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TN 삼킨 유진그룹의 민낯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2.22 11:00:00
  • 호수 14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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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 팔아 방송사 먹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유진그룹 계열사 유진이엔티가 YTN 주식 1300만주를 취득하면서 지분율 30.95%를 확보했다. 1960년대 건빵 군납으로 출발한 회사가 국내 최초의 24시간 보도전문채널을 인수한 것이다. 돌이켜볼 때, YTN을 계열사로 거느리게 된 유진그룹의 성장 과정에는 빛과 어둠이 뚜렷하게 공존했다. 

YTN을 인수한 유진그룹은 건설자재부터 금융권을 아울러 50여개 계열사를 거느린 재계 70위권 기업이다. 건설 현장서 흔히 볼 수 있는 동양 레미콘부터 중견 증권사인 유진투자증권까지 소유하고 있다.

유진그룹은 1954년 유재필 창업주가 세운 대흥제과를 모태로 한다. 대흥제과는 영양제과로 이름을 바꾼 뒤 군대에 건빵을 납품하면서 사세 확장의 기반을 다졌다. 유 창업주는 이를 기반으로 1979년 유진종합개발을 세우고 레미콘 사업에 진출했다.

문어발 M&A
영역 다각화

특히, 수도권에 밀집시킨 사업장을 통해 건설 현장 공급의 어려움을 해소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경쟁사 대비 압도적인 영업 우위를 점하면서 레미콘 업계 최상위 포지션을 유지하게 했다.

창업주의 장남인 유경선 회장이 1985년 대표이사로 취임한 뒤 회사는 사세 확장에 박차를 가했다. 레미콘 외 건자재 유통과 건설로 사업영역을 확대하고,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업다각화를 시도했다. 


지난 2004년에는 외국 업체와 경쟁 끝에 고려시멘트를 인수했다. 2007년에는 로젠택배, 하이마트를 잇달아 인수하며 물류와 유통으로 확장했다. 같은 해 서울증권 및 자회사를 인수해 금융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2007년에는 재계 30위권에 진입하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건설경기 불황으로 이어지면서 유진그룹은 로젠택배와 하이마트를 매각했다. 이후 2016년 레미콘 회사인 동양과 2017년 현대저축은행(현 유진저축은행)을 인수했다. 수익구조 안정화에 성공한 유진그룹은 현재 재계 순위 78위를 차지하고 있다.

사업다각화에 열을 올리던 유진그룹이 YTN 인수전에 뛰어든 것은 과거 방송 관련 사업서 고배를 마신 탓이라고 업계 관계자들은 해석했다. 유진그룹은 1997년 부천지역 종합유선방송사인 드림씨티방송에 출자한 것을 시작으로, 은평방송을 인수했다. 

이어 부천, 김포, 은평지역에서 40만명의 사업자를 거느린 케이블TV 사업자로 승승장구했다. 당시 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서는 처음으로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하는가 하면 외국계 기업으로부터 3000만달러를 유치하기도 했다.

당시 미디어 사업을 그룹의 주력 사업으로 육성한다는 구상안을 펼쳤다. 2006년엔 대우건설 인수를 위해 드림씨티방송 지분을 CJ홈쇼핑에 매각했다. 대우건설 인수전에 실패했지만,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됐다.

미디어 사업의 미련을 버리지 못한 유진그룹은 지난해 10월23일 한전KDN과 한국마사회의 YTN 보유지분 30.95%를 인수했다. 이어 방송통신위원회에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을 신청했다. 다음 날 방통위는 전체회의를 소집하고 신청 하루 만에 심사 기본계획을 의결했다.

50년대 군용 제과 납품해 동양 레미콘 인수
로젠택배·하이마트 인수···재계 30위권 진입


과거 타 방송사들이 승인 신청 접수 후 기본계획 의결까지 길게는 석 달이 걸렸던 것에 비해 방통위가 ‘졸속 심사’를 밀어붙인다는 비판이 일었다.

앞서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YTN 지부는 크게 반발했다. 노조는 지난해 11월 말, 언론노조 회의실서 기자회견을 통해 유진그룹이 YTN의 최대주주가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유로는 ▲유진그룹 노조 탄압 ▲유진그룹 오너 검사 뇌물 증여 사건  ▲계열사를 통한 부당 지원 ▲ESG 경영평가 최하위로 총 4가지 항목을 들었다.

위 4가지 항목은 방송법 제15조의2 제2항에 규정된 최다액 출자자 변경 승인심사 기준에 크게 못 미친다고 강조했다.

유진그룹이 YTN 최대주주로 등극하면서 유 회장의 도덕성 논란이 재조명됐다. 유 회장은 지난 2008년 유진그룹 내사 무마 대가로,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김광준 검사에게 5억4000만원을 빌려주는 등 뇌물죄로 기소됐다. 결국 2014년 대법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이 확정됐다. 

유 회장은 범행 과정서 대기업 대표 지위를 이용해 관련 임직원들에게 허위 진술을 하도록 해 사실을 은폐하려고도 했다. 또 김 전 부장검사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기소된 유 회장의 동생 유순태 전 EM미디어 대표도 각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08년 김 전 부장검사는 특수3부가 내사 중이던 유진그룹의 미공개 내부정보를 이용해 유진그룹 계열사에 주식투자를 했다. 김 검사는 유진그룹과 다단계 사기범 조희팔의 측근으로부터 9억7000만원을 받기도 했다. 그 중 일부를 유진그룹 계열사에 투자한 것으로 드러났다.

혜성처럼 
나타났다

김 검사를 비롯해 특수3부 검사 3명이 유진그룹 계열사 주식에 투자했다.

검사 뇌물 사건은 경찰이 먼저 수사에 착수했다. 이후 검찰이 특임검사를 임명하면서 경찰 압수수색 영장 기각 등 검·경 충돌로까지 번졌다. 당시 <법률신문> 등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2년 11월16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윤석열 부장검사)는 김 검사의 본인 실명계좌를 압수수색하기 위해 경찰이 신청한 계좌추적영장을 기각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경찰이 신청한 영장에 김 검사의 계좌 추적을 위한 구체적 비리 내용이나 차명계좌에 입금한 사람들과 관련한 수사기록 등 관계 서류가 제대로 첨부돼있지 않다”며 “만약 경찰이 차명계좌에 입금한 사람을 조사하고도 기록 편철조차 하지 않은 채 영장 신청을 했다면 이는 검사의 수사지휘를 잠탈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경찰은 “영장에 충분한 자료를 첨부했음에도 검찰이 이를 기각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당시 2심 재판부는 “대기업 회장으로서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윤리적 책임을 망각했다”고 판시했다.

문제는 유씨 일가뿐만이 아니다. 유진그룹 홍보팀은 2022년 9월 사내에 노조가 설립되자 노조위원장에게 언론 접촉을 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실무자들도 부정부패의 면모를 드러냈다. 기자들에게는 자사 노조 기사를 쓰지 말라거나 쓴 기사도 삭제해 달라고 한 달 동안 요청했다. 


이를 두고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노조에 보장된 언론의 자유가 침해될 것”이라며 “노조 관련 기사 삭제 요청은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중앙노동위원회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유진그룹은 노사협의회 설치 방해, 직원 수당 미지급 등으로 노동청의 행정지시를 받았다. 이에 YTN 노조는 유진그룹의 언론관이 왜곡됐다며 인수를 반대했다.

유진그룹 계열사 유진투자증권도 주가조작, 불법 리딩방 운영 의혹에 휩싸였다. 지난해 5월, 경찰은 유진투자증권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A 임원이 주가조작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경찰은 지난 2018년 모 에너지 관련 업체의 주가가 급등할 당시 A 임원이 작전 세력과 함께 출처가 불문명한 호재를 퍼뜨리는 등 주가조작에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유령회사 동원
몸집 키우기

또 지난해 6월 유진투자증권 B 이사는 불법 리딩방을 운영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B 이사는 2022년 미국 증시가 크게 떨어질 것을 예측해 주목받은 투자 전문가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인기를 끌었다. B 이사는 그해 7월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오너 리스크로 얼룩진 유진그룹은 2017년 10년간 운영하던 ‘나눔 로또’ 사업 계약서 ‘도덕성 점수’ 미달 등으로 탈락했다. 당시 경쟁업체들은 유진그룹에 대해 ‘수억원대 뇌물 공여자가 이 같은 정부 수탁사업을 맡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했다. 흑역사가 짙은 유진그룹은 지난해 ESG 경영평가서 최하위인 D등급을 받았다.

YTN 노조는 유진그룹의 ‘회장님 회사 80억 부당 지원’ 의혹을 제기하면서 지난 2018년 금융감독원 문서를 공개했다. 자료에는 유 회장 등 오너 일가가 소유한 이른바 ‘회장님 회사’인 천안기업이 지난 2015년 여의도 신사옥을 매입하는 과정서 유진그룹으로부터 80억원을 부당 지원받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고한석 YTN 지부장은 “천안기업은 여의도 사옥 입주 계열사들을 상대로 임대사업을 하며 안정적인 부동산 임대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 혐의를 받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방통위 심사 항목 1항 방송의 공적 책임·공정성 및 공익성의 실현 가능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유씨 일가는 천안기업을 통해 주머니를 채웠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매출이 부진했던 천안기업이 주력 계열사들로부터 임대료를 챙겨 알짜 회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유 회장은 2018년 5월15일 천안기업 우선주 지분 23.3%를 인수했다. 매입금액은 주당 9704원(액면가 5000원)인 19억원이었다. 셋째 동생 유창수 유진투자증권 부회장도 13억원가량에 15.5%를 매입했다.

천안기업 우선주는 2015년 5월 발행한 전환상환우선주 84만2104주로 당시 발행금액은 80억원(주당 9500원·액면가 5000원)이었다. 이 가운데 38.8%를 유씨 형제가 사들였다. 당시 천안기업은 자본금 2억원, 자산은 14억원 수준의 작은 회사였다.

‘스폰서 검사’ 스캔들
오너가 리스크 재조명

천안기업의 회사 성격과 사업 내용은 오너 일가의 지분인수가 목적이라는 의혹을 키웠다. 천안기업은 1996년 4월 설립된 부동산 임대 업체다. 본사는 충남 천안에 있고, 서울 여의도 유진그룹빌딩의 임대사업을 영위했다. 여의도에 위치한 이 빌딩은 1981년 건축돼 중소기업진흥공단(중진공) 여의도 사옥으로 썼던 건물면적 1만6523㎡, 지상 15층·지하 3층짜리 건물이다. 천안기업은 해당 빌딩을 2015년 5월 중진공으로부터 645억원에 인수했다. 

자금 여력이 없던 회사가 중진공 건물을 인수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NH농협은행 외 2개 금융기관 차입금 600억원과 이에 대한 760억원의 유진그룹 채무보증이 뒷받침됐다. 몸집보다 300배 이상의 자금을 총수익스와프 즉, ‘TRS’ 계약을 맺어 확보한 것이다.

자금력이 있는 유진그룹이 보증을 서고, 천안기업이 다른 투자자로부터 돈을 빌리는 방식이다. 유진그룹 덕을 본 천안기업은 더 많은 대출을 받을 수 있었고, 이후 증자까지 나서며 700억대 거액을 마련한 것이다.

천안기업은 이를 계기로 급성장했다. 2016~2017년 재무실적을 보면 매출은 각각 매출 61억원, 64억원에 영업이익이 35억원, 38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은 60% 안팎이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충당하고도 남아 순이익 또한 각각 10억원, 14억원에 이른다.

수입은 관계사로부터 챙기는 임대료가 전부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건물에는 유진그룹과 유진투자증권이 입주해 있다. 2017년만 해도 유진그룹 15억원, 유진투자증권 48억원 등 사실상 이 두 관계사로부터 받는 임대수익이 천안기업의 전체 매출로 나타났다.

유진그룹 사옥의 수십억원 임대료는, 천안기업의 최대주주였던 유 회장 일가에게 돌아가는 구조가 완성된 것이다. 당시 금감원 자료를 넘겨받은 공정거래위원회는 ‘사익편취’ 혐의로 천안기업을 조사 대상으로 봤다. 하지만 당시 정식 신고가 없어 본격 조사로 이어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8년 대기업에 처음 이름을 올린 유씨 일가는 천안기업 지분을 20% 이하로 낮추는 방법으로 규제를 회피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사익편취 감시망이 강화되면서, 우회적인 방법으로 총수 일가에 수익을 몰아주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툭하면 
구설수

현재 천안기업 대표는 유 회장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진구 유진그룹 혁신기획실장이 맡고 있다. 김 실장은 유진그룹이 YTN 인수를 위해 자본금 약 1000만원으로 설립한 특수목적법인 유진이엔티 대표도 겸하고 있다. 자금능력이 없는 사실상 유령 계열사를 통해 막대한 임대수익을 올리면서도 유진그룹 측은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못했다. 

<smk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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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단독]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캄보디아 ‘셀허브’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민낯이 드러났다. 주로 수도인 프놈펜 인근과 시아누크빌 범죄 단지가 그들의 주둔지였다. 국내 조직폭력배가 중국 갱단과 결탁해 만든 ‘셀허브’의 경우 피해자만 수십명이다. 이들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가장했다. 사이트에는 유명인의 사진이 수차례 도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는 사라진 셀허브 엔터테인먼트의 홈페이지. 지난해 7월 <일요시사>가 취재한 이후 대표이사의 이름과 사진이 여러 차례 바뀌었다.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표창장을 받았다며 문서를 위조하기도 했다. 이 기업의 정체는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확인된 피해액만 약 40억원, 피해자는 수십명이다. 한 언론사는 보도자료까지 작성하며 홍보하기도 했다. 조직적 준비 경찰 수사 중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4일, 셀허브 조직원 3명을 각각 구속·불구속으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은 조건 만남 사이트를 운영한 로맨스 스캠 조직이다. 여성 관련 데이트 상품을 판매하거나 연애 빙자 사기를 일삼았다. 셀허브 조직원이던 A씨는 “연예인 지망생이나 모델과 연락하게 해 준다며 50만원에서 100만원까지 대포통장 계좌에 돈을 입금하게 한 뒤 텔래그램 아이디를 알려주고 연락하게 하는 시스템”이라며 “연결된 여자는 실제 남성이고 한국에서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이 조직은 지난해 3월 캄보디아 범죄 밀집 지역인 태자 단지에서 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같은 해 5월 사이트를 개설해 조직원들에게 민간인 협박, 중국어 통역 등의 역할을 맡기고 수십명으로부터 약 40억원을 뜯어냈다. 같은 해 7월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이 조직은 셀허브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의 이름을 ‘김현숙’에서 ‘박소희’로 변경하고 유명인의 사진을 수차례 도용했다. 유 전 장관에게 표창장까지 수여받았다며 피해자들의 의심을 피하려는 꼼수도 서슴지 않았다. A씨는 “조직에서 탈출하려는 사람은 밤새 맞거나 강제로 마약을 투약당하기도 했다. 조직폭력배 출신 한국 사람들이 간부고 일반 조직원은 교민 사이트를 통해 ‘한 달에 500만~10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거짓말에 속아 일하게 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은 서울경찰청이 수사하기 이전인 지난해 7월부터 강서·영등포·구로경찰서 등에 여러 고소장이 접수됐었다. 하지만 수사는 원활하지 않았다. 주요 혐의자가 해외에 거주 중이거나 피의자 특정이 어려운 게 난관이었다. 수사를 담당했던 한 경찰 관계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주요 혐의자들이 거주한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지난해부터 공조를 요청했으나 캄보디아 당국이 비협조로 일관했다”며 “고소인분들이 ‘왜 안 잡냐’ ‘내 돈 어떻게 하냐’는 등 불만이 많으셨다. 매번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캄보디아가 협조하지 않으면 조치가 불가능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3월부터 조직원 모집…태자 단지서 모의 ‘유인촌 표창장’ 걸어 놓고 ‘정상 기업’ 홍보 막막했던 수사는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면서 풀리기 시작했다. 이재명정부가 캄보디아를 압박했고 현지에 구금된 한국인 범죄자 겸 피해자 수십명을 국내로 송환했다. 송환된 인원 중 일부는 셀허브 사건과도 연관된 것으로 파악됐다. 정성학 충남경찰청 수사부장은 지난 20일 청내 프레스센터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들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사기) 및 범죄단체 가입 및 활동 혐의로 전원 구속했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부건(총책 가명, 40대 초반, 한국말을 쓰는 외국인 추정) 조직으로부터 확인된 피해 건수는 110건, 피해액은 93억여원에 달했다. 약 100명의 조직원을 거느린 부건은 지난해 중순부터 올해 7월까지 주로 프놈펜 웬치(범죄 단지) 및 태국 방콕 등지에서 한국인을 상대로 범행을 벌여왔다. 부건 조직은 지난 2018년 중국에서부터 활동을 시작해 그동안 단속을 피하려 태국, 캄보디아 등지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범행을 계속해 왔다. 이들은 데이터베이스, 입출금 등을 지원·관리하는 CS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팀, 검찰 사칭 보이스피싱팀, 코인투자리딩 사기팀, 공무원 사칭 노쇼 사기팀 등 총 5개 팀으로 이뤄진 조직체계를 갖췄다. 이들은 가구판매업을 하러 캄보디아에 갔다고 진술했으나 이후 지역 선·후배 권유, 고액 아르바이트 인터넷 광고 등을 접하고 범죄에 연루된다는 걸 알면서도 조직에 가입해 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속아서 조직에 들어갔다고 진술하지 않은 이들의 유입 경로는 ▲지인 포섭 29명 ▲인터넷 광고 등 포섭 8명 ▲현지 카지노 포섭 6명 ▲기타 2명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남성 42명과 여성 3명으로 연인도 있었다. 대부분은 20~30대 연령으로 최소 2개월부터 최대 16개월까지 범행에 가담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조건 만남 사이트 경기북구경찰청 형사기동대도 전기통신금융사기특별법 위반 등 혐의로 피의자 15명 중 11명을 구속 송치했다. 이들은 지난해 8월부터 한 달간 캄보디아 범죄 단지에서 여성을 사칭, 조건 만남 등을 명목으로 피해자들로부터 돈을 가로챘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성 만남 광고를 낸 후 이를 보고 연락해 온 피해자에게 여성인 척 채팅으로 유인했다. 여성을 소개받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개발한 조건 만남 사이트에 회원 가입과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속여 인증을 위한 돈을 요구했다. 3차례에 걸친 인증 절차 과정에서 여러 게임에 성공하면 가입비를 돌려준다고 속여 피해자로부터 1인당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억원을 받아 챙겼다. 피해자들이 믿을 수 있도록 별도의 만남 인증과 후기글을 남기는 ‘화력방’도 운영했다. 현재까지 확인된 피해 규모는 피해자 36명, 피해금 16억원 상당이며, 1인당 최대 피해 금액은 2억1000만원이다. 이들은 대부분 20~30대 남녀다. 최초 범죄집단을 구성한 캄보디아 프놈펜 지역 명칭 ‘툴콕’을 의미하는 ‘TK’파로 스스로를 부르며 총책을 정점으로 한 지휘·통솔 체계를 갖췄다. 조직 운영을 총괄하는 총책, 이를 보좌하며 실무 전반과 인력 공급 등을 담당하는 총관리자, 각 파트 팀원의 근태를 관리하고 지시하는 팀장으로 구성됐다. 또 자체적인 조건 만남 홈페이지를 제작하는 개발자, SNS에 광고 글을 게시하는 홍보팀과 광고를 보고 접근한 피해자를 기망하는 로맨스 2개팀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상호 가명 사용 ▲근무 중 휴대전화 금지 ▲사진 촬영 금지 ▲야간에는 커튼으로 외부 차단 ▲다른 부서와의 업무 내용 공유 금지 등의 규칙에 따라 생활하기도 했다. 중국 국적 100명 뒷배 이들은 총책이 마련한 건물에서 2인1조로 합숙했는데 프놈펜 툴콕 지역의 13층 건물을 사용하다가 지난 8월, 현지 단속을 피해 센소크 지역 7층 건물로 이전해 범행을 이어오던 중 현지 수사 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은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SNS 구직 광고나 조직원을 통해 범죄단체에 가입했다고 진술했으며 사기임을 알고도 범행을 지속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의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구금된 중에도 총책이 이른바 관작업을 통해 자신들을 석방시켜 줄 것이라는 말만 믿고 대사관의 도움을 거절하고 귀국하지 않았다. 셀허브 사건 간부들은 타 사건에도 연루됐다. 지난 7일 캄보디아 바벳에 인접한 베트남 떠이닌 지역 국경 검문소 인근에서 30대 여성 B씨가 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는데, 숨지기 직전까지 셀허브 간부와 같이 있었다. B씨의 사인은 마약 과다 투약이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B씨가 셀허브에서 한국인 명의의 대포통장을 공급해 왔다고 보고 있다. A씨는 “셀허브에서 일할 사람을 모집하는 역할을 했던 B씨인데 통장을 팔려고 캄보디아에 도착한 한국인들을 유인해 범죄 단지로 팔아넘기고 유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수사기관도 B씨에 의해 범죄 단지에 넘겨지는 피해를 입거나 유흥업소 일을 강요당한 사례를 확인하고 조사 중이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사실상 마약을 강제로 과다하게 투약당한 살인사건이라는 첩보는 아직 확인 중”이라며 “특정 조직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현지 경찰도 수사 중인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개 조직폭력배 출신…지휘는 중국 조직이 맡아 40억 피해액 환수 불가능 “자금 세탁 끝났다” 첫 데이트하던 연인을 치어 여교사를 숨지게 했던 이른바 ‘대전 머스탱 교통사고’의 피의자도 셀허브 조직원으로 확인됐다. 피의자 전모씨는 2019년 2월10일 오전 10시14분 대전 중구 대흥동에서 면허도 없이 외제차를 운전하던 중 인도를 걷던 조모씨와 박모씨를 들이받아 박씨를 숨지게 하고, 조씨에게 중상을 입혔다. 전씨가 대여한 외제차는 불법 대여 차량이었다. 이 차량은 애초 대구에 사는 C씨가 자신 명의로 캐피털에서 월 115만원씩 주는 조건으로 60개월간 대여한 것이다. C씨는 사촌 안모씨와 함께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나모씨가 올린 ‘외제차 저렴하게 빌려줄 사람을 찾는다”는 글을 보고 접근, 한 달에 136만원씩 받기로 하고 대여한 머스탱 차량을 재임대했다. 나씨는 이렇게 빌린 머스탱 차량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활용해 “외제차를 빌려준다”고 광고하며 또다시 대여업을 했다. 전씨는 나씨가 올린 이 글을 보고 일주일에 90만원씩 주기로 약속하고 머스탱을 빌려 운전했다. 매년 확정되는 범죄수익 추징금은 30조원을 넘지만 환수 금액은 1%에도 미치지 않는다. 법무부가 캄보디아에서 보이스피싱과 로맨스 스캠 등의 범죄로 발생한 현지 범죄수익을 국내로 환수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법무부는 “캄보디아 내에서 벌어진 범죄 가운데 현재 국내에서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이 1차 현지 수사 의뢰 대상”이라며 “이후 국내에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종적으로 환수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에 따르면 해외에서 발생한 범죄라 하더라도 피해자가 국내에 있고 피해액이 특정될 경우, 우리 정부가 해외에 범죄수익 환수를 요청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2019년 캄보디아와 국제형사사법공조 조약을 체결해 2021년 정식 발효됐다. 주요 간부들 타 사건 연루 정보기관 관계자는 “범죄자 개인이 아닌 조직을 대상으로 한 범죄수익 환수 사례는 거의 없다. 특히 국내에서 수사와 재판이 끝나야 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건 좋지만 이미 늦었다. 범죄조직 특성상 이미 코인이나 대포 통장으로 제3국에 은닉하거나 세탁을 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가 끝나고 유죄 판결이 나기까지 수년이 걸리는데 환수 절차는 이 모든 사법절차가 종료돼야 가능하다. 특히 조세회피처로 범죄수익을 옮겨놨다면 환수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