녹아 있다. 당원은 국민의 일부이며 국민과 등 돌려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며 “‘당심이 민심과 다르다’는 말은 결국 우리 스스로 당원을 과소평가하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