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가습기살균제로 아내·장모 잃은 송기진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대표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11.28 13:44:10
  • 호수 14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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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기업 치료비도 안 준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7000명.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숫자다. 이들은 폐가 서서히 굳어가는 병인 폐섬유화증 등 각종 폐질환에 걸렸다. 일상생활서 인공호흡기를 착용해야 하거나 걷는 것조차 힘든 피해자들도 존재한다. 그런데 가해기업들은 “금액이 부담스럽다” “재판 결과를 보자”며 치료비 제공을 미루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34조(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분담금)에는 ‘환경부 장관은 이 법에 따른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지원 등에 드는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가습기살균제 사업자’ ‘원료물질 사업자’에 대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가습기살균제 피해 구제 분담금(이하 분담금)을 부과·징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분담금 산정은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납부하는 분담금의 총액은 1000억원으로 하며, 개별 가습기살균제 사업자가 납부하는 분담금은 공식 계산식에 따라 산정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가습기살균제 원료를 만들었거나 판매한 기업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에게 분담금을 지급해야 한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이 분담금으로 병원 치료를 받는다. 사람마다 증상은 다 다르지만,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경제적 활동이 어렵고, 보호자가 간병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해 분담금은 필수적이다.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니 기업은 분담금을 내야 한다. 그런데 기업의 ‘말’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일요시사>는 지난 21일, 서울시 도봉구 소재의 한 카페서 송기진 가습기살균제기업책임배보상추진회 대표를 만나 해당 상황에 대해 들어봤다.

먼저 송 대표는 자신이 가습기살균제 판매 기업과 통화한 내용을 <일요시사>에 제공했다. 해당 통화서 가해기업은 “(우리 입장에선)분담금 액수가 적지 않다. 기업이 동일한 수준의 분담금을 낸다. 최종 재판 결과가 나오지 않았는데, 이런 부분에서 다른 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책임을 갖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우리는 일단 최종 결과를 보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기업 측이 말하는 ‘최종 결과’는 2021년 1심 재판부가 가습기살균제에 함유된 CMIT(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메틸이소티아졸리논) 성분이 폐질환을 일으킨다는 사실이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전원 무죄를 선고한 것을 말한다. 

재판부는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고 본 것인데, 이는 환경부가 CMIT·MIT 성분의 인체 유해성을 인정한 것과 배치된 결과다.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 중으로, 재판 결과는 내년 1월11일에 나온다. 즉, 항소심 결과에 따라 해당 기업은 분담금을 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내비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에 대한 송 대표의 입장을 들어봤다. 그는 120명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구성된 모임의 대표로 어떻게 피해자 대표가 됐는지 등에 대해 들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대표는 왜? 

▲이 활동을 시작한 것은 2021년부터다. 그땐 이미 장모님과 아내가 가습기살균제로 사망한 이후다. 그때만 해도 가습기살균제 사건 때문인지 몰랐다. 장모님이 돌아가신 후 시간이 흘러 아내가 일하기 위해 보건소 건강검진 기록지가 필요해 검사해 보니 폐에 문제가 있었다. 굉장히 건강했으며, 가족 중 폐가 아픈 사람도 없다. 대학 병원에 가니까 2년만 살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언론에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례들이 보도되면서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아내가 아프단 것을 알게 됐고, 피해 인정도 받았다. 그리고 2달 뒤에 세상을 떠났다. 

개인적으로 만나면 문제 해결 긍정적
공식적으로 만나자면 나몰라 꽁무니


사람이 이렇게 죽으니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원래 목사였는데, 아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는 목회를 계속 할 수 없어 탁구장을 운영한다. 그런데 알아 보니 사람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피해자들이 피해 배·보상을 받지 못했다. 누군가는 피해자 대표를 맡아야 하는 거 아니냐. 그래서 하기 시작한 것도 있다.

-장모와 아내가 어떻게 투병 생활을 했나?

▲앞서 말한 것처럼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아픈지 몰랐다. 우선 장모님은 연세가 많으셨는데, 병원에 가보니 폐 섬유화가 진행 중이었고 그로 인해 돌아가셨다. 아내도 같은 병이었다. 병원에 유전병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해 난치병 환자로 분류돼 치료받았다.

대학병원 의사는 50대 초반의 아내가 2년밖에 못 산다고 했으니 완전히 날벼락이었다. 계속 치료했지만, 폐 기능이 저하되면서 아내는 점점 숨을 쉬지 못했다. 집이 3층이었는데, 막판에는 계단을 걷지도 못할 정도였다. 집에서도 산소호흡기를 끼고 다녔다.

마지막 방법이 폐 이식이라서 이식받겠다고 등록했지만, 이게 순서라는 있어서 그런지 기증자가 없었다. 만약 1년 안에 기증자가 나왔더라면 아내는 살았을 것이다.

한 번은 기증자가 나와서 수술 준비를 하고 기다리는데, 기증자의 폐가 너무 안 좋아서 수술이 취소됐다. 그 후 이식 등록 1년이 지난 뒤 이식받았는데, 기증을 받고 나서 40일 지나 중환자실서 일반실로 갔다. 당시엔 교회서 한 달 휴가를 받아 아내를 간병했다.

아내는 이식한 뒤 한 달 정도 회복에 전념했다. 처음엔 손에 힘이 없었는데 글씨를 쓸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그렇게 희망적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잠을 못 자더니 중환자실로 들어갔다가 나오지 못했다.

-병원비는 얼마나 들었나?

▲가장 큰 문제는 병원비가 아니었다. 아내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늦게 등록됐지만, 난치병 환자로 분류돼 병원비는 전체의 10%만 지불했다. 문제는 내가 간병해야 하니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점이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폐 이식을 진행하면서 6개월에 6000만원 정도의 많은 비용이 들어갔다. 나중에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 인정되면서 이 금액(분담금)은 모두 받았다. 이 돈이 없었더라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인정된 후에 받았으니, 6000만원 비용은 내 신용카드로 결제했다. 전부 빚이었는데, 그나마 피해자로 인정받고 병원 영수증을 제출해서 병원비를 다 받았으며, 치료비는 한도 없이 준다.

-가해기업 측 발언이 어떻게 느껴졌는지?

▲너무 화가 난다. 2021년부터 계속 가습기살균제 관련 측 사람들과 만나왔다. 이들은 모두 개인적으로 만나서 “제대로 문제 해결을 해보자” “배·보상을 진행해보자”고 하면 항상 긍정적인데,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 내용을 공개하자” “공식적으로 만나자” “우리끼리만 만나지 말고 피해자 대표들끼리 만나자”고 하면 자리를 피한다.


7000명 인생이 망가진 사건
“정부는 왜 분담금 내지 않나?”

그래도 대화는 해야 하고 13개 피해자 단체가 회의도 하니 계속 만났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법적으로 가해기업들이 분담금을 내야 한다고 정해놨는데, 이제 기업 간 분담금 내는 것이 똑같은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있다.

솔직히 말해 피해자가 이런 일까지 신경써야 하는 게 화난다. 사실 이건 기업 간 조율해야 할 일 아닌가? 이미 법을 만들 때 본인들도 인정한 부분이 있다. 합의금이든, 배·보상 문제든, 분담금 비율이든 기업이 법적으로 다퉈서 각자 비율을 정하는 것은 알아서 해야 한다. 제발 피해자를 가해기업이 싸우는 데 끼어들게 하지 마라.

-분담금이 생긴 이유는?

▲기본적으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터지고 피해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병원비는 계속 들어가고, 언제까지 들어갈지 알 수도 없다. 특히 성장하는 아이들은 더 그렇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에도 단계가 있는데, 1~2단계 사람들은 이미 배·보상을 받았다. 금액이 얼마인지는 모른다.

문제는 남은 사람인데 병원비, 유족 위로금, 요양 급여 등 구제급여를 만들었다. 병원비용은 과거 영수증까지 내면 받을 수 있다.


-기업이 갑자기 부담스러워하는 이유는?

▲사건이 처음 터진 상황에서는 피해자 수가 적기도 했고, 사망자는 돈을 한 번만 주면 되기도 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피해자가 많아졌다. 7000명이 넘는다. 그러니 내야 하는 금액도 무한대가 됐다. 분담금은 피해자가 존재하는 한 계속 내야 한다.

그러니 가해기업들이 가습기살균제와 피해자의 연관성이 없다고 소송을 걸어놓은 것이다. 여기서 기업이 이기면 피해자는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게 된다. 더 이상한 것은, 법을 보면 정부도 책임이 있어 구제급여를 내야 하는데 1차만 내고 2차는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약 기업들이 분담금을 못 내겠다고 하면 피해자들 치료비는 어떡하느냐? 그럴 때는 정부가 내야 한다. 2차 때 정부가 왜 돈을 안 냈는지는 모르겠는데, 1차 때 냈던 정부 돈도 쓰지 않고 그대로 있다. 이것도 왜 안 쓰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제 3차 돈을 내야 하는 시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제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을 끼워 넣지 않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가정형편이 어려워 남들보다 늦은 스물여섯살에 신학대학교에 갔고 서른살에 졸업해 서른두살에 결혼했다. 목사가 되려면 대학원까지 가야 해서 목사 안수를 받은 것은 마흔한살때였다. 다행히 중간에 임대아파트로 들어갔다.

바로 목사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부목사를 잠깐 했었는데 꿈을 이뤘던 기간이기도 하고, 이 기간이 내 인생서 유일하게 행복했다. 그런데 갑자기 가습기살균제 사건으로 인생이 무너져 내렸다. 나뿐만이 아니다. 지금 피해자가 7000명이나 되는데, 7000명 인생 모두가 무너진 것이다. 여태까지 기업이 피해자 가족에게 배·보상해준 인원은 1, 2단계 피해자 뿐이다.

과거 영수증까지 내면 받을 수 있다. 아내 사망 당시 구제급여 및 유족조의금 한도가 4000만원이었고 병원비 및 간병비(증빙된 영수증)로 7500만원을 지원받았지만, 유족조의금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구제급 한도가 1억으로 조정되면서 2500만원을 추가로 지원받았다.

이 문제가 빨리 해결돼,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길 바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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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